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포커스 / 임솔 기자] 은행들이 하나둘 금리를 올리며 금융당국이 경고한대로 ‘신용대출 조이기’에 들어갔다.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주요 은행의 신용대출 잔액은 올해 1월말 109조7000억원에서 지난달 말 126조4000억원으로 8개월 만에 15% 이상 증가했다.

최근 신용대출 폭증은 생활자금 대출 수요와 함께 부동산 투자, 주식투자 열풍이 일면서 부동산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자금 마련), 빚투(빚내서 투자) 등으로 인한 것으로 분석된다. 기준금리가 사상 처음으로 0%대에 머무르면서 신용등급이 높은 직장인, 전문직이 낮은 금리로 신용대출을 받아 증가세가 가팔랐다는 것이다.

이에 금융당국은 신용대출을 관리하겠다고 경고하면서 은행권에 ‘신용대출 관리계획’을 제출할 것을 요구했다. 가계부채 증가가 우리 경제의 리스크 요인이 되지 않도록 관리해나가겠다는 목적이지만 그 결과가 대출 금리 인상 및 한도 축소로 나타나면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6일 은행권에 따르면 우리은행은 이날부터 ‘우리 원(WON)하는 직장인대출’과 ‘우리 주거래 직장인대출’ 우대금리를 각 최고 0.40%p 낮추기로 했다. 재직기업, 결제실적, 급여이체 등 실적에 따라 우대하던 금리 폭을 줄이는 방식으로 금리를 인상하는 것이다.

KB국민은행은 지난달 29일부터 전문직, 직장인 신용대출 한도를 축소하고, 일부 신용대출 우대금리를 줄이는 방식으로 금리를 0.10~0.15%p 인상했으며, NH농협은행도 지난달 초 신용대출 우대금리를 0.20%p 줄였다. 카카오뱅크와 케이뱅크도 일부 신용대출 상품 금리를 인상했다.

신한은행과 하나은행은 아직 별다른 조치를 내리지 않고 있지만 당국의 요구가 있는 만큼 조만간 손을 볼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이 같은 조치의 실효성에 대해 의구심을 표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금융당국과 은행들은 고신용·고소득자의 대출을 옥죄고 있지만 실제로는 신용과 소득이 상대적으로 낮은 구간에서 대출 증가가 두드러졌기 때문이다.

여기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여파로 IMF 이후 처음으로 역성장할 위기에 처했다. 자영업자들과 유관직종들은 정부의 대규모 자금 지원 등으로 버티고는 있지만 결국 한계상황이 올 가능성이 높다. 고신용·고소득자들은 은행들이 대출 한도를 줄이더라도 비은행권에서 대출을 받을 수 있지만 이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고금리 금융권에서 대출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익명을 요구한 금융권 관계자는 “지금은 대출 규제를 강화하기에 적절하지 않은 시기”라며 “신용대출이 급증한 구체적인 이유를 찾아 조치를 취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금리 인상 등으로 대출 총량만 관리하는 것은 이미 형편이 어려운 가계들을 더욱 어렵게 만들 수 있다”고 지적했다.

금융당국은 가계대출의 추이를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면서 가계대출 불안요인이 지속될 경우 필요한 관리방안을 관계부처와 협의해 나간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기준금리가 0.5%로 유지되고 있는 상황에서 시중은행들의 금리 인상이 이어진다면 정작 대출이 필요한 국민들의 부담만 더 커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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