찍어내기 식 프랜차이즈 아닌, 정확한 계산과 균형성에 의해 만들어진다는 '3부작' 영화들. 그 다채로운 양m

세계영화계, 그 중에서도 중심을 이룬다는 헐리우드에 있어서, 1980년대는 가히 악몽과도 같은 시기였다. 이전까지만 해도 드라이브-인 극장이나 다운타운의 소극장에서 상영됐을 법한 선정주의 영화(exploitation film)들이 버젓이 대형극장체인을 확보하여 전국 상영되기 시작했고, 또 이들 선정주의 영화들에 완전히 중독되어 1970년대에 유행하던 사회파 영화들, 모험정신 강한 영화들이 줄줄이 흥행에 참패하고 시장에 사라져간 시기였기에 헐리우드로선 '다시는 돌아보고 싶지 않은' 추억임이 분명할텐데, 1980년대 낳은 또다른 파행 중 하나가 바로 '찍어내기'식 무차별 속편 양산 전략이었다. 주로 가장 싸구려 장르로 알려진 슬래셔 무비 장르에서 벌어진 이 무차별 프랜차이즈 시스템은 곧 헐리우드 메인스트림 영화계 전체를 뒤덮어버렸는데, 이런 대형 타락의 와중에서도 절대 '프랜차이즈'화 자체에는 악덕이 배어있지 않음을, 오히려 단 한편의 영화로선 풀어내기 힘든 복잡한 알레고리를 형성하는 데 프랜차이즈 형태가 적절하다는 사실을 입증시켜 준 영화들도 분명히 존재하고 있다. 이들은 일반적으로 '3부작'의 형태를 띠고서, 흥행 성적과 관련없이 그 이상 프랜차이즈를 늘리지는 않는 전략을 완강히 고수하고 있으며, 역시 성향에 따른 다양한 형태와 양상을 보여주고 있어 분석의 대상으로 상당한 인기를 누리고 있기도 하다. '3부작' 기획의 아버지, <스타워즈> 일반적으로 '3부작'의 가장 이상적인 형태를 꼽을 때 제일 먼저 언급되는 것이 바로 <스타워즈> 프랜차이즈일 것이다. <스타워즈>가 처음 등장했던 1970년대 후반만 해도 헐리우드 - 그리고 물론, 전세계 영화계도 마찬가지로 - 는 굳이 '프랜차이즈'의 형식으로서 돈을 벌어들인다는 개념을 심각하게 고려하지 않을 때였고, 속편 제작은 기본적으로 '전편이 흥행에 성공하면 그 때 가서 생각해보는' 형태를 띠고 있었다. 그러나 <스타워즈> 프랜차이즈는 이런 안일한 속편 제작 형식에 제동을 건 최초의 케이스 중 하나로 일대 혁명을 불러 일으켰다. 죠지 루카스는 은하제국과 '스카이워커' 가문의 일대기를 다룬 거대한 이야기를 구상하면서, 이를 '9부작'으로 만들어낼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그리고 그 중 가장 상업성이 있다 생각되던 중간의 '3부'를 먼저 떼어내 영화화할 생각이었고, <스타워즈>의 '전설적인' 오프닝 자막 첫 머리에 뜨는 'Epiosde IV'라는 문구는 바로 우리에게 첫 번째로 다가온 <스타워즈> 에피소드가 루카스의 머리 속에서는 4번째에 해당하는 에피소드였음을 명백히 보여주고 있다. <스타워즈> 프랜차이즈는, 매 편마다 '곧바로 내용이 이어지는' 형식이 아닌, 어느 정도 시간과 상황의 변화폭을 두고서 다음 이야기를 전개시키는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기 다른 이야기 사이의 간극은 앞서 언급한 오프닝 자막을 통해 관객들에게 설명되어지고, 매 편마다 하나의 완결된 어드벤쳐로서 각기 다르게 기능할 수 있도록 기획되었다. 조지 루카스는 첫 '3부작'의 완결로부터 16년 뒤, 그가 구상한 '9부작' 에피소드들 중 처음 3편을 다시 '3부작' 형식으로 내보내기 시작, 내년 여름 그 세 번째 이야기이자, 통산 6번째 에피소드인 <시스의 복수>로 '2차' 3부작을 완결지을 예정이다. 원작의 형식을 그대로 좇은 '3부작', <반지의 제왕> 피터 잭슨의 예기치 못한 거대 히트작 프랜차이즈 <반지의 제왕>의 경우, 그 기획 자체가 지나치게 방대하고 모험적이어서 수많은 제작사들로부터 '미친 짓'이라는 일관된 반응을 얻었지만, 결과는 최상의 것으로 드러났고, 이 3부작을 통해 제작사인 뉴라인 시네마는 무려 30억 달러에 가까운 전세계 흥행수익을 거둬들였다. 이야기가 곧바로 이어지는 '3부작'을 매 해 겨울마다 한편씩 내보낸다는 발상은, 과연 지금 생각해보아도 대담하기 짝이 없는 발상이며, 각 편의 상영시간이 3시간에 이른다는 사실은 어찌보면 '대중상업영화'의 기본조건을 완전히 어긴 것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그러나 <반지의 제왕>은 3편 분량의 촬영을 단번에 - 약 1년 간의 촬영기간이 소요됐으며, 이는 통상적인 영화촬영기간의 4배에 달한다 - 해치워 매 편마다 벌어질 수 있는 완성도의 차를 지우려 노력했고, 성급하게 이뤄진 연작 기획이 아닌 만치 잘 짜여진 구성과 탁월한 연출력, 그 무엇 하나 두려워하지 않는 자유분방한 제작방식으로 인해 '3부작' 프랜차이즈의 최고 영역을 개척해내게 되었다. 본래 '120분 분량의 3부작'으로 기획에 들어간 <반지의 제왕>은 미라맥스 사의 회장 하비 와인스타인으로부터 '180분 짜리 한 편으로 만든다면 제작을 고려해 볼 것'이라는 밋밋한 반응을 얻어낸 뒤, 오히려 더욱 대담한 '180분 짜리 3부작'이라는 기획으로 뉴라인 시네마에서 '승인'을 받은 기묘한 케이스. 그러나 이는 '원작'의 형식을 그대로 좇으며, 원작의 에피소드를 가능한한 삭제시키지 않고 모두 담아내려 한 의도로 보여지고, 원작이 지닌 각 권의 분절성과 에피소드 분량의 조절, 각 편이 지닌 개성을 절대적으로 신봉하고 있다는 점에서 '각색' 작업에서 창출될 수 있는 오리지널리티는 조금 부족하다 볼 수 있다. '3부작'을 만들기 위해 탄생했다, <스크림> 대대적인 성공을 거둬낸 <스크림> 프랜차이즈의 2편 초반에는 대학 영화과에 다니는 학생들 사이에서 '속편'에 대한 논쟁이 벌어지는 장면이 등장한다. 이 장면에서, '전편만한 속편은 없다'라고 밝히는 한 학생에게, 다른 학생이 대뜸 <스타워즈>의 2편인 <제국의 역습>을 대자, 그 학생은 "그것은 처음부터 기획되어 있는 '3부작'의 한 편일 뿐이며, 절대 '속편'이라 볼 수 없다"고 대꾸한다. 이것이 바로, <스크림>의 각본가 케빈 윌리엄슨이 보는 진정한 '3부작'의 개념이며, <스크림>은 그 자체로 '미리 기획된 3부작'의 형식을 택해 관객들에게 여주인공 '시드니'가 겪는 갖가지 공포의 양상과 관계의 추이를 설명해준다. 가령, 1편에서 언급되었던 '시드니'의 문란한 어머니에 관한 이야기는 3편에서 새로운 시각으로 완결되어 보여지며, 마치 이를 조롱이라도 하는 듯, "어떤 프랜차이즈건 3편에선 지금껏 당연하다 여겼던 진실이 파괴된다"는 대사를 영화 속 등장인물에게 부여하기도 한다. <스크림> 프랜차이즈는 이런 식의 '3부작' 언급 일색으로 무장되어 있다. 2편에선 '속편'의 법칙, 3편에선 '3부작'의 법칙을 이야기하며, 1편에선 자신이 속한 '호러영화' 장르의 속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식이다. 이런 식으로 <스크림>은 '자기 자신의 관찰하고 조소하는' 새로운 형식의 장르 영화 프랜차이즈가 되려하고 있는데, 이 방향성에 대한 찬반 여부와 관계없이, 전혀 생각지도 못한 대담한 시도라는 점은 높이 사줄 만 할 것이다. <스크림>이 '3부작' 프랜차이즈의 구조 내에서 주목받아야 할 부분도 바로 이런 '자신을 의식하는' 방향성에서 읽어낼 수 있는데, '미리 기획된' 3부작이 아닌, '3부작이 되기 위해 3부닥을 만들어낸', 역사상 가장 인위적인 '3부작' 프랜차이즈라는 점에서 언제까지고 돌출적인 케이스로 지목될 만한 것이 바로 이 <스크림> 프랜차이즈인 것이다. '1+2'의 새로운 공식 체계, <매트릭스> <매트릭스> 1편이 대단한 성공과 반향을 불러 일으키고 난 뒤, 영화의 각본/감독을 만든 워쇼스키 형제는 속편의 제작계획을 발표하면서, "우리는 한편의 전편(prequel)과 한편의 속편(sequel)을 만들어낼 수도 있고, 두 편의 속편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라고 밝힌 바 있다. 결국 동시 촬영된 2편의 속편은 모두 '속편'이 되어버렸지만, 이는 '1편'으로부터 더 이전의 이야기를 다루는 '전편'이 과연 상업성이 있을까 하는 의구심 - 실제로 <매트릭스> 1편은, '더 이전의 이야기'가 있는 듯한 대사나 상황이 설정되어 있다 - 에서 비롯된 것으로 여겨지며, 오히려 '전편'+'속편'의 구조가 더 나은 결과를 낳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을 남기고 있다. <매트릭스> 3부작의 구조를 단적으로 말하자면 '1+2'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분명 1편과 2편 사이에는 <스타워즈> 1편과 2편 사이만큼의 시간/상황적 간극이 벌어져 있으나, 2편과 3편은 완전히 이어져있는 이야기구조로써, 2편을 보지 않으면 3편을 전혀 이해할 수 없고, 2편에서 생겨난 의문점과 구성점을 3편이 해결해주고 있는 식의 '보완적 구성'까지 행해지고 있다. 이 새로운 구조는 의외로 답답한 느낌이 들게 하고, 특히 3편의 개별성을 현격히 떨어뜨리는 결과를 낳게 되었는데, 흥행과 비평적 평가도 이와 정확히 일치하여, <매트릭스>의 3편은 2편의 절반 수준의 흥행수익만을 거두고, 특히 비평면에서 철저하게 참패해 프랜차이즈 자체의 매력과 신비성을 감소시켰다는 중론을 이끌어냈다. 이런 탓에 이 '1+2'의 '3부작' 프랜차이즈 구조는 한 동안 메인스트림 영화계에서 볼 수 없을 것이란 예상도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시대 설정의 3가지 양상, <백 투 더 퓨쳐> 로버트 제멕키스의 대히트 SF/코미디 <백 투 더 퓨쳐>는 과연 '3부작일 수 밖에 없는' 소재 변환을 보여주고 있다. 바로, 1편은 30년 전의 과거를 여행하는 주인공의 이야기, 2편은 30년 후의 미래를 여행하는 주인공의 이야기, 그리고 마지막 3편은 1, 2편의 무대가 되었던 마을이 '탄생'되는 모습을 관찰할 수 있는 '100년 전 서부시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것. 각본을 쓴 제멕키스와 밥 게일 콤비는 이 '3부작' 구조를 미리 기획한 듯, 1편의 엔딩에 'To Be Continued'라는 자막을 넣기까지 했는데, 실상은 알 수 없지만 - 2편이 별다른 이유없이 1편으로부터 5년 뒤에나 제작에 들어갔다는 점은 어딘지 미심쩍다 - 적어도 기획면에서는 가장 효율적이고 안정적인 결과를 낳았다는 것이 중론이다. 이렇듯 '완전히 다른' 시대적 배경에 놓인 '같은 인물'이라는, 각 편마다의 개별성을 현격하게 강조시킨 구성 덕택에 <백 투더 퓨쳐> 프랜차이즈는 모두 고른 비평적 평가를 얻었으며, 특히 <매트릭스> 프랜차이즈와 동일한 '2, 3편의 동시 촬영' 방식을 택하면서도, <매트릭스> 프랜차이즈처럼 '이어지는 이야기'로써의 방향을 택하지 않고 전혀 다른 두 편의 영화를 탄생시킨 점은 주목할 만한 성과일 것이다. 이 밖에, '굳이 3부작이 되려는 의도'는 없었지만, 갖가지 외부적 상황 탓에 '3부작'이 되어버린 <대부> 프랜차이즈 - 3편을 제작하지 않으면, 전혀 다른 감독에게 3편 제작을 맡기겠다는 파라마운트사의 협박 탓에 3편을 만들게 되었다고 <대부>의 감독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는 밝히고 있다 - 나, 더 만들어낼 수도 있었지만, 감독과 제작자, 배우 간의 '합의'에 의해 3편에서 제작이 멈추어 '3부작'이 되어버린 <인디아나 존스> 프랜차이즈, '3부작'이긴 하지만, 비슷한 캐릭터를 다른 영화에서 몇 번이고 중복해 도무지 '3부작'으로 그친 듯한 느낌이 들지 않는 세르지오 레오네-클린트 이스트우드 콤비의 <무법자> 프랜차이즈 등이 주목할 만한 '3부작'의 양상들이며, 위에 언급한 '3부작' 영화들이 일반적인 무차별 '프랜차이즈'에 비해 훨씬 '수준높은' 프랜차이즈 형식임이 널리 홍보되어, 근래 들어서는 이들 '미리 기획된' 3부작 프랜차이즈가 모종의 유행처럼 번져가고 있는 상황이다. 이문원 기자 fletch@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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