얽히고 설킨 ‘혼맥’ 대해부 - 재벌가 딸들

재벌가 3세들의 약진이 두드러지고 있다. 이들의 경영수업이 본격화되면서 후계승계가 가시화되고 있어서다. 그중 재벌가 딸들의 활약상이 유독 눈길을 끌고 있다. 그동안 일반적으로 부자간의 대물림이 대부분이었던 재벌가 후계 구도가 딸들에게도 기회가 돌아가고 있다. 이제는 아버지의 대를 이어 딸이 총수로 등극할 날이 멀지 않았다는 재계의 분석이 이어지고 있다. 그렇다면 경영 일선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재벌가의 딸들은 누가 있을까. 그들의 동선을 <시사신문>이 따라가 봤다.


핵심부서에서 능력 인정받으며 승승장구 초고속 승진해

경영수업에 의욕 나타내 “맡겨준다면 능력 닿는 데까지”


창업주 1세대에서의 여성은 ‘안주인’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2세대 역시 사정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다만 그룹 경영과 무관한 장학사업이나 미술관 운영을 통해 대외활동을 했을 뿐이다. 하지만 3세대에 들어서면서 딸들은 주변인에서 중심인으로 거듭나기 시작했다. 아들과 마찬가지로 함께 경영일선에 뛰어들며 종횡무진하고 있다.


삼성가의 딸 호텔업계 맞수


재벌가 대표주자로 꼽히는 여성은 이미경(49) CJ엔터테이먼트 부회장이다. 이 부회장은 삼성가 장손인 이맹희 전 제일비료 회장의 딸이자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누나다.

이 부회장은 서울대 가정교육과를 졸업한 뒤 미국 하버드대 동아시아지역학 석사, 중국 푸단대 중국역사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이후 1995년 제일제당에 입사하여 2004년 12월 CJ엔터테인먼트&미디어 부회장으로 승진, 3년째 CJ그룹 내 엔터테인먼트와 미디어 사업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아시아인 최초로 세계여성상 경영부문에 선정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 이부진 신라호텔 상무.
이건희 회장의 장녀 이부진(37) 호텔신라 상무 역시 맹활약하고 있다. 이 상무는 연세대 아동학과를 나와 지난 1995년 삼성복지재단 기획지원팀에 입사, 삼성전자 전략기획팀 과장과 해외인력관리팀 차장을 거쳐 지난 2001년 8월 호텔신라 기획부 부장으로 호텔신라와 인연을 맺었다. 현재는 경영전략담당 상무로 재직 중이다.

지난해 초부터 로비와 레스토랑, 연회장에 대한 리모델링을 돌입한 이 상무는 공사를 세 번이나 연기시킬 정도로 완벽을 기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또 신라호텔을 웰빙, 뷰티, 쇼핑, 문화의 라이프스타일 공간으로 탈바꿈시키면서 더욱 승승장구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이 상무의 기획력과 추진력을 업계 관계자들은 높이 평가하고 있다.

이부진 상무 외에도 호텔을 경영하고 있는 재벌가 딸들의 경영 참여가 두드러지고 있다. 이명희 신세계 회장의 외동딸인 정유경(35) 상무와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의 외손녀인 장선윤(36) 상무가 함께 경합을 벌이고 있다.

▲ 정유경 조선호텔 상무.
정유경 조선호텔 상무는 지난 1996년부터 조선호텔 등기이사에 올라 현재는 조선호텔 프로젝트실장 상무로 맹활약하고 있다. 이화여대에서 디자인을 전공한 후 미국 로드아일랜드 디자인학교를 졸업한 그는 자신의 전공을 살려 호텔의 전반적인 디자인 작업을 도맡고 있다. 정 상무는 호텔 사업뿐만 아니라 오빠인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을 도와 신세계의 명품 사업에서도 수완을 발휘하고 있다. 영국 사라 퍼거슨 전 왕세자비 결혼 때 부케를 맡아 유명해진 명품 플라워 브랜드 ‘제인 파커’를 아시아 최초로 조선호텔과 신세계백화점에 입점 시킨 장본인이 바로 정 상무다. 삼성家의 딸들로서 고종사촌 지간이기도 한 이부진 상무와 정유경 상무는 호텔업계에서 피할 수 없는 맞대결을 펼치고 있는 셈이다.


현 회장의 모녀 경영승계 미지수


신격호 회장이 유난히 예뻐하는 것으로 알려진 장선윤 롯데호텔 상무는 롯데가 3세 중에서는 유일하게 미국에서 대학을 마쳤고, 하버드대에서 심리학을 전공했다. 장 상무는 대학 졸업 직후인 지난 1997년 롯데면세점에 입사해 이듬해에 롯데백화점 해외명품팀 바이어, 해외명품통합팀장, 해외명품담당 이사대우와 이사를 거쳐 올해 상무로 승진했다.

에비뉴엘 오픈 당시, 해외 명품 사장단을 직접 만나 브랜드를 입점시키는 데 재능을 보였던 그는 짧은 기간에 1백여 개 브랜드를 유치하는 기록을 세우며 그룹 내 입지를 확고히 다졌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최근 롯데호텔로 자리를 옮긴 장선윤 상무는 롯데 명품관 에비뉴엘을 통해 입증해 보인 ‘명품감각’을 롯데호텔에도 발휘할 전망이다.

최근 재계에서는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장녀 정지이(30) 현대유엔아이 전무를 주목하고 있다. 향후 현대그룹 경영권이 정 전무에게 넘어갈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현정은 회장은 이를 증명하듯 항상 정 전무와 동행하며, 곁에 없으면 정 전무를 찾느라 허둥댈 정도라고 하니 모녀간의 정이 얼마나 각별한지 짐작할 수 있다.

▲ 정지이 현대유엔아이 전무.
정 전무는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를 거쳐 연세대 사회과학대학원 신문방송학 석사 과정을 졸업하고 지난 2004년 1월 현대상선에 입사해 불과 6개월 만에 대리를 거쳐 초고속 승진을 한 것으로 화제를 모았다. 지난해에는 임원급인 현대유엔아이 기획실장에 임명된 데에 이어 1년도 못돼 또 다시 전무로 승진했다.

현 회장과 정 전무가 지분 77.3%를 갖고 있어 사실상 모녀의 개인회사나 마찬가지인 현대유엔아이는 현대그룹의 SI(시스템통합) 사업을 하는 곳으로 지난 2005년 법인이 설립돼 매년 수십억원의 흑자를 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룹 내 하청물량을 받아 실적부담이 없는 현대유엔아이에서 정 전무의 경영수업이 이뤄지고 있다는 후문이다.

그러나 현 회장 모녀가 경영승계를 이뤄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정상영 KCC 명예회장과 현 회장의 시동생인 정몽준 의원이 현대그룹에 관심을 드러내면서 현대가의 적통성 논란과 함께 갈등을 빚고 있다. 이에 따라 재계에서는 과연 정 전무가 현 회장의 바통을 넘겨받을 수 있을 지 관심을 드러내고 있다.


“맡겨준다면 능력 닿는 데까지”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장녀인 조현아 대한항공 기내식사업본부 상무(33) 역시 경영수업에 남다른 의욕을 보이기도 했다. 지난해 9월21일 제주 KAL호텔에서 열린 ‘국제 기내서비스협회(IFSA) 아시아․태평양 지역 컨퍼런스’ 직후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그는 “경영수업에 대해 운운하는 것은 이르다”며 말을 아꼈지만 “회사에서 맡겨준다면 능력이 닿는 데까지 다양한 업무를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미국 코넬대 호텔경영학을 전공하고 1999년 대한항공에 입사한 이후 호텔면세사업본부 팀장과 기내판매팀장 등을 거쳐 현재 기내식사업본부장에 이르기까지 경영수업을 착실히 받아온 것으로 알려진 조 상무는 그룹 안팎은 물론 고객들에게까지 호응이 좋아 기내식 수준을 호텔급 이상으로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게다가 지난 9월17일 캐나다 토론토 메트로 컨벤션 센터에서 열린 세계 기내엔터테인먼트협회(WAEA)의 연차총회 ‘에비온 어워드’시상식에서 ‘최고 성과상’ 부문과 ‘지역별 최고 항공사상’ 부문 아시아-대양주 지역에서 각각 3위에 올라 조 상무의 활약에 기대를 모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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