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 민심은 여당을 이미 떠났다”

노무현 정권을 탄생시킨 가장 큰 공로자 호남민심이 노 정권으로부터 등을 돌리고 있어 주목된다. 지난 4.15 총선 후 호남권의 세 결집이 강화되면서 이는 민주당으로 힘쏠림 현상으로 이어졌고, 급기야는 여당 지도부가 광주에서 ‘혼쭐’ 나는 분위기를 연출케 했다. 열린우리당 신기남 의장과 당 지도부는 지난 23일 1박2일 일정으로 광주와 전남 지역을 방문했다. 신 의장의 광주.전남 지역 방문에는 홍재형 정책위의장과 민병두 기획위원장, 조배숙 제5정조위원장이 동행했다. 대민 접촉을 강화, 민생 현장의 목소리를 의정활동에 반영하자는 취지로 기획된 `지방투어'의 일환이다. 지방투어의 첫번째 방문지로 광주와 전남 지역을 선택한 신 의장은 최근 당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호남소외론'을 의식한 탓인지 "광주정신은 민주화와 개혁을 이끈 정신이며, 우리당과 참여정부의 정신적인 모태"라고 말하는 등 이 지역에 대한 애정을 집중 부각시켰다. 신 의장은 광주 서구의 한 음식점에서 이 지역 시민단체 대표들과 간담회를 열고 "광주가 자랑스럽지만 무섭기도 하다"며 "광주는 지난 총선에서 우리당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와 개혁을 선택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고, 우리당이 잘못하면 가차 없이 비판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개혁작업에 매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신 의장은 광주문화수도추진특위를 당내에 설치하는 등 이 지역 숙원 사업들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총선 이후 호남 차별받고 있다’ 하지만 광주를 방문한 의장과 지도부는 가는 곳마다 집중 포격을 받았다. 여당 지도부는 개혁성향인 시민단체 대표들과의 만남에서 뿐 아니라 당원들과의 만남에서조차도 강한 비판을 들었다. 신 의장은 이날 광주 서구의 한 음식점에서 이 지역 시민단체 대표 10여명을 만나 "광주는 참여정부와 우리당의 정신적 모태"라며 애정을 표시했지만, 참석자들의 반응은 차가웠다. 한 참석자는 이라크 추가파병에 대한 질의 과정에서 "신 의장이 미국에 가서 충성맹세를 하고 왔다"고 말하는 등 노골적인 적대감을 보이기도 했다. 나머지 참석자들도 "총선 이후 인사와 정책에서 호남이 차별받고 있다"며 `호남 소외론'을 제기하면서 당 지도부뿐 아니라 노무현 대통령에게도 불만을 표출했다. 김재석 광주 경실련 사무처장은 "호남 민심은 우리당을 떠나기 시작한 게 아니라 이미 떠났다"며 "문제의 핵심은 참여정부의 인사문제 등 의사결정 과정에서 (호남이) 전부 배제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 처장은 또 "국가 균형발전 전략은 결국 영남발전 전략을 의미할 뿐이고 일자리를 만들어줘야 한다"며 "기자들을 동원해 언론플레이하지 말고 실질적인 민심을 듣고 가라"고 주문했다. 윤장현 광주 YMCA 이사장은 "(참여정부 및 우리당과) 이혼이냐 별거냐라는 것이 지역민심인데 벌써 몇몇은 별거상태라고 말하기도 한다"고도 했다. ‘선거 끝나고 오만해졌다’ 또한 박경린 무등산보호단체협의회 본부장도 "우리당이 선거가 끝나고 너무 오만해졌다"며 "시민들의 마음이 떠나가고 있는데 정부는 정말 정신을 차려야 한다"고 일침을 놨다. 김창수 광주전남 녹색연합 공동대표는 "우리들이 노 대통령과 우리당을 지지한 것은 옳다고 생각하는 일에 대해 소신 있게 발언하고, 책임을 질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며 "지금은 노 대통령과 우리당이 초심을 지키고 있는지에 대해 의구심이 든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또 "노 대통령은 김대중 전 대통령처럼 `준비된 대통령'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그렇기 때문에 참여정부는 절차적 정당성과 투명성을 지켜야 차별성을 갖는 것"이라고 `따끔하게' 지적했다. 광주전남시도통합추진위원회 오종석씨는 "힘있는 정부부처에서 호남 사람들이 물러가고 모두 영남사람뿐"이라며 "광주를 잘살게 해주겠다고 거짓말을 한 이 지역 국회의원을 갈고 싶다"고 말했다. 오씨는 또 "택시운전사들이 로또복권에 당첨되면 노 대통령 임기가 끝날 때까지 외국에서 살 것이라고 말할 정도인데, 이대로 가면 다음 총선에서 민주당이 압승한다"라고 말했다가, 신 의장과 동석한 강기정 의원과 얼굴을 붉히고 언쟁을 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신 의장은 "광주의 민심이 호락호락하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듣고 보니까 다시 새롭게 느껴진다"며 "경상도에 가면 호남 정권이라고 손가락질 받고 전라도에 가면 영남 정권이라는 소리를 듣는 등 가는 곳마다 얻어 맞지만, 호남에서 (우리를) 많이 밀어주셨으니까 아무리 얻어맞아도 싸다"고 수습을 시도했다. 기간당원 자격 완화 반발 신 의장은 이어 광주 여성발전센터에서 열린 이 지역 핵심당원 500여명과 간담회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 신 의장은 향후 당 운영 계획과 관련, "당을 민주적, 효율적으로 운영해 `108 번뇌'라는 말이 다시는 나오지 않게 하겠다"고 밝혔다. 신 의장은 이날 연설을 통해 "성숙해진 개혁세력으로 참여정부의 성공을 뒷받침 하겠다"며 이같이 말했다. 신 의장의 이같은 발언은 총선 이후 열린우리당이 사안마다 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자중지란 현상을 보여 지지율 하락을 자초했다는 비판에 따라 향후 적극적인 리더십을 구축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풀이된다. 그는 최근 열린우리당의 지지율 하락 현상에 대해 "당과 청와대, 정부 간에 패스미스가 속출하고, 제대로 발 한번 맞춰보지 못한 152명의 선수들이 우왕좌왕거리고, 또 몇몇 선수들은 무리하게 개인기 돌파만 하다가 공이나 뺏기고, 득점 찬스에선 골포스트나 때리니까 실망한 관중들이 경기장을 떠나는 것 같은 상황"이라고 정리했다. 그는 이어 "당.정.청은 협력시스템을 완비했고, 우리당은 개혁 입법활동을 본격화했다"며 "책임있는 집권여당으로서 민주적이면서 집중적이고 안정적인 당 운영을 실현해나가면 관중은 늘고, 인기도 상승할 것이 분명하다"고 말했다. 신 의장은 정당개혁 방안과 관련, "중앙당은 더욱 슬림화하는 한편 시.도당에 공천권, 조직, 비용을 대폭 이양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또 열린우리당 당헌.당규 개정의 핵심 쟁점인 `기간당원 자격' 완화에 대한 일부 당원들의 반발에 대해 "토론과 논쟁끝에 당원들이 결정할 문제"라며 "개혁은 하되 당 의장으로서의 책임에 충실하겠다"고 말했다. "당 지도부 겉으로만 개혁 한다" 하지만 이 자리에서도 여당과 현정부를 향한 비판의 목소리는 거셌다. 한 당원은 "아파트 분양가공개 공약에 대해 노 대통령이 폭리를 취하는 기업편에 서는데 당 지도부는 `계급장'을 떼고 한판 붙을 생각은 없나"라며 "명분 없는 이라크 추가파병을 당론으로 결정한 이유는 뭐냐"라고 따졌다. 또 다른 당원은 당헌.당규 개정을 예로 들며 "당 지도부가 겉으로만 개혁을 한다고 한다"고 비난했고, 한 당원은 "재보선에서 패배를 했는데 누구하나 책임지는 사람이 없는데 책임지지 않는 당이 무슨 정당인가"라고도 했다. 이에 신 의장은 "저는 누구보다도 개혁적이라고 자부한다"며 "일부 내용에 집착해서 자기 의견대로 하면 개혁이고, 의견과 다르면 개혁이 아니라고 할 수 없다"고 항변했다. 한편, 이라크 파병반대 광주.전남 비상국민행동도 같은날 성명을 내고 "신기남 의장 일행의 광주방문은 떨어지는 지지율을 회복하기 위한 정치적 방문"이라고 비난했다. 이 단체는 "신 의장은 최근 미국 방문에서 실언으로 국민들을 실망시키고 국민보다 미국의 안위가 우선인 듯 행동했다"며 "광주시민들도 이러한 신 의장의 정치적 방문을 원치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단체는 또 "'이라크 파병 철회'를 요구하는 국민의 목소리도 못 듣는 열린우리당이 지역민의 고충을 들을 수 있겠느냐"며 "열린우리당이 국민 정당으로 남기 위해서는 지금이라도 국민의 뜻을 받들어 이라크 파병을 철회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광주에 힘 보태 달라” 하루 앞서 광주시는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지역출신 의원 5명과 간담회를 갖고 "지역발전에 의원들이 적극 나서달라"고 간곡히 요청했다. 이병화 정무부시장은 이날 "시장의 장기 부재로 시청 전 직원이 힘을 모아 현안 해결에 고군분투 하고 있으나 역부족"이라며 "지역 현안 해결에 의원들이 힘을 보태 달라"고 강조했다. 이 부시장이 거론한 현안은 ▲문화수도 육성 조기 가시화 ▲정부.공공기관의 광주 유치 ▲호남고속철 조기 건설 ▲축구트레이닝센터 유치 ▲과학기술 연구개발 특구 지정 등이다. 간담회에 참석한 광주 출신의 양형일, 지병문, 강기정, 김태홍, 김동철 의원 등 5명은 광주시의 요청에 공감하고 "지역발전에 힘을 모으겠다"고 일단 약속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광주시의회는 신 의장 일행이 광주 방문한 같은 시각 "국가 균형발전을 위해 광주.전남에 신행정수도 버금가는 기업도시, 대학도시, 엑스포 유치 등 특단의 대책을 마련해 달라"는 내용의 '국가 균형발전을 위한 건의문'을 채택, 청와대와 건설교통부,신행정수도건설추진위 등에 보냈다. 시의회는 건의문에서 "지방균형발전을 위해 행정수도를 옮기더라도 중앙부처나 공공기관의 합리적 지방분산이 안될 경우 행정수도 이전 효과가 반감될 수밖에 없다"면서 "지역발전을 도모할 수 있는 중앙부처나 공공기관이 이전되도록 해달라"고 말했다. 시의회는 "특히 국가균형발전의 가장 큰 저해요소인 접근성 미비에 대한 대책으로 현재 착공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 호남고속철을 연내에 착공해 줄 것을 바란다"고 덧붙였다. 이같은 목소리는 여당 지도부의 광주 방문을 의식한 여당에 대한 호소문으로 풀이되고 ‘호남소외론’을 부추기는 원인이 되고 있다. 민주당, '제2의 도약' 각오 다짐 반면 열린우리당의 광주 방문이 이루어지던 같은날 민주당 한화갑 대표는 광주 전남도당 회의실에서 민주당의 재건을 위한 장기 발전 로드맵을 8월에 제시할 것을 밝히는 등 호남 민심의 결집이 민주당의 힘으로 몰아주길 은근히 기대했다. 한 대표는 이날 "앞으로 한달 이내 '새희망, 새다짐, 새출발'이라는 이름으로 기자회견을 갖고 "민주당은 과거에 대해 철저히 반성하고 뼈를 깎는 노력을 경주하겠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22일 당 안팎의 전문가들로 구성된 '당재건 프로젝트 태스크포스팀'을 구성해 민주당의 지난날을 냉철히 반성하고 현재를 점검하며 미래의 나아갈 길을 제시하는 작업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민주당은 특히 4.15 총선 이후의 당 재정현황을 공개하면서 그동안의 어려움을 딛고 8월부터 새로운 민주당을 건설하는 데 당력을 모으겠다고 다짐했다. 이에 따라 민주당은 태스크포스팀이 장기발전 프로그램을 마련하는 대로 전당대회를 거쳐 새로운 지도부를 구성할 것으로 보인다. 한 대표는 또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주한 미군의 광주비행장내 패트리어트 미사일 배치 계획에 대해 반대하기로 당론을 모았다"고 밝혔다. 한 대표는 "광주는 평화를 지향하는 민주화의 성지이자 세계적인 문화도시로서 자부심이 크다"며 "광주의 정체성에 미군의 미사일 배치 계획이 맞지 않다고 판단해 반대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한편, 민주당은 오는 28일 비상대책위원 전원이 사퇴하면서 중앙위원회 체제를 출범시키고 진성 당원도 적극 모집할 계획임을 밝히며 '제2의 도약'을 위한 각오를 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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