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대통령으로는'폐지론'처음 정치권 大소용돌이

與 “개정·폐지” 당내 논란 사실상 종지부 野 “체제 유지 위해선 국보법 필요” 반발 노무현 대통령이 국가보안법에 대한 폐지론을 밝혔다. 현직 대통령이 폐지론을 주창하기는 1949년 국가보안법 제정 이후 처음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대통령 취임 전에 '대체 입법'을 통한 국가보안법 폐지론을 주장했으나 취임 후에는 개정 쪽으로 돌아선 바 있다. 노 대통령은 "국가보안법은 한국의 부끄러운 역사의 일부분이고 지금은 쓸 수도 없는 독재시대에 있던 낡은 유물"이라면서 "낡은 유물은 칼집에 넣어서 박물관으로 보내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라고 폐지론을 분명히 밝혔다. 노 대통령은 또 "국가보안법을 너무 법리적으로 볼 것이 아니라 역사의 결단으로 봐야죠"라고 폐지를 주장하는 배경을 밝히고 "다른 일반 형법이 있다"면서 "꼭 필요하다면 형법 몇 조항 고쳐서라도, 국가를 보위하기 위해서 필요한 조항이 있으면 형법 몇 조항 고쳐서라도 형법으로 (대체)하고 국가보안법 그건 없애야 '대한민국이 이제 드디어, 대한민국이 문명의 국가로 간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이라고 폐지 원칙을 거듭 밝혔다. 노 대통령이 국가보안법 폐기를 강력 주장함으로써 정치권의 국보법 개폐 논쟁이 심화되고 있다. 열린우리당은 국보법 폐지를 위한 가속도를 내는 반면 한나라당은 강력 반발하며 대공세에 나섰다. 盧대통령 발언 파장 “국보법은 독재시대의 낡은 유물,,, 칼집에 넣어 박물관으로 보내야"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은 5일 밤 MBC TV 시사 프로그램 ‘시사매거진 2580’ 에 출연, 국가보안법 폐기를 역설하는 한편 경제활성화 대책, 부동산 정책, 4차 북핵 6자회담 등 국정 전반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노 대통령은 과거사진상규명, 경제위기론, 행정수도 건설 등 쟁점 현안에 대해서는 ‘좌고우면하지 않고 밀고 가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밝혔다. 국보법 폐지에 대한 노 대통령의 입장 표명은 시기의 민감성과 발언의 강도를 고려할 때 상당한 파장을 몰고 올 것으로 보인다. 당장 국보법 개폐를 둘러싼 정치권 논란에 직접 영향을 미쳐 여야 대립을 격화시키는 불씨로 작용하고 있다. 현재 국보법 손질의 열쇠를 쥐고 있는 우리당은 폐지론과 개정론이 힘겨루기를 하고 있는 상황이다. 폐지론이 우세하지만 최근 헌법재판소와 대법원 등 사법부의 잇따른 판결로 개정론도 공감대를 넓히고 있다. 그런 만큼 이번주 시작될 당내 공론화 과정에서 치열한 공방이 점쳐졌다. 그러나 이런 미묘한 시점에 노 대통령이 한쪽을 편들고 나옴으로써 당내 자연스런 논의가 힘들게 됐다. 이 때문에 국보법에 대한 우리당 당론 수렴은 형식적 절차만 남았고, 사실상 폐지 쪽으로 기울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대통령이 여당의 혼선을 정리함으로써 국보법 폐지를 위한 단일 대오를 갖추도록 한 셈이다. 노 대통령이 강한 메시지를 통해 국보법 폐지 의중을 전달했다는 점은 이와 무관치 않다. 이는 국보법을 “칼집에 넣어 박물관으로 보내야 할 독재시대의 낡은 유물”이라고 비유한데서 드러난다. 노 대통령이 이날 국보법 폐지를 처음으로 공개 언급한 것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러나 노 대통령의 적극적 논쟁 가세는 국보법 개정 원칙을 고수하는 한나라당의 반발을 부르고 있다. 정기국회 초입부터 국보법 폐지와 개정을 놓고 여야가 정면 대결함으로써 정국 긴장감이 높아질 것임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더욱이 행정부와 사법부가 대치하는 상황도 연출됨으로써 국민 혼란과 국정 불안도 빚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열린우리당 국보법 폐지 문제를 `역사적 결단'으로 처리해야 한다는 노 대통령의 발언이 있자 "폐지론자들의 손을 들어준 것"이라는 해석과 함께 폐지쪽으로 당론이 결정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관측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이부영(李富榮) 의장은 기자들과 만나 "국보법 폐지 논의는 우리나라도 냉전시대에서 데탕트 시대로 넘어왔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상임중앙위원회나 확대간부회의를 열어도 좋고, 중앙위원회나 의원총회를 열어도 된다"며 조만간 폐지당론을 확정할 수 있다는 뜻을 밝혔다. 이 의장은 이어 "야당도 이런 시대적 흐름을 받아들여 활발한 논의가 이뤄질 것을 기대한다"며 당론이 정해지는 대로 야당과의 협상에 나설 방침임을 분명히 했다. 당내 `국보법 폐지 입법추진 의원모임'은 6일 긴급간사회의를 열어 당내 개정론자들과의 토론회 날짜를 논의하는 등 폐지당론 확정시기를 최대한 앞당기기로 했다. 그동안 개정을 주장해온 안영근(安泳根) 의원은 "대통령이 강한 의지를 갖고 있다면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서도 "일단 국보법개정을 추진하되, 국보법 폐지나 대체입법도 논의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여전히 당내 일부 개정론자들은 최근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의 판결을 거론하며 `폐지신중론'을 고수하고 있어 최종 당론결정까지 논란이 예상된다. ◆한나라당 "국보법 폐지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면서 그동안 제기해온 노 대통령 정체성 문제를 다시 거론하며 대여공세를 벌였다. 박근혜(朴槿惠) 대표는 "대통령의 발언은 헌재와 대법원이 국보법 존속의 필요성을 강조한 것에 대해 정면으로 거부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박 대표는 또 "한나라당 차원에서 노 대통령의 정체성에 대해 공식질문을 했을 때 노 대통령은 `나의 모든 사상과 생각은 헌법에 담겨 있다'고 한마디로 답했다"면서 "그런데 대통령이 이렇게 법을 무시해도 되는 것이냐"고 따졌다. 이한구(李漢久) 정책위의장은 "체제유지를 위해서 국보법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대법원이 확인했는데 헌법을 지키겠다고 선서한 대통령이 이를 부정하면 어느나라 대통령이란 말이냐"면서 "이건 정말로 헌법체제에 대한 도전"이라고 말했다. 임태희(任太熙) 대변인은 "국보법은 인권을 위해 고칠 게 있으면 고치면 된다"며 당론인 국보법 개정을 강조한 뒤 "광화문 네거리에서 인공기를 들고 김정일을 찬양하는 군중집회를 허용할 수는 없지 않느냐"고 주장했다. ◆여야,국보법 논란 예고 노대통령이 국가보안법 폐지를 주장한 것을 계기로 여야간 국보법 개폐를 둘러싼 대치가 심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그동안 당내에서 개정과 폐지 의견이 맞섰던 여당인 열린우리당 내부에선 당장 국보법 폐지론자들의 목소리가 높아진 반면, 한나라당은 노 대통령의 발언을 정체성 문제와 연계시키며 대공세에 나섰다. 이에 따라 정기국회에서 친일와 유신독재 등 과거사 진상규명에 이어 국가보안법 개폐문제를 둘러싸고 여야간에 갈등과 논란이 심화될 가능성이 증폭되고 있다. 열린우리당 최재천(崔載千) 의원은 "헌법기관인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은 국보법 폐지에 대해 신중하자는 의견을 내놓았고, 대통령은 폐지하는 게 옳다는 생각이라면 입법부도 빨리 입장을 내놓아야 한다"고 말했다. 한나라당 공성진(孔星鎭) 제1정조위원장은 "지난 번 의총에서 한나라당은 폐지는 안되고 사회변화에 맞춰 개정할 부분은 개정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면서 "여당의 입장이 정해지는 대로 최종 당론을 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국보법 폐지' 발언에 법조계 또 `의견분분' 노무현 대통령의 '국가보안법 폐지' 발언을 접한 법조계는 또다시 찬반 의견이 엇갈렸다. 재야 법조계는 자신들의 의견을 선명하게 밝힌 반면, 재조는 대통령의 발언이라는 이유 때문인지 다소 신중한 반응을 보였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사무총장인 장주영 변호사는 "국보법은 법 자체의 합헌 여부를 떠나 그간 실질적으로 위헌적으로 적용돼왔고 인권침해와 사건조작이 국보법의 이름 아래 합법화돼왔다"며 "대통령이 이 같은 문제를 지적한 것을 환영한다"고 말했다. 장 변호사는 "법이 합헌이라 하더라도 현실에 맞지 않는다면 국회가 폐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남북관계의 변화와 인권의식의 향상을 감안하면 국보법 폐지는 시대적 요청"이라고 덧붙였다. 반면 헌법을 생각하는 변호사 모임(헌변) 총무이사인 이승환 변호사는 "폐기라는 말은 용도가 없을 때나 쓰는 말인데 국민의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상황에서 '박물관으로 보낸다'는 말은 적절치 않다"며 "지금 국보법을 없애자는 것은 칼을 칼집에 넣는 것이 아니라 부수자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 변호사는 "국보법이 정권에 의해 악용됐다고 생각한다면 대통령이 그렇게 악용하지 않으면 될 뿐"이라며 "송두율 교수 재판에서도 국보법에 의한 인권침해 시비 없이 오로지 사실관계만 판단하지 않았느냐"고 되물었다. 서울고법 한 부장판사는 "현 체제의 가장 큰 수혜자인 대통령이 체제를 유지해 온 법을 악법으로 모는 것은 자가당착"이라며 "국보법에 대해 법리적으로 얘기할 것이 아니라는 말은 헌법과 법률에 따라 직무를 수행해야 하는 대통령으로서 적절치 못한 발언으로 사법기관의 의견을 무시하겠다는 말로 해석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서울고법 다른 부장판사는 "최근에 개인적으로 국보법을 일별할 기회가 있었는데 '국보법이 판사들을 바보로 만들고 있다'는 말이 생각났다"고 말했다. 헌법재판소 관계자는 "국보법에 대한 헌재의 입장은 지난번 선고 때 결정문을 통해 충분히 밝혔고 이후 새로운 상황들에 대해 일일이 대응할 필요는 없다"며 말을 아꼈다. 법무부 한 검사는 "최근 헌재와 대법원이 잇따라 국가보안법 존치 쪽에 무게를 싣는 판단을 한 데 대해 대통령도 무언가 발언하고 싶은 것이 있었을 것"이라며 "대통령 발언으로 국가보안법 개폐 문제에 대해 찬반 여론이 더욱 극명히 엇갈리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시사포커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