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용띠 위에 개띠>

연극 상연일자를 먼저 보신 분들이라면, 먼저 절대 잘못 보시거나, 오타가 난 것이 아님을 알려드린다. <용띠 위에 개띠>는 2003년 3월 22일부터 상연된 연극이 맞고, 2004년 9월 26일에 '일단 막을 내리는' 것이 맞다. 더 놀랄 만한 이야기를 하자면, <용띠 위에 개띠>는 잠깐씩의 틈만 갖고 장장 6년째 상연되고 있는 연극이며, 벌써 연극공연으로써는 믿기지 않을 정도인 20여만명의 관객을 동원, 그리고 이미 1900회를 훌쩍 뛰어넘어 2000회째로 넘어가는 와중에 놓인 대히트 연극이라는 것. '고급폭소극'이라는 부제 하에 연일 쾌속질주하고 있는 <용띠 위에 개띠>의 진정한 매력은 과연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아마도, 1990년대 이후 국내 모든 예술계의 화두로 작용해왔던 '남녀평등'의 문제를 가장 날렵하고 유쾌하면서도 신랄하게 파헤쳐낸 아이디어를 들 수 밖에 없을 듯. <불 좀 꺼주세요>로 스타 극작가가 된 이만희의 극본은 52년 용띠인 만화가 나용두와 58년 개띠인 잡지사 기자 지견숙의 사랑 이야기를 실로 독창적인 시선을 통해 풀어내고 있다. 취재차 첫만남을 갖고, 어느 야구선수의 출신교가 어딘지를 '내기'하다 결혼하게 된 나용두와 지견숙. 이 둘은 숱한 의견대립을 겪으면서도 이를 모조리 '내기'라는 형식에 의해 결론짓고 모든 일을 진행시켜 나간다. '내기'의 승자가 모든 선택권을 갖고, 패자는 말없이 승자의 견해에 찬동하고 이를 따라야 한다는 것. 결국 '남녀평등'이라는 주제를 놓고 벌어지는 모든 종류의 논쟁, 토론, 관점의 문제는 전부 불완전할 수 밖에 없고, 모든 일을 '내기'라 불리우는 절대적 도박형식에 기대어 풀어나가야만 진정한 의미에서의 '남녀평등'이 이루어진다 주장하는 <용띠 위에 개띠>의 모티브는, 6년여에 걸쳐 지긋지긋할 정도로 되풀이 언급되었음에도 여전히 도발적이며, 기발하고, 유쾌하며, 기묘한 종류의 '안온감'을 선사해준다. <불 좀 꺼주세요>, <등신과 머저리>의 이도경과 <강제결혼>, <화니>의 백채연이 절묘한 호흡으로 이번 2003∼2004 시즌 공연마저도 성공으로 이끌어내고 있으며, '이미 볼 사람은 다 본 연극'이 갖는 관객 확보의 딜레마를 유연하게 해결해주고 있다. 이도경의 '나용두'와 백채연의 '지견숙'은 지금까지 등장했던 그 어떤 나용두, 지견숙보다도 더 'warm-hearted'적이다. 1930∼40년대의 고전 스크루볼 코미디를 본다는 느낌이 든다면, 그것은 이번 이도경-백채연 커플만이 줄 수 있는 남다른 미덕일 것이다. (장소: 대학로 이랑씨어터, 일시: 2003.03.22∼2004.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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