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백화점그룹 지분변동의 속내

현대백화점그룹에 업계의 이목이 모아지고 있다. 오너 2세들의 경영권 승계 작업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면서 그룹 중심이 2세 형제간 양대 축으로 재편되는 양상을 띠고 있는 이유에서다. ‘승계과정의 형제간 지분정리’라는 명분에도 불구하고, 어찌보면 계열분리를 통해 ‘훗날 형제간 분가(分家) 수순을 밟는 게 아니냐’는 모양새로 비춰질 수도 있는 대목이다.

현재 정몽근(65) 명예회장의 장남 정지선(35) 부회장은 백화점을 중심으로 한 유통부문의 경영권을 확고히 다지고 있다. 차남 정교선(33) 전무는 현대H&S를 중심으로 비유통부문의 경영권을 강화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두 형제의 계열분리 작업이 단순한 교통정리 차원의 지분정리일지, 아니면 훗날 분가를 위한 포석일지 관심이 모아지는 요즘이다.


유통부문 정지선 부회장, 비유통부문 정교선 전무 ‘계열분리 중!’
그룹 총괄 정 부회장 ‘안정구도’ 정 전무 향후 독립체제 구축 관심

현대백화점그룹의 경영권 승계 작업은 지난 2002년부터 본격화됐다. 정 명예회장이 일선에서 물러나면서 정 부회장과 정 전무, 두 아들에게 지분을 넘겨왔던 것이다. 2003년 1월 정 부회장이 ‘그룹 총괄 부회장’으로 경영 전면에 나선 이후 2005년과 2006년 상반기를 정점으로 경영권 승계 작업은 사실상 마무리 단계에 접어든 상태다.

지분정리 사실상 마무리 단계

일단 밑그림은 형제간 계열분리 수순으로 맞춰진 모양새다. 정 부회장이 백화점 등 유통부문을, 정 전무가 생활가전 등 비유통부문을 맡게 되는 구도다. 현재 현대백화점은 정 부회장이 17.10%의 지분율로 최대주주이고, 현대H&S는 정 전무가 21.32% 지분율로 경영권을 장악하고 있다. 상당부분 정 명예회장의 지분증여에 따라 이루어진 결과다.

▲ 현대백화점그룹 경원권 승계작업이 마무리단계다. 장남과 차남이 지배구조 중심에 자리하여 형제간 계열분리 수순을 밟고 있다.
이런 가운데 최근 그룹 내부의 지분변동이 눈길을 모은다. 정 전무가 정 명예회장으로부터 증여 받은 비상장사 주식을 정 부회장에게 넘기면서 현금 마련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지난 10월18일 현대백화점 공시에 따르면 정 전무는 한무쇼핑 주식 24만4천주(4%)를 주당 16만4천8백84원에 정 명예회장으로부터 증여 받아 장외거래 방법으로 현대백화점에 곧바로 매각했다.

증여액을 계산해보면 모두 4백2억원 규모. 증여세 50%를 감안한다면 정 전무는 2백억원의 실탄확보가 가능해진 셈이다. 또한 현대백화점은 한무쇼핑의 경영권(총 지분율 41.75%)을 한층 더 강화하게 됐다.
정 전무는 지난해 12월에도 정 명예회장으로부터 현대H&S 주식 56만6천주를 증여 받아, 증여세 마련 차원에서 정 명예회장에게 증여 받은 한무쇼핑 지분 6.1%를 계열사에 매각한 바 있다.

그럼 이렇게 마련된 실탄은 어디에 쓰일까. 업계에선 당연히 정 전무의 현대H&S 지분확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현대H&S가 케이블사업자 SO(11개)와 현대홈쇼핑 등의 지분을 보유한 지주회사 격이기 때문이다.

사실 현대H&S가 현대백화점과 함께 그룹의 양대 축으로 자리한 것은 오너 일가의 계산된 속뜻이었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지난해 청산절차를 마무리한 HDSI의 지분과 주요 사업 영역이 현대H&S에 넘어간 것도 이런 분석에 설득력을 높이는 대목. HDSI가 정 부회장의 개인회사나 다름없는 지분구조를 가지고 있었던 점에서 볼 때 형의 지분을 넘겨받고, 여기에 알짜배기로 불리는 사업부문 모두를 흡수하며 독립체제의 발판을 마련한 셈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두 형제간 계열분리는 이제 종합유선방송사업의 지분정리 정도만 남겨 놓은 모양새다. 그러나 정 부회장의 절대적인 도움 없이는 쉽지 않은 문제다. 정 전무가 실탄을 차곡차곡 쌓아가고 있지만 지분구조 상 정 부회장이 어떻게든 움직임을 보여야 가능한 문제라는 얘기다.

지분구조를 보면, 관악케이블방송, 대구중앙케이블티비북부방송, HCN서초방송·경북방송·금호방송 등 유선방송사업 업체들의 최대주주는 (주)HCN이다. 그런데 HCN은 정 부회장의 지배권 안에 속해있는 현대백화점과 현대쇼핑 등이 30% 가까운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HCN의 정 전무 지분은 개인보유 4.0%에 불과하다. 하지만 정 전무 본인이 5.42%, 현대H&S가 16%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현대홈쇼핑이 24.3%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이런 구도만 놓고 봐도 정 전무의 완전한 독립체제의 핵심인 유선방송사업은 아직까지 정 부회장과 정 전무가 공동 소유하고 있는 셈. 정 부회장의 역할이 동생과의 완전한 계열분리에 결정적인 작용을 할 수 있다는 풀이가 가능해진다. 더구나 현대홈쇼핑의 경우 현대백화점이 18.70%의 지분율로 아직까지 최대주주에 올라 있는 상태이어서 향후 지분정리 진행구도에 따라 적잖은 난관을 불러올 수도 있는 대목이다.

경영입지 통해 지배력 다지기

아무튼 수년 째 계속된 형제 간 지분정리는 현재 거의 마무리 단계에 있다. 때문에 한동안 경영권 승계 작업에 치중하느라 사업전개에 소홀했다는 지적을 정 부회장과 정 전무가 어떻게 불식시키느냐는 지배력 다지기에 급선무다.

이런 지적 때문인지, 정 부회장은 유통부문, 정 전무는 비유통부문에서 지배력 다지기에 총력을 기울이는 모습이다.

정 부회장은 올해 들어 "신규사업과 신규점포를 확보하는 일에 집중해 새로운 성장 동력원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줄곧 강조하면서 양재동 화물터미널 용지의 사업성 검토나 판교 신규 출점 등에 대한 신성장동력원 마련에 공격적인 전략을 펼치고 있다.

정 전무도 현대H&S의 신규사업 다각화 차원에서 생활가전 시장에 업계 최초로 진출하는 등 경영입지 다지기에 적극적인 모습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현대백화점그룹은 형제 간 우애가 돈독하고 사업적인 측면에서도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면서 "정 전무의 역할이 그룹 내에서 어떻게 부상하게 될지, 향후 독립체제를 구축하고 새로운 사업에 나설지 관심이 모아진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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