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파 사태에 ‘사후약방문’ 北 비판 나선 靑·與…北 도발, 통합당엔 주도권 쥘 기회로

17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회의(위)와 같은 날 오후 국회에서 열린 미래통합당 외교안보특위 회의(아래)의 모습. 사진 / 오훈(위), 박상민(아래) 기자
17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회의(위)와 같은 날 오후 국회에서 열린 미래통합당 외교안보특위 회의(아래)의 모습. 사진 / 오훈(위), 박상민(아래) 기자

[시사포커스 / 김민규 기자] 김여정의 잇따른 대남 비난 담화에 이어 지난 16일엔 개성에 있는 남북공동연락사무소까지 북한이 폭파 철거하면서 그간 정부가 공들여온 한반도 평화 구상이 사실상 물 건너가는 모양새다.

온갖 비난에도 좀처럼 직접적 대응을 자제하던 청와대조차 당장은 남북경협 추진 등이 어려워졌다고 판단했는지 17일 집권 이후 거의 처음으로 북한의 태도를 강하게 질타하는 이례적 반응을 내놨고, 여당 역시 야당과 마찬가지로 북한을 강도 높게 비판하고 나서면서 향후 대북 기조 역시 이전과는 다른 양상으로 흘러갈 것인지 그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 “선 넘었다…예의 갖춰라” 대북 강경 기조로 돌아선 당정청?

앞서 옥류관 주방장까지 나섰던 북한의 수위 높은 대남 비난에도 문재인 정부에선 오히려 대북전단 살포에 엄정 대응하고 철도연결로 남북관계 돌파구를 마련하겠다는 입장까지 지난 16일 내놨지만 이 같은 러브콜이 무색하게 같은 날 전격적으로 북한이 개성의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시켜버렸다.

이에 그치지 않고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은 17일 ‘철면피한 감언이설을 듣자니 역스럽다’는 제목의 담화에서 문 대통령이 내놨던 6·15선언 20주년 메시지 내용을 꼬집어 “뻔뻔스러운 내용만 구구하게 늘어놨다. 오늘 북남관계가 미국의 농락물로 전락된 것은 전적으로 남조선당국의 집요하고 고질적인 친미사대와 굴종주의가 낳은 비극”이라고 재차 직격탄을 날렸다.

이 같은 북한의 행보에 정부여당도 더 이상 이전처럼 대하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는지 맞불 성격의 발언을 당정청이 한꺼번에 쏟아내기 시작했는데, 먼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이해찬 대표는 17일 비대위 회의에서 “판문점 선언의 상징을 폭파하는 북쪽의 행동은 금도를 넘었다. 북한의 어떠한 추가 도발에도 강력 대응할 태세를 갖추라”고 정부에 주문했으며 김태년 원내대표도 “압박 수위를 높이는 것도 지켜야 할 정도가 있다. 북한의 도발 행위를 강력 규탄한다”고 한 목소리로 성토했다.

심지어 문 대통령의 복심이자 지난 2018년 대북 특사까지 다녀온 바 있는 남북정상회담 주역인 윤건영 민주당 의원조차 17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북한을 향해 “무례하다. 국가 정상 사이엔 지켜야 할 선이 있고 상호 신뢰가 깊든, 얕든 지켜야 하는 것”이라며 “선을 지키지 않으면 한 치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고 역사는 그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 분명히 기록할 것”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여기에 전날 국가안전보장회의를 긴급 개최한 뒤 정의용 안보실장을 통해 북한에 경고성 메시지를 보냈던 청와대에서도 이날 오전 윤도한 국민소통수석 브리핑으로 북한을 재차 비판했는데, 김여정 담화에 대해선 “무례한 어조로 폄훼한 것은 몰상식한 행위고 북측의 사리 분별 못하는 언행을 우리로선 더 이상 감내하지 않을 것”이라며 “앞으로 기본적 예의를 갖추기 바란다. 최근 북측의 일련의 언행은 북에도 도움 안 될 뿐 아니라 이로 인한 모든 사태의 결과는 전적으로 북측이 책임져야 할 것”이라고 엄중 경고했다.

이 뿐 아니라 윤 수석은 상황 개선을 위해 지난 15일 대북특사 파견을 비공개 제의했던 사실을 북한이 ‘불괘하다’며 17일 일방적으로 공개한 데 대해서도 “전례 없는 비상식적 행위이며 대북특사 파견 제안의 취지를 의도적으로 왜곡한 처사”라며 “강한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뒤이어 비슷한 시각 국방부에선 북한이 9·19 남북 군사합의 파기를 예고한 데 대해 “실제 행동에 옮겨질 경우 북측은 반드시 그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입장을 내놨으며 통일부에선 금강산 관광지구와 개성공단에 군부대를 배치해 군사지역화 하겠다는 북한군 총참모부를 겨냥 “남북관계를 2000년 6·15남북공동성명 이전의 과거로 되돌리는 행태이며 우리 국민의 재산권에 대한 명백한 침해로 북측은 이에 대한 응분의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 김연철 통일부 장관까지 사의 표명…文 대북정책 전환점 될까

김연철 통일부 장관이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사진 / 오훈 기자
김연철 통일부 장관이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사진 / 오훈 기자

급기야 17일엔 김연철 통일부 장관까지 “저는 남북관계 악화의 모든 책임을 지고 물러나기로 했다. 지금 상황에선 분위기 쇄신하는 계기를 마련하는 것도 책무”라며 사의를 표명했는데, 김 장관의 퇴진을 계기로 문 정부의 대북정책도 이전과 달라지는 게 아니냐는 시선도 없지 않은 실정이다.

비록 여당 중진인 노웅래 의원은 17일 페이스북을 통해 “전쟁 중에도 대화는 계속돼야 하고 장수도 바꾸지 않는 법”이라며 김 장관에 유임을 주문하기도 했고, 청와대에서도 김 의원의 사의 표명과 관련해 “국무위원의 사표수리는 인사권자의 결정사항”이라고 말을 아끼고는 있지만 당분간 남북관계가 경색 국면에 접어드는 것은 불가피한 만큼 사표를 수리하고 새 장관을 내세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무엇보다 연이은 북한의 경고에도 유화적 대응으로 일관하다 공동연락사무 폭파란 초유의 사태까지 직면하게 됐다는 점에서 단지 김 장관에 그치지 않고 청와대 안보라인 전체로 책임론이 확산될 수도 있는 상황인데, 실제로 미래통합당에선 강대식 의원이 17일 페이스북을 통해 “지금 문 대통령이 보여줄 힘은 잘못된 보좌를 한 외교안보라인의 전면적인 인적 쇄신으로 책임을 묻는 용기”라고 촉구했으며 심지어 여당에서도 김홍걸 의원이 “야당 요구에 응할 필요는 없지만 새 출발한다는 차원에서 변화가 있어야 한다. 외교안보라인이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결렬 이후 보여준 성과가 충분하다고 보는 국민이 많지 않다”고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물론 문 대통령이 이날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보나 정세현 전 통일부장관, 박지원 전 의원 등 외교안보 원로들과 가진 청와대 오찬 간담회에서도 이전과 달리 대북 강경책으로 전환하기보다는 북한 설득 작업을 포기하지 않을 뜻을 내비친 것으로 알려진데다 민주당 이해찬 대표 역시 강경 발언을 쏟아낸 같은 날 최고위 회의에서 “더 이상의 도발을 중지하고 대화에 나서라”라며 여전히 대화의 문을 열어뒀다는 점에서 앞으로도 정부의 대대적인 정책 변화나 안보라인 쇄신은 기대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없진 않은데 다만 북한이 예고한 추가도발이 공동연락사무소 폭파를 넘어서는 수준으로 이뤄질지 여부가 주요 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 ‘핵무장’까지 거론한 통합당…정국 반전 계기 삼을 수 있을까

박진 미래통합당 외교안보특위 위원장이 17일 오후 외교안보특위 회의에서 북한에 의해 전날 폭파된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가 촬영된 위성사진을 보여주고 있다. 사진 / 박상민 기자
박진 미래통합당 외교안보특위 위원장이 17일 오후 외교안보특위 회의에서 북한에 의해 전날 폭파된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가 촬영된 위성사진을 보여주고 있다. 사진 / 박상민 기자

이런 가운데 총선 패배로 정국 주도권을 쥐지 못한 채 거대 여당의 일방 독주에 그간 밀려나던 야권은 북한의 공동연락사무소 폭파 사태를 계기로 ‘전세 역전’을 노리고 있는데, 북한의 폭파 조치에 당초 계획보다 하루 앞당겨 지난 16일 첫 외교안보특위를 개최했던 통합당에선 17일 민주당보다 훨씬 강경한 목소리를 내는 한편 초당적 외교안보 통일정책 필요성을 역설하면서 야당과의 협조를 위해 여당 단독 원 구성 결정을 철회하라고 대여 압박에 나섰다.

특히 이날 회의에서 탈북자 출신인 태영호 의원은 당장 ‘대북확성방송 재개’를 주장했으며 한기호 의원은 통일부를 없애자고 제안한 데 이어 “핵무기는 핵무기로 대응해야 한다”면서 핵무장론까지 꺼냈는데, 대선잠룡인 오세훈 전 의원마저 같은 날 페이스북을 통해 “굴종적 평화를 동족애로 포장하며 정신승리에 안주할 것인가, 자체 핵개발 카드와 전술핵 재배치 카드의 장단점을 비교 선택해 후세에 진짜 평화를 물려줄 것인가”라고 핵무장론에 한층 불을 붙였다.

이처럼 대북 강경책이 쏟아지는 가운데 통합당의 박진 외교안보특위 위원장은 이날 오후 회의 직후 판문점 선언 비준 추진 중단과 종전선언 촉구 결의안 철회, 대북전단 살포금지법 철회를 우선 정부에 촉구한 데 이어 한미연합훈련 정상 실시는 물론 한미 외교부와 국방부에서 2명씩 참석하는 ‘2+2’ 장관 회의 복원도 당부했으며 미·중·러·일, 유럽연합과의 긴급통화 및 외교부 장관 화상회의와 더불어 유엔 안보리에 대북 비판 결의안도 추진하라고 주문했다.

또 통합당 외교안보특위는 여당이 단독 선출한 상임위원장 중 외교통일위원장을 맡은 송영길 민주당 의원이 전날 북한의 폭파 도발에 대해 “포로 폭파 안 한 게 어디냐”고 발언했다가 논란에 휩싸였던 점도 꼬집어 향후 의원총회 등을 통해 여당 상임위원장의 부적격 문제를 집중 검토하겠다고 밝혔는데, 앞서 여당의 상임위원장 단독 처리에 반발해 전날부터 의사일정 보이콧에 들어갔지만 갑자기 정부여당을 몰아붙일 기회가 마련되면서 출구전략을 모색하려는 의도로 풀이되고 있다.

이미 통합당 내 일부 의원들은 아예 보이콧을 철회하자는 입장도 속속 내놓고 있는데, 장제원 의원은 17일 페이스북을 통해 “김여정은 군사행동도 불사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는데 국가적 위기”라며 “국방위·외통위 정도는 가동했으면 좋겠다. 투쟁은 수단이지 목적이 돼선 안 될 것”이라고 밝혔고, 하태경 의원도 이날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북한 도발로 인한 안보위기에 국회가 방관해선 안 된다. 국방위·외통위·정보위는 통합당이 주도해 정상화하자”고 강조한 데 이어 “주호영 원내대표도 안보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즉각 복귀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하지만 국회를 떠나 충청 지역의 한 사찰로 내려간 주 원내대표는 17일 성일종 의원에 따르면 전화를 걸어 복귀 요청을 했음에도 답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는데, 여당이 오는 19일까지 원 구성 문제를 매듭지으려는 상황에서 그 전에 돌아오면 ‘끌려간다’는 인상만 다시 줄 가능성이 높은 만큼 당장 복귀하기 어려울 것으로 관측되고 있어 북한 문제를 계기로 대여공세 타이밍을 놓치고 싶지 않은 통합당에 또 다른 고민을 안겨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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