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침체에 소비자 지갑 열리게 될지

정부와 여당이 1일 발표한 2005년 세제개편 방향은 고소득층과 기업의 세금을 삭감하여 소비와 투자를 할 수 있는 여유자금을 만들어주는 등 침체된 경제전반에 활력을 불어넣겠다는 것이 골자다. 이를 위해 소득 세율은 낮추고 일부소득 공제액은 높였으며, 고가 가전제품에 대한 특소세는 폐지하기로 했다. 정부는 그동안 인위적 경기부양을 위한 감세는 하지 않겠다고 공언했으나 재경부 세제실이 만든 세제개편안에 여당이 밀어붙인 소득세율 1%포인트 인하와 24개 품목의 특소세 폐지가 가세하면서 '경기부양'의 모습을 뚜렷하게 드러냈다. 경제주체들이 필요로 하는 분야의 세 부담을 최대한 낮춰 소비와 투자 의욕을 되살리겠다는 취지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번 세제개편안이 경기부양 효과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회의적 시각이 지배적이고 재정형편이나 세수여건에 관한 치밀한 계산없이 세금을 감면해 주는 정책이 남발되면서 세수기반이 크게 줄어들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세율인하에 공제확대까지 내년 세제개편안의 가장 핵심적인 ▲모든 과표구간에 걸친 소득세율 1% 포인트 일률적 인하 ▲ 이자와 배당에 대한 원천세율 1%포인트 인하 ▲봉급생활자 표준공제를 현행 60만원에서 100만원으로 늘린 것 ▲ 프로젝션TV 등 24개 품목 특별소비세 과세 폐지를 골격으로 한 대대적 감세안이다. 세율은 한번 인하하면 다시 인상하기 어렵다는 측면에서 정부는 조심스런 입장이지만 여당이 확실한 '당근책'을 요구해 결국 수용했다는 후문이다. 애초 정부안(案)은 표준공제 금액을 60에서 100만원으로 올림으로써 연말정산시 상당수 저소득층들은 교육비, 의료비등의 지출액이 적어서 영수증 없이도 60만원까지 표준공제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혜택을 100만원 범위까지로 확대한 것이다. 재경부에 따르면 세금을 연봉 3000만원 미만인 서민·중산층이 주된 수혜대상자로 연간 75만명(면세자 포함)이 추가로 혜택을 받게되게 된다고 설명했다. 연봉 2000만원 미만은 연간 1만6천원, 3000만원 미만은 5만원의 세금을 덜 내는 효과를 본다. 이제까지 신용카드 사용액에 대한 소득공제는 연봉의 10%만 초과하면 초과금액의 20%를 소득공제를 받았다. 내년부터는 연봉의 15%를 초과한 현금과 신용카드 사용액의 20%를 소득공제 받게된다. 결국 신용카드 소득공제는 축소된 셈이다. 실제적으로 예를들어 올해까지는 연봉 3000만원인 근로자가 신용카드 500만원을 사용했다면 초과한 200만원에 대한 소득공제를 받았지만 내년부터는 연봉의 15%(450만원)를 초과한 50만원에 대해서만 소득공제를 받게된다. 그러나 내년부터 현금으로 지불한 영수증에 대해서도 소득공제 혜택을 받는 현금영수증 제 제도가 도입됨으로써 전체 공제금액은 오히려 높아진다는게 재경부의 설명이다. 또한 병원에서 사용한 신용카드 금액에 대해서는 의료비 공제와 신용카드 공제를 이중으로 인정하였으나 내년부터는 신용카드 공제는 제외시키고 의료비 공제가 받게된다. 특별소비세 인하 이번 세제개편안에 포함되는 특별소비세 폐지 품목은 프로젝션 TV, PDP TV,에어컨, 골프용품, 고급시계, 귀금속, 고급모피 등 24개 품목이다. 반면 승용차와 유류, 골프장, 경마장, 카지노, 유흥음식점 등 14개 품목의 특소세는 계속 유지된다. 24개 특소세 폐지품목 중 PDP TV는 세율이 0.8%에 불과해 가격인하 효과는 기대하기 힘들지만 특소세율이 14%에 달하는 골프용품 보석, 고급모피 등의 품목은 상당한 가격인하가 기대된다. 정부는 관한 법률이 국회를 통과해야 하기 때문에 특소세 폐지시점을 아직 확정하지 못하고 있다. 당정은 관련 법이 국회 재경위원회 전체회의를 통과한 다음날부터 적용할 방침이어서 9월 중 가격인하 조치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역(逆)모기지 이번 세제개편안에서 또 하나 꼼꼼하게 살펴봐야 할 건은 '역(逆)모기지' 제도이다. 역모기지는 노령자들이 보유하고 있는 주택을 역모기지용으로 제공할 경우, 보유주택을 굼융기관에 담보로 맡기고, 매월 일정 금액의 생활비를 대출받는 일종의 노후안정 대책이다. 정부는 내년부터 서울, 과천 및 분당 등 5대 신도시의 60세 이상 1가구 1주택 보유자가 주택을 역모기지론을 이용할 경우 '2년 거주'요건을 충족시키지 않더라도 양도세를 비과해 하기로 했다. 또 전국어디서나 역모기지로 제공한 부모를 모시면서 1가구 2주택이 됐을 경우 자신의 주택을 팔더라도 부모 소유의 역모기지용 주택은 합산되지 않아 1가구 1주택에 대한 양도세 비과세 혜택을 받을 수 있다. 기업 투자의욕 살리기 이번 세제개편안의 특징은 단순히 개인에만 초점을 두지 않고 기업들에 대한 세부담을 폭넓게 완화한 점이다. 민간소비도 문제지만 결국 기업이 투자에 나서지 않는다면 실질적인 경기회복이 어렵다는 판단도 세제개편안의 한 축을 이루고 있다. 무엇보다도 재계가 그동안 줄기차게 요구해온 대기업 최저한 세율을 내년부터 2% 포인트(15%→과표 1천억원 이하에 한해 13%) 인하한 것이 눈에 띈다. 내년부터 법인세율이 2%포인트 인하되고 중소기업(12%→10%)과 개인사업자(40%→35%)의 최저한 세율을 내린 것과 의 형평성을 고려한 것이지만 정부가 그동안 세수감소를 이유로 반대해왔던 것을 감안하면 상당한 태도변화다. A회사와 자회사간 배당소득에 이중과세를 하지 않기로 한 것도 투자와 관련한 기업들의 운신의 폭을 넓혔다는 점에서 주목받는 대목이다. 사회간접자본(SOC)사업 부가가치세 면제, 동북아 경제중심기반 구축 관련 물류기업 세법인세 감면, 에너지절약시설 투자 세액공제 확대, 외국인전용단지 입주 외국인투자기업 법인세 감면, 중소기업 ASP(어플리케이션 임대 서비스) 방식 IT투자 세액공제도 포함됐다. 경기부양을 위한 실효성엔 의문 그러나 당정이 마련한 감세안이 과연 기대만큼 급진적 경기부양 효과를 가져올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는게 대다수 세제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우선 소득세율 1%포인트 인하안은 우리나라의 경우 세수에서 차지하는 소득세 비중이 고작 26%(작년 기준)에 그쳐 감세의 효과가 그리 크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조세연구원 전병목 연구위원은 "전체 세수의 48%를 차지하는 미국처럼 충분한 부양효과를 보기 어렵다"며 "효과가 나타나기까지는 상당기간 기다려야 한다"고 말했다. 소득계층별로 차등을 두지 않고 일률적으로 내리면 세부담 규모가 큰 고소득층에게만 감세혜택이 돌아가고 면제자가 대다수인 서민·중산층은 수혜혜택을 덜 받게 됨으로써 참여정부가 주창하는 소득재분배의 효과가 퇴색된다는 지적도 있다. 봉급생활자에 대한 표준공제액 확대는 대상이 일반적인 중산층보다는 주로 2인 이하 저소득층 가구가 대부분인데다 내년 말 연말정산 때부터 적용이 가능해 현시점의 소비경기를 진작시키는데는 별효과가 없으리라고 본다. 세수가 줄어드는 건 어찌 감당하나 세금을 깎아주는 만큼 과연 세수 보전책이 마련돼 있느냐는 의문이 커지고 있다. 더군다나 경기침체 여파로 세금이 제대로 납부되지 못하고 실정을 감안한다면 이번과 같은 감세 대책이 발표될 경우 세수 부족규모가 크게 늘어날 뿐만 아니라 세수기반도 크게 약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높다. 이미 정부와 세제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올해 세수 부족규모가 3조원에 가까울 것이라는 추정이 흘러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정부는 "앞으로 세(稅)그물이 촘촘하게 짜여질 것"이라며 부동산거래 실거래가에 의한 과세 등 세입기반 확충방안을 발표했지만 상당한 시기를 요하는 사안이 대부분인데다 당장의 세금감면 정책에 따른 세수부족을 감당할만한 보완책은 찾아 보기 힘들다는 전문가들의 반응이다. 또 '넓은 세원, 낮은 세율'이라는 원칙을 거듭 강조하며 비과세. 감면대상을 축소한다는 방향을 제시했지만 구체적인 청사진은 내놓지 못하고 있다. 전병목 연구위원은 "일부 세원을 늘리는 대책이 포함되기는 했지만 여전히 '넓은 세원' 보다는 '낮은 세율'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며 "세수진도율이 예년보다 낮고 세출수요는 갈수록 늘어나며 적자국채 규모가 불어나는 상황에서 감세정책은 오히려 재정건전성을 악화시킬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러나 익명을 요구한 민간경제연구소의 한 연구원은 "감세정책이 실질적으로 어느정도 효과를 가져올지는 미지수이지만 현실적으로 다른 방도가 없는 상황"이라며 "적어도 심리적으로나 상징적 차원에서 감세정책이 주는 긍정적 영향이 클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석기 기자 lsk3187@sisafoc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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