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 ‘월북’에 힘 싣는 정부여당…文 책임엔 선 그으며 반전 노려

 

28일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수석, 보좌관회의에서 북한군의 공무원 피살 사건과 관련해 처음으로 직접 입장을 내놓고 있다. ⓒ청와대
28일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수석, 보좌관회의에서 북한군의 공무원 피살 사건과 관련해 처음으로 직접 입장을 내놓고 있다. ⓒ청와대

[시사포커스 / 김민규 기자] 북한군에 의해 우리 공무원이 총격 피살당한 사건과 관련해 정부여당의 주장과 북한 측이 내놓은 통지문 내용에 엇갈린 부분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 당정은 월북 가능성에 한층 힘을 싣는 한편 이번 사건을 고리로 북한과의 대화, 협력 필요성을 한층 강조하고 있어 이 같은 대응이 문재인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에 어떤 결과를 안겨줄 것인지 세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 文 책임론엔 선 긋는 당정청, 한 목소리로 ‘자진 월북’ 강조

지난 24일만 해도 피해자 실종 경위를 놓고 국방부와 해양수산부 등 기관마다 반응이 엇갈리면서 혼선을 보이던 정부여당이 29일 해양경찰청의 중간 수사 결과 등을 통해 이번 사건을 피해자의 자진 월북에 따른 개인 책임 쪽으로 정리하는 모양새다.

윤성현 해경청 수사정보국장은 이날 오전 브리핑을 통해 “실종자가 북측 해역에서 발견될 당시 탈진된 상태로 부유물에 의지한 채 구명조끼를 입고 있었던 사실, 실종자만이 알 수 있는 본인의 이름, 나이, 고향, 키 등 신상정보를 북측에서 파악하고 있었던 사실, 실종자가 월북 의사를 표현한 정황 등을 확인했다”고 밝힌 데 이어 표류 가능성에 대해서도 국립해양조사원 등 국내 4개 기관이 분석할 결과를 들어 인위적 행위 없이 피해자가 발견위치까지 표류하기는 어렵다면서 사실상 자진 월북에 무게를 실었다.

여기에 민주당에서도 ‘우리 민간인에 대한 북한 해역 내 공동조사와 재발 방지를 위한 특별위원회’ 위원장인 황희 의원이 지난 28일 기자회견을 통해 “다양한 경로로 획득한 한미 간 첩보와 정보에 의하면 월북은 사실로 확인되어 가고 있다. 북한 함정과 실종자와의 대화 내용에 월북 의사를 확인하는 대화 속 정황이 들어있다”고 주장한 데 이어 육군 법무관 출신인 같은 당 민홍철 의원 역시 29일 TBS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 “최초에 북한 단속정이 (피해자를) 발견해 군부로 신고된 것 같다. 여러 인적사항이라든지 확인하는 것도 우리 첩보에 잡혔는데 월북 의사 등도 우리 첩보에 다 판단된 것”이라고 월북 쪽에 힘을 실었다.

반면 유가족인 피살 공무원의 친형 이래진씨는 29일 오후 외신기자클럽 기자회견 직전 피해자가 월북했다는 해경 발표에 대해 “최소한 사건 현장조사를 하고 그 다음에 표류에 관한 시뮬레이션도 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월북이라고 단정해버렸는데 보통 범죄구성에서 갖춰야 할 기승전결에서 기승전은 없고 결만 갖고 얘기한 것”이라며 “서민들의 명예훼손을 국가기관이 스스로 하고 있다. 해경청장의 사과와 대면요청을 공식 요구한다”고 격앙된 반응을 보였고 국민의힘의 ‘북한의 우리 국민 살해 만행 진상조사TF’ 의원들도 29일 “황 의원의 월북 팩트 주장은 추측이다. 가설을 실로 둔갑해서 우기고 있는 정부 책임자들을 문책하라”고 촉구했다.

[시사포커스 / 김병철 기자] 국민의힘 의원들이 9월 29일 국회 소통관에서 열린 '북한의 우리 국민 살해 만행 진상조사TF'가 합참 방문조사 결과 브리핑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시사포커스 / 김병철 기자] 국민의힘 의원들이 9월 29일 국회 소통관에서 열린 '북한의 우리 국민 살해 만행 진상조사TF'가 합참 방문조사 결과 브리핑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 같은 반박에 민주당 특위 위원들은 야당과 유족을 분리 대응하겠다는 전략인지 야당엔 공세를 펴면서도 유족인 피해자 친형은 만났는데, 이렇듯 분리 대응하겠다는 의중은 지난 28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유족이 가질 의구심은 당연하지만 야당은 다르다”라며 “월북 정황에 동의했던 야당이 지금 와서 애써 아니라고 하는 이유는 뭐냐. 월북이 아니라고 해야만 우리 국민이 사살당하는 동안 대통령과 군대는 뭘 했는지 우기고 싶어서 아닌가”라던 양향자 최고위원의 발언을 통해서도 어느 정도 확인할 수 있다.

다만 양 최고위원의 발언에 비추어 보면 일견 피해자의 월북 여부에 따라 대통령과 군에 대한 책임 추궁도 좌우될 거란 시각이 드러나고 있는데, 이미 사건 대응에 있어 여러 부분에서 문제가 불거지고 있는 만큼 월북 여부와 별개로 청와대과 정부에 대한 책임론이 불식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무엇보다 실종 공무원이 북한 해역에서 발견됐다는 보고를 받은 이후에도 대통령조차 별 다른 적극적 주문을 하지 않은데다 북한군의 총격으로 공무원이 숨진 뒤 23일 새벽 청와대에서 긴급히 열린 안보회의에도 문 대통령은 참석하지 않은 채 잠을 자고 있었으나 즉시 깨워 보고하지도 않은 것은 물론 여기에 참석했던 이인영 통일부장관은 아예 피살 사건을 인지했으면서도 23일 오후 마스크 등 북한에 대한 의료물자지원을 승인한 것으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특히 군은 북한군 내부 교신내용을 감청을 통해 ‘사살’이란 단어까지 분명히 확인했음에도 이런 움직임을 보였다는 데에서 피해자가 월북자였는지 여부와 관계없이 정부의 대북 비상대응이나 대통령 보고체계에 문제가 있음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는데, 이 같은 지적에 지난 28일 설훈 민주당 의원은 KBS ‘사사건건’에 나와 “새벽에 주무시는데 보고할 내용인가. 교전 상태도 아닌데 대통령을 새벽 3시에 깨워서 보고한단 말인가”라면서 비호에 나섰다가 국민이 총격 사망한 사건임에도 당청에선 사안을 가벼이 보던 것 아니냐는 의혹만 증폭시켰다.

◆ 정부와 北 발표 차이 있어…北 통지문, 거짓이어도 딜레마 빠지는 與

또 당청이 주장하는 월북 뿐 아니라 여러 부분들에서 북한이 해명 차원에서 내놓은 통지문 내용과 상이하고, 여당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고 있어 이 역시 당청의 기대와 달리 상황을 뒤흔들 변수로 작용할 수 있는데, 당장 월북을 ‘팩트’라고 표현한 황희 민주당 의원조차 28일 기자회견에서 ‘월북 의사를 밝혔는데 북측이 총격을 가한 것이냐’는 질문이 나오자 “거기까진 해석할 필요는 없다”며 즉답을 피했다.

비단 이 뿐 아니라 군은 피해자를 북한군이 총격 살해하고 시신에 기름을 부어 해상에서 불태운 것으로 파악한 데 반해 북측은 사격 후 시신을 발견하지 못했으며 남아있던 부유물만 방역규정에 따라 해상에서 소각했다고 통지문을 통해 주장했는데, 사격에 대해서도 우리 군에선 상부 지시로 사격했다고 보는 반면 북측은 단속정장의 결심 밑에 해상경계근무 규정 준칙에 따라 사격했다며 확연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그러다보니 정치권에선 시신을 불태웠는지를 놓고 제각기 반응이 엇갈리고 있는데,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29일 YTN라디오 ‘출발 새아침’에서 대북규탄결의안 불발 이유를 들어 “북한에서 시신은 불태우지 않고 부유물만 불태웠다고 하니까 그 부분을 빼자고 (민주당에서) 주장하는데 저희가 시신을 불태웠다고 국방위에서 합의해 들어간 것”이라며 “시신을 훼손했다고 하는데 북한에서 그렇지 않다고 하니까 그 말을 믿자는 것”이라고 북측 통지문에 힘을 싣고 있는 여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우리 민간인에 대한 북한 해역 내 공동조사와 재발방지를 위한 특별위원회 위원장인 황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발언하고 있다. 사진 / 오훈 기자
우리 민간인에 대한 북한 해역 내 공동조사와 재발방지를 위한 특별위원회 위원장인 황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발언하고 있다. 사진 / 오훈 기자

한 발 더 나아가 한기호 국민의힘 의원은 같은 날 페이스북을 통해 “시신도 구명의를 입고 있어 총에 맞아도 물에 가라앉지 않는다. 시신을 태우지 않고 부유물만 태우는 데는 40분이 거리지도 않고 10m 떨어진 곳에서 기름을 부었다는 것은 말도 되지 않는다”며 일침을 가했는데, 이처럼 북측 주장의 맹점을 지적하는 데 대해 대북규탄결의안 협상을 맡았던 김영진 원내수석부대표는 29일 KBS라디오 ‘김경래의 최강시사’와의 인터뷰에서 “불태웠단 말은 자극적 성격이 있어 남북 공동조사 통해 나왔을 때 추가해도 충만하지 않냐”는 반응을 내놨다.

이렇게 민주당이 군 당국 발표에 선택적 반응을 보이는 데에는 시신을 불태웠다는 부분에서 분명한 차이를 보이는 북한 통지문 내용을 거짓이라고 보면 그간 문 대통령과 민주당 지도부에서 호평했던 김정은의 사과도 진정성 없는 ‘기만’이나 다름없게 될 뿐 아니라 김정은 사과를 계기로 “협력의 물꼬를 터가자”던 문 대통령의 구상 역시 차질이 불가피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당 내에서도 국회 국방위원장인 민홍철 의원이 29일 TBS라디오에서 군이 시신을 북한이 소각했다고 판단한 것과 관련해 “구체적인 첩보 내용이 있는 것 같다”고 밝힌 데 이어 당정청이 북한에 제안하고 있는 공동조사에 대해서도 “영해 침범을 운운하고 경고한 상황이나 과거 사례로 볼 때 (응할 가능성이) 극히 낮다”고 회의적 반응을 보였다는 데 비추어 북한이 받을 가능성 낮은 ‘남북 공동조사’란 공수표 외엔 현재 처한 딜레마를 벗어나기 어려운 당청의 궁색한 상황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 北, 여전히 ‘묵묵부답’…처벌 없으면 ‘대북 협력’ 외친 당청에 역풍

실제로 북한은 지난 27일 오전 조선중앙통신에서 오히려 “남측이 새로운 긴장을 유발할 수 있는 서해 해상 군사분계선 무단침범 행위를 즉시 중단할 것을 요구한다”며 다시금 NLL을 분쟁수역화 하려는 의도까지 내비친 데 이어 “시신을 습득하는 경우 관례대로 남측에 넘겨줄 절차와 방법까지 생각해두고 있다”고 자체 조사에 무게를 실은 채 29일까지도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는 만큼 우리 측이 요구 중인 남북 공동조사는 이뤄지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더구나 시신 훼손과 달리 남북 간 명백히 확인된 ‘총격’과 관련해서도 우리 군 당국은 최소 해군사령관급까지 보고가 올라간 것으로 보면서 “상부의 지시로 A씨를 사살했다”고 발표한데다 민주당 민홍철 의원도 26일 MBC라디오에서 “민간인 사살한 행위를 할 정도면 군 상부의 결단이나 결정 아니겠느냐”고 밝힌 반면 북측은 ‘단속정장 결심’으로 완전 엇갈려 있는 만큼 책임자 처벌이 불가피한 남북 공동조사를 해봤자 ‘가해자’ 입장인 북측에 별로 유리할 게 없다는 판단도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문 대통령과 여당이 어차피 북측에서 불응할 거라 예상하고, 공을 북한에 넘기는 차원에서 공동조사를 제안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겠지만 진상규명이나 책임자 처벌은 북한의 불응 탓을 들어 유야무야 된다 해도 이 경우 들끓는 여론으로 인해 상당기간 남북관계 개선이나 교류·협력 재개는 더 어려워지게 된다.

한 발 더 나아가 북측이 지난 27일처럼 NLL 문제를 거듭 제기하면서 우리 측의 불법침입이란 논리로 한층 강하게 나올 경우 “이번 비극적 사건이 사건으로만 끝나지 않도록 대화와 협력의 기회를 만들고 남북관계를 진전시키는 계기로 반전되길 기대한다”던 문 대통령의 호소도 공허한 외침으로 끝날 뿐 아니라 정확한 상황판단을 하지 못한 채 관계발전의 카드로나 삼으려 했다는 질타를 피하기 어려워지는 것은 물론 대내외 여론에 떠밀려 북한에 강경한 목소리를 내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국면으로 흐를 수도 있어 북한이 거듭된 우리 측 요구에 어떻게 대응해나갈 것인지 그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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