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대선주자들 ‘기본소득’ 백가쟁명…金, 다음 의제는 대북안보?

(좌측 상단 시계방향) 이낙연 민주당 의원, 이재명 경기지사, 김부겸 전 의원, 박원순 서울시장, 홍준표 무소속 의원,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포토포커스DB
(좌측 상단 시계방향) 이낙연 민주당 의원, 이재명 경기지사, 김부겸 전 의원, 박원순 서울시장, 홍준표 무소속 의원,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포토포커스DB

[시사포커스 / 김민규 기자] 지난 3일 “배고픈 사람이 빵을 먹고 싶지만 돈이 없어 먹을 수 없다면 그런 사람에게 무슨 자유가 있을 수 있나”라며 기본소득제에 대한 운을 띄웠던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이 4일엔 “기본소득 문제를 근본적으로 검토할 시기 아닌가”라고 발언한 데 이어 같은 날 정의당 심상정 대표를 만난 자리에선 “정치하는 사람이라면 불평등 문제는 누구나 해소하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라고 발언하는 등 보수정당 사령탑임에도 기본소득을 화두로 던지면서 이슈 주도권을 잡은 모양새다.

여기에 정당을 막론하고 대권주자들까지 너도 나도 기본소득 논쟁에 뛰어들면서 급기야 정치권 최대 이슈로 급부상하고 있어 이번 화두가 여야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그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 靑 “현재 논의 이르다” 선 그어도 ‘기본소득’ 언급하는 대권잠룡들

기본소득이 화두로 떠오르면서 청와대에선 앞서 지난 3일 “기본소득은 전 국민에게 조건 없이 매월 생활비를 주는 것인데 재원 등에 대해 상당기간 토론해 공감대를 형성해야 본격 고민할 수 있다”며 “현재로선 구체화 수준에서 논의하기 이르다”고 시기상조란 입장을 내놓은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당 소속 대선주자들은 제각기 앞 다투어 기본소득에 대한 목소리를 내고 있는데, 경기도재난기본소득을 계기로 ‘전국민 기본소득 지급정책’을 적극 주장하고 있는 이재명 경기지사는 4일 페이스북에서 “기본소득 도입은 복지가 아닌 경제정책이므로 재원부담자인 고액납세자 제외나 특정계층 선별로 일부에게만 지급하거나 차등을 두면 안 된다”며 “기본소득 도입은 증세를 전제할 게 아니라 기존 예산 조정을 통해 소액으로 시작한 후 증세를 통한 기본소득 확대에 국민이 동의할 때 비로소 증세로 점차 증액하는 순차도입”이라고 자신의 기본소득 구상을 밝혔다.

이에 그치지 않고 이 지사는 5일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선 기본소득 도입 주장이 자신의 대선후보 경선 때 1번 공약이었다는 점을 강조하며 “단기적으로 1인당 50만원 주는 건 일반회계 조정으로, 25조원 정도는 충분히 만들 수 있고 몇 년 후 50만원 추가도 세금감면제도를 조금만 조정하면 된다”고 역설했다.

특히 그는 기본소득용 목적세나 데이터세, 탄소세, 환경세, 국토보유세 등 구체적 재원 방안을 제시한 데 이어 시기상조라는 청와대 반응에 대해서도 “오늘은 이르다지만 내일은 적절한 시기가 될 수도 있다”고 입장을 내놨을 뿐 아니라 같은 날 오후엔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첫해 연 20만원을 시작으로 중기목표 100만원까지 증세나 재정건전성 훼손 없이 기본소득제 시행이 가능하다면서 “책임 있는 분이라면 누구든 가리지 않고 국민들이 지켜보는 공개토론의 장에서 만나길 원한다”고 토론까지 제의했다.

기본소득을 의제로 한 이 같은 공개토론 제안은 대선주자로서 본인의 존재감을 부각시키려는 전략으로 비쳐지고 있는데, 이에 7일 지자체 출신 대권잠룡 중 하나인 박원순 서울시장까지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전국민 기본소득의 경우 실직자와 대기업 정규직에게 똑같이 월 5만원씩 지급하면 1년 기준 60만원을 지급할 수 있지만 전국민 고용보험의 경우 24조원으로 실직자에게 월 100만원씩 지급하면 1년 기준 1200만원을 지급할 수 있다”며 “전국민 기본소득보다 훨씬 더 정의로운 전국민 고용보험제가 전면 실시돼야 한다”고 논쟁에 뛰어들었다.

박 시장이 밝힌 전국민 고용보험제에 대해선 대권잠룡인 김부겸 전 의원도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주장한 바 있는데, 김 전 의원은 4일 “문재인 정부는 긴급재난지원금 후속대책으로 전국민 고용보험을 비롯한 여러 사회안전망 강화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지금 우선돼야 할 것은 이것이고 기본소득은 복지 강화와 함께 가야 한다”이라고 역설한 데 이어 9일에도 “기본소득은 코로나 이후라는 보다 장기적 관점에서 생각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급기야 유력 차기 대권주자인 이낙연 민주당 의원마저 8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기본소득제 취지를 이해하고 그 찬반 논의도 환영한다”고 입장을 내놔 기본소득 논쟁의 판은 한층 커졌는데, 하지만 기본소득 시행을 적극 주장했던 이 지사는 내분을 촉발시킨다고 보는 일부 시선도 의식했는지 다른 대권 경쟁자과 직접 맞붙기보다는 기본소득 화두를 던졌던 통합당의 김 위원장을 표적으로 삼았다.

◆ 찬반 팽팽한 의제인 ‘기본소득’…김종인, ‘이목 집중’엔 성공?

기본소득제 찬반 여론조사 결과ⓒ리얼미터
기본소득제 찬반 여론조사 결과ⓒ리얼미터

그러면서 그는 지난 8일 김 위원장을 겨냥 “정치적 의제화 능력이나 경제 통찰력이 뛰어난 김 위원장이 재원과 필요성을 고민, 괜히 ‘개념 정도만 아는 분’으로 오해(받지 말라)”고 SNS글을 올린 데 이어 9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선 김 위원장의 이슈 선점 능력을 극찬하면서 김 위원장은 물론 김세연, 유승민 전 의원,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등과 함께 기본소득을 놓고 찬반토론을 벌이고 싶다는 의중을 밝히기도 했다.

아울러 야권에서도 김 위원장이 꺼낸 기본소득을 놓고 저마다 입장을 내놓고 있는데, 통합당에서도 유승민 전 의원이 대학 특강에서 기본소득제와 관련 “유럽에선 이미 국민 투표도 했다. 당장 실현은 어렵더라도 앞으로 고민해볼 문제”라고 밝힌 데 이어, 원희룡 제주도지사조차 9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미래혁신포럼’에서 “교육과 일자리, 그리고 우리 국민의 실질 삶을 돕기 위해 생산적 복지로 접근한 많은 것들을 기본소득이라고 하는데 제주에서 국민들의 기본 역량, 기본 기회를 보장하는 정책으로 쌓아가고 있다”고 강조했는데 그러면서도 원 지사는 “미래세대 자산을 훔쳐다 지금 빼앗아 나눠주는 포퓰리즘은 바로잡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또 국민의당에선 안철수 대표가 지난 4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정부의 가용 복지 자원이 어려운 계층에게 우선 배분돼야 한다는 미국 철학자 존 롤스의 정의론 개념에 입각해 한국형 기본소득 도입 방안을 집중 검토해나가고자 한다”고 밝혔다면 무소속 홍준표 의원은 8일 페이스북을 통해 “기본소득제가 실시되려면 세금이 파격 인상되는 것을 국민이 수용해야 하고 복지체계를 전면 재조정해야 한다. 사회주의 배급제를 하자는 것”이라고 시각차를 드러냈다.

이렇듯 대권주자들이 여야를 막론하고 기본소득 의제에 관심을 보이면서 김 위원장의 이슈 선점은 일견 성공한 듯 보이는데,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지난 5일 전국 유권자 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기본소득제 도입 찬반 여론조사(95%신뢰수준±4.4%P,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참조)에서도 찬성이 48.6%, 반대가 42.8%로 팽팽하게 나왔을 만큼 의견이 첨예하게 갈리는 사안을 정확히 짚었기 때문이다.

다만 김 위원장이 소속된 통합당 지지층에선 기본소득에 대해 71%가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는 점 등은 대선 승리를 목표로 당을 혁신하려는 그에게 적잖은 고민을 안겨주고 있는데, 당장 당내에서도 장제원 의원이 6일 페이스북을 통해 “빵 살 수 없는 분에게 빵 살 자유를 주기 위해 굳이 기본소득제 도입할 이유는 없다. 지지층에는 상처, 상대진영에는 먹잇감을 준 일주일”이라고 김 위원장을 혹평한 반면 하태경 의원은 9일 페이스북에서 “김종인 체제는 물질적 자유, 청년기본소득 등 미래담론을 선점했다. 기본소득이 사회주의라 하더라도 김 위원장이 우리 체제를 뒤엎자는 게 아니라 일부를 받아들이자는 것”이라며 엇갈린 평가가 나오고 있다.

◆ 대권주자들 흔든 김종인, 기본소득 다음 담론은?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 / 김병철 기자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 / 김병철 기자

일단 원내사령탑인 주호영 원내대표는 9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나와 기본소득제에 대해 “세계가 바뀌는 과정에서 나오는 논의고 논의를 시작하는 것은 지극히 바람직하다”며 “기본소득제를 하게 되면 필수적으로 증세론이 따라오게 돼 있는데 세금을 더 거둘 것이냐 말 것이냐가 논의되고 이 체계 자체가 정교하게 설계돼야 하며 성급히 하다 보면 부작용만 날 수 있다”고 논의 가능성은 열어뒀는데, 이러한 연장선상에서 통합당에선 경제혁신위원회를 오는 11일 출범시켜 본격 검토에 들어갈 방침이다.

앞서 기본소득 의제를 던져 대권주자들을 달아오르게 했던 김 위원장은 바로 다음 화두로 저출생 문제를 꺼내면서 교육 불평등 해소를 거론하는 파격 행보를 이어가고 있는데, 김은혜 대변인은 지난 8일 비대위 회의 직후 기자들과 만나 “(김 위원장이) 저출생 문제는 나라 장래가 걸린 문제다, 불평등한 교육 여건이 우리 사회 저출생 문제의 근본 원인이란 점을 강조했다”고 전하면서 ‘전일 보육제’을 언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면서도 김 대변인은 “북한 문제 관련 한반도 평화와 미래를 다를 외교안보위원회를 검토 중에 있고 준비 중인 경제혁신위원회와 병행해 가동하려고 한다”고 덧붙였는데, 최근 급격히 악화되고 있는 대북관계를 대여 공세의 발판으로 삼으려는 전략인 동시에 자신이 사회경제 현안에 대해 ‘좌편향 기조’로 가는 게 아니냐는 당내 일각의 불만을 해소하고자 이 같은 묘수를 내놓은 것이란 해석도 나오고 있다.

보여주듯 지난 8일 비대위 회의에서 김 위원장은 “김여정 부부장 담화에 왜 우리 정부가 아무 대응을 못하는지 의아하다. 정부가 대북관계에서 분명한 태도를 표명해야 한다”고 지적한 데 이어 회의 직후에도 “북한에 풍선 띄우는 것을 해선 안 되겠다고 조치하는 것까진 좋은데 김 부부장이 그걸 공격했다고 해서 즉시 답하는 것은 현명치 못한 것”이라고 비판하는 등 이슈를 경제에서 안보로 옮겨가는 듯한 자세도 취했는데, 취임 1주일을 갓 넘은 그에게 일단 판 흔들기엔 성공했다는 평도 나오고 있지만 ‘대안 없는’ 의제 제시만으로는 한계도 있을 수밖에 없는 만큼 향후 어떤 결과를 내놓을 것인지 벌써부터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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