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인들이 즐겨찾기...골목 안 '시인'



가을 냄새가 언뜻 난 것뿐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거리를 걷는데 코끝이 차다. 옷깃을 파고들던 가을이 여행객의 옷자락을 잡아끈다. 복잡한 종로 거리를 피해 걷다보니 인사동이다.

내 정신의 키를 키운 곳 '인사동'

철 이른 낙엽이 깔린 인사동 길은 익숙함과 낯섬이 교차한다. 여행객이 되어 돌아온 인사동은 몇 해 전에 비해 달라져 있었다. 종로 거리에 있을 법한 낯선 상점이 그렇고 낯선 오락실이 그렇다.

인사동 사거리에서 차량이 다니는 큰 길을 버리고 골목으로 들어간다. 눈에 익숙한 간판들이 반갑다. 음식점에서 나오는 음식 냄새도 예전 그대로다. 파전이 그러하고 쉬직한 막걸리가 그러하다.

인사동을 인사동답게 만드는 매력은 골목이다. 골목이 없는 인사동은 상상도 할 수 없다. 거미줄처럼 이어진 골목은 숱한 역사를 만들어냈다. 깊은 밤 술에 취해 쓰러진 곳도 인사동의 골목이고 어찌어찌 찾아든 곳도 인사동의 여관방이었다.

다음 날 해장국을 사러 나온 이도 인사동으로 왔고, 해장국에 따라나온 해장술을 마시고 또 취해 쓰러진 곳도 인사동의 한 골목이었다. 인사동은 그렇게 내 키를 키웠고 마음을 키웠다.

허접했던 내 정신을 키운 것 또한 인사동의 헌책방과 먼지를 뒤집어 쓰고 있던 낡은 책이다. 오래된 책 한 권 만나 골목 아무데나 퍼질러 앉아 그 책을 읽었던 기억은 인사동의 또 다른 추억이다.

젊은 날 인사동을 처음 만났을 때는 피가 끓었다. 거리에서 마주친 이들과 스스럼없이 막걸리 잔을 나눈 곳도 인사동이다. 서로의 이름 따윈 애당초 중요하지 않았다. 서로 마음만 맞으면 거리에서 술판을 폈다.

가을빛 스며드는 인사동은 보헤미안의 거리

인사동은 보헤미안을 위한 거리다. 세상의 모든 것을 잃어도 인사동에 오면 마음이 풍성했다. 거리를 떠도는 것들은 눈으로 보기만 해도 양식이 되었다. 정신의 영양실조는 인사동에서만 극복이 가능했다.

인사동 골목에서 문학을 줍고 그림을 줍고 사진을 줍는 동안 내 정신의 키는 훌쩍 자라 있었다. '장수막걸리' 한 사발에 녹아 있는 사람들의 정은 가슴시린 이의 시야를 흐릿하게 만들었다.

오랜 만에 찾은 인사동의 골목은 여전히 연애가 흐르고 이별이 흘렀다. 골목 한 편에서 눈물 짓는 한 여인의 야윈 목에는 푸른 스카프가 둘러져있고, 불어오는 바람은 여인의 눈물을 잦게 만들었다.

어느 집을 불쑥 찾아가도 아는 안면들을 만날 수 있는 인사동의 골목은 언제나 잔치마당이다. 훌쩍 떠났다 돌아온다 해도 인사동은 그런 이를 타박않고 반가이 맞아준다.

골목을 돌다 반가운 간판들을 만난다. 떠들썩한 술자리를 피해 또 걸었다. 걷다 걸음이 멈춰진 집의 간판엔 '시인'이라고 쓰여져 있다. 작년 여름 출판기념회를 위해 찾았던 집이다. 시인이 주인이라 '시인'으로 이름지어진 집은 김여옥(45) 시인이 주인장이다.

요즈음 난 술시戌時에
행복 오르기 연습중

낮게 낮게 엎드린 채
먼 발치쯤의 그대를 향해
한 치 틈새도 없이
기어 올라가고 있는 자정子正 무렵

나의 자정은
살아 있다는 것의 눈물겨운
실제 공습경보 상황이다

동여매는 그대 휜 다리끈
인시寅時를 향해 난 지금
행복 오르기 연습중

묘시卯時쯤엔 끈적한 어둠도 풀려
해 오를 무렵
내가 품은 달이 진다

- 김여옥 시 ‘행복오르기’ 전문

인사동 사거리 덕원갤러리 뒷골목에 있는 '시인'이라는 간판의 역사는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곳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다들 묵은지 같다. 언제부터인가 '시인'은 언제 어느 때라도 찾으면 반가운 이들을 만날 수 있는 곳이 되었다.



문화예술인들이 즐겨찾기 해 둔 곳 '시인'

이곳은 맛깔스런 남도 음식을 맛 볼 수 있는 즐거움도 있다. 강원도 촌놈이 남도의 싱싱함을 언제 맛볼까 싶었지만 '시인'은 그런 허접한 욕구까지 가득 채워준다. 남도 음식을 주 메뉴로 하는 김여옥 시인의 손에서는 바다 냄새가 떠나지 않는다.

목포에서 올라 오는 홍어삼합과 벌교 꼬막은 술병 비우기를 주저 않게 한다. 출출하다 싶으면 매생이국밥을 청한다. 매생이는 전라도에서도 해남, 강진, 장흥 등 아랫녘에서만 자라며, 파래과에 속하는 음식이다. 싱싱하지 않으면 음식이 될 수 없는 웰빙 식품이기도 하다.

주인인 김여옥 시인은 객이 좋아하는 음식을 잘도 기억한다. 전날 마신 술기를 털어내지 못하는 객에게 주인은 매생이국을 내어 놓는다. 고맙다는 인사도 치르지 않고 후루룩 마셔버린다. 속을 다스리고 시작한 술자리에서 사진작가 조문호를 만났다.

그는 지난 해 겨울 '평화만들기' 골목에서 만났다. 그 겨울 그는 나를 찍고 나는 그를 찍었다. 나는 시린 손을 호호 불어가며 나를 찍는 조문호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담배 하나를 붙여 물고 저 쪽을 볼래예?"

지난 겨울, 그가 말했다. 사진작가는 모델을 맘대로 움직이는 힘이 있었다. 나는 시린 손을 꺼내 담배에 불을 붙였다. 지난 겨울 인사동 골목의 '평화만들기' 앞에서였다. 날씨는 칼날처럼 날이 서 있었다.

몇 컷의 사진을 찍다 아끼던 카메라까지 고장났었다. 추위 때문이라며 조문호는 헛헛 웃었다. 지난 여름 그가 살고 있는 귤암리에서 얼굴을 마주한 후 몇 개월 만의 만남이다. 정선에서보다 인사동에서 만나는 일이 더 흥겨운 그다.

김여옥 시인은 술과 안주를 내 놓기 바쁘고 사진작가와 소설가의 술잔은 빠르게 비워진다. 이어 얼콰한 얼굴로 문을 들어서는 사람들. 이름만 대도 알만한 작가들이다. 인사동에서만 만날 수 있는 얼굴들이다. 반갑다.

인사동에서는 빈주머니로도 며칠은 걱정없어

가슴을 포개며 뜨거운 인사를 하고 시작되는 걸죽한 입담과 날선 풍류. 인사동 골목에서만 느낄 수 있는 일들이다.

세상 인심 고약타 하지만 인사동에서는 빈주머니로도 며칠을 걱정 없이 보낼 수 있다. 이 가을 인사동에 가면 빈 바람만 스치진 않는다. 톡 쏘는 맛을 지닌 김여옥 시인의 새콤 달콤한 표정을 인사동의 '시인'에서만 구경할 수 있는 게 흠이다.

이 집에 문화예술인들이 자주 찾는 이유는 그녀가 <자유문학> 편집장 출신으로 전라도 해남을 고향으로 둔 비릿함과 넓은 오지랖 때문이다. 예전 피맛골에 있던 '시인통신'의 주인장인 한귀남(수필가)을 능가한다는 평가가 섣부른 얘기가 아니다.

한국문학평화포럼(회장 임헌영)과 민족문학작가회의(이사장 정희성) 소속 문인들의 출판기념회를 대부분 이곳에서 개최하고 있다.



고은 시인과 김영현 소설가, 양성우 시인 등이 이곳에서 출판기념회를 열었다. 최근에는 이경철(중앙일보 문학담당) 기자와 곽효환 시인의 박사학위 취득 기념 축하연도 이곳에서 열렸다.

굳이 날짜를 명토 박을 필요는 없다. 우연히 발길 닿아 이곳을 찾으면 시인, 작가, 화가 등 유명짜한 문화예술인들의 실물을 몇 명씩 한꺼번에 만날 수 있다. 시인을 찾는 단골 문화예술인들만도 고은 시인을 비롯해 김지하, 정희성, 도종환, 김성동, 김용태, 윤재걸, 홍일선, 이도윤, 이승철, 이재무, 이소리 등 100여명이 넘는다.

그녀의 새콤 달콤한 표정을 좋아해 '시인'을 찾는 이들의 표정도 김여옥 시인을 닮아 어느 새 새콤달콤하다. 여운 선생이 그러하고 윤재걸, 이승철, 이소리 시인이 그러하다. 가을이 깊어갈 수록 인사동의 역사를 이어가는 이들이 그립다.

그동안 문화예술인들이 즐겨찾던 곳은 '시인통신', '시인학교', '시인' 등. 어김없이 시인이라는 예술가가 등장했다. 인생의 참 맛을 오묘하게 풀어내는 내공 때문일까. 시집은 팔리지 않지만 얄궂게도 '시인'의 인기는 여전하다.

인사동의 역사는 골목이 만들어 내고, 골목을 거니는 이들은 이 땅의 보헤미안들이다. 삶을 주체 못하는 날이 닥치면 주저 말고 인사동으로 갈 지어다. 어느 골목이라도 찾아들면 주체 못할 삶이 스르륵 풀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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