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살 녹아내리는 쫄깃한 맛 '김치삼겹살'

폭격기가 빈 하늘을 찢습니다
천지간 쏟아지는 굉음에
혼을 잃은 지 오래
진위천 황구지천은 바다에 닿아
사람들 가슴속 종양으로 가득한데
야수의 눈빛
저 굴욕의 눈빛
철책은 언제나
바로 저기, 그대로인데
진창 뻘밭
어깨뼈 주저앉도록 지게질로 이룬 들판
저 노동의 땅은 삽과 곡괭이의 어머니
두 눈 부릅뜬 자식 앞에서
어머니의 자궁을 내어 놓으라 한다
억만 년을 살아야 할 환희의 벌판을
전쟁기지로 쓰겠다 심장을 옥죄어 오는데
버들 붕어, 중타지, 한가롭고
새참 먹고 텃논에 못줄 띠우던
철책 너머 옛집마저 그립거늘, 오늘 대추리는
평택호 물풀에는
토종고기 사냥 하는 블루길이 휘젓고
황소개구리 커다란 입이 대지를 삼킨다,

- 윤일균 '대추리 아리랑' 모두



서울 중구 광희동(을지로6가 국립의료원 맞은편 러시아 골목)에 가면 마흔 잔치를 마악 끝낸 시인이 운영하는 독특한 맛의 김치삼겹살집이 있다. 그 집에 가면 돌판 위에서 지글지글 익어가고 있는 삼겹살에 묵은 김치를 올려 상추에 쌈을 싸서 맛갈스럽게 입에 넣는 외국인들이 득실댄다.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러시아, 몽골 이주 노동자에서부터 우리 민족의 피가 흐르는 사할린 동포까지.

'고향집 선지해장국 2500원'이란 간판이 붙은 그 집에 가면 마흔 잔치를 마악 끝낼 무렵 늦깍이로 문단에 얼굴을 들이민 시인이 있다. 신경림, 정희성, 이재무, 오봉옥 시인, 구중서 문학평론가, 안종관 희곡 작가 등이 종종 다녀간다는 그 집에 가면 간판 한 귀퉁이에 서자처럼 김치삼겹살이란 글씨가 조그마하게 붙어 있다.

그 집에 가서 김치삼겹살을 노릇노릇 구워 소주 한 잔 먹고 있으면 시인이 육성으로 또박또박 읽어내리는 자작시를 들을 수가 있다. 마악 오십 나이에 접어든, 그 집 주인이자 종업원인 시인이 읽어 주는 시를 들으며 쫄깃한 삼겹살에 묵은 김치를 올려 구워 먹고 있으면 자신도 모르게 마음이 훈훈해진다. 김치삼겹살과 시 속에 사람 사는 내음이 난다.

아무리 먹어도 결코 질리지 않는, 감칠맛 나는 김치삼겹살도 먹고, 요즈음 세상살이를 속내 깊게 찌른 시도 들을 수 있는 곳. 바로 그 집이 반 년간 시전문지 <시경>으로 등단한 시인 윤일균이 직접 운영하는 김치삼겹살 전문점 '고향집 선지해장국'이다. 근데, 김치삼겹살을 전문으로 하는 식당 간판에 웬 '고향집 선지해장국'?



"이 주변에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외국인 이주 노동자들이 참 많이 살고 있어요. 주머니 사정이 그리 넉넉한 편도 되지 못하죠. 그래서 낮에는 이주 노동자들의 서러움을 조금이나마 달래 준다는 생각에서 2500원짜리 선지해장국과 콩나물국밥, 양푼비빔밥, 순두부를 팔지요. 다들 맛있다고 그래요. 또한 그렇게 우리 음식에 길들여진 탓인지 저녁 때가 되면 김치삼겹살을 먹으러 곧잘 와요."

지난 25일(목) 저녁 7시. 이재무, 이승철 시인과 함께 찾았던 김치삼겹살 전문점 '고향집 선지해장국'. 20여 평 남짓한 이 집에 들어서자 지글지글 소리를 내며 노릇노릇 익어가는 김치삼겹살이 금세 입맛을 돋군다. 밖에 비가 부슬부슬 내려서 그런지 소줏잔이 놓여 있는 식탁 위의 김치삼겹살이 더욱 맛갈스럽게 보인다.

'고향집을 운영하는 詩(시) 쓰는 야생초 윤일균'이란 명함을 건네는 이 집 주인 윤일균(49)씨. 윤씨는 "그동안 다른 곳에서 김치삼겹살집을 운영하다가 이주 노동자들의 애환을 시로 쓰기 위해 이 곳으로 옮겨왔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 곳을 찾는 이주 노동자들과 손님 한 분 한 분을 마치 시를 쓰듯이 정성껏 모시려 노력한다고 귀띔한다.

윤씨에게 김치삼겹살(1인분 7000원) 5인분을 시키자 얼음이 동동 뜬 콩나물국이 먼저 나온다. 우선 콩나물국부터 마시며 숙취 해소부터 먼저 해두라는 투다. 시원한 콩나물국을 입에 머금자 정신이 번쩍 든다. 노오란 빛깔의 맑은 콩나물국을 후루룩 후루룩 마시자 아까 점심 때 반주로 먹었던 소주의 얼큰한 기운이 사라지면서 속까지 편안해진다.



"저희 집 콩나물국에는 조미료를 일체 쓰지 않아요. 그저 멸치 맛국물에 콩나물을 넣고 팔팔 끓였다가 식힌 뒤 얼음을 동동 띄워 냉장고에 보관하지요. 사실, 콩나물국에 조미료를 쓰게 되면 콩나물국 본래의 시원한 맛이 사라지고 느끼해지거든요."

이윽고 윤씨가 불판 위에 넓찍하고도 시커먼 빛깔의 돌판을 올린다. 그리고 식탁 위에 싱싱한 상추와 풋고추, 반 토막 낸 마늘, 묵은 김치, 소금 탄 참기름, 파절임, 삼겹살, 소주를 차례대로 놓는다. 금세 식탁이 비좁아진다. 특히 집에서 직접 담궈 폭 삭을 때까지 묵혀서 낸다는 벌건 포기김치가 먹음직스럽게 보인다.

윤씨가 시커먼 돌판 위에 삼겹살과 묵은 김치를 처억척 올리자 금세 삼겹살이 치지직 소리를 내며 몸을 마구 비틀기 시작한다. 그렇게 삼겹살이 노릇노릇 익어갈 때쯤 윤씨가 삼겹살을 먹기 좋은 크기로 자르며 "김치삼겹살은 우리 나라에서 나는 고기와 우리의 묵은 김치가 돌판 위에서 함께 잘 어우러질 때 제맛이 나요"라며 턱짓을 한다. 어서 한 점 먹어보라는 투다.

소주 한 잔 입에 털어 넣은 뒤, 파릇파릇한 상추 위에 참기름에 찍은 삼겹살 한 점과 김치, 마늘, 파저리를 올려 동그랗게 쌈을 싸서 한 입 가득 넣자 입에 살살 녹아내린다. 쫄깃하게 씹히는 삼겹살의 고소한 맛과 불에 적당하게 구워진 묵은 김치의 깊은 맛! 삼겹살과 묵은 김치가 어우러지는 이 기막힌 맛을 어디에 비교할 수 있으랴.



그래. 오죽 맛이 있었으면 문단에서 입맛 까다롭기로 소문 난 이재무(47) 시인이 "입속에 넣자마자 봄햇살 만난 봄눈처럼 살살 녹는다"며 고기도 이렇게 부드럽고 맛깔스러운 줄 미처 몰랐다고 말했겠는가. 오죽 그 맛에 포옥 빠졌으면 이 집을 자주 들락거리는 이승철(47) 시인이 "맛에도 중독이란 게 있는 것 같다"라고 말했겠는가.

김치삼겹살을 다 먹어갈 때쯤 돌판 위에 남은 삼겹살과 김치에 참기름을 듬뿍 붓고 밥 한 공기를 올려 쓰윽쓱 비벼 먹는 그 맛도 정말 끝내준다. 게다가 김치삼겹살을 먹는 틈틈히 이 집 주인 윤일균 시인이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읽어주는 현대시들은 감칠 맛에 감칠 멋을 더해준다. 맛과 멋이 한데 어우러져 더욱 사는 맛이 나는 집이라고나 해야 할까.

"손님들이 원하면 언제든지 시를 읽어주고, 원하는 시가 있다면 그 시를 읽어주지요. 저는 손님들에게 제가 만든 김치삼겹살의 깊은 맛도 보여주고, 손님들에게 제가 틈틈히 쓰고 있는 시와 우리 시인들이 요즈음 쓴 생생한 시를 읽어주는 그 재미로 살아요. 저는 삶의 현장에서 나온 땀내 나는 시를 다시 땀내 나는 삶의 현장으로 되돌려줘야 한다고 믿고 있는 사람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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