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간 석방 19명 2일 새벽 귀국

아프가니스탄 무장단체에 납치됐던 우리 국민 19명이 마침내 모두 풀려났다. 이들은 2일(일) 새벽 인천공항을 통해 조국으로 돌아와 꿈에도 그리던 가족의 품에 안긴다. 천만다행이다. 행여 협상이 깨지면 어쩌나 안절부절하던 정부와 피랍자 가족, 우리 국민들은 이제서야 한숨 돌리게 됐다. 이들은 지옥 같은 42일을 어떻게 보냈을까.

천호선 청와대 대변인은 31일 정례브리핑에서 "카불-두바이-인천 노선을 이용해 19명의 안전하고 신속한 귀국이 이뤄지도록 준비하고 있다"며 "19명 모두 건강에 이상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현재 계획으로는 31일 저녁 두바이에 도착한 후 9월 1일 오후 두바이를 출발해 2일 새벽 인천공항에 도착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천호선 대변인은 이날 "아직 유동적이긴 하지만 귀국 직후 인천공항에서 간단한 기자회견을 하는 것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감히 말씀드리지만,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고, 국민도 그것을 지지해 주셨다고 생각한다. 마무리 과정도 차분하게 지혜로운 과정이 되기를 기대해본다"고 말했다.

천대변인은 피랍자 전원 석방이 마무리된 것과 관련 "남은 피랍자들이 무사하게 돌아오게 돼서 정말 다행이다. 피랍과정에서 우리 국민들이 차분하게 그리고 현명하게 대처해 주셨으며 이는 23명의 목숨이 걸린 일이었기 때문에 그럴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며, 정부를 믿고 기다려준 우리 국민에게 감사의 뜻을 내비쳤다.

천대변인은 피랍자 석방조건과 관련한 기자들의 물음에 대해서는 "공개된 사항 이외에 추가된 합의사항은 없다"고 못박았다. 이와 함께 천대변인은 구상권 청구보도와 관련 "아직 입장을 밝히기에 이르다. 검토하더라도 법적으로 불가피한 부분에 한해서 검토할 것이며, 외국사례 등을 종합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앞서 아프간 무장단체 탈레반에 인질로 붙잡혀 있다가 지난 29일 풀려난 유경식(55)씨는 31일 아프가니스탄 카불 세레나호텔에서 열린 우리 언론과의 첫 기자회견에서 "큰 물의를 일으켰다는 생각에 잠을 못 이뤘다. 미안하고 죄송한 마음"이라며, 우리 국민들에게 거듭 사죄의 뜻을 밝혔다.

서명화(29)씨와 함께 한국인 인질 대표 자격으로 나선 유씨는 "국민에게 심려를 끼쳤고, 정부가 많이 타격을 입었다"고 말했다. 이어 서씨도 "가족 뿐 아니라 온 국민이 염려해주셔서 감사하고 죄송하다"며, 다시 한번 우리 국민들에게 용서를 구했다.

현지 한국 대사관 관계자들은 29일 석방된 12명과 30일 풀려난 나머지 7명은 "31일 오전 1시께(현지시간) 세레나호텔에서 서로 부둥켜 안고 눈물로 '재회'했다"며 "이들은 배씨와 심씨가 살해됐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충격을 받았으며 땅에 주저앉아 통곡을 했다"고 말했다.

유씨는 이날 지난 7월 19일 아프간에서 발생한 납치상황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했다. 유씨는 "낮에는 안전하다고 해서 카불에서 아침에 출발했다. 가즈니주로 가는 데 무장괴한이 버스를 세우고 총을 2발 발사하며 위협했다. 이후 무장한 탈레반 2명이 버스에 올라 타 한국인을 하차시킨 뒤 승합차로 나눠 옮겼고, 이 과정에서 고(故) 배 목사는 실신했다"고 되짚었다.

유씨는 이어 "납치 직후 탈레반은 자신들이 사복 경찰이고, 알-카에다로부터 보호해 주겠다고 말했다"며 "그러나 인질을 전체 집합시켜서 일렬로 세운 뒤 기관총과 소총으로 위협하면서 자신들이 알-카에다라고 말한 뒤 돌변했다. (그 탈레반이) 또 총을 쏘는 흉내를 하면서 '너희가 잘못하면 이렇게 한다'고 위협했다. (인질들이) 패닉 상태였다"고 밝혔다.

유씨는 인질생활에 대해 "기운이 없어서 하루종일 잠자고, 다시 잤다. 사태 초반에 빨리 구출해 달라고 금식기도를 했는데, 사흘을 안 먹으니 탈레반이 보기에 단식으로 보여진 것 같다"고 말했다. 유씨는 처음 감금됐던 장소에 대해 "반 지하에 짐승 우리 같았고, 창도 없고, 환기통이 하나만 있었다. 가축을 키우는 농가로 옮겨진 뒤에는 주민들이 감시했다"고 설명했다.

유씨는 또 "인질들은 6일쯤 지난 뒤 3~4명씩 분산됐고, 나는 12번 이동했다. 주로 야간에 달이 없을 때 헤드라이트를 끈 오토바이에 실려 이동했고, 도보로 이동한 적도 몇 번 있다"고 되짚었다.

유씨는 인질들이 억류생활 도중 언론과의 통화에서 인질 일부가 위독하다고 발언한 것과 관련 "(탈레반이) '아프다고 해야지 구출해준다'면서 코멘트를 시켰다. (난) 갑상선 수술 때문에 먹어온 호르몬제를 수차례 부탁했는데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유씨는 이지영씨의 석방 양보설에 대해 "여자만 세 명인데 두 사람을 석방한다고 하니 남은 한 사람이 힘들지 않겠느냐"고 되물은 뒤 "(세 명이) 기가 막혀서 울었는데 (이 씨가) '나 대신 가라'고 이야기해서 김경자씨가 가게 됐다"고 되짚었다.

유씨는 다른 인질들에 대한 소식을 알았는지 여부에 대해 "어젯밤까지 소식을 몰랐지만 탈레반이 들려준 라디오 영어뉴스를 통해 여자 2명이 석방됐고, 2명은 살해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가슴이 철렁했지만 (다른 인질들이) 충격받을까 봐 내색을 못하고 속으로만 알고 있었다"며 "누군지는 몰랐지만 젊은 사람들 가운데 반항하거나 탈주 오해를 받고 사살된 것이 아닌지 걱정했고, 배목사는 살해된 것으로 추측했다. (살해는) 본보기를 보이기 위해 한 것이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유씨는 아프간 선교를 떠난 이유와 관련 "신앙을 하는 입장에서 목사가 되기 전에 단기 선교를 어떻게 하는가. (궁금해 하던 참에) 아는 선교사 중에 '마침 아프간팀이 가니까 같이 가라'라고 해서 갔다. 배울 겸, 봉사도 의미 있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유씨는 앞으로 계획을 대해 "직장을 그만두고 신학교를 다니는데 이번 주 개강했으니 학교를 가야 한다. 다들 죽었다가 살아났는데 감격스러운 마음"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이번 인질 19명 전원 석방의 일등공신은 김만복 국정원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원장은 아프간 카불 현장에서 협상을 현장 지휘함으로써 교착상태에 빠졌던 탈레반과의 협상을 발빠르게 진행시킨 것으로 전해졌다. 김원장은 1일 오후 두바이를 떠나 인천국제공항으로 향하는 대한항공 KE952편으로 석방된 19명과 함께 귀국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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