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임덕 내몰리는 노무현 이명박 고소 왜

노무현 대통령이 정권 말 권력누수에 허덕이고 있다. 정윤재, 변양균 등 지근거리에서 보필하던 최측근 인사들과 관련한 각종 사안이 ‘권력형 게이트’로 번지려 불씨를 키워가고 있다. 게다가 한나라당이 범여권의 ‘이명박 특검’에 맞서 노 대통령 측근들의 비리 의혹들에 대한 특검을 하겠다고 나서 노 대통령을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 노무현 기념관 건립이나 노 대통령이 내년 총선에 직접 출마를 한다는 이야기가 정치권에 전해지며 말하는 바는 하나, 노 대통령이 대통령직에서 물러나더라도 정치 행보는 계속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몇 개월 남지 않은 임기를 안정적으로 마무리하는 것이 급선무다. 또한 범여권이 경선이 본격적으로 진행되며 움츠렸던 흥행몰이의 꽃을 피워나가려는 시점에서 노 대통령의 레임덕은 범여권의 판을 뒤흔들 수 있는 위험한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 범여권 후보 1위를 달리는 손학규 후보에 대한 견제와 거침없는 공격을 가하는 한나라당에 대한 방어가 절실한 시점, 노 대통령의 선택은 ‘공격’이다. 손학규 후보를 찌르고 한나라당을 고소하며 초강수 대응으로 흔들리는 위치를 다잡겠다는 것이다.


한나라당에 이명박 대선후보가 확정되고 한나라당이 남북정상회담에 대해 쓴소리를 하는 동안에도 노무현 대통령은 조용하기만 했다. 자신의 손으로 만든 열린우리당이 대통합민주신당으로 흡수될 때도, 친노후보들이 손학규, 정동영 등 비노후보들에게 이렇다 할 파워를 발휘하지 못하는 동안에도 노 대통령은 침묵했다.

“그동안 좀 바빴어”

한나라당 후보에 대해 아슬아슬한 정치적 발언으로 중앙선관위의 문을 두드리고 손학규 후보와 각 세우기에 여념이 없던 노 대통령의 침묵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 첫 번째가 남북정상회담개최다. 그의 정치인생에 기념비적인 만남이 될 수 있는 남북정상회담은 수많은 물밑교섭을 전제로 했다. 또한 정상회담에서 그가 원하는 정치적 소득을 얻어내기 위해서는 판도가 정해지지 않은 대선에 끼어드는 것보다 철저한 준비를 하는 편이 이득이었다는 것. 실제 청와대의 소식을 알린 언론들은 노 대통령의 일상에 대해 “정상회담 등 산적한 현안에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고 전했다. 또 다른 하나는 44일이라는 긴 시간동안 온 국민을 맘 졸이게 했던 아프가니스탄 사태다. 21명이라는 많은 한국인이 탈레반 무장 세력에 피랍되고 숨 막히는 석방 교섭을 하는 동안 국가 지도자로써 정치적 발언은 자제할 필요가 있었다는 것이 정치권 관계자의 전언이다.
자칫 노 대통령의 말 한마디가 아프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국민들의 심기를 자극할 경우 심각한 반사가 있을 수 있다는 우려가 노 대통령의 발언을 막게 했다는 것이다.
이 두 가지 요인이 그의 발목을 잡는 족쇄로 작용했다. 남북정상회담이 미뤄지며 생긴 시간적 여유에 남북정상회담의 연기를 메워줄 만한 활동이 필요해졌고 아프간 사태가 해결국면에 들어서자 노 대통령이 움직였다는 것이 이를 방증한다는 해석도 곁들인다.
그리고 노 대통령은 40여 일간의 침묵을 깨고 선택한 첫 번째 목표물은 대통합민주신당의 컷오프를 앞두고 있던 손학규 후보였다.

손학규와 한방 날리고

지난달 31일, 피랍 사태 이후 40여 일 만에 외부 공개 강연에 나선 노 대통령은 손학규 후보가 범여권 대선주자 중 선두를 달리고 있는 것을 가리켜 “요즘 정치를 봐라. 가관”이라고 선공을 가했다. 손 후보에게 줄서기를 시작한 의원들을 굴비 엮듯 함께 겨냥키도 했다. 그러자 민주신당의 손 후보는 2일 기자간담회를 갖고 “열린우리당을 문 닫게 한 장본인이 누구인가. 노 대통령 아닌가”라며 “제발 대선 판에서 비켜서 달라”고 정면으로 반박했다.
이들의 싸움은 측근들의 전면전으로 이어졌다. 노 대통령의 편으로는 측근인 안희정씨가 가세했다. 안희정 참여정부평가포럼 상임집행위원장은 3일 참평포럼 홈페이지에 올린 칼럼에서 “10여 년 몸담아 온 당을 경선 불리하다고 뛰쳐나온 그 분, 1백년 정당을 약속했다가 지지율 핑계로 당 부숴야 한다고 했던 그 분, 언론이 이 두 분이 컷오프를 안정적으로 통과할 것이라고 보는 현실에 대해 좌절한다”고 비노 후보라 불리는 손학규 정동영 후보에게 총구를 고정시켰다.
이에 대해 손학규 후보도 적극적으로 응수했다. 손 후보측 한광원 의원은 4일 “사람 마음이 뒷간에 들어갈 때 다르고 나올 때 다르다더니 노 대통령이 진수를 보여주는 것 같다”며 노 대통령의 ‘뒷간정치’를 맹비난했다. 이어 “대통령은 지금부터 대선과 관련해 왈가왈부하지 말 것을 강력하게 촉구한다”며 “얼마 남지 않은 임기지만 현직 대통령으로서 지위와 체통을 지켜주시기 바란다”고 비꼬았다.
안희정씨의 손 후보 비판에 대해서도 “대통령과 그의 측근은 하나 같이 ‘나는 옳고 너는 그르다’는 병적인 편견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며 “‘나와 다르다는 것은 곧 틀린 것’이라는 극단적인 이분법적 사고로 병적인 교만과 아집으로 스스로 어떤 편견에 사로잡혀 있는지 깨닫지 못한다”고 말했다.
정치권 관계자들은 “이미 예고됐던 일전”이라며 “노 대통령은 친노 후보들의 앞길을 가로 막고 있는 손 후보를 강력한 한 방으로 날려버려야 했으며 손 후보도 비노 후보의 입지를 굳히기 위해 노 대통령의 선방을 맞받아쳐야 했다”고 전했다.
정동영 후보측은 “손 후보가 노 대통령을 비판하는 것이야말로 노 대통령의 경선 개입을 불러들이려는 전략에 따른 것”이라고 지적하며 둘의 대립을 싸늘한 시선으로 바라봤다.

이명박 덤벼~!

하지만 노 대통령은 손 후보의 일전으로는 극복하지 못할 산을 만나고 말았다. 그의 측근인 변양균 청와대 정책실장이 연루된 ‘신정아’ 사건은 예술계와 연예계 인사들이 학력비리로 번져가며 확산일로를 걷고 있고 정윤재 전 청와대 의전비서관이 발을 담근 ‘김상진’ 사건은 검찰조사로 진행되며 굵직굵직한 비리가 딸려 나온 것이다.
일부에서는 ‘권력형 게이트’로까지 확산될 것으로 보고 노 대통령의 레임덕이 한계치에 달했다고 전망했다. 그에게 ‘권력형 게이트’가 발생하는 것은 역대 정치 지도자들과는 그 파장을 달리하기 때문이다. 정치권은 “노 대통령의 가장 큰 정치적 자산이었던 ‘도덕성’이 무너지는 순간 국민들은 깊은 신뢰가 그를 무너뜨리는 가장 큰 무기가 될 것”이라며 측근들의 비리 연루가 노 대통령이 정치 생명을 좌우할 것으로 보고 있다. 게다가 범여권의 ‘이명박 특검’ 주장에 한나라당의 ‘권력형 비리 특검’이 맞붙으면서 불똥이 청와대로 향한 것도 노 대통령을 움직이게 했다. 한나라당의 공격이 계속되자 노 대통령이 국정 장악력에 균열 조짐이 나타났음을 인지했다는 것이다.
노 대통령은 상황 타개에 나섰다. 그가 선호하는 방식인 ‘흑백논리의 내편 가르기’로 자신들의 지지층을 결집시켜 구석으로 몰리는 상황을 벗어난다는 공식을 전개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노 대통령의 반대편에 서 줄 상대로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후보가 뽑혔다.
청와대는 이 후보를 명예훼손 혐의로 형사 고소하는 초강수를 들었다. 문재인 비서실장은 “이 후보는 가능하면 피하고 싶었으나 이 후보 본인까지 나서 여러 차례 (청와대 공작설) 주장하고 있기 때문에 불가피했다”며 “법적 조치를 통해 한나라당이 만드는 혼란스런 상황을 규명하고 정리하자는 게 저희가 가지고 있는 유일한 계산”이라고 말해 한나라당의 공격 흐름을 차단할 다른 방안이 없었음을 시사했다.
노 대통령의 일격에 이 후보의 측근 의원들은 “정권 연장 세력들이 무너져 가는 권력을 끌어안고 마지막 몸부림을 치고 있다”, “국정에 전념해야 할 대통령이 시비를 걸고 있다”며 노 대통령과 청와대를 싸잡아 비판했다.
나경원 대변인도 “대선을 코앞에 두고 야당의 확정된 대선 후보를 고발하겠다는 것은 과거 군사독재 시절에도 없었던 전례 없는 정치폭압으로 청와대의 정치공작이 정점을 향해 달려가고 있음을 드러낸 것”이라며 “‘깜도 아닌 의혹, 소설같다’는 발언으로 수사가이드라인을 제시했음에도 불구하고 점점 의혹이 눈덩이 같이 커져만 가는 정윤재 게이트 등 각종 노무현 대통령 측근 비리를 감추려는 정국전환, 국면전환용”이라고 맹비난했다.

퇴임관리는 철저히

한나라당이 청와대의 강수를 “검찰을 이용해 노골적으로 대선에 개입하겠다는 의도를 드러낸 것”이라며 ‘정치테러’로 규정하면서 한나라당과 청와대는 피할 수 없는 대결전선을 형성했다.
한나라당과 청와대의 대립각이 분명해지자 정치권은 “걸려들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노 대통령의 이명박 후보와의 일전은 겉으로 보이는 모습 외에 몇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사안을 품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우선 노 대통령이 이전과는 달리 청와대를 내걸고 이 후보를 고소한 점은 이중적 표현이다. 주체가 노 대통령이 아니라는 점은 선관위의 경고에 노 대통령이 정치적 발언을 자제하고 있다는 해석도 가능하지만 정권이 바뀌면 주체가 사라져 버리기 때문에 노 대통령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주지 않게 된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는 해석이다. 일부에서는 이명박 후보도 당내 규합을 위해 노 대통령과의 일전을 불사할 수도 있지만 앞으로의 정치활동을 위해서 정권말기 편안한 연착륙이 이뤄야 하는 노 대통령의 노림수에 비할 바가 아니라는 분석이 일기도 했다.
정치권 소식통은 “노 대통령의 임기가 마무리 될 때까지 노 대통령을 전면에 띄워줄 전략이 ‘盧 퇴임관리 TF팀’에 의해 가동 중”이라며 “이명박 후보와의 일전은 서막을 올렸을 뿐”이라고, 앞으로도 ‘이명박 고소’와 같은, 혹은 더 큰 강도의 노 대통령의 단계별 포석이 진행될 것임을 예고했다.
다시 전면으로 나선 노무현 대통령. 그가 ‘盧식 싸움의 기술’로 정권 말을 무사히 넘길 수 있을지 정가의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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