안동포.2

내 고향 마을 아낙네들은 정말로 서로 시샘을 했던 것은 아니었다. 아마도 이 같은 노래는 모든 노동요가 그렇듯이 고되고 힘든 노동의 어려움을 이기기 위해 저절로 흥얼거리는 가락에 불과했을 것이리라.

마침내 며칠 낮밤을 새운 삼 광주리가 가득 차면, 마당을 깨끗이 쓸고 날틀에 걸어, 가닥가닥을 합쳐 실을 풀고 감고 하는 돌곳이라는 기구에 감아 베 날기를 마친다.

이렇게 베 날기를 마치면서 다시 베 짜기의 마지막 공정인 베 메기를 하는데 이 일은 대개 할머니들이 하신다.



베 메기는 된장과 조당수를 끓여 이겨 바르고 솔로 빗겨 벳불에 말리는 작업을 말하는데 이렇게 하고 나면, 비로소 눈부신 햇살이 올올이 스며드는 삼실이 완성되는 것이다.

이렇게 수많은 손끝을 거친 삼실은 드디어 도투마리에 감겨 베틀에 오르게 된다. 그때 어머니들이 쪽을 찐 뒷모습으로, 뒷산에서 우는 뻐꾹새 소리에 맞춰 이루어내던 그 베짜던 소리는 숱한 세월이 흐른 오늘에도 아직 내 귀에 삼삼히 살아나는 것이다.

"달그닥 찰칵! 째그락 딸깍!"

그때 어머니들이 베틀에 앉아 베를 짜면 베틀은 흡사 살아 움직이는 것 같았다.

용두머리 고운 소리에 맞춰 눈섶대가 오르내리고 잉앗대가 갈라주는 날실 사이로 북이 날고, 바딧집이 내리치고, "달그닥 찰칵! 째그락 딸깍!" 어머니 눈앞에 있던 짜여진 베가 어느새 두루마리에 감기면 점심때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어머니들은 좀체 베틀에서 내려오시지 않았다. 며칠밤 며칠낮을 땀띠에 시달리며 모기에 시달리며, 도투마리에 감긴 삼끈이 다 풀릴 때까지?.

이렇게 해서 드디어 다 짜여진 베는 올의 굵기에 따라 아홉 새, 열한 새, 열두 새 베로 갈라지고 삶지 않은 베는 생냉이로, 겨릅이나 콩깍지 잿물에 적셔 가마에 쪄낸 베는 익냉이로, 비로소 황금빛 40자 안동포가 마당의 빨랫줄에 휘널리는 것이다.

며칠 전 나는 종로에 있는 어느 서점에 들렀다가 나오면서 보신각 옆에 있는 주단가게에서 노랗고 고운 열넉 새 안동포 한필이 진열되어 있는 것을 보았다. 그것은 정말 내가 어렸을 적 고향에서 보았던 그 열넉 새 안동포 그것이었다.

"아, 아직도 고향에서는 삼베를 짜는가?"

나는 이같이 놀라면서 다시 한번 그 진열장 앞으로 다가가 그 안에 들어있는 안동포를 들여다보았다.

그때 내 머릿속에는 이상하게도 어린 시절 자욱한 강마을의 야기(夜氣)와 함께 긴긴 밤 삼경이 다 되도록 지게뿔에 초롱불을 걸어놓고 삼을 삼으시던 그 고향마을 여인네들의 비녀 가른 모습이 떠오르고 또 그들이 부르던 강물 같은 노랫소리가 다시 귓전에 어려왔다.

그때 그분들은 한가롭고 아늑하던 고향마을에 한창 꽃같던 나이의 아낙들이 아니었던가. 그러나 이어 동족상잔의 6 25가 터지고 그녀들의 남정네는 전쟁터로 나가고 그녀들이 겪었던 엄청난 풍상은 이제 아무도 기억하지 못한다.

이제 그때 그 고향마을 여인네들은 늙어 더러는 죽고, 더러는 머리끝이 희끗희끗 세어져 허리조차 꼬부라지고, 모처럼 고향에 들르는 나조차 몰라보시다가 내가 누구라는 이야기를 하면 그제서야 반색을 하시며 눈물을 글썽거리신다.

아, 이제는 좀체 눈을 씻고 찾아보려 해도 잘 눈에 띄지 않는 안동포. 어느날 우연히 종로의 한 주단가게 진열장 안에 외롭게 놓여있는 안동포. 이제는 실용적인 옷감에서 많이 벗어나버린 안동포. 한때는 그토록 화려한 명성을 지녔던 안동포는 이제 마치 그 베를 짜던 고향마을 여인들처럼 잊혀져간다.

그러나 어디 그 안동포의 가치가 정말로 사라져버린 것일까. 아마도 오늘날, 모든 것이 물량위주, 속도위주로 치닫는 이 시대에서 그토록 손이 많이 가고 정성이 많이 드는 안동포는 대접을 못 받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지천으로 흔해빠진 화학섬유의 범람 앞에 그래도 그때 그 올올이 짜지던 수공(手工)의 정성이 그립고, 그리고 또, 베 한필을 짜기까지 그토록 고생을 하던 시절에 비해 물자를 너무 귀히 여기지 않는 풍조가 안타깝고, 내 고향 아름답던 마을에서 여인네들이 부르던 그 서정적인 민요가 흔적없이 사라지는 것도 서글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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