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 논란에도 “장례기간엔 추모하자”던 이해찬, 고소인 회견 연 뒤엔 “사과드린다”

[시사포커스 / 오훈 기자]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가 13일 서울 중구 서울시청에서 열린 고 박원순 서울시장 영결식에서 조사를 하고 있다.
[시사포커스 / 오훈 기자]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가 13일 서울 중구 서울시청에서 열린 고 박원순 서울시장 영결식에서 조사를 하고 있다.

[시사포커스 / 김민규 기자] 고 박원순 서울시장의 영결식이 13일 비가 내리는 가운데 엄수됐지만 정작 그가 세상을 떠났음에도 정치권에서 일고 있는 박 시장 관련 논란은 점점 더 커져가고 있어 과연 어떤 결과로 흘러갈 것인지 벌써부터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 박원순 사망 속 ‘추모’ 방점 두던 與…진상규명 촉구하는 野

앞서 n번방 사건을 비롯해 그동안 여성을 상대로 한 성범죄에 엄정 대응 방침을 천명해왔던 당청은 박 시장에 대한 성추행 고소와 관련해선 오히려 미온적 반응을 보이고 있는 반면 제1야당인 미래통합당에선 피해자 인권을 강조하면서 의혹 진상규명 필요성을 역설하는 상반된 목소리를 내놨다.

지난 10일 박 시장을 성추행으로 고소한 상황과 관련해 어떻게 당에서 대응할지 묻는 기자에게 ‘XX자식 같으니’라고 원색적으로 비난했던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13일 영결식 조사에서 고 박 시장에 대해 “순수하고 부끄러움이 많았던 사람”이라고 평한 데 이어 같은 날 최고위원회의에선 “최소한 장례 기간에는 서로 추모하는 마음을 갖고 공동체를 함께 가꿔 나가는 자세로 임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나마 김해영 최고위원만 이날 회의에서 “수도 서울이 예상치 못하게 권한대행 체제가 돼 당 지도부로서 국민께 사과드린다. 당 소속 고위공직자에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당 차원의 깊은 성찰과 대책이 필요할 것”이라고 사과했을 뿐 같은 당 진성준 의원은 MBC라디오에 나와 “피해를 기정사실화하고 박 시장을 가해자라고 하는 것은 사자 명예훼손”이라며 “섣불리 예단할 시점은 아니고 차분히 따져봐야 될 문제 아닌가. 다만 가해자로 지목되는 분이 부재인 상황에서 진실이 드러날 수 있는가 하는 문제가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급기야 친여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박원순 시장 고소인이 나경원 전 미래통합당 의원 비서 출신이란 가짜뉴스를 확산시키는 데 이어 박 시장 비판 성명을 냈던 한국여기자협회를 비판하거나 ‘원조 미투’ 격인 서지현 검사를 향해서도 “네 미투 때문에 사람이 죽었으니 책임지라”는 일갈하는 등 전 방위로 분노의 화살을 퍼부었는데, 반대로 과거 서 검사의 ‘미투’ 폭로 당시 응원했었던 민주당 여성 의원들은 물론 취임 100일 소회에서 김학의, 장자연, n번방 사건 등을 언급하면서 무관용 대처를 공언했던 추미애 법무부장관 뿐 아니라 여성인권을 관장하는 여성가족부에선 여전히 침묵을 유지했다.

이 같은 이중적 행태를 꼬집어 통합당에선 강도 높게 정부여당을 성토하고 나섰는데, 하태경 의원은 통합당 내 청년문제 연구조직인 ‘요즘것들연구소’를 대표해 발표한 성명에서 “윤지오 사건 때는 팩트 검증도 소홀히 한 채 큰 목소리를 내며 각종 지원을 아끼지 않던 여가부가 이번에는 피해자에 대한 심각한 2차 가해가 진행 중임에도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며 “지난 10일 국회에서 피해자에 대한 2차 피해 방지를 조치해달라고 요청했지만 아무 답이 없는데 여가부는 친문 여성들만의 부처가 아니라 모든 여성을 위한 부처”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이에 그치지 않고 성일종 비대위원은 13일 비상대책위원회 회의에서 “추모가 끝난 후에는 여비서 성추행 의혹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진상규명도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 미투 열풍이 불 때 누구보다 적극적이었던 민주당도 동참해주리라 생각한다”고 입장을 내놨으며 김병민 비대위원은 “박 시장이 목숨까지 버린 이유가 뭔지 물어볼 권리가 있지만 기자의 질문에 이해찬 대표가 내놓은 대답은 적의에 찬 눈빛과 함께 내뱉은 막말이었고, ‘예의가 아니라’고 했는데 서울시민에 대한 예의를 아는지 모르는지, 이 대표 등 민주당은 고인 죽음을 둘러싼 경위 파악하기도 전에 생전 업적 기리기에 여념 없어 보인다”고 한 목소리로 민주당을 압박했다.

여기에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 역시 박 시장 조문을 취소한 데 이어 13일 비대위 회의 직후엔 “영결식이 끝나면 피해자에 대한 문제를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며 본격 공세에 나섰는데, 김은혜 대변인은 이날 논평에서 민주당을 향해 “피해 여성에 손을 내밀고 지켜주는 게 여성인권을 위해 싸워왔던 고인을 진정으로 추모하는 길”이라며 “스스로 언급하는 게 불편할 수 있으나 침묵하지 말라. ‘(피고소인 사망으로 인한) 공소권 없음’의 사법절차 뒤에 숨지 말라”고 촉구했다.

◆ 정의당도 ‘박원순’ 후폭풍? 조문 여부로 갈라진 진보진영

[시사포커스 / 박상민 기자] 정의당 심상정 대표와 류호정 의원의 모습.
[시사포커스 / 박상민 기자] 정의당 심상정 대표와 류호정 의원의 모습.

한편 범여권으로 꼽혀왔던 정의당도 박 시장 조문에 대해선 의외로 민주당과 일부 엇갈린 반응이 나오면서 논란에 휩싸였는데, 심상정 대표와 배진교 원내대표 등은 빈소를 찾아 고인을 애도한 데 반해 류호정 의원은 피해호소인과의 연대 차원에서 박 시장을 조문하지 않겠다고 밝혔으며 장혜영 의원도 마찬가지로 박 시장을 조문하지 않겠다고 천명했다.

그러자 당 내부에서 류 의원과 장 의원 등의 결정에 불만을 가진 일부 당원들이 연쇄 탈당에 나서기 시작했고, 정혜연 전 정의당 청년부대표는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당원들의 탈당이 이어지고 있는데, 탈당하겠다는 분들의 글을 보면서 우리 당이 어떻게 이런 지경까지 이르렀는지 참담함을 느낀다. 최소한 사람 된 도리에 맞게 할 말과 안 할 말을 가릴 줄 아는 정치는 어디 갔느냐”고 두 초선의원을 비판하기에 이르렀다.

다만 이 같은 탈당 행렬에 반발한 ‘탈당 거부’ 움직임도 일어나기 시작했는데, 일부 당원들은 ‘#탈당하지 않겠습니다’, ‘#지금은 정의당에 힘을 실어줄 때’란 해시태그를 달며 맞불을 놨고, 조문에 불참한 두 정의당 의원에 대한 지지를 공개 표명하거나 후원금을 보내는 이들도 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정의당 소속도 아닌 박 시장을 놓고 당내 파열음은 점점 커지고 있다는 건데, 일단 김종철 선임대변인은 같은 날 오전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당에서 메시지나, 이런 행동이 통일되는 게 좋긴 하나 심 대표가 조문해서 공식적으로 조의를 표하되, 피해 호소인이 2차 가해되는 것은 막아야 한다는 두 가지를 함께 표하기로 했다”며 “실제로 (탈당이) 있는데 그렇게 많진 않다. 고맙다고 표현하는 분들도 계시기 때문에 저희로선 진통 과정, 질서 있는 토론과 인식을 맞춰가는 과정이라 본다”고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하지만 정의당은 ‘웰컴투비디오’ 운영자 손정우 씨에 대한 미국 송환 불허 판정을 비판한 데 이어 ‘성폭력’으로 실형을 선고 받은 안희정 전 지사의 모친상에 문재인 대통령이 조화를 보낸 부분도 공식 논평을 통해 강도 높게 비판해왔을 만큼 비록 박 시장에 대한 의혹이 사실로 확인되진 않았으나 그간의 기조를 번복하기도 난감해진 상황인데, 그런 고민을 보여주는 듯 심 대표는 13일 상무위원회 직후 이번 탈당 사태와 박 시장의 장례방식 등에 대한 당 입장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엔 “장례가 끝난 다음에 말씀드리겠다”며 말을 아끼는 모습을 보였다.

◆ 朴 고소인 회견에 힘 받은 통합당…‘화들짝’ 이해찬 “피해 여성에 위로” 사과

13일 오후 서울 은평구 한국여성의전화에서 열린 서울시장에 의한 위력 성추행 사건 기자회견. 사진 / 김병철 기자
13일 오후 서울 은평구 한국여성의전화에서 열린 서울시장에 의한 위력 성추행 사건 기자회견. 사진 / 김병철 기자

이런 가운데 같은 날 오후 박 시장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고 고소한 전직 비서 A씨 측이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 등의 입장문 대독 형태로 ‘한국여성의전화’에서 기자회견을 열면서 상황은 급박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는데, 고소인은 “인간적인 사과를 받고 싶었다. 처음 그때 울부짖었어야 하고 신고했어야 지금의 제가 자책하지 않을 수 있을까 수없이 후회했다”고 호소한 데 이어 변호인을 통해선 “부서를 옮겨달라고 요청했으며 박 시장이 보낸 문자나 사진을 기자에게 보여준 적도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이날 회견에서 고소인 측은 박 시장이 집무실 안 내실이나 침실로 피해자를 불러 ‘안아 달라’면서 신체접촉하고 무릎에 나 있는 멍을 보고 ‘호’ 해주겠다면서 자신의 입술을 접촉했었다고 고소하게 된 이유를 구체적으로 표명한 데 이어 비서직을 수행한 4년간 범행이 지속됐을 뿐 아니라 다른 부서로 발령 난 뒤에도 지속됐다면서 그 근거로 2020년 2월 6일 심야에 박 시장이 고소인을 비밀대화방으로 초대한 화면도 함께 공개했다.

이에 그치지 않고 텔레그램 비밀대화방을 통해선 음란한 문자나 속옷만 입은 사진을 박 시장이 고소인에게 보내왔었다면서 이날 회견에 나선 이 소장은 그동안 피해자가 서울시 내부에 도움을 요청해도 ‘시장은 그럴 사람이 아니다’란 말만 들어 결국 8일 고소했고, 고소 사실 역시 모종의 경로를 통해 박 시장에게도 전달됐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고소인 측에서 상세한 내용을 공개하기 시작하자 통합당에서도 주호영 원내대표가 13일 오후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서울시장 비서실 문제에 관해 우리에게도 제보가 들어와 있다. 수사상황이 상부로 보고되고 상부를 거쳐 그게 피고소인(박 시장)에게 바로 전달된 흔적이 있는데 장례절차가 끝나면 그런 문제점을 살펴볼 계획”이라고 밝힌 데 이어 “은폐한다든지 왜곡하려고 하면 훨씬 더 큰 사건이 될 것”이라고 당청을 향해서도 경고했다.

상황이 심상찮게 돌아가자 이 대표는 이날 고위전략회의 직후 “피해를 호소하는 여성에게 위로를 전하고 이런 일에 이르게 된 것에 사과드린다”면서 한나절이 지나서야 강훈식 민주당 수석대변인의 브리핑을 통해 간접적으로 사과 의사를 표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장은 쉽게 가라앉을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이 대표는 박 시장 고소와 관련해 질문한 기자에게 자신이 모욕성 발언을 한 데 대해서도 앞서 강 대변인의 사과를 통해 수습에 나섰지만 기자협회는 13일 “당 대표 잘못에 수석대변인이 사과한 것은 진정성이 의심받을 수 있다”고 성명서를 내놓으며 이 대표의 진심 어린 사과를 요구하는 등 좀처럼 진화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어 박 시장 고소로 촉발된 이번 사태가 자칫 여당 전체를 뒤흔드는 사안으로 번지는 것 아닌지 벌써부터 그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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