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인의 ‘朴·MB’ 사과 여파 경계하는 與…보수진영에서도 찬반 갈려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15일 오전 국회에서 대국민사과를 하고 있다. 사진편집 / 공민식 기자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15일 오전 국회에서 대국민사과를 하고 있다. 사진편집 / 공민식 기자

[시사포커스 / 김민규 기자]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취임 6개월 만인 15일 그간 말도 많고 탈도 많던 이명박, 박근혜 전 대통령 과오와 관련한 대국민사과를 당 안팎의 일부 이견에도 불구하고 강행했다.

당초 김 위원장은 자신의 직까지 걸겠다는 수위 높은 발언까지 쏟아내면서 박 전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된 지 4주년인 지난 9일에 맞춰 대국민사과를 결행하려 했으나 여당의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법 개정안 강행 처리를 막아야 하는 시점엔 적절치 않은 행보란 시선이 쏟아지면서 결국 한 차례 연기된 끝에 주요 쟁점법안들이 본회의에서 모두 가결된 다음날인 이날 이뤄지게 됐는데, 이번 김 위원장의 사과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향후 정치권에 어떤 파장을 일으킬 것인지 벌써부터 세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 과거 자성에 그치지 않고 당 쇄신 의지도 천명한 ‘김종인 사과’

김 위원장은 이날 국회에서 가진 긴급 기자간담회에서 “대통령의 잘못은 곧 집권당의 잘못이기도 한데 저희 당은 당시 집권여당으로서 그런 책무를 다하지 못했으며 통치 권력의 문제를 미리 발견하고 제어하지 못한 무거운 잘못이 있었다. 오히려 자리에 연연하며 야합했고 역사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지혜가 없었으며 무엇보다 위기 앞에 하나 되지 못하고 분열했었다”며 “국민을 하늘처럼 두려워하며 공구수성의 자세로 자숙해야 마땅했으나 반성과 성찰의 마음가짐 또한 부족했다. 국민 여러분이 느꼈을 실망감에 대해 사죄 말씀 드린다”고 고개를 숙였다.

그러면서 그는 이번 사과의 성격에 대해 앞서 ‘탄핵 사태 이후 우리 당의 혁신 부족에 대한 사과’라고 규정했었던 만큼 이날 “정당을 뿌리부터 다시 만드는 개조와 인적쇄신을 통해 거듭 나겠다”고 공언했는데, 최근 원외 당협위원장 당무감사 결과를 놓고 이미 당내 불협화음이 일어났음에도 재차 인적쇄신을 강조했다는 점에서 원내 인사까지 포함한 인적쇄신에 적극 나서겠다는 의지 표명인 것인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한 발 더 나아가 김 위원장은 역대 대통령이 대체로 불행한 결말을 맞은 사실을 꼬집어 한국 정치의 근본적 혁신 방향을 모색하는 노력도 해나가겠다고 밝혔는데, 지난 7월 박병석 국회의장이 ‘내년까지가 개헌의 적기’라고 발언하고 정세균 국무총리까지 개헌론을 띄웠을 당시 “개헌을 하려면 권력을 분점 하는 형태의 내각제로 개헌하는 게 좋다”고 김 위원장이 입장을 내놨던 만큼 사실상 개헌론까지 염두에 둔 발언 아니냐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다만 당시 김 위원장이 “개헌하려면 대선 전에 해야 해 대선이 1년 쯤 남은 시점이 적기라고 판단하는 것 같은데 지금부터 준비해서 내년 4월까지 개헌을 완성할지는 상당히 회의적”이라고 지적했던 점에 비추어 당장 내년 4월 재보선을 끝으로 임기가 만료되는 김 위원장이 그런 포괄적 의미까지 내포했다기보다 재보선 승리를 위해 필요한 중도층으로의 외연 확장 차원에서 내놓은 사과 정도로 보는 시선이 많다.

특히 여당이 필리버스터까지 표결로 강제 종결시키고 쟁점법안들을 강행 처리한 입법독주 바로 다음 날에 맞춰 김 위원장이 대국민 사과에 나섰다는 점도 오만한 여당과 국민에 고개 숙이는 야당이라는 상반된 모습을 국민 앞에 보여줌으로써 내년 선거를 앞두고 야당에 대한 우호적 여론을 형성하겠다는 의도가 담긴 행보로 비쳐지고 있는데, 심지어 김 위원장은 이날 “탄핵을 계기로 우리 정치가 더 성숙하는 기회를 만들어야 했는데 민주와 법치가 오히려 퇴행한 작금의 정치 상황에 대해서도 책임을 느끼며 사과한다”고 에둘러 여당을 직격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 사과를 단지 선거전략 차원에서 내놓은 ‘쇼’로만 보기는 어려운데, 특정기업과 결탁해 부당 이익을 취하거나 경영승계 과정의 편의를 봐주는 정경유착 문제와 공적 책임을 부여받지 못한 자가 국정에 개입한 권력농단 등 전직 대통령들의 과오에 대해 보수 지지층의 반발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일일이 거론한 뒤 여러 차례 ‘큰 죄를 저질렀다’, ‘사죄의 말씀’과 같은 표현을 쓰며 막판엔 울먹이기까지 했다는 점에서 보수정당 대표가 두 전직 대통령과 관련해 내놓은 최초의 사과로는 충분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 “사과? 김종인 혼자 한 것”…野 ‘탄핵 프레임 탈피’ 시도에 초조한 與?

김종인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의 사과에 혹평을 쏟아낸 (좌측부터) 더불어민주당 우상호 의원과 노웅래 최고위원, 정청래 의원. 사진 / 시사포커스DB
김종인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의 사과에 혹평을 쏟아낸 (좌측부터) 더불어민주당 우상호 의원과 노웅래 최고위원, 정청래 의원. 사진 / 시사포커스DB

그래선지 이번 사과를 계기로 국민의힘이 본격적인 국면 전환에 나설까 우려한 여당에선 김 위원장의 사과를 평가절하하거나 조롱하는 등 내심 경계하는 모습을 감추지 못했는데, 민주당 신영대 대변인은 이날 국회 소통관 브리핑에서 “사과를 존중한다”면서도 한편으로는 “국민은 김 위원장이 광주에서 무릎 꿇으며 사죄했으나 본회의에서 5·18 관련 법안에 반대표 던진 국민의힘을 기억한다. 분명한 것은 백 마디 말보다 실천”이라며 “김 위원장의 사과가 개인만의 반성이 아니라 국민의힘 모두의 반성과 사과이길 바란다”고 견제구를 던졌다.

이에 그치지 않고 같은 당 우상호 의원은 이날 SNS를 통해 “오늘의 이 사과는 대리 사과다. 사과는 잘못한 사람이 하는 건데 정작 이명박·박근혜 두 전직 대통령은 아무 말이 없기 때문”이라고 지적했으며 노웅래 최고위원은 “비대위원장의 대리 사과가 아니라 적어도 주호영 원내대표를 비롯한 당 지도부 전체가 나서서 진심으로 사죄할 때 비로소 국민의힘이 새롭게 거듭날 것”이라고 압박했다.

급기야 일부 의원은 김 위원장에게까지 맹공을 퍼부었는데, 정청래 민주당 의원은 “사과도 자격이 있고 품격이 있어야 하는데 전당대회를 거친 정식 당 대표도 아니고 국민의힘에 오래 뿌리 내린 당원도 아닌, 이당 저당 옮겨 다니는 뜨내기 비대위원장이 할 사과는 아니다. 이씨 집안, 박씨 집안의 대형 사고를 보일러 수리공이 사과하는 격”이라고 비꼬았으며 유기홍 의원은 “진짜 몸통은 지금도 배짱부리고 반발하는데 입만 사과해서 뭐하냐. 본인이 아무리 대선을 꿈꿔도 김 위원장은 굴러들어온 돌이고 길어야 보궐선거 후엔 쫓겨날 운명”이라며 “이런 억지 사과 필요 없다. 언론은 이걸 국민의힘의 사과라고 포장하지 말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나마 여당에선 이낙연 민주당 대표 정도만 페이스북을 통해 “김 위원장의 사과는 잘한 일”이라고 호평했을 뿐 정의당조차 같은 날 장태수 대변인 브리핑에서 “사과에 공감한다”면서도 “오늘 사과가 두 전직 대통령의 사면을 위한 지렛대는 아닌지 지켜보겠다”고 ‘뼈 있는 말’을 덧붙였는데, 청와대 관계자는 이날 ‘김 위원장의 사과가 수감 중인 전직 대통령 2명의 사면을 염두에 둔 것이란 이야기도 있는데 어떻게 보나’란 기자들의 질문에 “야당 비대위원장이 사과한 내용에 대해 청와대가 논평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며 일단 말을 아끼는 모습을 보였다.

◆ 金 사과 놓고 보수진영 내 평가 엇갈려…‘양날의 칼’ 되나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의 대국민사과를 놓고 페이스북을 통해 각각 상반된 반응을 내놓은 서병수 의원(좌)과 김기현 의원(우). 사진 / 시사포커스DB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의 대국민사과를 놓고 페이스북을 통해 각각 상반된 반응을 내놓은 서병수 의원(좌)과 김기현 의원(우). 사진 / 시사포커스DB

물론 근래 당청 지지율에 적신호가 켜지면서 이 시점에 나온 김 위원장의 사과가 자칫 국민의힘 지지층이 늘어나는 결과로 이어질까 초조해진 범여권에선 좀처럼 호평을 보내기 어려운 게 당연하기도 하겠지만 민주당 의원들이 지적한대로 보수진영 안팎에서 김 위원장의 사과에 반발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기는 하다.

당장 국민의힘 최다선 중 한 명인 서병수 의원은 이날 오후 페이스북을 통해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죄가 없다고 주장하려는 것은 아니나 박 전 대통령에게 씌워진 숱한 혐의가 모두 진실은 아닌데 특정기업과 결탁해 부당한 이익을 취했고 경영승계 과정의 편의를 봐줬으며 권력을 농단했느니 하면서 재단해버리면 어쩌겠다는 건가. 그것도 하필 공수처가 설치됐더라면 박근혜 정부의 국정농단도 없었을지 모른다며 문 정권이 희희낙락하는 바로 오늘”이라며 “비대위원장이 사과할 게 있었다면 국민 삶을 팽개친 입법 테러를 막아내지 못한 것에 국민을 뵐 면목 없다는 통렬한 참회이어야 옳지 않았을까”라고 김 위원장에 직격탄을 날렸다.

여기에 친이계 좌장인 이재오 전 특임장관까지 페이스북에 글에서 김 위원의 사과에 대해 “전적으로 동의할 수 없다. 개인적 정치 욕망을 위장한 속임수”라며 “이 대통령을 암시한 부분은 없는 죄를 다시 만든 것이다. 적어도 야당에 몸담은 정치인이라면 정권에 대해 국민통합을 위해 이제 석방해야 한다고 말해야 한다”고 혹평을 퍼부었다.

또 그동안 자신의 복당 문제로 김 위원장과 신경전을 벌여온 홍준표 무소속 의원 역시 이날 페이스북에서 “실컷 두들겨 맞은 놈이 팬 놈에게 사과한다? 참 어이없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는 세모 정국”이라며 “사과하려면 지난 6개월 동안 야당을 2중대 정당으로 만든 것을 사과해야지 이번 사과는 대표성도 없고 뜬금없는 사과”라고 꼬집은 데 이어 추가로 올린 SNS 글을 통해서도 “김 위원장의 사과는 의학적으로는 스톡홀름 신드롬(인질이 인질범에게 동화되어 그들에 동조하는 비이성적 현상)”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반면 4선 중진인 김기현 국민의힘 의원은 “오늘 김 위원장의 대국민 사과를 계기로 우리 국민의힘은 수권정당으로서의 자격을 인정받기 위한, 작지만 의미 있는 걸음을 내디뎠다. 오늘 김 위원장의 사과는 굴욕이 아니라 이 나라 미래를 위한 용기 있는 진심”이라며 “최근 당 지지율이 상승하고 있긴 하지만 아직 더 많은 혁신과 쇄신의 노력이 필요하다. 여전히 바닥 민심 속에 배어있는 우리 당에 대한 거부감을 걷어내고 진정한 반성을 토대로 새 모습으로 거듭나는 계기로 삼아 더 심기일전할 것”이라고 상반된 입장을 내놨다.

이 뿐 아니라 같은 당 원희룡 제주도지사도 이날 페이스북에서 김 위원장의 사과와 관련해 “적극 공감한다. 이번 사과는 우리 당이 국민들 앞에 다시 당당하게 설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어느 정당이든 대통령과 집권여당으로서의 책임은 동일하다. 우리는 문 정권에도 똑같은 기준을 적용할 것이고 국민이 똑같이 심판할 것”이라고 한 목소리로 힘을 실어줬다.

이처럼 당 안팎에서 김 위원장의 사과에 대한 반응이 제각기 엇갈린 가운데 이번 사과가 중도로의 외연 확장을 위한 성공적 계기로 작용할 것인지, 아니면 도리어 지지층 분열을 촉발시킬 자충수로 작용할 것인지를 좌우할 김 위원장의 리더십에 정치권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저작권자 © 시사포커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