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 아전인수 해석 난무…北 신형 전략무기 대거 공개해 ‘화전양면전술’?

12일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좌), 10일 조선노동당 창건 75주년 경축 열병식에 참석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중),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우). 사진 / 권민구 기자(좌,우), ⓒ뉴시스(중)
12일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좌), 10일 조선노동당 창건 75주년 경축 열병식에 참석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중),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우). 사진 / 권민구 기자(좌,우), ⓒ뉴시스(중)

[시사포커스 / 김민규 기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10일 노동당 창건 75주년 경축 열병식에서 “사랑하는 남녘의 동포들에게 따뜻한 마음을 정히 보내며 하루빨리 이 보건 위기가 극복되고 북과 남이 다시 두 손을 마주 잡는 날이 찾아오길 기원한다”고 밝히면서도 한편으로는 신형 방사포와 대륙간 탄도미사일 등 여러 전략무기를 과시하면서 미소 짓는 모습을 보여 이 같은 북한의 이중적 제스처를 놓고 당장 정치권에서부터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 靑·與 “관계 복원 입장 주목”…金 발언 계기로 ‘종전선언’ 발판 삼나

먼저 청와대와 여당은 김 위원장이 ‘사랑하는 남녘동포’란 메시지를 내놓은 데 대해 한 목소리로 긍정적 반응을 보였는데, 청와대는 지난 11일 긴급 국가안전보장회의 상임위원회를 연 뒤 “환경이 조성되는 대로 남북관계를 복원하자는 북한의 입장에 주목한다”고 호응했으며 통일부에선 “남북 간 대화 복원이 이뤄지고 환경이 조성되는 대로 코로나19를 포함해 인도·보건의료 분야부터 상호 협력이 재개되기 바란다”고 밝혔고, 외교부에서도 “문재인 대통령이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강조한 종전선언과 동북아 방역보건 협력체 구상 제안에 대한 북측의 호응을 기대한다”고 입장을 내놨다.

여기에 더불어민주당에서도 11일 허영 대변인이 논평에서 “김 위원장의 이례적인 발언은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재가동하겠다는 우리의 의지에 화답한 것”이라고 호평한 데 이어 이낙연 대표까지 12일 “김 위원장이 육성으로 남북이 다시 두 손 맞잡을 날이 오길 기원한다고 밝힌 것은 남북관계에 숨통을 틀 수 있는 긍정적인 발언으로 평가한다”고 역설했다.

한 발 더 나아가 여당에선 국회 외교통일위원장인 송영길 의원이 페이스북을 통해 “문 대통령의 종전선언에 대한 의지와 선제적 무력사용을 하지 않겠다는 김 위원장의 메시지에 더해 종전선언을 위한 미국 정치권의 움직임도 고무적”이라며 “종전선언은 ICBM,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등 북한의 추가 도발을 막기 위한 가장 적극적인 조치로서 의미가 있다”고 문 대통령이 강조한 종전선언에도 김 위원장 발언을 계기로 한껏 힘을 실었다.

급기야 12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서 열린 주미국대사관 국정감사에선 여당 의원들이 야당 의원들과 종전선언을 놓고 공방까지 벌였는데, 국민의힘 태영호 의원이 이날 이수혁 주미대사를 향해 “핵 협상 시작부터 종전선언이 어젠다가 된다면 북한에 시간벌이가 될 수 있다. 여기로 어젠다 세팅을 몰아가면 북미 협상을 비핵화가 아니라 종전선언으로 몰고 갈 수 있다”고 지적하자 이재정 민주당 의원이 “정전체제가 끝나는 게 대한민국 국방의 자주성을 확보하기 위해 필요하고 미 하원의원에서 모든 당 합의로 만장일치 통과된 바 있다”고 설전을 벌였다.

이에 이수혁 주미대사는 종전선언과 관련 “평화협정이나 정전협정을 폐기하는 것과 성격이 다른 정치적 선언”이라며 “비핵화에서 중요한 정치적 의미를 가질 수 있기 때문에 한 번 해보자고 해서 미국은 공감하고 있고, 북한의 반응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는데, 다만 미국하원에 제출된 종전선언 촉구 결의안이 내년 1월에 종료되는 이번 회기에 채택될 가능성은 낮을 것으로 전망했다.

이 뿐 아니라 정작 ‘종전선언’ 제안자인 문 대통령은 아예 김 위원장의 노동당 창건75주년 열병식 이후 청와대에서 처음 주재한 12일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코로나19 대응과 WTO 사무총장 선거 관련 입장만 내놨을 뿐 김 위원장 발언 등 북한과 관련해선 일언반구 언급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는데, 이런 자세를 취한 데에는 당시 열병식에서 미국도 공격할 수 있는 신형 전략무기들까지 공개된 데 따른 부담감 때문인 것으로 관측된다.

◆ 北 열병식서 신형무기 과시하며 미소 지은 金…결국 위장평화공세?

북한 노동신문은 10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조선노동당 창건 75주년 경축 열병식'에 모습을 나타낸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 11축(양쪽 바퀴 22개)의 이동식발사차량(TEL)에 실려 이동하는 모습을 보도했다. ⓒ뉴시스
북한 노동신문은 10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조선노동당 창건 75주년 경축 열병식'에 모습을 나타낸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 11축(양쪽 바퀴 22개)의 이동식발사차량(TEL)에 실려 이동하는 모습을 보도했다. ⓒ뉴시스

실제로 북한은 지난 10일 열병식에서 신형 대구경 방사포는 물론 신형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북극성-4A)과 이전보다 훨씬 길어진 이동식발사차량에 탑재된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까지 전격 공개했는데, 특히 열병식 가장 마지막에 등장한 신형 ICBM은 이론상 미국 전역을 타격 가능한데다 11일(현지시간) 미국의소리 방송에 출연한 제프리 루이스 미들베리 국제학연구소 동아시아비확산센터장에 따르면 “여러 개의 핵탄두를 탑재하는 역량을 나타낸다”고 평가할 만큼 위협적인 무기로 분석되고 있다.

더구나 ICBM 등 신형 무기체계들을 바라보며 연신 미소를 짓던 김 위원장의 모습도 그대로 공개됐다는 점에서 결국 남북관계 개선을 바라는 듯한 김 위원장의 발언은 ‘통남봉미’ 전략이자 위장평화공세 아니겠느냐는 해석이 야권을 중심으로 쏟아졌는데,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12일 국감대책회의에서 “어떤 경우에도 핵과 미사일 무력을 포기할 의사가 없음을 천명하는 모습인데, 이런 마당에 북한이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의지에 화답한 것이란 민주당 인식은 어디에 근거한 것이냐”고 일침을 가했다.

이에 그치지 않고 주 원내대표는 북한 열병식에 대해 ‘상호 무력충돌과 전쟁을 방지하기 위한 남북 간 여러 합의사항들이 지켜져야 한다’고 입장을 내놨던 청와대 국가안전보장회의 결과도 꼬집어 “뜬구름 잡는 평화와 종전선언을 외치다 북한이 아랑곳없이 무력시위 하는 판에 여전히 약속을 지키지 않느냐고 묻는 애처로운 표현”이라며 “무력충돌과 전쟁 방지는 합의가 아니라 무력으로 억지력을 확보하는 방안밖에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고 같은 당 김종인 비대위원장 역시 “우리 국민을 총살해놓고 남녘동포 운운하는 (김정은의) 악어의 눈물에 경악을 금하기 어렵다. 종전선언은 종전이 아닌 대한민국 종말을 불러올 행위”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그러면서 김 위원장은 “(북한이) 달라진 게 아니라 위협이 더 커진 것”이라고 주장했는데, 비단 국민의힘 뿐 아니라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는 전날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북한군의 우리 공무원 살해 사건을 들어 “문 대통령은 북한조차 평가 절하하는 종전선언을 독백처럼 계속해서 국제사회에 외치고 있는데 지금 문 대통령이 보여주는 행보는 대한민국 대통령의 자세가 아니다”라며 “이번 사건은 결코 간과해선 안 된다. 향후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지, 우리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어떻게 지켜낼 것인지에 대한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를 촉구한다”고 문 대통령 압박에 한 목소리를 냈다.

심지어 북한의 신형 전략무기 공개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까지 자극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미국 인터넷 매체 복스 외교안보분야 담당자인 알렉스 워드 기자는 11일(현지시간) 자신의 트위터에 “신형 ICBM과 자체 개발한 트럭 발사대가 공개된 북한의 미사일 열병식에 트럼프가 크게 화를 냈다고 가까운 소식통이 전했다”며 “트럼프는 김정은에 대해 ‘매우 실망했으며’, 그런 실망감을 백악관의 여러 관리들에게 표출했다”고 밝혀 당정청의 평가와는 온도차를 드러냈다.

특히 브루스 클링너 미국 헤리티지재단 선임연구원은 자신의 트위터에서 ‘우리의 전쟁 억제력이 결코 남용되거나 절대 선제적으로 쓰이진 않을 것’이라던 김정은 발언을 들어 “김정은의 연설은 북한의 핵 무력을 자기방어로 규정했다”면서도 “누가 미국 대통령으로 선출되든 북한이 2021년 초에 새로운 ICBM을 시험 발사할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고 덧붙여 단순 무력과시에 그치지 않고 미사일 발사가 재개될 가능성도 우려했는데, 김연철 전 통일부장관도 12일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나와 “(북한이) 또 시험 발사하게 되면 미국 대선도 있기에 정세가 굉장히 악화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 金, 피격 공무원 언급은 없어…종전선언·보건협력 추진 난망

북한군에 피격돼 숨진 해수분 소속 공무원 A씨의 형 이래진 씨가 국민의힘 하태경, 태영호 의원과 함께 서울 종로구 북한인권사무소에 진상조사를 촉구하는 요청서를 전달하기 전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 / 권민구 기자
북한군에 피격돼 숨진 해수분 소속 공무원 A씨의 형 이래진 씨가 국민의힘 하태경, 태영호 의원과 함께 서울 종로구 북한인권사무소에 진상조사를 촉구하는 요청서를 전달하기 전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 / 권민구 기자

그래선지 이낙연 민주당 대표도 12일 최고위원회의에서 북한의 신형 ICBM 공개에 대해선 “북한이 대량파괴무기 개발 의지를 꺾지 않았음을 내보인다. 한반도와 세계평화를 위협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를 표한다”고 역설했는데, 통일부 역시 이런 분위기를 의식한 듯 여상기 대변인이 12일 정례브리핑에서 코로나19 등 북한과의 보건의료 분야 협력과 관련 “지금 당장 구체적으로 무슨 제안을 하거나 추진할 수 있는 그런 단계는 아니다”라고 수위조절에 나섰다.

아울러 국방부에서도 지난 11일 북한이 새로운 장거리 탄도미사일로 추정되는 무기 등을 공개한 것에 대해 우려를 표명한다“고 입장을 내놨는데, 무엇보다 최근 북한군의 우리 공무원 살해 사건과 관련 ”조속히 공동조사를 통해 사실관계를 함께 밝혀내기를 요구하며 군사통신선 복구와 재가동을 다시 한 번 촉구한다“며 앞서 제안한 남북공동조사에 응답할 것을 요구했다.

이는 일단 북한군에 의한 공무원 살해 사건이 제대로 해결되지 않고선 대내외 여론상 더는 남북관계 진전이 이뤄지기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인데, 김정은 위원장도 지난달 25일 통지문을 통해 ‘대단히 미안하다’고 밝혔던 이후론 남북공동조사 수용 여부 등에 대해 일언반구 입장을 내놓지 않은 채 지난 10일 열병식에서마저 ‘사랑하는 남녘동포’라면서도 이 사건에 대해선 일절 언급조차 하지 않는 모습을 보이고 있어 종전선언이나 남북 보건협력 등 정부 구상이 추진되기는 당분간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오히려 북측과 우리 국방부의 주장이 엇갈리는 부분에 대한 진상규명이 이뤄지지 못한 채 ‘지연 전략’으로 유야무야 될 것을 우려한 야당에선 유엔 조사까지 추진하고 있어 당정청을 더욱 곤혹스럽게 만들고 있는데, 국민의힘 진상조사TF 소속인 하태경 의원은 12일 오후 자신의 페이스북에 “북한에 피살된 실종 공무원 월북설을 주장한 우리 정부의 말이 점점 오락가락하고 있다. 정부는 처음 발표에서 실종공무원이 조류를 잘 알아 북으로 넘어갔다고 했다가 곧바로 조류만으론 북으로 넘어갈 수 없다고 말을 바꿨다”며 “유엔은 한국 정부의 무리한 월북조작 의혹을 조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무엇보다 하 의원은 지난 6일 피살 공무원의 친형인 이래진씨와 함께 서울 종로구 유엔 북한인권사무소 앞에서 기자회견을 가진 뒤 여기에 진상조사 촉구 요청서를 제출한 바 있는데, 유엔인권서울사무소에서도 조만간 유족과 접촉할 것으로 전해지고 있어 향후 진상조사 결과에 따라 여야 중 어느 한 쪽이 정치적 타격을 입을 것은 불가피할 것으로 관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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