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당 비롯해 시민단체까지 의견 분분

합의점 찾지 못한 국보법 TV토론 국가보안법 개폐에 대한 TV 공개토론을 놓고 여야의 힘겨루기로 치열한 공방전을 벌이고 있다. ‘당 지도부 토론’(열린우리당)과 ‘전문가 토론’(한나라당)이 맞선 양상이다. 열린우리당 이부영 의장은 13일 상임중앙위 회의에서 비교섭단체까지 포함, 각 정당 대표가 모두 참여하는 공개토론을 제의했다. 자민련까지 포함한 5자 토론을 제의한 것이다. 이 의장은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면 양당 대표와 원내대표 등 4명이 참여하는 토론이나, 이것도 안 되면 양당 원내대표만이라도 나서 토론을 갖자.”고 한나라당에 요구했다. 이에 한나라당 임태희 대변인은 “한나라당의 제안에 대한 대답으로는 적절치 않다. 대표가 아닌 법률전문가, 남북전문가 등 국보법 개폐에 정통한 의원이 3명씩 나와 토론하는 형식이 적절하다”고 사실상 거부했다. 앞서 한나라당 김형오 사무총장은 지난 10일 “당 3역 또는 지정한 대표가 참여하는 TV토론을 갖고, 이를 통해 국민들의 의견이 모아지는 대로 국보법 개폐문제를 국회에서 결론짓자”고 제의했었다. 이튿날인 11일에는 토론방식을 구체화해 “양당이 지정한 대표로 ‘3대3 토론’을 하고, 직후 국보법 개폐에 대한 찬반 여론조사를 실시, 그 결과를 여야가 수용토록 하자”는 제안을 내놓았다. 열린우리당은 이 의장의 정당대표 토론 제의 전까지 “국보법은 물론 재래시장육성특별법, 기금관리기본법 개정안 등 다른 쟁점에 대해서도 토론하자”(박영선 공보담당 원내부대표)는 입장을 취해왔다. 한나라당의 ‘양당 지정 6인 토론’-열린우리당의 ‘포괄주제 토론’-한나라당의 ‘전문가 6인 토론’-열린우리당의 ‘정당대표 토론’ 등이 연거푸 쏟아져 나왔지만 합의점은 찾지 못하고 의견만 분분히 겉돌고 있는 셈이다. 朴대표 웃고 李의장 울고 열린우리당 이부영 의장과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가 국가보안법 개폐와 관련해 13일 앞다퉈 종교계 지도자들에게 찾아갔다. 각계 의견을 폭넓게 수렴하겠다는 명분이나 국회 대결에 앞서 민심 확보 경쟁의 성격이 짙은 것으로 보여진다. 김수환 추기경을 방문한 박 대표는 ‘국보법 폐지 반대’의 뜻을 전해듣고 희색이 된 반면, 이 의장은 “국민을 불안하지 않게 하라”는 조계종 총무원장 법장 스님의 말을 들었다. ▲朴대표 맞은 김수환 추기경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가 13일 김수환 추기경을 방문한 것을 시작으로 사회ㆍ경제ㆍ종교계 원로 예방에 본격 착수했다. 전직 대통령을 차례로 찾아가 정치적 조언을 구하고 간접 ‘지원’을 받은 지난달 행보의 2탄 격이다. 박 대표는 이날 만남에 앞서 조심스러운 태도를 취했다. 사회 원로와 만나는 일정 자체를 밀봉했고, “어르신의 발언이 정치적으로 활용되어서는 안된다”며 함구령도 내렸다. 그러나 일단 이날 김 추기경과 만나 ‘짭짤한 성과’를 올리자 한나라당은 “힘을 얻었다”며 꽤 고무된 분위기를 보였다. 김 추기경은 이 자리에서 “국보법 폐지는 안 된다”고 사실상 한나라당쪽으로 무게를 실어줬다. 김 추기경은 이어 “친북이다, 친미다, 모든 문제를 갈라서 생각하는 남남분열은 북한이 원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고 한 참석자가 전했다. 한나라당 이정현 부대변인은 “문밖으로 웃음소리가 새어 나올 정도로 분위기가 화기애애했다”고 전했다. 김 추기경이 종교계는 물론 우리 사회에서 차지하고 있는 위치를 감안하면 한나라당으로서는 실로 큰 소득이 아닐 수 없다. 박 대표가 “저희가 잘해서 나라 걱정을 안 하게 해드려야 하는데...”라고 말하자 김 추기경이 “그건 사실이다”고 말해 좌중의 폭소를 유도하는 등 분위기가 한결 부드러웠다는 것이다. 한나라당은 이날 행사를 포함해 앞으로 계속될 사회 원로와의 만남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박 대표 스스로도 “가정이 어려우면 웃어른을 찾아뵙듯 요즘 나라가 소란스럽고 시끄러워 여러 말씀을 듣겠다”고 각별한 뜻을 내비쳤다. 국가 정체성 논란으로 정국이 어수선했을 때 전직 대통령을 만났듯 이번 만남을 통해 국보법 개폐로 시끄러운 여야 대결 구도를 이끌겠다는 의지로 읽어야 한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박 대표는 이번주 각계 원로들을 두루 예방한 뒤 재래시장 등을 돌아다니며 민생을 탐방하는 계획도 세웠다. 한가위를 앞두고 민생을 돌보는 ‘야당상(像)’을 심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李의장 맞은 법장스님 “국가보안법 폐지 대안이 없는 것 처럼 곡해하고 있다. 폐지하더라도 문제가 없도록 하겠다.”(이부영 의장) “입법기구라고 또 국민의 대표자라고 해서 그냥 홍보도 없이 한다면 국민들이 불안해한다.”(법장 스님) 열린우리당 이 의장은 12일 조계사에서 조계종 총무원장 법장 스님으로부터 따끔한 말을 들었다. 이 의장은 “현실은 남북 화해 교류 협력이 되어 있고 법은 가장 나중에 바뀌는 것 같다”면서 철학자 헤겔의 명제를 들어 국보법 폐지의 정당성을 제시했다. “올빼미는 석양에 비상을 시작한다는 말은 현실이 다변하면 사상이나 이론이 변한다는 이야기”라고 말한 것이다. 이에 법장 스님은 “현재는 과거의 미래고 오늘의 현재는 내일의 과거다. 현재가 가장 중요하다”면서 “법을 만들고 개정하는 것은 국민의 편의와 안녕을 위해서 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또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모든 대중이 부정하면 좋은 것이 못된다”며 여권의 강행처리 자제를 당부했다. 이 의장은 “국보법 폐지나 친일진상규명이 누구를 배제하고 불이익을 주는 것이 아니다”라고 해명했지만 법장 스님은 “여론 수렴을 충분히 하고 홍보를 충분하게 해서 동감하도록 하게 해야 한다”고 거듭 충고했다. 법장 스님은 특히 “과일을 깎는데 쓰면 과도고 식당에서 쓰면 식도고 살인을 하면 살인도가 된다. (국보법이) 인권유린하고 탄압하는데 쓰였다고 해도 지금 그렇게 안쓰면 되는 것 아니냐”면서 “불교에는 개차법이라는 게 있는데 도구는 쓰는 사람에 따라 다르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법장스님은 “대체 입법인지, 형법보완인지 (그런 것은) 잘 모르지만, 우선 국민이 안정하고 불안을 해소하고 편안할 수 있도록 장치를 마련한다면 그보다 좋은 일은 없지요”라고 주문한 뒤 “수청불어(水淸不魚)란 말이 있듯이 어느 정도 물이 흐려야 고기가 산다”고 여운을 남기며 만남을 마쳤다. 與 국보법 원내대표 회담 제안 한편 열린우리당 천정배(千正培) 원내대표는 14일 정치권의 국가보안법 존폐 논란과 관련, 한나라당 김덕룡(金德龍) 원내대표에게 양당 원내대표 회담을 제안했다. 천 원내대표는 오전 국회 본청에서 열린 기획자문위 회의에서 “국보법에 대해 여야간 입장이 달라 국민에게 걱정을 끼치고 있다”며 “이 같은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김 원내대표에게 공식적으로 원내대표 회담을 제안한다”고 말했다. 천 원내대표의 회담 제안은 우리당의 국보법 폐지에 대해 강하게 반발하고 있는 한나라당을 협상테이블로 유도, 여야 정치권의 국보법 존폐 논의를 공식화하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그는 또 “원내대표 회담에서 얽힌 사안을 정리하고, 가능하면 합의에 이르렀으면 한다”면서 “만약 합의가 되지 않더라도 여러 가지 사안을 정리하는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천 원내대표는 한나라당이 전날 기금관리기본법에 찬성 입장을 보인데 대해 “190조원의 연기금이 국가경제 발전을 위해 적극 쓰일 수 있는 발판이 될 것”이라며 “오늘 국회 운영위 소위에서 여야간 생산적인 토론이 이뤄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민노당 “폐지 100만인 서명운동” 민주노동당은 국가보안법 완전 폐지에 전 당력을 기울이며 안간힘을 쏟고 있다. 김혜경 대표는 13일 당원 50여명과 함께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17대 정기국회에서 반드시 국보법을 폐지시켜 국민 기본권과 민주주의를 신장시키고 평화통일을 앞당기기 위해 당의 모든 것을 걸고 투쟁할 것임을 선포한다”면서 “시민ㆍ사회단체와 함께 ‘100만인 서명운동’을 펼치고 전시회, 문화제 등을 개최하는 등 범국민적 국보법 폐지 운동을 벌이겠다”고 강조했다. 앞서 천영세 의원단 대표는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열린우리당 이부영 의장이 이날 제안한 국보법 관련 5당 대표 TV토론을 적극 환영한다고 밝혔다. 민주노동당이 이처럼 국보법 완전폐지에 매진하는 이유는 최근 여론조사에서처럼 당의 이해 득실을 떠나 자칫 국보법 폐지 흐름이 역풍에 휘말릴 가능성이 적지 않다는 우려와 함께 반민주, 반인권 등 악(惡)조항은 남긴 채 껍데기만 바꾸는 결과를 초래하지 않을까 걱정하기 때문이다. 한편 김 대표 등은 기자회견을 마친 뒤 국회 정문 담장에 ‘국보법 폐지’를 상징하는 의미에서 보라색 리본 30여개를 거는 행사를 가졌다. ‘국보법 개폐’ 놓고 시민단체도 적극가담 정치권이 국가보안법 개폐 문제를 놓고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가운데 시민단체와 보수원로 등도 개정 혹은 폐지 입장에 따라 별도의 집회와 행사를 계획하고 있어 국보법 공방이 ‘장외전’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14일 시민단체 등에 따르면 참여연대와 통일연대 등 303개 단체가 참가중인 국가보안법 폐지를 위한 국민연대는 18일 전국적으로 ‘국보법 폐지 범국민 대행진’ 행사를 갖기로 했다. 서울에서는 이날 오후 시민들이 인라인 스케이트나 오토바이 등을 타고 대학로에 자유롭게 모여 광화문까지 행진을 벌인다. 행사에선 퍼포먼스 등 각종 문화행사도 마련될 예정이다. 또 전국 각 시ㆍ도에서도 같은 취지로 지역실정에 맞춰 일반 시민들이 참여한 가운데 행진이 열릴 예정이다. 앞서 14일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에서 국보법 보도의 허위ㆍ왜곡 사례와 문제점, 과거 보도행태를 짚어보는 토론회를 연다. 이와 함께 조만간 ‘사이버 논객’들을 초청한 가운데 국보법 폐지를 둘러싼 온라인 찬반토론을 펼친다. 다음달 중순께엔 ‘문화 집중행사 기간’을 정해 다양한 문화행사 속에 국보법 폐지의 당위성을 홍보하는 기회를 갖기로 했다. 이에 맞서 보수단체들은 서명운동과 집회, 강연회 등으로 국보법 폐지 반대여론을 확산시켜 나간다는 계획이다. 최근 보수 원로들의 ‘9.9 시국선언’을 주관한 자유시민연대는 시국선언에 동참했던 원로 20여명과 이번주 중 다시 모임을 갖고 향후 행동계획을 논의키로 했다. 정기승 헌법을 생각하는 변호사 모임 회장ㆍ김성은 전 국방부장관ㆍ안응모 전 내무부장관ㆍ김동길 연세대 명예교수ㆍ이동복 전 의원 등이 참석할 모임에선 서명운동, 대규모 집회 개최 등이 논의될 예정이다. 바른선택국민행동(대표 신혜식)은 대학생들을 상대로 국보법 철폐의 부당성을 알리기 위해 서명운동과 대학가 강연회를 열 계획이다. 또 반핵ㆍ반김 국권수호 국민협의회도 여타 보수단체들과 연대, 조만간 국보법 존치를 주장하는 대규모 집회를 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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