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추미애 윤미향 등의 문제...민주주의라면 절대 흐지부지 안 된다
민주주의 핵심은 ‘법 앞의 평등(Isonomia)’으로 누구도 예외일 수 없어
법과 상식은 신호등 체계와 같아...신호등을 망가뜨리면 세상 엉망이 돼
친정부 인사에게 ‘춘풍추상’ 거꾸로 섰다.. “생선은 머리부터 썩는다” 연상

“그게 큰 문제야? (추미애 아들 특혜성 휴가에 대한 평범한 주부)”

“표창장(조국), 군대 병가(추미애), 소녀상 운동가의 미등록 숙박업(윤미향) 등 죄가 창작된다. (진혜원 서울동부지검 부부장검사)”

조국 전 법무부장관, 윤미향 의원(정의기억연대 전 이사장), 추미애 법무장관 문제를 놓고 많은 국민들이 지쳐 있는 것 같다. 사건을 놓고 오랫동안 질질 끌다보니 본질은 희미해지고 국민 사이에 ‘호불호와 찬반 논쟁’거리로 전락한 느낌이다. 친정부 인사들은 이제 와서 아예 ‘뭐가 문제냐?’고 눈을 부릅뜬다. 과연 조국, 윤미향, 추미애의 문제는 ‘오래되고 지겹다’며 흐지부지 덮어버릴 문제일까?

자신이 나라와 국민의 현재와 미래를 생각하는 진정한 민주시민이라면 수많은 요설(妖說)이 난무하고 ‘정치적 물 타기 발언’이 이어지더라도 이들의 문제를 덮어버리면 안 된다. 정말 집요하고 끈질기게 물고 늘어져 이들의 행적과 그들이 무너뜨린 법치를 바로 세워야 한다.

‘민주주의의 핵심과 본질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받으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체로 ‘국민이 주인이 되는 나라’라는 답변을 내놓는다. 민주주의의 핵심은 ‘데모크라시(democracy)’라는 것. 미국이나 유럽 등의 답변은 조금 다르다. 그들은 대부분 민주주의의 핵심이 ‘법 앞의 평등’이라고 설명한다. 법이 정해진 규정은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최고 권력자부터 가장 약한 사람까지 동일하게 적용돼야한다는 것이다. 미국과 유럽에서 가르치는 민주주의 역사에서도 ‘법 앞의 평등’이 수없이 강조된다. 간단히 살펴보자.

크세노폰은 소크라테스의 제자로서 플라톤과 함께 공부했다. 그는 페르시아의 왕인 키루스(성경의 고레스대왕)와 관련해 <카이로파이다이아(Cyropaedia·키루스의 교육)'>을 썼는데 경영학자인 피터 드러커가 리더십에 대한 최고의 저술이라고 격찬했다. 거기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나온다.

‘작은 옷을 갖고 있는 덩치 큰 소년이 큰 옷을 갖고 있는 작은 소년을 발견했다. 그는 작은 소년에게서 큰 옷을 빼앗아 자신이 입고, 자기가 갖고 있던 작은 옷을 소년에게 입혀주었을 때, 어떤 판결을 내렸으면 좋겠느냐는 질문을 받는다. 키루스는 두 사람 모두 자기 몸에 알맞은 옷을 갖게 되었으므로 둘 다 좋아졌다고 답했다.

키루스의 선생님은 그의 판단이 잘못됐다고 꾸짖는다. 옷이 잘 어울리는지를 판단기준으로 삼을 때에는 키루스의 판단이 옳지만, 옷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기준으로 삼을 때에는 판단을 잘못했다는 것이다. 선생님은 키루스에게 법에 따르는 것이 옳은 것이며, 이에 어긋나는 것은 그른 것이라고 지적한다.’

키루스의 선생님이 강조한 것은 ‘누구나 법에 따라야한다는 것, 즉 법 앞의 평등’이었다. ‘법 앞의 평등’은 이소노미아(isonomia)였는데, 이는 정의( justice)라는 의미를 가졌다. 헤로도토스는 이소노미아가 곧 민주정치라고 말했다. 그리스 언어에서 이소노미아가 먼저 나왔고, ‘대중에 의한 통치 즉 데모크라시(democrcy)’라는 단어는 한참 나중에 생겨났다,

민주주의 역사를 보면 결국 ‘진정한 법치=민주주의’였던 셈이다. 전체주의나 사회주의에도 법이 있지 않느냐는 반문이 있을 수 있지만 그들의 법은 ‘권력자를 위한 자의적인 법’이므로 진정한 법치(법의 지배, rule of law)가 될 수 없다.

‘진정한 법치, 즉 법의 지배’는 신호등에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보행자 한두 명이 빨간 신호에 건넌다고 해서 당장 신호등체계가 엉망이 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들을 그대로 방치하면 너나 할 것 없이 빨간 신호등을 건너게 되고 신호등 체계는 엉망진창이 되고 결국 무용지물이 될 수밖에 없다. 조작된 서류로 입시체계를 무너뜨리고, 특혜성 휴가에 눈을 감고, 국민의 애잔한 사연이 담긴 돈을 착복하는 것을 눈감아준다면 추후 동일한 일이 발생했을 때 법을 적용할 수 없게 된다. 법치가 무너지는 것이다.

신호등 체계는 차량운전자뿐만 아니라 보행자에게도 공평하게 적용되어야 한다. 한쪽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런데 벤츠나 페라리 등 고급차량이 지나간다고 보행자들을 계속 건너지 못하게 한다면 그건 공정하지 않다.

법(法)의 한자어는 ‘물이 흘러가는 것, 水(물)와 去(흘러가는 것)’는 의미를 담고 있다. 물이 산과 들을 따라 자연스럽게 흘러가야지 역류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법은 상식의 최소한’이라고 표현되기도 하는데, 조국 추미애 윤미향 등은 일반인의 상식을 파괴하고 무너뜨렸다.

상식이 무너진 국가나 사회는 어떻게 될까? 자세한 설명을 하는 것보다는 ‘생선은 머리부터 썩고, 거대한 둑도 조그만 개미굴로 인해 무너진다’는 속담을 인용하는 게 더 나을 것 같다.

문재인 정부의 대표적인 모토로 춘풍추상(春風秋霜)이 꼽힌다. 남에게는 봄바람처럼 부드럽게 대하고, 자신에게는 가을처럼 엄격하게 대하라는 뜻이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와 친한 인물들에게는 춘풍추상이 거꾸로 섰다.

이소노미아가 훼손이 되고 대한민국 사회의 신호등 체계가 무너지는 상황에서 한가위를 맞았다. 가을의 한복판에서 많은 국민들은 조국 추미애 윤미향 등에 대해 ‘추상(秋霜)’을 다시 생각하고, 절대 잊어버리거나 흐지부지해서는 안 될 것이다. 진정 ‘민주주의 나라, 대한민국’을 바로 세우고 싶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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