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퇴임관리설 내막

노무현 대통령이 화려한 변신을 꿈꾸며 다시 정치권의 핫 이슈로 떠올랐다. 대통합민주신당 손학규 경선후보와 한나라당 이명박 대선후보를 정조준해 칼날을 세우는가 하면 측근 비리조차도 영리하게 이용하며 정치적 입지를 높여가고 있다. 정치권이 청와대 인사들의 권력형 비리 의혹을 노무현 대통령 레임덕 현상으로 규정하고 있는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노 대통령은 기자회견을 자청해 측근들의 잇단 비리 의혹에 대해 “‘측근 비리’라 이름 붙여도 변명하지 않겠다”며 “할 말이 없게 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검찰 조사 결과가 나와 봐야 안다”며 직접적인 사과를 피하고 손학규 후보와 이명박 후보에 대한 칼 겨누기를 이어가는 ‘양면의 정치학’을 선보이며 임기 말 찾아온 위기를 돌파하고 있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노 대통령의 총선출마설, 노무현당의 재건설 등 노 대통령의 퇴임 후 정치 행보에 대한 설들에 귀 기울이며 ‘대통령 노무현’에서 벗어남과 동시에 ‘정치인 노무현’으로 변신을 꾀할 것이라 점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의 퇴임관리가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역대 대통령들과의 차별을 꾀하며 노 대통령은 특유의 정치 행보와 철저한 계획으로 퇴임을 준비하고 있다.

처음에는 얼러주고

노 대통령은 확실히 역대 대통령들과는 다른 정치 행보를 걷고 있다. 임기 말 각종 ‘게이트’로 권력 누수에 시달리며 쓸쓸히 돌아선 이들과는 달리 정면 공격으로 국면 전환을 꾀하고 있다.
노 대통령은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의 신정아씨 비호의혹 사건 및 정윤재 전 청와대 의전비서관 로비의혹 사건이 권력형 비리로 전선이 확대될 조짐을 보이자 긴급 기자회견으로 이에 대한 입장을 표명했다. 기자회견을 자청한 노 대통령은 “요즘 시끄러운 일들이 많으니까, 시끄럽고 민감한 일들이 많으니까, 궁금한 일이 많을 것”이라고 말하며 입을 열었다.
노 대통령은 확산일로에 있는 변양균 전 실장의 문제에 대해 “참 난감하게 됐다. 할 말이 없게 됐다”고 말했다. 처음 변 전 실장의 신정아씨 비호 의혹이 나올 때만 해도 “깜도 안 되는 의혹” “소설 같다”는 발언으로 방어막을 쳤다. 그러나 검찰 조사로 변 전 실장과 신정아씨의 관계가 드러나기 시작하자 뒤통수를 맞았다는 반응으로 은연중 측근 비리와의 연계성을 차단했다.
노 대통령은 또 정윤재 전 비서관의 문제에 대해선 “‘측근 비리’라 이름 붙여도 변명하지 않겠다”고 말하는 등 도덕성을 제일로 고위 당직자의 검증 시스템을 운영한 참여정부와 ‘게이트’ 없는 정부를 원한 계획에 심대한 차질이 생겼음을 인정했다.
노 대통령의 반성모드는 여기까지다. 노 대통령은 측근 비리 의혹이 전방위로 번져가는 것에 대해 “사과해야 할 것 같다”고 했으나 “검찰 수사 결과 보고 입장 표명하겠다”며 검찰 수사가 진행 중임을 이유로 직접적인 사과를 피했다.
뿐만 아니라 노 대통령은 측근들의 이야기 뒤에 손학규·이명박 후보에 대한 견제의 끈을 늦추지 않는 노련함으로 정국 주도권을 노렸다.

은근슬쩍 날 세우기

노 대통령은 정치권이 참여정부의 고위인사 검증 시스템에 구멍이 뚫렸다고 지적하며 노무현 대통령의 임기 말 권력누수가 급속도로 진행 중이라는 관측을 내놓은데 대해 “국회나 정당에 대한 통제력은 임기 초부터 행사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쪽에 누수 될 권력도 없다”고 일침을 가하는 것으로 공격을 시작했다.
손학규 후보의 각 세우기에 “졸렬한 정책”이라고 비난하고 이명박 후보 고소와 관련 “정치가 법 위에 있지 않고, 따라서 후보도 법 위에 있지 않고, 선거도 법 위에 있지 않다. 그들 스스로 한 일을 생각지 않고 정치적 효과만 가지고 얘기하는 법이 어디 있는가”라고 반문하는 등 심증만으로 청와대와 노 대통령을 ‘정치공작’의 주범으로 몰아붙인 한나라당과 이 후보측에 강한 유감을 드러냈다.
노 대통령의 기자회견에 대해 한 정치평론가는 “겉으로는 사과를 하는 척 하면서 치밀한 공격으로 적을 깎아내리고 있는 모습”이라며 겉과 속이 다른 노 대통령의 정치를 ‘양면의 정치학’으로 규정했다.
그는 “정치권의 공세가 강도를 더해간다고 해도 노 대통령이 흰 깃발을 드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라며 “대통령직에서 물러선 후 다시 정치를 시작할 노 대통령에게는 ‘항복’을 하는 순간 그의 정치적 기치를 따르던 이들이 떨어져 나갈 것이라는 우려가 더 크다”고 내다봤다.
정치권 일각에서도 “반미인가 하면 친미고, 좌파인가하면 우파의 면모를 드러내고, 화해를 청하는 한편 공작을 펼치는 노 대통령의 알 수 없는 정체성이 다시 한번 드러난 것”이라며 “공격을 받는 있는 와중에서도 역공을 펼치는 노련함과 모호한 정체성의 합작”이라는 해석을 내놓았다.

퇴장은 화려한 불꽃처럼?

청와대가 7일 한나라당이 국정원·국세청의 ‘이명박 후보 죽이기’ 공작정치가 진행되고 있다고 주장하며 배후로 청와대를 지목한데 대해 이 후보와 이재오 최고위원, 안상수 원내대표, 박계동 공작정치분쇄 범국민투쟁위원장을 서울중앙지검에 고소하는 초강수를 두고 노무현 대통령이 연속적으로 터져 나오는 각종 측근 비리 의혹에 유연히 대처하며 ‘버티기’에 들어간데 대해 “이미 임기 말을 정리에 대한 단계적인 구상은 끝난 상태”라며 “기자회견 자청에는 이 사건들을 어떤 식으로 활용할지에 대한 계획이 마무리됐다는 속내가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굽힘 없는 노 대통령의 걸음에 대해 “무대에서 물러날 때 착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고 다 인기를 끄는 것은 아니다. ‘착한’ 이미지 보다는 강렬한 한 수를 남기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는 “현 정치권에서는 참여정부의 성공은 하나도 없고 질책만 있을 뿐이다. 이는 정부와 각을 세움으로써 참여정부의 실패와 거리를 두려는 태도”라고 분석하고 “하지만 정권이 바뀌면 새로운 평가도 나올 것”이라며 “노 대통령이 새 정권의 평가에 기대를 걸고 강렬한 인상을 남기고 퇴장하는 방법을 택했을 수도 있다”는 분석을 조심스레 제기했다.
대통령직에서 물러남과 동시에 정치의 중심에서 멀어져간 전대 대통령들과는 달리 총선 출마나 기념관에서의 강연으로 새로운 정치 인생을 시작할 노 대통령에게 최악의 악재는 이미지가 흐려지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퇴임관리, TF로 집중 관리

이와 함께 정치권 외곽에서 소리 없이 떠돌기 시작한 ‘퇴임관리 TF’설에도 살이 붙기 시작했다.
정가 소식통들을 통해 전해지고 있는 이 설은 청와대 일부 참모진을 중심으로 노무현 대통령의 임기를 관리하는 TF가 운영 중이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노 대통령의 정치 인생에 화려한 꽃을 피워줄 ‘남북정상회담’의 성공과 현재 진행 중인 측근 비리의혹 등 안정적인 임기 말 연착륙을 방해하는 요소들을 처리하는 전담팀이 있다는 것이다.
‘퇴임관리 TF’에 참여한 이들은 노 대통령의 절대적인 신임을 받고 있는 이들로 노무현 대통령이 대통령직에서 물러나 새로운 ‘노무현당’을 구성 시 핵심 멤버라고 소식통은 전한다.
즉, ‘끝까지 함께 갈’ 이들이 노 대통령의 임기 말을 관리하고 이후 새로운 정치 인생을 시작하는데 무리가 없도록 조정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친노 세력으로 정국의 변화가 불가능하다고 생각된다면 노 대통령이 나설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가 벌써부터 정치권을 달구고 있는 상황이다.
노 대통령의 퇴임 이후까지 내다보는 계획의 연장선상에 서 있는 ‘퇴임관리 TF’의 존재는 논란의 핵으로 떠오른 노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에 주목하고 있는 정치권을 긴장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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