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적인 무더위가 시작되면 많은 사람들은 일년에 한번뿐인 휴가를 손꼽아 기다린다. 하지만 재벌 총수들이나 대기업 최고경영자들은 다르다. 일반인들이 보기에 이들은 돈도 많고, 시간도 마음대로 쓸 수 있을 것 같아 ‘특별한 휴가’를 보낼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사정을 그렇지 않다. 그렇다면 재계 주요 그룹 총수들은 여름휴가를 어떻게 보낼까. 대기업 총수나 CEO들 가운데 올 여름 휴가계획을 ‘별도로’ 세워놓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취재 결과, 대부분의 총수들은 오히려 일반인들보다 더욱 검소하게 여름휴가를 보낸다는 전언이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등 재계 총수들이 올 여름휴가를 포기하고 하반기 경영구상에 전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총수에게 휴가는 없다?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은 ‘에브리데이 할러데이, 에브리데이 워킹’이라는 자신의 스타일대로 올 여름휴가를 따로 마련해 놓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에 올해도 마찬가지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특별한 휴가 계획 없이 일단 휴식을 취할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그동안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와 관련해 잦은 해외 출장 등으로 심신이 매우 지쳐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이 회장은 평소와 마찬가지로 자택에서 독서를 하고, 즐겨하는 유명인사들과의 만남의 자리를 가질 계획이다. 특히 차세대 성장 동력 찾기에 고심하고 있는 만큼 미래 성장사업과 관련한 하반기
경영구상에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삼성그룹 관계자는 “회장님 일가의 여름 휴가 계획은 지극히 개인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공식적으로 언급할 문제는 아니다”면서도 “여름 휴가를 따로 챙기지는 않지만 휴가는 다녀오지 않겠냐”고 말했다.
항공업계 CEO들에게 여름휴가는 그야말로 그림의 떡이다. ‘한장의 표라도 더 팔아야 하는 연중 최대 성수기에 최고책임자인 사장이 자리를 비울 수 없다’는 것이 항공업계의 현실이다. 실제 아시아나 박찬법 대표이사는 지난 2001년 이후로 한번도 휴가를 가지 못했다. 올해도 예외가 아니다.

조양호 한진그룹(대한항공) 회장도 여름휴가를 챙기기 보다는 일에 투자하는 스타일이다. 특히 업무상 해외 활동이 활발한 까닭에 굳이 여름휴가를 따로 이용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관계자의 설명이다.
한진그룹 관계자는 “조 회장은 여름휴가를 챙기는 스타일이 아니다”면서 “올해 여름 휴가철도 대외 업무 등으로 바쁜 시간을 보낼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역시 여름휴가는 힘든 상황이다. 현대가(家) 경영권 공방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는 탓에 마음 편히 휴가를 보낼 여력이 없을뿐더러 지난 달 현대증권의 고문직 파문으로 인해 마음고생을 좀 하겠다는 것이 그룹 안팎의 시각이다.

올해 환율과 파업 등으로 유독 어려움을 겪었던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은 항소심 선고공판 등으로 휴가는 생각조차 못하는 상황이다.

재계 관계자는 “각 그룹 회장들이 1년 내내 업무와 각종 대외 행사로 워낙 많은 곳을 바쁘게 움직이고 있어 굳이 여름휴가를 따로 계획해 해외여행을 떠난다든지 하는 일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면서 “특히 삼성그룹이나 현대차그룹 등 그룹 안팎의 악재가 겹친 총수들은 그나마 머리 식힐 여력조차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최악의 여름휴가를 보낼 것으로 예상되는 총수는 단연 한화그룹의 김승연 회장이다. 김 회장은 그 동안도 여름휴가를 챙기지 않는 것으로 유명한데 올해는 휴가를 가고 싶어도 갈 수 없게 됐다. ‘보복폭행’ 사건으로 서울 구치소에 지내던 중 우울증과 불면증, 심장질환 등의 문제로 지난 12일 수원에 위치한 아주대병원에 긴급 입원한 것이다. 한화그룹 관계자는 “김 회장이 지난 2일 징역 1년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은 뒤 건강이 급격히 안 좋아져 이번주 초부터는 독방에서 구치소 병동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아왔다. 하지만 직원들의 사기를 염려해 외부병원 치료를 거부해왔다"고 말했다.

“휴가는 일 혹은 가족과 함께~”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매년 여름휴가를 이용해 해외 사업장을 방문하거나 국내에서 머물면서 하반기와 내년 상반기 경영 구상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경영상 꼭 챙겨야 할 사안이 없을 때는 여름휴가 만큼은 업무에서 손을 떼고 가족과 함께 편안한 휴식을 취한다는 것이 재계 관계자의 설명이다.

SK그룹 관계자는 “최태원 회장은 일단 휴가를 받으면 업무는 잊고 그 동안 경영 전반적으로 바빠 챙기지 못했던 가족에게 성실한 분이다”면서 “올해는 해외에 나가실 지 아니면 국내에 머무르실지 모르겠지만 어디서 휴가를 보내시든 가족과 함께 할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금호 아시아나그룹 박삼구 회장은 매년 여름 2~3일 동안 짬을 내 어머니께 효도하는 일로 휴가를 대신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올해 여름휴가 역시 전라도 광주에 살고 있는 모친을 찾아뵐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금호그룹 관계자는 “매년 휴가를 가신 만큼 올해 역시 여름휴가를 가실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광주에 계신 모친을 찾아뵙고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실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구본무 LG 회장은 휴가를 국내에서만 보내는 것으로 유명하다. 구 회장은 보통 7월말쯤 휴가에 들어가 5∼7일정도 가족과 시간을 보내곤 한다. 올해도 예년과 마찬가지로 서울 한남동 자택에서 쉬면서 하반기 경영구상에 몰두할 것으로 알려졌다. 휴가 기간중 구상한 내용은 8월 혹은 9월쯤 경영지침 발표를 통해 실천에 옮겨지는 게 그 간의 관행이었다고 LG그룹 관계자는 전했다. 올 여름 휴가에는 그룹의 사업역량 강화방안을 두고 고민할 전망이다. 줄 곳 강조해 온 일등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해 단기 실적보다 장기성장을 위한 비전을 제시할 것으로 예상된다.

유통명가 롯데그룹의 신격호 회장도 가족과 함께 휴가를 보내는 스타일이라는 게 재계의 전언이다. 하지만 올해에는 롯데관광과 태광산업 등과 소송으로까지 치닫는 등 가족 간에 갈등이 여러차례 발생해 재계관계자들은 ‘가족과 함께 보내는 휴가가 가능할 것’인지 조심스럽게 관측 하고 있다.

이 밖에 평창 동계올림픽유치에 올인했던 박용성 두산중공업 회장은 해외 IOC위원들을 만나 평창를 지지해준 것에 대한 답례를 하기 위해 출국하며 조석래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은 이달 말 제주도에서 열리는 하계세미나를 휴가로 대체할 예정이다.

재계 관계자는 “직원들이야 홀가분하게 휴가를 떠나면 그만이지만, 휴가를 떠나도 마음 놓고 쉴 수 없는 것이 그룹 총수의 입장 아니겠냐”면서 “휴가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일에 매진하는 경우가 재계 총수들의 대부분이다”고 전했다.

저작권자 © 시사포커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