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력특집 3, 얽히고 설킨 혼맥 대해부

한국사회를 쥐락펴락하는 정가, 재벌가의 ‘끼리끼리’ 혼맥 형성은 이미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재벌은 재벌끼리 혼인을 성사시켜 ‘win-win’ 전략에 나서기도 하고, 기업발전에 음으로 양으로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정가와의 혼인을 성사시키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혼맥 형성은 정·재계에만 국한된 얘기가 아니다. 법조계와 언론계, 의학계를 비롯한 사회 여러 계층에서도 재계와의 다양한 혼맥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시사신문>이 따라가 봤다.

재벌까지는 아니더라도 사회적으로 명예로운 위치에 있거나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위치에 있는 사회 인사들은 결혼에 더욱 신중 할 수밖에 없다. 이로 인해 우리나라 정·재계 인사들과 혼맥을 형성하는 사회 인사들도 적지 않다. 다른 사람들보다 사회적 시선을 더욱 신경 쓰는 탓도 있겠지만 우리나라 정?재계 인사들과 사돈을 맺어 손해 보는 일은 없기 때문이다. 사회 인사들은 정?재계와의 혼맥 형성을 통해 win-win 전략까지는 아니더라도 ‘상부상조’ 정도의 미덕은 발휘할 수 있다.

‘법’과 ‘부’의 상관관계

▲ 서울 종로구 광화문에 위치한 조선일보.
재벌가와 사돈을 맺은 대표적인 법조인으로 현재 법무법인광장 대표변호사로 재직하고 있는 이태희씨를 꼽을 수 있다. 이태희씨는 이상묵 전 홍아타이어 감사의 장남으로 지난 1968년, 한진그룹 조중훈 창업주의 장녀 현숙씨와 결혼 했다. 한진그룹 조중훈 창업주는 1920년생으로 부친 조명희씨와 모친 태천접씨의 4남4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으며 비교적 유복한 가정에서 자라 25세에 평범한 집안의 김정일씨와 혼인, 4남1녀를 뒀다.

그 중 장녀 현숙씨가 법조인 이태희씨를 만나 혼인을 치른 것이다. 결혼 당시 이태희씨는 서울지방법원 판사로 근무하고 있었으며 1983년 KAL기 폭파사건 당시 뒷수습에 앞장섰던 일로 세간에 이름이 알려졌다. 당시 사건 수습을 위해 맹활약했기 때문이다.

덕분에 이태희 가문은 한진그룹과 법조계 사이에서 다리를 놓는 역할을 톡톡히 하게 된다. 대법원 판사를 지낸 한봉세 집안과도 줄이 닿아 있으며 장인의 남동생 조중건 전 대한항공 고문의 장녀 윤정씨가 이동원 전 외무부 장관의 장남 정훈씨와 혼인하게 되어 관료계와도 연결되어 있으며 이 전 장관을 매개로 법무장관 출신인 신직수씨와도 다리 건너 사돈지간이 됐다.

맥락이 조금 다르기는 하지만 동양그룹의 현재현 회장도 이양구 창업주의 사위가 되기 전까지는 촉망받는 검사를 꿈꾸던 법학도였다.

동양그룹 이양구 창업주는 슬하에 아들이 없어 사위를 들여 재벌그룹을 경영한 것으로 유명하다. 때문에 그 혼맥의 중심에 있는 동양그룹 현재현 회장은 결혼과 함께 인생의 변화를 맞이했다. 경기고를 졸업하고 서울대 법대 3학년에 재학 중이던 당시 재벌가의 사위가 된 것이다. 현 회장이 재벌가의 사위가 된 것은 김옥길 전 이화여대 총장이 다리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전 총장은 동양그룹 이양구 창업주와 평소 집안끼리 잘 알고 지냈으며 당시 김 전 총장의 중매로 현 회장은 이 창업주의 맏딸 혜경씨와 결혼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현 회장이 결혼을 통해 신분이 급상승한 것은 아니었다. 검사라는 직업도 직업이었지만 현 회장의 집안 역시 고 이 회장 집안 못지않은 명망가였다. 동양그룹의 이 창주가부를 가졌다면 현 회장의 집안은 학식과 명예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현 회장의 부친은 이화여대 의대 교수를 역임한 현인섭씨. 또 조부는 고려대 초대총장을 지내고 ‘유학계의 마지막 거두’로 불리는 현상윤씨다. 학식과 명예를 가진 집안과 부를 가진 집안의 타이밍 적절한 혼인이었던 것이다.

결혼 후 현 회장은 처가의 경영참여 요청에 기업인과 법조인 사이에서 심각한 고민을 했다. 결국 1977년 동양시멘트 이사로 동양그룹에 첫발을 내딛으며 기업인을 선택, 그의 인생의 일대 변신을 하게 된다. 경영수업을 쌓기 위해 80년대 초반 미국 스탠퍼드대학에 유학했으며 재무관리를 전공, MBA를 취득하기도 했다.

‘명예’와 ‘돈’을 동시에

▲ 서울 종로구 광화문에 위치한 동아일보 사옥.
많은 사람들은 학식과 명예, 부를 동시에 지닐 수 있는 직업으로 의사를 꼽는다. 재벌까지는 아니어도 먹고 사는데 여유로운 생활을 할 수 있는 사회 계층인 것이다. 이런 의학계 인사들도 재벌과의 혼맥을 공공연히 형성하고 있다.

먼저 재미동포 내과의사인 윤주덕씨의 딸 영태씨는 한진그룹 조중훈 창업주의 형 조중렬씨의 차남 진호씨와 혼인했다. 또 재미교포 외과의사인 박소희씨 역시 조 창업주의 넷째 동생인 경숙씨와 혼인 했다. 이로 인해 윤주덕씨와 박소희씨는 한진그룹이라는 재벌가에서 서로 만나 혼맥을 형성했으며 LG가, 롯데가와 사돈 지간인 한진그룹 덕분에 한 다리 건너 사돈지간으로 지낼 수 있게 됐다. 또 조 창업주의 장녀 현숙씨가 법조인 이태희씨와 혼인해 법조계와도 다리건너 사돈지간이다.

조금 멀리 내다보면 1973년 이재철 전 교통부 차관의 3남1녀 중 외동딸 명희씨는 조한진그룹 조양호 회장과 혼인을 치렀다. 이로 인해 장인인 이 전 차관이 신예용 안과 의사와 사돈관계를 맺고 있어 그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유독 많은 의학계 인사들이 한진그룹과 혼맥을 형성하고 있고 이로 인해 한진그룹은 내과, 외과, 안과 의사들과 혼맥을 통해 얽혀있다.

1970년대 의사로 활동했던 신현정씨 역시 재벌가로 장가를 든다. 대성그룹 김수근 창업주의 장녀 영주씨와 혼사를 치른 것이다. 그들은 1975년 지인의 중매로 의사인 신현정씨와 결혼했으며 현정씨는 현재 개인병원을 운영하고 있다. 영주씨는 서울미대를 졸업하고 크랜부룩미술원에서 미술공부를 한 뒤 사회사업과 여류화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현재 코리아닷컴 부회장을 역임중이다.

이 결혼으로 현정씨는 대성그룹이라는 재벌 사위로 등극했으나 장인어른의 화려하지 않은 소박한 혼사 진행으로 인해 정·재계인사들과의 혼맥 형성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장인어른의 두 동생이 정·재계 인사들과 사돈을 맺으면서 다리건너이긴 하지만 고른 혼맥을 형성했다.

전북도립병원장을 지낸 이관호씨는 차남 이승원씨의 혼사를 쌍용그룹과 치른다. 당시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학 섬유연고수실험실 부실장이던 승원씨는 쌍용그룹 김성곤 창업주의 둘째딸 의정씨와 혼인하고 이후 쌍용그룹 부회장과 쌍용제지 상임고문 등을 역임했다. 가문보다 사람의 됨됨이는 중시하는 장인 덕에 그다지 화려한 혼맥을 자랑하는 것은 아니지만 영?호남에 거쳐 운수업자부터 의사, 기업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의 혼맥을 형성하고 있다.

또 미국 미네소타대학과 서울대 의대를 졸업하고 세계보건기구 서태평양 사무처장 등으로 활약했던 한상태씨는 자신의 딸 준희씨와 쌍용그룹 김 창업주의 막내아들을 결혼시킨다. 한상태씨 역시 화려하지는 않지만 사람의 됨됨이를 보고 혼맥을 형성하는 김 창업주의 정신이 마음에 들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나라 재계서열 1위인 삼성그룹과 혼맥을 형성한 의학계 인사는 없을까. 물론 있다. 고려병원(현 삼성강북병원) 고문을 지낸 조윤해씨는 경북지방의 대지주였던 조범석가의 자제로 경북대 의대를 졸업하고 일본에 유학한 의사출신으로 삼성그룹 이병철 창업주의 맏딸인 인희씨와 결혼했다. 이 결혼으로 조윤해씨는 삼성의 막강 혼맥에 합류하게 된다.

‘돈’보다 강한 ‘펜’의 힘

▲ 김병관 동아일보 사장.
학계는 재계와 혼맥을 형성한 사회 계층 중에 가장 적은 비율을 차지한다. 이는 철저히 win-win 정신으로 무장한 대부분의 재계 혼맥과 어느 정도 관련이 있다. 학계와 재계는 서로 상부상조할 일도 어느 쪽 하나가 희생할 일도 없는 너무 무난한 만남인 것이다.

이런 와중에도 불구하고 교육계에 몸 담았던 조종립씨의 아들 석씨는 서울 상대출신으로 (주)삼양사 김연수 창업주의 3녀 정애씨와 결혼하고 이후 삼양사에 입사, 이 회사 대표이사 부사장까지 역임했다.
전 서울대 부총장인 김영국씨 역시 김 창업주의 5녀 정유씨와 혼인했으며 그는 인천에서 사업을 하던 김덕창씨의 8남매 가운데 3남으로 태어나 인천이 낳은 천재로까지 불리워졌다. 이들은 김 창업주 친구의 소개로 결혼했으며 영국씨는 전 서울대 정치학과 총동창회장인 상하(정유씨의 오빠)씨의 후배이자 매제다.

또 교육자였던 김종규씨의 아들 김성완씨는 김 창업주의 막내딸 희경씨와 결혼, 현재 미국에서 거주하고 있으며 성완씨는 미국 유타대학 교수로 재직중이며 인공심장 분야의 권위자다. 삼양사의 사위가 된 이들은 워낙 많은 가족 덕에 정·재·관계를 비롯해 다양한 혼맥을 형성하고 있으며 3세 혼인을 통한 본격적인 인맥 형성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 한편 ‘아폴로박사’로 유명한 조경철씨도 김 창업주의 장녀 상경씨와 혼인했었으나 현재는 이혼한 상태다.

1950년 경기고 교장을 거쳐 교육감으로 이름을 떨친 김원규씨도 재벌가와 혼맥을 형성했다. 김원규씨의 차녀 영혜씨와 한진중공업 조남호 회장이 혼인을 치른 것이다. 영혜씨는 이대를 졸업했으며 연애결혼을 해 화제를 낳기도 했다. 당시 각종 스포츠를 즐기던 조남고 회장과 테니스장에서 만나 교제를 거쳐 결혼했다. 조 회장은 다른 형제들에 비해 학연을 바탕으로 두터운 인맥을 구성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언론계와 재계의 혼맥 형성도 말하지 않고 지나가면 서운하다. 정부와 재벌의 견제역할을 하는 언론이 재벌과 혼맥관계를 조성하는 것은 언론의 견제를 무력화 시켰다는 비판이 있기도 하지만 재벌과 언론의 혼맥 또한 우리사회에서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인 것이다.

먼저 중앙일보 회장을 지낸 홍진기씨는 그의 장녀 라희씨를 우리나라 재계 1순위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과 결혼시켰다. 또 동아일보 김병관 회장의 아들 재열씨는 이 회장의 차녀 서현씨와 결혼했다. 이 결혼으로 김 회장은 중앙일보와도 한 다리 건너 사돈지간이 됐고 삼성그룹은 중앙일보에 이어 동아일보와도 혼맥을 형성했다.

▲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
전 서울신문사 김종규 사장은 딸 유희씨와 (주)삼양사 김연수 창업주의 3남 상홍씨 장남 윤씨를 혼인시켰다. 이로 인해 김 전 사장은 벽산그룹 김인득 회장과도 다리 건너 사돈이 됐고 고려연초 장지량 회장은 막내딸 영은씨를 상흥씨의 차남 량씨와 혼인 치르게 했다. 이는 영은씨의 오빠 장대환씨가 매일경제 신문 창업주 정진기씨의 사위인 점과 무관하지 않으며 현재 장대환씨는 매일경제신문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조선일보 방일영 회장의 아들인 방상훈 사장은 LG그룹의 LG칼텍스정유 허동수 회장의 조카딸과 결혼, 혼맥을 형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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