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정국 바라보는 평범한 서민의 넋두리

바야흐로 대선철이다. 너도 나도 대통령이 되겠다며 목소리를 높이는 계절, 그러나 거리는 찬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어느 산에는 눈이 내렸고, 어느 곳엔 첫 얼음도 얼었던 날. 노숙자들은 몰아닥친 추위를 피하기 위해 지하도로 꾸역꾸역 몰려들었다.

내가 잠든 곳은 청와대와 몇 분 거리. 노숙자들이 새우잠을 자는 곳과 이 나라의 최고 권력자인 대통령이 사는 청와대와는 직선거리로 십리 길도 되지 않는다. 천천히 걸어가도 1시간이면 당도하는 청와대. 청와대에 살고 있는 대통령 또한 마실 나오 듯 걸어서 만날 수 있는 거리. 그곳에 우리네 이웃들이 이렇듯 추위에 떨고 있다.

대통령 선거 운동 보도로 시작되어 후보 지지 연설로 끝나는 요즘의 TV 뉴스. 후보 단일화다, 독주다 말은 많지만 어쩐지 답답함을 지울 길 없는 게 요즘의 일상이다. 지금 시간 오전 8시 20분. 잠자는 곳이 추웠던지 몸은 개운하지 않다. 감기 기운도 있다. 서울 바람이 냉랭한 것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지난 봄 목련꽃이 필 무렵 서울 구경을 하고 난 후 처음이다. 하필이면 겨울추위가 닥쳤을 때 서울나들이었던가. 서울의 거리도 바람을 이기지 못한 낙엽들이 이리저리 쓸려나간다. 휑한 가슴 부여안고 잠든 곳은 서울 땅의 어느 모서리. 내가 잠든 곳도 직선거리로 청와대와 그리 멀지 않다. 택시요금 3천원이면 청와대에 도달한다.

대통령. 대한민국의 최고 지존인 자리. 그러기에 대통령을 하려는 이들이 많은 걸까. 개나 소나 대통령 하겠다고 난리들이다. 저마다 대통령이 되면 국민들 잘 살게 해주겠다는 말은 빼먹지 않는다. 대통령 자리에 앉으면 잘 살게 해주는 영험이라도 생기는지 믿기지 않는 말들을 펑펑 쏟아낸다.

간밤에 꿈을 꾸었다. 대형 건물안엔 수만의 군중이 운집해있었다. 꿈 속에서 나는 군중의 환호를 받으며 연단 위로 올랐다. 무대엔 대형 스크린이 설치되어 있었으며, 군중들은 화면으로 중계되는 대통령 선거 여론조사의 결과가 발표되기만을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꿈의 대통령 "인간과 자연이 공생하는 나라 만들겠습니다"

투표 시간이 종료되자, 방송들은 일제히 대통령 선거 예측 여론조사를 발표했다. 이번 대통령 선거 유세를 함께 뛴 상대 진영의 선수는 이명박 후보와 권영길 후보. 그러나 여론조사는 내 손을 들어주었다. 내 이름에는 당선확정이라는 꼬리표까지 붙었다. 투표 직전 단일화에 성공한 게 승리의 요인이었다.



감격스러웠다. 나는 환호하는 군중들에게 손을 흔들며 기쁨을 함께 나누었다. 그리곤 마이크를 잡고 무슨 말인가 하려는 순간, 내 꿈은 깨고 말았다. 꿈에서 깨어나면서 잠도 깨었다. 무슨 일이 있었던가. 눈도 뜨지 못하고 한참을 누워있었다. 멀어져 가는 꿈의 세계를 잡기 위해 잠을 청해보지만 꿈은 아득하기만 했다.

눈을 뜨고 시계를 보니 새벽 3시. 담배 한 대를 물고 화장실로 갔다. 담배가 다 타는 동안에도 머리속은 혼란스러웠다. 대통령이 된 나는 군중들에게 무슨 이야기를 하려했던 것일까. 생각이 나지 않았다. 개꿈이었던가.

아직 몸을 움직일 시간은 아니었다. 잠을 다시 청하기로 했다. 꿈은 다시 이어졌다. 끊어졌던 필름을 이어붙인 듯 꿈의 시작은 회색빛이었다. 명징한 화면이 잡히고, 나는 종이 꽃가루가 쏟아지는 무대에서 마이크를 잡고 있었다.

"여러분의 선택은 옳았습니다. 물질적 가난을 탓하는 나라가 아닌 정신적 풍요를 누리는 나라를 만들겠습니다. 누군가는 경제가 죽어간다고 입버릇처럼 말하지만 주변을 보십시요. 먹을 것들이 넘쳐서 주체를 못하는 세상입니다. 이제 가진 자들은 못 가진 자를 위해 손을 내밀어야 합니다.

우리는 절대적 빈곤이 아닌 상대적 빈곤감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상대적 빈곤에서 탈출하는 방법은 정신을 채우는 일입니다. 정신이 풍요로울 때 우리의 삶은 건강해집니다. 정신적 빈곤이 물질적 빈곤보다 더 무섭습니다.

나는 대통령으로서 이 나라를 문화와 예술이 인간의 산소가 되는 나라, 나무 한 그루, 풀 한포기를 사람처럼 소중하게 생각하는 나라, 깨끗한 물이 흐르는 나라, 환경을 파괴하지 않은 나라, 인간과 자연이 공생하는 나라, 인간이 인간을 존중하는 나라, 그런 나라를 만들겠습니다."

군중들로부터 박수가 쏟아졌다. 눈물을 흘리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새로운 대통령, 새로운 세상을 바라는 군중들의 함성이 끝도 없이 이어졌다. 환희에 찬 음악이 울려퍼졌고, 박수 소리는 우뢰처럼 터져나왔다.

박수소리가 너무 컸던가. 깜짝 놀라 눈을 뜨니 또 꿈이었다. 해는 이미 창문 틈으로 스며들고 심하게 갈증이 났다. 시원한 물 한 잔을 마시고 컴퓨터를 켰다. 대통령이 되는 꿈을 오마이뉴스 독자들에게 알려야 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한 글. 글을 쓰면서 생각한 오늘의 세상은 여전히 답답하기만 했다.

대통령과 인연을 맺는 꿈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예전 YS가 대통령이던 시절 나는 그와 청와대 뜰을 거닐었다. 그가 나를 초대했고, 단 둘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대통령에게 이런 나라를 만들어주십사, 하고 하고 싶은 말을 다 꺼냈다. 당시 나는 3당 야합으로 대통령이 된 YS를 지지하지는 않았다.

DJ가 대통령이던 시절 나는 또 한 번 대통령과 만났다. 장소는 신라호텔이었다. 나는 DJ에게도 국민이 진정으로 바라는 나라를 만들어달라고 부탁했다. DJ는 내 손을 잡으며 그러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YS도 DJ도 나와의 약속을 지키지는 않았다.

스칸디나비아라던가 뭐라구하는 고장에서는 아름다운 석양대통령이라고하는 직업을 가진 아저씨가 꽃리본 단 딸 아이의 손을 이끌고 백화점거리 칫솔사러 나오신단다.

탄광 퇴근하는 광부들의 작업복 뒷 주머니 마다엔 기름 묻은 책, 하이덱커, 럿셀, 헤밍웨이, 장자...휴가 여행떠나는 국무총리, 서울역 삼등대합실 매표구앞을 뙤약볕 흡쓰며 줄지어 서있을 때 그걸 본 서울 역장 "기쁘시겠소"라는 인사 한마디 남길 뿐 넘실대는 물결 동해에서 서해까지 팔랑대는 꽃밭 땅에서 하늘로 치솟는 무지개빛 분수 이름은 잊었지만 뭐라군가 불리우는 그 중립국에선 하나에서 백까지 다 대학 나온 농민들 추럭을 두 대씩이나 가지고 대리석 별장에서 산다지만 대통령 이름은 잘 몰라도 새이름, 꽃이름 , 지휘자이름, 극작가 이름은 훤하더란다.

애당초 어느 패거리에도 총쏘는 야만엔 가담치 않기로 한 그 지성 그래서 어린이들은 사람죽이는 시늉 아니하고도 아름다운 놀이, 꽃 동산처럼 풍요로운 나라 억만금을 준대도 싫었다.

자기네 포도밭은 사람상처내는 미사일기지도, 탱크기지도 들어올 수 없소. 끝끝내 사나이 나라, 배짱지킨 국민들 . 반도의 달밤, 무너진 성터가의 입마춤이며 푸짐한 타작소리. 춤 사색뿐 하늘로 가는 길가엔 황토빛 노을 물든 석양대통령이라고 하는 직함을 가진 신사가 자전거 꽁무니에 막걸리 병을 싣고 삼십리 시골길 시인의 집에 놀러가더란다. - 신동엽 시인의 시 '산문시' 전문

이번엔 내가 대통령이 되는 꿈을 꾸었다. 개인적으로는 대통령이라는 자리 시켜주어도 하지 않는다. 그럴 능력도 없거니와 바쁜 스케줄을 소화해 낼 생각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통령에게 할 말은 많다. 그것이 국민된 노릇이다.

대통령과 관련된 꿈을 꾸고서 한 번도 요행을 바라는 일을 해 본 적은 없다. 복권을 샀어야 한다는 주변의 말 또한 믿지 않았다. 이번엔 어찌할까. 로또 복권이라도 사야 하는 것인가. 그리하여 정신적 풍요를 버리고 '인생대박'의 꿈을 이어가야 하는 것인가.

하지만 이번 꿈만은 누구에겐가 팔고 싶다. 그 꿈이 조금이라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면 단 돈 100원을 받고라도 팔고 싶다. 왜 100원이냐고? 꿈은 공짜로 주면 효험이 없다는 속설 때문이다. 대선 후보들, 급할 땐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하지 않겠는가. 내 꿈 사시라. 시골 가는 여비에 보태 써야겠다. 대통령이 되는 꿈, 그만한 가치야 있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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