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공개 발언 공개한 靑 “백신 정치화 중단해 달라”…野, ‘백신 확보 지연 책임회피’ 성토

문재인 대통령이 10월 15일 코로나19 백신 개발 기업 현장 방문 차원에서 SK바이오사이언스를 찾은 모습. ⓒ청와대
문재인 대통령이 10월 15일 코로나19 백신 개발 기업 현장 방문 차원에서 SK바이오사이언스를 찾은 모습. ⓒ청와대

[시사포커스 / 김민규 기자] 신종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일일 확진자수가 연일 1000명을 넘나드는 등 최근 코로나19 확산세가 여느 때보다 심상찮은 가운데 백신을 적시에 확보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야권에서 쏟아지면서 백신 확보 지연 문제가 정치쟁점화 되고 있다.

◆ 확정된 건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뿐…빨라도 내년 2월 접종

앞서 지난 8일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에서 아스트라제네카, 화이자, 모더나로부터 각각 1000만명분, 얀센으로부터 400만명분을 선구매하기로 했다고 밝혔으며 국제백신공동구매단체 ‘코박스 퍼실리티’로 도입될 1000만명분까지 더해 4400만명분을 확보했다고 주장해왔는데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은 선구매 계약을 체결했으며 나머지 제약사들과도 법적 구속력이 있는 구매 약관을 체결했다고 설명한 바 있다.

하지만 이 같은 발표 내용이 나오자 바로 다음날 서민 단국대 의대 교수는 “구매확정서(화이자·존슨앤드존슨-얀센)나 공급확약서(모더나)는 이름만 그럴듯하지 인터넷서점에서 책을 장바구니에 담았다는 소리와 같아 재고가 없으면 책을 받아보지 못하기 마련이어서 화이자와 모더나에는 내년 말까지 한국에 줄 백신이 남아있지 않다”고 지적하면서 유일하게 계약한 아스트라제네카 역시 3상을 통과하지 못한 점을 꼬집었는데, 국내 수탁 생산 백신이기도 한 아스트라제네카는 미국 식품의약국 승인조차 여전히 지연되고 있어 사실상 정부가 백신 확보에 실패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쏟아지고 있다.

실제로 정세균 국무총리는 지난 20일 KBS ‘일요진단’에 출연해 아스트라제네카 백신도 내년 2~3월에야 접종이 시작되고 화이자·얀센·모더나 백신에 대해선 “1분기 공급 약속을 받은 것은 없다”고 밝힌 바 있는데, 이 같은 상황과 관련해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2일 청와대에서 열린 5부 요인 간담회에서 “그동안 백신을 생산하는 나라들이 많은 지원을 해 백신을 개발했기 때문에 그쪽 나라에서 먼저 접종되는 것은 어찌 보면 불가피한 일”이라고 입장을 내놨다.

백신 지연에 대한 책임론이 점점 높아지자 결국 대통령이 직접 언급한 것으로 보이는데, 문제는 이 같은 주장 역시 백신 생산국이 아닌 바레인, 캐나다, 사우디아라비아. 이스라엘이 미 식품의약국에서도 긴급사용 승인을 내린 ‘화이자 백신’ 접종에 들어가고 아시아에선 싱가포르가 지난 21일 최초로 화이자 백신을 배송 받은 데 이어 카타르도 23일부터 화이자 백신 접종에 들어가는 등 속속 연내 접종에 들어간 접에 비추어 보면 궁색한 해명이 되고 있다.

그래선지 청와대에선 지난 22일 저녁 강민석 대변인이 “백신의 정치화를 중단해주길 간곡히 호소한다”며 문 대통령의 코로나19 백신 관련 비공개 발언까지 전격 공개했는데, 이에 따르면 문 대통령은 지난달 24일 청와대 참모회의에서 “백신 안전성에 대한 문제 제기는 우리가 배송 취급과정에서 부주의가 있지 않은 한 과학과 의학에 기반해야 한다. 최선을 다해서 확보하라”고 지시한 데 이어 30일 회의에선 “과하다고 할 정도로 물량을 확보하라. 대강대강 생각하지 마라”고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심지어 지난 7월21일 내부 참모회의에서도 SK바이오사이언스의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위탁 생산 소식에 대해 충분한 물량 공급을 당부하는 등 문 대통령이 올해에만 백신 확보를 10번 이상 강조해왔다고 청와대는 밝혔는데, 그러면서 강 대변인은 비공개 발언까지 공개한 이유에 대해선 “문 대통령이 마치 백신 확보에 손을 놓고 있었던 것처럼 과장·왜곡하면서 국민 불신을 증폭시키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해 최근 일부 언론에서 ‘문 대통령에 백신 직언 두 번, 소용없었다’, ‘뒤늦게 참모진 질책’ 등의 제목으로 백신 확보 지연에 대한 대통령 책임론을 촉발시킨 데 대한 반박임을 우회적으로 내비쳤다.

◆ 靑 해명, ‘자충수’되나…9월 전엔 ‘해외 백신’ 구매 지시 없어

청와대 강민석 대변인이 발언하고 있다. ⓒ청와대
청와대 강민석 대변인이 발언하고 있다. ⓒ청와대

다만 청와대가 공개한 지난 4월9일부터 12월8일까지의 문 대통령 지시 13건에는 올해 9월 전까진 해외 백신 수입보다는 자체 개발에 방점을 둔 발언 위주여서 결국 자체개발에 매달리다 백신 도입 타이밍을 놓친 게 아니냐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지난 4월9일 경기도 성남 한국파스퇴르연구소 방문 당시 주재한 ‘코로나 치료제 백신개발 합동회의’에서 문 대통령은 “백신 개발을 확실히 돕겠다. 개발한 치료제와 백신은 (코로나가 끝나도) 비축하겠다. 끝을 보라”고 주문한 데 이어 4월14일 국무회의에서도 “백신과 치료제 개발에 속도를 내 바이오 의약 수준을 높이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역설했으며 9월 8일 국무회의 역시 ‘국립감염병연구소의 백신개발지원’을 지시했는데, 9월 15일에야 내부 참모회의에서 “코박스, 글로벌제약사 등을 통해 충분한 양의 백신을 확보해 두라”고 처음으로 해외 도입 가능성을 언급했다.

하지만 문 대통령은 지난 10월 SK바이오사이언스를 방문한 자리에선 “다른 나라보다 더 빨리 백신과 치료제를 개발하고 싶은 마음이 강하겠지만 속도보다 더 중요한 것이 안전성과 효능”이라며 신속한 백신 확보와는 거리가 있는 발언을 다시금 내놨었는데, 지난 18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가 국내 코로나19 백신 개발 상황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SK바이오사이언스가 내년 말을 목표로 개발을 진행 중”이라고 답했던 점에 비추어 보면 문 정부가 얼마나 상황을 낙관하고 있었는지 살펴볼 수 있다.

결국 다른 나라들의 백신 확보 경쟁이 막바지에 달한 11월 말 이후에야 청와대에선 해외 백신 확보 지시를 쏟아냈고 국민의힘 백종헌 의원이 입수한 정부문서에 따르면 그제야 질병관리청도 11월27일 백신 도입 논의를 위한 제1차 적극행정위원회를 개최했다는 점에서 늑장 대응이란 비판을 피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이처럼 청와대부터 오판하다보니 관계부처 장관도 똑같이 안일한 인식을 보여줬는데,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지난달 26일 국회 출석 당시에도 그는 “백신을 과도하게 비축했을 때 그것을 몇 개월 이내 폐기해야 하는 문제가 생긴다”며 백신 확보에 소극적 자세를 취했으며 코로나19 백신 4400만명분을 확보했다고 발표한 지난 8일 브리핑 당시 “외국에서 2~3개월 접종하고 난 뒤에 부작용을 모니터링하고 우리가 접종하는 게 올바른 순서”라며 부작용 가능성을 이유로 ‘느긋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는 지난 10월25일 독감 백신과 관련해 안전성 논란이 제기됐을 당시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브리핑에서 “부작용보다 이득이 더 크다”며 적극 접종을 권했던 모습에 비추어 보면 동일인물이 맞는지 놀라울 정도인데, 이에 그치지 않고 박 장관은 11월 17일 국회 보건복지위에서 화이자·모더나 백신과 관련 “그쪽에서 빨리 계약을 맺자고 하는 상황이다. 백신 확보에 불리하지 않은 여건”이라며 자신감을 드러내기도 해 결과적으로 모더나의 경우엔 내년 1월 계약이 목표일만큼 이들 백신의 확보는 늦어졌다는 점에서 빈축을 사고 있다.

이 같은 지적을 의식한 듯 정세균 국무총리는 지난 20일 KBS ‘일요진단’에서 “정부가 백신TF를 가동한 지난 7월에는 국내 확진자 수가 100명 수준이어서 백신에 대한 의존도를 높일 생각을 하지 않은 측면이 있다”며 그간 백신 확보에 적극적이지 않았다는 사실을 시인하기도 했는데, 정작 여당에선 K방역에 흠집 날까 청와대 옹호에만 나서고 있어 백신을 둘러싼 정치권 내 공방은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 K방역과 백신은 대립관계?…당정, 野·언론 넘어 여론에도 각 세우나

코로나19 백신 접종 주안점 여론조사 결과 ⓒ리얼미터
코로나19 백신 접종 주안점 여론조사 결과 ⓒ리얼미터

당장 더불어민주당에선 지난 21일 신동근 최고위원이 최고위원회의에서 “코로나 사태를 대하는 야당과 보수언론의 태도를 보면 실망스럽다. 어떻게든 K방역 흠집 내려는데 몸이 달아있다”고 야당과 언론에 화살을 돌렸으며 김태년 원내대표는 아예 ‘일본은 이르면 3월, 한국은 빨라야 3월’이란 제목의 백신 접종 시점 관련 기사를 꼬집어 “한국을 적대시하는 일본 극우 언론의 기사처럼 보인다. 정부 방역 흔들어 얻고자 하는 게 무엇인지 묻고 싶다”고 일부 언론에 일침을 가했다.

한 발 더 나아가 김 원내대표는 “우리 국민의 70% 이상은 안전성 입증이 확인된 후 백신 접종을 받겠다는 조사도 있다”며 백신 접종을 이미 시작한 미국을 예로 들어 “백신 접종 후 알레르기 반응, 안면 마비 등 각종 부작용도 보도되고 있다”고 강조했는데, 급기야 22일 권덕칠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선 민주당 김성주 의원이 “백신 만능주의에 빠져선 안 된다”고 역설하는 등 줄곧 백신 확보 지연 책임론 진화에만 집중하는 자세를 취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얼미터가 오마이뉴스의 의뢰로 지난 22일 전국 유권자 500명에게 조사한 ‘코로나19 백신 접종 주안점 여론’ 조사 결과, 상황이 심각하므로 국내도 하루빨리 접종을 시작해야 한다는 응답(54.9%)이 해외와 국내는 상황이 다르므로 안전성을 좀 더 검증 후 접종해야 한다라는 답변(41.1%)보다 많은 것으로 집계돼 정부여당을 당혹스럽게 만들고 있다.

이 같은 결과가 나왔음에도 방역당국(손영래 중앙사고수습본부 전략기획반장)은 23일 코로나19 브리핑에서 “최근 백신을 세계 최초로 맞아야 하는 것처럼 1등 경쟁을 하는 듯한 사회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는 것에 대해 방역당국으로서 상당한 우려감을 표한다”고 밝혔으며 이낙연 민주당 대표도 23일 최고위 회의에서 “왜곡된 통계를 동원해 국민 불안을 조장하고 있다. 공포를 조장하는 보도에 대해 단호히 대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다만 일일 확진자 수가 1000명을 넘어서면서 최근 사회적 거리두기 3단계를 능가하는 ‘5인 이상 집합 금지’ 조치까지 단행하면서도 여전히 ‘K방역 신뢰도(이미지)’엔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반면 백신에 대해선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조차 지난 22일 인사청문회에서 “백신은 내년을 대비하는 것”, “다음에 유행을 막기 위해 구입하는 것”이란 반응을 보인데다 여당도 백신 부작용을 강조하고 있어 이 같은 대응이 여론을 얼마나 설득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백신 개발국인 미국에서 앤서니 파우치 국립 알레르기 전염병 연구소 소장조차 직접 모더나 백신을 맞으면서 “접종을 통해 대유행이 끝날 것이다. 백신의 안전과 효능에 대한 극도의 자신감을 전국에 보여주는 상징”이라고 공언할 만큼 이미 안전성에 자신감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내년 말에나 자체 백신을 내놓을 수 있다는 현 정부가 무엇으로 다른 나라에서 개발한 백신들의 안전성을 가늠하겠다는 것인지에 대해서도 회의적 시선이 쏟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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