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월드카니발 추락사고로 본 이동식 놀이기구 허와실

세계 최고의 안전 놀이시설도 사고를 비켜가지 못했다. 일가족 5명이 추락해 숨진 부산 영도구 동삼동 월드카니발 놀이시설의 행사 주최 측은 자사 홈페이지를 통해 장내 모든 시설이 세계테마파크협회 인증을 받아 최고의 안전시스템으로 운영된다고 홍보했지만 경찰 조사 결과 고질적인 안전불감증을 드러내고 있어 충격을 주고 있다. 곤돌라 안에 탑승객을 고정시킬 안전띠는 물론 안전창틀 조차 없었다는 사실이 속속히 발견되면서 이미 예견된 사고였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게다가 이례적으로 영업신청 당일 허가를 받아 운영하고, 30여종에 이르는 대형놀이기구를 국내로 수입·설치하는 데 10일도 채 걸리지 않았다는 사실은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 상황. 시민들은 놀이시설에 대한 국내 안정성 검사에 심각한 회의감을 느끼며 안전불감증을 호소했다.


사고원인 둘러싸고 스위스, 독일, 한국간의 신경전 예고

구청 “복잡한 절차 생략했을 뿐 불법적인 특혜 없었다”


지난 8월13일 월드카니발 놀이시설 추락사고가 보도된 후 시민들은 다른 유원지 놀이시설에도 발을 뚝 끊었다.

“세계 최고”라고 호언장담했던 외사계 놀이시설도 이번 추락사고로 인해 빛 좋은 개살구였음이 여실히 드러나면서 시민들은 실망을 넘어 심각한 회의감마저 들고 있다.

자녀를 둔 학부모들은 “철저하게 점검하고 있다지만 도무지 안심이 안 돼 아이들한테도 놀이기구를 타지 말 것을 당부”하고 나선 상태다.


부실 검사 의혹, 사법처리 방침


사고가 발생한 부산 영도구 동삼동 월드카니발은 30여종의 놀이기구와 다양한 게임을 설치한 이동식 테마파크다.

19세기 영국 상인 윌리엄 스티븐이 창립한 월드카니발은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이동식 놀이축제 기업의 하나로 30여종의 조립식 놀이기구를 대형 선박으로 수송하며 지난 1996년부터는 중동과 아시아로 순회 지역을 확대했다.

최근 홍콩에서 행사를 마치고 지난 7월23일부터 국내 부산에서 개장한 뒤 이달 31일까지 운영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추락사고 이후 월드카니발 놀이공원의 출입이 전면 금지됐다. 월드카니발은 사고가 난 직후인 14일 홈페이지를 폐쇄하고, 스위스와 독일의 놀이기구 제작기술자를 불러 원인규명에 나섰다.

국내에서는 부산 영도경찰서와 국립수사과학연구소가 나서 사고현장에 대한 감식을 벌이는 한편 경찰은 홍콩월드카니발 등 관계자 10여명을 상대로 출국금지 요청을 했다. 혐의점이 드러날 경우 업무상 과실치사 등의 혐의로 사법처리할 방침이다.

현재까지 월드카니발 추락사고의 원인은 문틈에 끼인 볼트가 1차 원인으로 밝혀졌다. 자이언트 휠 구조물에서 튀어나온 볼트가 곤돌라의 문틈에 걸린 것이 사고원인이라는 것.

경찰은 “철제 원형궤도를 연결하는 볼트가 6cm정도 돌출돼있는데, 이 볼트 2개 중 1개가 출입문에 끼인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볼트가 문틈에 걸리자 자이언트 휠이 갑자기 고정이 되면서 사람들이 창문에 기대게 되고 하중을 받은 관람창이 아래로 떨어졌다는 설명이다.

경찰의 1차 조사대로 원형궤도를 잇는 볼트에 출입구가 걸리는 등 철제구조물이 사고를 유발한 주원인으로 지적되면 독일의 구조물 제조회사가 책임을 지게 된다. 하지만 곤돌라 내부의 베어링 고장이나 곤돌라 강화유리가 떨어져 나간 것에 문제가 있을 경우 곤돌라를 제작한 스위스 제조회사의 책임으로 돌아가게 된다.

그러나 이동식 놀이기구를 조립하는 관정에서 발생했다면 조립을 맡은 국내회사에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는 상황. 결국 사고원인을 둘러싸고 각 주체간의 신경전으로까지 흐를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월드카니발 측은 “유족에게 깊은 애도의 뜻을 표한다”면서도 “행사 진행요원과 안전요원 5백여명을 배치할 정도로 안전을 최우선으로 해온 터라 충격이 크다”고 전했다. 이어 “모든 놀이기구가 보험에 가입돼 있어 유족이 장례를 마치면 최대 2억원까지 배상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월드카니발에 이어 국내 개방을 허가한 영도구와 문화관광부에서 안전검사를 위탁받은 단체인 한국종합유원시설협회도 여론의 뭇매를 맞게 됐다.

통상적으로 안전검사를 하고 결과를 통보하기까지 2주가량의 시간이 소요되고, 관련 서류가 허가 관청에 도착해 현장 점검 등 절차를 밝는 데도 2~3일이 걸리는 것에 반해 월드카니발은 이례적으로 당일 허가를 받고 바로 영업을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7월23일 오전 영도구에 영업신청서를 제출해 당일 오후 허가를 받았던 것. 게다가 30여종에 달하는 대형 놀이기구를 국내로 수입하고 설치하는 데 10일도 채 걸리지 않은 것으로 드러나 시민들은 하나같이 놀랍다는 반응이다.

놀이기구가 관세 환급 등의 문제로 13일에야 수입 통관된 후 곧바로 행사장으로 옮겨져 10일 만인 23일부터 영업을 시작했으니 최대 9일간 30여종의 놀이기구를 설치한 셈이다.

영도구는 이에 따라 이번 추락사고에 대한 책임을 면하기 어렵게 됐다. 특히 놀이기구 가운데 5종이 한국종합유원시설협회의 안전성 검사에서 적합 판정을 받지 못했는데도 허가를 내줘 의혹마저 사고 있는 실정이다.

영도구는 업체 측으로부터 지역발전 장학금 명목으로 10만 달러, 약 9천만원을 받고 허가를 내 줬던 것. 영도구는 또 업체의 손익분기점인 관람객 70만명 이상 입장 시 수입의 3%를 추가로 받는 조건까지 내세웠던 것으로 전해졌다.

구청 측은 이에 대해 “놀이공원이 이동식이어서 복잡한 절차를 생략했을 뿐 불법적인 특혜는 없었다”고 해명했다.

이어 “안전성 검사는 전문기관에서 하는 것이고 우리는 검사 결과 적합 판정을 받은 시설에 대해 허가를 해줬다”며 책임을 전가했다.

안전성 검사를 담당했던 한국종합유원시설협회 역시 부실 검사 의혹을 받고 있다. 사고가 발생한 자이언트 휠은 최고 높이 66.5m로, 8인승 곤돌라 42개를 매달고 회전하는 놀이기구다. 지상 66m까지 오르는 관람차에 벨트 등 안전장치 하나가 없음에도 별다른 문제없이 안전성을 통과시킨 것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게다가 종합유원시설업의 경우 최소 상·하반기 두 차례에 걸쳐 안전점검을 받도록 돼있지만 월드카니발은 1개월 남짓한 기간 동안 설치와 운영이 되므로 이러한 점검 의무 규정조차 적용받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나 이동식 놀이기구에 대한 관리 허점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안전성 “신뢰할 수 없다”


이에 따라 시민들은 “생명을 담보로 한 여가활동은 이제 그만 둘 것”이라며 강경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국내 놀이시설 안전성 검사에 더 이상 신뢰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한편, 일가족 5명을 잃고 40여분 만에 구조된 전운성(70·남)씨는 식사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고 넋이 나간 표정으로 병실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뒤집힌 곤돌라에서 거꾸로 매달린 채 한손에는 8살 난 손녀를 안고 다른 한손으로는 철제 난간을 잡으며 초인적인 힘을 발휘해 구조됐지만, 눈앞에서 아내와 며느리, 손자들이 차례로 떨어지는 모습을 보며 큰 충격에 휩싸인 전씨는 치료마저도 거부해 주위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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