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형 전 감사원장 부친상...최영섭 예비역 대령 노환으로 별세
제자 박정성 "최영섭 대령님, 청렴하고 강직한 삶을 사신 분"
"우리의 진정한 영웅이셨다...편안히 영면하시길"

최재형 전 감사원장의 부친이신 최영섭 예비역 해군 대령이 병원에 입원하기 직전인 지난 4월 23일에 지인들과 찍은 생전 모습. 왼쪽부터  작곡가 전석환씨, 최영섭 대령, 박정성 해군 제독. 사진 / ⓒ박정성 제독 제공
최재형 전 감사원장의 부친이신 최영섭 예비역 해군 대령이 병원에 입원하기 직전인 지난 4월 23일에 지인들과 찍은 생전 모습. 왼쪽부터  작곡가 전석환씨, 최영섭 대령, 박정성 해군 제독. 사진 / ⓒ박정성 제독 제공

[시사포커스 / 이혜영 기자] 최재형 전 감사원장의 부친이시자 6·25 전쟁 영웅인 최영섭 예비역 해군 대령이 노환으로 8일 오전 1시 20분에 별세한 가운데, 최 대령을 향한 추모의 물결과 함께 숨겨져 있던 일화가 전해지고 있다. 

이날 부고 소식을 들은 최 대령의 제자였던 제1연평해전 당시 2함대사령관이었던 박정성 제독은 본지와의 인터뷰를 통해 "믿겨지지 않는다"면서 "최근 최 대령님께 안부차 전화드렸는데, 많이 아프셔서 전화 받기도 힘들다고 하셔서 전화를 끊었는데 계속 마음에 걸렸었다"고 밝혔다.

최 전 원장의 부친인 최영섭 예비역 대령은 박 제독이 해군사관학교의 사관 생도이던 그 시절에 생도들의 훈육을 담당한 총 책임자로, 생도대장 겸 부교장이었으며, 그는 "최 대령님은 저의 군 40년간의 군생활 중 만난 최고의 스승이었다"고 평가했다. 

박 제독은 "저희 제자들이 본 최영섭 대령님은 엄격하면서도 자상하시고, 청렴하고 강직한 삶을 사신 분"이라면서 "승진이나 보직에 연연하지 않고 사시는 모습이 강하게 남아 있어 모든 후배들이 존경하는 분이셨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최 대령님은 6.25 참전 용사셨고, 군을 떠난 후에도 지금까지 안보 강연과 꾸준한 봉사활동으로 살아오신 분"이라면서 "전역 후에 한국해양소년단 고문으로 제의 받고 지금까지 무보수로 봉사하셨고, 연금생활에서 절약한 돈과 안보강연으로 받은 돈들을 모아 불우이웃돕기와 해군장학재단 등에 기부하셨던 분이시다"고 부연했다.

박 제독은 그와의 일화도 소개했는데 "최영섭 대령님은 1967년 장성1차 선발에서 누락되자 후배들의 진급에 방해가 되지 않기 위해서 과감하게 전역하셨는데, 그때 전역식에서 제자들이 얼마나 안타까워 했는지 모른다"며 "정말 최고의 군인이셨다"고 평가했다.

뿐만 아니라 "1965년도에 최영섭 대령님이 구축함장으로 재직하실 때 동해에서 고속 간첩선을 발견하기도 했는데, 그 때 최 대령님은 간첩선을 격침시키지 않고 파손없이 나포했다. 그리고 8명의 간첩을 모두 검거했는데, 이 때 최 대령님은 모든 공을 부하들에게 돌려 자신이 받아야 하는 훈장을 부하들에게 주는 일화도 많았다"고 밝혔다. 

그는 "최영섭 대령님은 제자들에게 '항상 감사하라, 서로 사랑하라, 대접을 받으려면 남을 먼저 대접하라, 남에 대하여 나쁘게 말하지 말라, 자기 자신을 자랑하지 말라' 등 평소 많은 가르침을 주셨다"고 말했다.

더욱이 박 제독은 "지난 1999년 6월에 발생한 제1연평해전 당시 서해 NLL 근해에서 전쟁의 위험이 고조되고 있을 때, 최 대령님이 그 시절 법원 원주지원장이던 아들 최재형 원장과 함께 우리 2함대 장병들이 잘 싸울 수 있도록 격려차 함대 사령부를 방문하신 적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그때 최 대령님은 '고생이 많다. 상황이 어떻게 되어 가느냐. 장병들의 사기는 어떻느냐'며 걱정해 주셨다"면서 "그래서 저는 '작전에 제한하는 사항이 많아 무척 힘듭니다. 그러나 북괴의 도발을 예상하고 6개월 전부터 강한 훈련으로 대비해 왔고 병사들의 사기도 충전합니다'라고 말씀 드리면서 장병들에게 격려의 말씀을 요청 드렸더니 최 대령님은 '전투 중에 무슨 격려 말이냐. 그러면 됐다. 지휘에 방해가 되니 난 가겠다'고 하시면서 잔뜩 싣고 온 수박을 내려 주시고 가셨다"는 일화도 전했다.

이어 박 제독은 "당시 최재형 원장이 직접 수박 20통을 혼자 모두 옮겨 놓고 부친을 모시고 돌아가던 모습이 눈에 아직도 생생하다"면서 "당시 최 원장은 업무가 매우 바쁜 와중에도 시간을 쪼개어 아버지를 직접 모시고 운전하며 함대를 방문했었는데, 최 원장은 그 당시에도 국가와 안보를 우선하는 모습을 보여 주며 감동을 주고 갔다. 역시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다'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애국자다운 모습에 놀랬었고, 나 또한 전투에 앞서 사실 그 부자의 방문이 정신적으로 큰 힘이 됐던 것 같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그는 '최 대령님은 우리의 진정한 영웅이셨다"며 슬픔을 감추지 못하면서 "편안히 영면하시길, 고인의 명복을 빈다"고 추모했다.

제1연평해전은 6.25 전쟁 이후 최초로 발생한 대규모 해상 정규전이며, 박 제독은 당시 2함대사령관으로 제1연평해전을 승리로 이끄는데 주역을 한 인물이다. 

한편 고인이 된 최 대령은 강원도 평강에서 태어나 1947년 해군사관학교에 입학했으며, 1950년 2월 해군 최초 전투함인 백두산함 갑판사관(소위)으로 임관했고, 6·25전쟁 당시 600명의 무장병력을 이끌고 부산으로 침투하던 무장수송선을 격침하여 해군의 첫 승전고를 울린 것으로 알려졌다. 

고인은 덕적도·영흥도 탈환작전과 인천상륙작전, 대청도·소청도 탈환 작전 등의 주요 전투에서 공을 세운 '전쟁 영웅'이었다. 

그의 빈소는 서울 서대문구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특2호실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10일 오전 9시이고 장지는 서울 원지동 추모공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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