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중계 국정감사 현장

국회 국정감사가 지난 10월17일을 시작으로 현재 중반부를 넘기면서 정부기관들의 방만한 경영형태가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정부산하기관 일부는 “국가재산을 낭비하는 집단”, “대국민 사기극”이라며 맹비난을 받고 있다. 국민의 혈세로 운용되는 만큼 어느 기관보다 도덕성과 투명성이 각별히 강조돼야 하지만 도덕적 해이와 방만한 경영으로 다시 도마 위에 오른 것이다. <시사신문>은 2007년 국감장 이슈들을 들여다봤다.


과징금 부과가 공정위 직원 로펌행 ‘길 닦기(?)’
“퇴직자들 공정위 상대 소송에 실질적으로 관여”


▲ 정무위 국정감사에서 한나라당 김정훈 의원이 질의를 하고 있다. <사진/맹철영 기자>
국내 대기업에 대한 불공정 행위 감독에 불신이 싹트고 있다. 지난 10월22일 과천 정부청사에서 열린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 퇴직 간부의 로펌 취업이 도마에 올랐던 것이다.

공정위가 기업에 부과한 과징금을 줄이기 위한 소송에 로펌에 재취직한 공정위 퇴직자가 참여하는 것이 과연 정당하냐는 비판이다. 게다가 과징금 부과 후 제기된 소송에서 공정위의 패소율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어 기업에 대한 과징금 부과가 공정위 직원이 로펌행을 위한 ‘길 닦기’가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2년 이내 로펌 재취업 94%

박상돈 의원(대통합민주신당)은 국정감사에서 “2003년 이후 공정위에서 퇴직한 4급 이상 직원 33명 중 25명이 법무법인이나 대기업 등 영리법인에 재취업했다”고 밝혔다. 이 가운데 퇴직 후 2년 이내 재취업한 사람은 94%인 31명이었고, 퇴직 후 1개월 내에 취업한 사람은 20명, 퇴직과 함께 취업한 이들도 3명에 이른다고 박 의원은 설명했다.

김정훈 의원(한나라당)도 이날 “2005∼2006년 공정위를 퇴직하고 민간에 취업한 4급 이상 직원 22명 중 11명이 법무법인으로 이동했으며, 이중에는 부위원장 2명과 상임위원 3명, 사무처장 1명 등도 포함돼 있다”고 지적했다.

김 의원에 따르면 2002년 이후 공정위 소송 대리인 상위 10개 법무법인 중 김&장, 율촌, 세종, 광장 등을 비롯한 7개의 법무법인에서 공정위 관련된 직원이 근무를 한 것으로 나타났고 이들의 승소율은 최고 33%에 이르렀다.

공정위 재직 중 기업의 공정거래법 위반 여부를 판정하고 과징금을 부과하는 업무를 담당했던 것만큼 퇴직한 공정위 직원들은 대형 법무법인 재취업과 소송에 유리했다는 설명이다.

김 의원은 이에 대해 “공정위 관련 사건에서는 공정위의 조사 기법과 논리, 인맥을 잘 아는 공정위 출신들이 절대적으로 도움이 되기 때문에 공정위 퇴직자들이 공정위 상대 소송에 실질적으로 관여한다고 볼 수밖에 없다”며 “공익과 사익이 충돌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 의원도 김 의원의 주장에 힘을 실었다. 박 의원은 “공정위 퇴직자가 소속된 로펌은 공정위를 상대로 한 소송에서 승소율이 공정위 출신 공무원을 뽑지 않는 로펌보다 높았다”며 “공정위 출신이 없는 로펌 세 곳의 승소율은 0%에 그치기도 했다”고 말했다.

한 로펌 관계자는 “법과 규정을 만들었던 공무원이라면 그 허점도 가장 잘 알고 있을 것”이라며 “이런 사람들이 퇴직 후 법무법인에서 일한다는 것은 자신이 만든 규정의 허점을 자신이 이용하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이어 “불과 얼마 전까지 함께 근무했던 공정위 동료이자 선배가 소송에 관여하면 팔이 안으로 굽는 건 당연하지 않겠냐”고 반문했다.

이 같은 퇴직공직자의 로펌행은 공정위 뿐 아니라 재정경제부 금융감독원 국세청 등 다른 경제부처에도 만연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국내 최대 로펌격인 김&장에는 전직 장ㆍ차관급 인사들이 다수 포진해있다. 특히 법률자문수요가 많은 세무분야에는 국ㆍ과장급 실무관료 출신들도 일하고 있다.

현행 공직자윤리법에는 공직자(일반직은 4급 이상, 조세 업무 등은 7급 이상)는 퇴직한 후 2년 동안 재직 중 업무와 관련이 있는 영리목적의 사기업에 취업을 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여기서 ‘업무 관련 법인’은 자본금 50억원 이상이다. 그러나 국내 로펌 중에는 자본금 50억원 이상인 곳이 한 곳도 없어 공직자가 로펌에 취업하는 데는 아무런 제도적 제한이 없는 실정이다.

▲ 정무위 국정감사에 참석자들이 심각하게 지켜보고 있다.
김 의원은 “경제부처 퇴직자들은 퇴직 전 3년 내 근무부서만 재취업 연관성을 따지는 현행법을 피하기 위해 퇴직 3년 전부터 연수기관 등 금융감독업무와 관련 없는 부서에 근무하는 일종의 ‘경력 세탁’ 을 통해 공직자윤리법 관련조항을 피하기도 한다”며 “허술한 관련 규정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퇴직 공직자 재취업 1위 삼성

한편, 최근 4년간 퇴직한 정부 고위 공무원이 가장 많이 취업한 기업은 삼성전자이며, 대기업 집단은 삼성그룹으로 나타났다.

김정권(한나라당) 의원이 지난 10월15일 2004년부터 최근까지 취업제한 대상 공직자들의 재취업 현황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삼성전자가 11명을 취업시켜 가장 많은 퇴직 고위 공직자들을 채용했다. 2위는 우리은행으로 9명이고, 삼성물산과 삼일회계법인, 한국항공우주산업이 각각 8명씩이었다. 두산인프라코어와 두산중공업, 삼성화재는 6명씩을 채용했다.

대기업 집단별로 따질 경우 삼성이 41명으로 가장 많았고 현대차 29명, 우리금융 22명, 두산 19명, SK 13명, LG 12명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고 김 의원은 밝혔다.

이처럼 사기업에 재취업한 고위 공무원들을 정부 부처별로 따지면 국방부 출신이 73명으로 가장 많았고 국세청 70명, 금감원 67명, 경찰청 51명, 감사원 34명, 검찰청 32명, 재경부 23명, 산자부 19명, 공정위 15명, 건교부 14명의 순으로 드러났다.

저작권자 © 시사포커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