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도발 속에 美 볼턴까지 ‘회고록’ 공개로 文 직격…野, 정국 주도권 잡을까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회고록 '그 일이 벌어진 방(The Room Where It Happened)'의 내용이 연일 미 정가와 세계 외교계를 흔들고 있다. 왼쪽은 2019년 9월 워싱턴의 한 싱크탱크 행사에서 발언 중인 볼턴의 모습. ⓒ뉴시스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회고록 '그 일이 벌어진 방(The Room Where It Happened)'의 내용이 연일 미 정가와 세계 외교계를 흔들고 있다. 왼쪽은 2019년 9월 워싱턴의 한 싱크탱크 행사에서 발언 중인 볼턴의 모습. ⓒ뉴시스

[시사포커스 / 김민규 기자] 북한이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시키고 북한군을 DMZ 내 GP에 다시 배치시키기 시작한 데 이어 대남확성기까지 설치하는 등 대남 도발 수위를 높여가고 있는 와중에 설상가상으로 미국에선 ‘대북 강경파’였던 존 볼턴 전 국가안보보좌관이 최근 회고록을 통해 과거 북미정상회담 등의 전말을 폭로함에 따라 청와대는 곤혹스러운 처지로 내몰리고 있다.

특히 볼턴 회고록에선 남북한 모두를 포함해 Korea란 단어가 무려 743번이나 나올 만큼 한반도 관련 내용이 상당히 많이 담겨 있는데, 싱가포르에서 개최된 1차 북미정상회담에 대해선 ‘한국의 창조물이었고, 북한이나 미국의 전략보다는 한국의 통일 어젠다와 관련 있는 위험한 연출’이라고 지칭하는 등 문재인 정권이 민감하게 반응할만한 평이 적지 않다보니 국내 정치로까지 논란의 불이 옮겨 붙고 있는 실정이다.

◆ 靑 직격한 ‘볼턴 회고록’…文 ‘한반도 운전자론’ 역풍 맞나

볼턴은 회고록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처음 만났던 2018년 6·12 싱가포르 미북정상회담을 제안한 인물은 당초 김 위원장이 아니라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었으며 심지어 문 대통령은 1차 북미정상회담 직전에 있었던 5월22일 백악관에서 열린 한미정상회담에서도 본인의 (싱가포르 회담) 동참을 요청했다고 꼬집었다.

또 문 대통령은 하노이에서 열린 2차 미북정상회담이 ‘노딜’로 끝난 이후 지난해 4월11일 한미정상회담에서 “세기의 정상회담이 될 수 있는 극적인 장면을 원한다”며 판문점 등에서의 3차 미북 정상회담 필요성을 역설했으나 트럼프 대통령은 “한 번의 회담이 결론 없이 끝나는 것은 문제가 안 되지만 아무도 두 번이나 걸어서 나가길 원치 않는다”면서 비핵화 합의가 우선이란 취지로 거절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당시 정 실장이 언론에 발표한 내용에선 마치 트럼프 대통령이 3차 미북회담을 개최하기로 의견을 나눈 듯 나왔다는 점에서 논란이 일고 있다.

비록 2019년 6월 30일 판문점에서의 남북미 3자 회동이 결국 성사되긴 했지만 이 과정에서 문 대통령은 미국과 북한 측 모두 미북 간 양자 회동을 원했는데도 자신의 참석을 거듭 요청하면서 트럼프 대통령을 설득한 것으로 전해졌고 볼턴은 내내 계속된 문 대통령의 이 같은 행보를 “사진 촬영에 끼어들려고 한 것”이라고 날선 비판을 가했다.

이에 그치지 않고 볼턴은 회고록에서 미국과 달리 영변 핵시설 폐기가 비핵화의 의미 있는 조치라 보던 문 대통령의 시각에 대해서도 “(북한의) ‘행동 대 행동’과 매우 비슷하게 들리는 중국의 ‘동시적이고 병행적인 접근법’을 문 대통령이 지지하는 것만큼이나 넌센스”라며 ‘조현병 환자 같다’는 원색적 표현으로 비난하기도 했다.

한 발 더 나아가 볼턴은 한국전쟁 종전선언에 대해서도 “처음엔 종전선언이 북한의 아이디어라고 생각했는데 후에 이것이 자신의 통일 어젠다를 뒷받침하기 위한 문 대통령의 아이디어라고 의심하기 시작했다”며 실상 미국의 이해관계와는 관계없는 문 정권 아이디어란 점을 집중적으로 지적했다.

◆ “볼턴 주장은 왜곡” 외친 黨靑, 무엇이 왜곡인지 반박하진 않아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볼턴 회고록 내용이 사실 왜곡이라고 주장했다. 사진 / 오훈 기자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볼턴 회고록 내용이 사실 왜곡이라고 주장했다. 사진 / 오훈 기자

비단 북한 관련 내용 외에도 볼턴은 방위 분담 협상 중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의 방위비 분담금으로 50억 달러 합의를 얻어내지 못한다면 주한미군을 철수시키라”고 발언했다든지 한일 갈등 문제에 대해서도 “문 대통령이 국내 상황이 힘들 때 일본을 이슈화하기 위해 애썼다. 역사 문제를 일으킨 것은 일본이 아니라 문 대통령”이라고 주장하는 등 회고록에서 외교적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은 주장까지 펼쳐 그 후폭풍이 관련국 정계로 일파만파 확산되고 있다.

특히 여러 차례 볼턴으로부터 실질적인 북한 비핵화보다는 통일 어젠다에만 관심을 뒀다는 비판을 받은 청와대에선 즉각 격앙된 반응을 쏟아내고 있는데, 정의용 실장은 22일 브리핑을 통해 볼턴을 겨냥 “사실을 크게 왜곡하고 있다. 이런 부적절한 행위는 앞으로 한미동맹 관계에서 공동의 전략을 유지, 발전시키고 양국의 안보이익을 강화하는 노력을 심각하게 저해할 수 있다”고 질타한 데 이어 “정부 간 상호 신뢰에 기초해 협의한 내용을 일방적으로 공개하는 것은 외교의 기본원칙을 위반한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 뿐 아니라 청와대에선 문 대통령을 조현병 환자에 빗댄 볼턴을 향해 “본인이 그럴 수도 있는 것 아닌가”라며 날선 반응을 내놨고, 전 청와대 국정기획상황실장으로서 6·30 판문점 남북미 정상회동의 실무 책임자도 역임했던 윤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까지 같은 날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할 말이 없어서 안 하는 게 아니라 볼턴의 주장은 사실관계에 부합하지 않는 부분이 너무 많다. 사실을 일일이 공개해 반박하고 싶지만 볼턴과 같은 사람이 될 순 없어 참는다”고 볼턴에 맹공을 퍼부었다.

이처럼 청와대부터 여당까지 미국의 전직 국가안보보좌관 회고록 내용에 굳이 격한 반응을 보인 이유로는 최근 꼬여가는 대북관계 탓에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이 떨어지고 있는 상황 등을 의식한 결과로 풀이되고 있는데, 실제로 리얼미터가 YTN의 의뢰를 받아 지난 15~19일 전국 2509명에게 조사한 6월 3주차 문 대통령 국정수행 지지율(95%신뢰수준±2.0%P,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참조)은 전주보다 4.8%P 내린 53.4%로, 4주 연속 하락세를 벗어나지 못한 것은 물론 최근 3달 사이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시점에 악재로 작용할 대외변수가 또 불거지자 진실공방으로 확산되기 전에 청와대와 여당이 선제적 차단에 나선 것으로 비쳐지는데, 일단 22일 정 실장이 “미국 정부가 위험 사례를 방지하기 위한 적절한 조처를 해줄 것을 기대한다”고 강조한 데 이어 청와대도 미국 국가안전보장회의에 볼턴 주장이 허위사실이란 내용의 입장을 전한 이후 트럼프 대통령이 23일(한국시간) 청와대 발표와 관련된 한국 언론 기사를 트위터에 리트윗했고, 앞서 백악관에서도 볼턴 회고록을 출간 전에 사전 검토한 뒤 110여 곳의 남북한 관련 내용을 포함해 414곳을 수정·삭제해야 한다고 법원에 요청한 것으로 밝혀졌다.

◆ 통합당 등 야권, 볼턴 회고록 계기로 ‘文 대북정책’ 공세 본격화

[시사포커스 / 박상민 기자] 미래통합당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22일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시사포커스 / 박상민 기자] 미래통합당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22일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한편 이번 사태는 야권엔 때마침 북한의 대남위협 상황과 더불어 정국 반전을 노릴 만한 또 다른 기회로 작용하고 있는데, 미래통합당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은 22일 회의에서 “볼턴 전 보좌관의 회고록에서 평화프로세스 이면에 어떤 과정이 있었는지 공개되고 있지 않느냐. 볼턴 회고록 정도면 전세계가 한반도를 주시하고, 문 정부와 평화프로세스가 허황된 쇼였는지 우리가 주도한 상황이었는지 물어보게 될 것”이라며 “납득할 만한 설명과 소상한 입장을 밝혀주는 게 국민을 안심시키는 길”이라고 문 대통령에 직격탄을 날렸다.

연이어 23일에도 김 위원장은 6·25전쟁 납북인사가족협의회 간담회에서 “볼턴이 말한 대로 북한에 대해선 신뢰를 갖고 얘기하기 어렵다. 대화를 주장하는 정부 역시 특정한 정치 목적에 사로잡혀 있어 구체적 사안에 진척이 없다”며 거듭 볼턴 회고록을 통해 문 정권의 대북 기조를 비판했고 같은 당 박진 외교안보특위 위원장은 앞서 22일 “볼턴 회고록을 읽어보니 문 정부의 즉흥적이고 자가당착적 외교가 한미관계를 파탄시키고 북한 비핵화는 더 어렵게 만들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여기에 전임 박근혜 정부에서 외교부 1차관과 국가안보실 1차장 등을 역임했던 조태용 통합당 의원 역시 22일 “김정은의 비핵화 의지도, 종전선언에 대한 북한의 구상도 모두 문 정부의 헛된 기대 속에서 꾸며진 허구였음이 드러나고 있다. 국민은 물론 국제사회조차 북한 비핵화 과정과 방향에 대해 의구심을 느끼고 있다”며 문 정권을 몰아세웠고, 같은 당 황규환 부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남북미 정상회담에서 북미 모두 문 대통령 참석을 원치 않은 걸 알고서도 정부가 운전자란 그림을 만들기 위해 매달렸다는 게 충격”이라며 “그토록 한반도 운전자론을 운운하고 싶다면 운전자를 위협하는 북한에 당당히 대응해야 할 것”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급기야 윤상현 무소속 의원도 23일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볼턴 회고록과 관련 “정 실장은 볼턴이 사실을 왜곡했다고 비난하면서도 정부 간 협의 내용을 일방적으로 공개했다고 (모순된 주장을) 했다. 문 정부의 초라한 저자세 대북외교의 진실은 모조리 외면하고 그저 볼턴에게 인신공격 퍼붓는 데만 몰두한다”며 “청와대와 정 실장이 계속 볼턴을 거짓말쟁이로 비난하려면 미국 법원에 고소하라”고 당청 비판에 동참했다.

아예 윤 의원은 북한이 대남방송 확성기를 다시 설치하고 대남전단 준비까지 들어간 부분을 들어 “남북합작 가짜평화 쇼는 끝났다. 감독은 리바이벌 쇼를 하자고 하지만 주연배우 김정은은 이를 거부하고 무대까지 직접 부숴버렸다”며 “전방에 확성기를 응징보복 작전태세를 재점검하라”고 문 정부에 촉구했는데, 여당에선 “책 판매에 혈안 된 볼턴 말을 믿느냐. 한반도 평화마저 정략적 관점으로 접근해 정부여당에 대한 공격수단으로 삼는 말에 참담하다”고 맞서고 있지만 급기야 북한까지 23일 노동신문을 통해 “이젠 휴지장 돼버린 합의를 갖고 우리를 걸고들 생각 말아야 한다”고 나서고 있어 문 정권은 말 그대로 사면초가에 처한 형국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정부(통일부)에선 23일 대북전날을 전날 날렸던 국내 탈북단체에 대해선 “깊은 유감을 표명하고 경찰 등 유관기관이 협력해 이런 행위에 엄정 조치할 것”이라고 경고한 반면 정작 대남전단을 날리겠다는 북한에는 “하루 빨리 비생산적인 적대행위를 중단하고 한반도 평화 증진을 위해 남과 북이 머리를 맞대야 한다”고 호소하기만 하는 태도를 견지하고 있는데, 나날이 대남도발 수위가 높아져 가는 국면 속에서 볼턴 회고록 공개 여파와 더불어 여론이 향후 여야 중 어느 쪽 손을 들어줄 것인지 그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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