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별로 8~15차례 노사 실무교섭 진행했지만 무용지물
노조, 정태영 부회장에 대표교섭 요구…사측은 거절 일관
정 부회장 가족 소송, 경영에 영향 있나

11일 오전 10시 여의도 현대카드 본사 11층에서 노조가 정당한 이유없이 교섭장 출입을 방해하고 있는 사측에게 공문을 제시하며 교섭거부와 출입통제에 대해 항의하고 있다. ⓒ사무금융노조
11일 오전 10시 여의도 현대카드 본사 11층에서 노조가 정당한 이유없이 교섭장 출입을 방해하고 있는 사측에게 공문을 제시하며 교섭거부와 출입통제에 대해 항의하고 있다. ⓒ사무금융노조

[시사포커스 / 임솔 기자] 현대카드의 노사갈등이 장기화하고 있다. 길게는 1년 넘게 이어지고 있는 임단협 교섭에서 양측이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하자 노조 측은 정태영 부회장과의 대표교섭을 요구하고 있지만 사측은 이에 응하지 않고 있는 모양새다.

12일 전국사무금융서비스노동조합에 따르면 현대카드지부, 현대캐피탈지부, 현대커머셜지부 등 현대 3개 지부는 11일 오전 10시 여의도 현대카드 본사 11층에서 정태영 부회장과 대표교섭을 진행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노조가 교섭요구 공문을 들고 교섭장인 11층으로 가려고 하자 사측이 출입을 막아섰다.

노조 관계자는 “실질적인 의사결정권이 없는 실무교섭으로는 최초 단체협약을 체결하기 위한 접근이 어렵다고 판단했다”며 “정태영 부회장은 정당한 교섭요구에도 이미 두 차례나 거부하고 불참했다. 이날도 마찬가지였다”고 밝혔다.

이날 현장에는 고용노동부에서 나온 근로감독관도 함께였다. 노조 관계자는 “근로감독관이 현대카드 HR(인사) 쪽에 ‘성실하게 교섭을 하는 게 좋겠다’고 얘기를 했는데도 교섭장에 갈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현대 3개 지부 중 현대캐피탈지부는 지난해 9월, 현대카드지부와 커머셜지부가 올해 2월 사측의 잘못된 평가제도, 무분별한 권고사직, 일방적 인사이동, 부당전출 등 억압적인 노동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설립했다.

이후 실무교섭만 현대캐피탈 15차례, 현대카드 10차례, 현대커머셜 8차례 진행했지만 진척 없이 평행선만 걷고 있다. 노조에 따르면 사측은 교섭의지가 없고, 그러다 보니 교섭장에 결정권자가 없는 직원들만 보내고 있다.

노조는 지난달 12일부터 여의도 현대카드 본사 앞에서 중식 선전전을 진행하고 있다. ⓒ사무금융노조
노조는 지난달 12일부터 여의도 현대카드 본사 앞에서 중식 선전전을 진행하고 있다. ⓒ사무금융노조

노조는 사측이 노동조합을 인정하지 않고 불성실 교섭으로 일관하는 것이 노조를 통제하고 지배하려는 의도가 있다고 보고 정 부회장에게 교섭 지연문제 및 노사문제를 해결하고 단체협약을 체결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3개 노조는 지난달 12일부터 본사 앞에서 ▲사측의 교섭해태 규탄 ▲성실교섭 촉구와 단체협약 체결 촉구 등을 위해 현수막 게시와 피켓팅, 본사 주변 행진하는 중식선전전에 돌입했고, 26일부터는 청와대에서 1인시위도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사측이 노조에게 사무실도 주지 않고, 사내전산망도 활용하지 못하게 해 조합원 확대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고용노동부도 이 같은 상황을 인지하고 있었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현재 교섭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도 “노조가 ‘사측이 교섭에 적극적으로 응하지 않고 있다’고 말하고 있어 조만간 양측을 만나 입장을 듣고 교섭을 시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어 “사측도 노조가 처음인지 노무담당자들이 익숙하지 않은 모양”이라며 “양측 얘기를 들어보고 합리적이고 원만하게 진행할 수 있도록 지도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만약 노조가 노동위원회에 조정신청을 하게 되면 노동위는 양측 안을 듣고 조율한 후 조정안을 내놓는다. 양측이 여기에 수락을 하면 타결이 되지만 입장차가 여전하다면 교섭이 중지되고, 노조는 절차를 밟아 파업을 할 수도 있게 된다. 다만 아직 현대 3개 지부는 조정 신청은 하지 않은 상태다.

노조는 매일 점심시간에 진행하는 본사 앞 선전전과 함께 정 부회장과의 대표교섭이 성사될 때까지 교섭요구와 함께 다양한 방식으로 투쟁을 벌여갈 예정이다.

이와 관련해 현대카드는 별도의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사측에 수차례 연락을 취했지만 답변을 들을 수 없었다.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 ⓒ현대카드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 ⓒ현대카드

◆ 정태영 부회장, 가족 간 소송까지 겹쳐

정 부회장이 대표교섭에 응하지 않고 있는 이유에 대해 금융권 한 관계자는 “(소송 등) 여러 가지로 좀 복잡한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법조계에 따르면 정 부회장의 남동생 정해승 씨와 여동생 정은미 씨는 지난 4일 서울가정법원에 “아버지에 대한 성년후견을 개시해달라”며 성년후견 개시심판을 청구했다. 성년후견은 질병, 장애, 노령 등 정신적 제약으로 사무처리 능력이 지속적으로 결여된 성인에게 후견인을 지정하는 제도다.

정씨 측은 “정 부회장은 우리에게 알리지 않고 아버지 거주지를 이사했다”며 “주소를 알려주지 않은 채 아버지와 우리들의 접견을 이유 없이 차단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어 “아버지는 몇 년 전부터 노인성 치매 증상이 발병한 후 현재 자녀들과 대화하기 힘든 상황”이라며 “자녀들의 이름은 물론 본인의 이름조차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중증 치매 상태”라고 언급했다.

또 “돌아가신 어머니께서 우리에게 남긴 재산에 대해 아버지가 어머니 의사에 반해 유류분 반환 청구 소송을 제기했을 가능성이 없다”며 “정 부회장이 아버지의 인지능력이 매우 떨어진 상태를 이용해 임의로 원고에 포함시켰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 부회장이 아버지의 재산을 혼자서 차지하기 위한 작업을 위해 우리들과 만나지 못하게 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청구 취지를 언급했다.

앞서 정 부회장은 지난 8월 7일 정해승·정은미 씨를 상대로 약 2억원 규모의 유류분 반환 청구 소송을 서울중앙지법에 제기했다. 정 부회장 연봉은 약 40억원으로, 금융업계에서 손꼽히는 급여를 받고 있다. 그럼에도 이 같은 소송을 진행한 것은 재산보다는 개인적인 감정 때문이라고 알려졌다.

이들의 모친인 조모씨는 2018년 3월 “자신이 가진 서울 종로 동숭동의 땅과 예금재산 10억원을 정은미씨와 정해승씨에게 상속한다”는 내용의 자필 유언장을 작성했고 이듬해 2월 사망했지만 유언 효력 등을 놓고 자녀들 간 법적 다툼이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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