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씨가 되듯’ 말(言)에는 언령(言靈)의 영혼이 있어 운명·성공·선거당락 좌우해

노병한 칼럼니스트
노병한 칼럼니스트

[노병한의 운세코칭]…<선거당락 결정짓는 말(言)속에 깃든 마법의 언령(言靈)?>에서 계속…그렇다면 언령(言靈)사상은 언제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언령사상은 동서양에서 오래전부터 유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선 고대 그리스인들은 말에는 주술적인 능력이 있다고 믿었다.

예컨대 그리스인들은 말이 선포되면 말 그대로 이뤄진다고 믿었다. 또 히브리인들은 말의 힘을 신앙적으로 받아들였다. 그런 흔적들이 성경의 여러 곳에 나타나 있다. ‘야고보서’에 기자가 ‘혀를 잘못 사용하면 불(火)과 같아서 모든 것을 태워버린다’고 말한 것이 그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전통문화 속에서 언령(言靈)사상은 어떤 형태로 전해오고 있을까? 덕담 말고도 삼국시대 향가(鄕歌)에 그 자취가 군데군데 남아 있다. 흔히 향가는 자체로써 언령과 주술적인 기능을 수행하는 주사(呪辭)로 쓰인 경우가 많았다.

신라시대에 국태민안을 목적으로 불린 혜성가(彗星歌)와 도솔가(兜率歌)가 그 대표적인 예라 할 것이다. 이러한 모두가 노래(言)의 힘으로 소원하는 바를 성취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신라 진평왕 때 혜성이 나타나 우주의 중심이 되는 큰 별인 심대성(心大星)을 침해하는 괴변이 발생했다. 이에 융천사(融天師)가 혜성가를 지어 부르자 혜성의 변괴가 없어지고 때마침 신라를 침략한 왜구도 물러갔다고 전해진다.

당시 사람들은 천지일원(天地一源)사상에 따라 천체에 이변이 생기면 지상에도 심각한 문제를 초래한다고 믿고 있었다. 따라서 혜성가를 통해 혜성의 출현과 왜구의 침입을 막았다는 점에서 이를 주사(呪詞)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월명사(月明師)의 도솔가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신라 경덕왕 19년 4월의 초하룻날에 하늘에 갑자기 해(太陽)가 2개나 나타나더니 10일 동안 없어지지 않는 괴변이 일어났다. 이에 월명사가 왕명을 받고서 산화공양(散華供養)을 하면서 도솔가라는 산화가를 불렀더니 2개의 해 중에서 가운데에 있던 1개가 마침내 없어졌다.

하늘에 해가 2개라는 건 인간사로 치면 1국(國)에 임금(王)이 2명이라는 얘기이니 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이는 아주 불경스러운 징조다. 그런데 도솔가를 통해서 신라는 정국의 안정을 되찾게 됨 셈이 아닌가? 이렇게 월명사가 왕명을 받고서 지어 부르게 한 노래=언령(言靈)이 바로 도솔가다.

그 외에도 구지가(龜旨歌) 등 고대의 시가나 민요인 풍년가(豊年歌) 등에서도 이 같은 사례들을 찾아볼 수가 있다. ‘풍년이 왔네! 풍년이 왔어!’로 시작되는 풍년가는 노랫말에서 이미 올해도 풍년이 왔다고 기정사실화 하고 있다. 이런 노랫말 역시 언령의 주술적인 요소를 담은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말(言)속에 영적인 힘과 에너지가 있을까? 과연 말한 대로 모두 이뤄질까? 우선 과학적인 실험을 통해서 검증된 사례를 하나 들어보자. 대표적으로 ‘물(水) 결정체의 실험’이 바로 그 예이다.

대안(代案) 의학박사인 일본인 에모토 마사루(江本勝)는 지난 2002년에 ‘물은 답을 알고 있다’라는 책에서 ‘물(水)도 사람의 말을 알아듣는다.’고 주장해 세상을 놀라게 했다. 그는 영하 5℃상태의 물 결정체를 연구하면서 여러 나라의 문자를 보여주고 또 다양한 나라의 말로 물에게 말을 걸기도 하면서 물의 반응을 관찰했다.

그 결과 뜻밖의 놀라운 결과를 얻게 된다.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라는 긍정과 칭찬을 담은 말(言)과 글(文字)을 들려주거나 보여줬을 때에는 물의 결정체가 아름다운 정육각형의 모습을 나타냈으니 말이다.

반면에 ‘미워해·짜증나’와 같은 부정적인 말(言)과 글(文字)을 들려주거나 보여줬을 때에는 물의 결정체가 온통 찌그러져 마치 암세포의 덩어리처럼 나타났으니 말이다.

에모토 마사루(江本勝)는 120여 컷의 물의 결정체 사진을 통해 물도 생명체이자 에너지(氣)의 전달매체이며 동시에 의식을 갖춘 존재라고 강조했다. 결국 물이 사람이 사용하는 언어나 문자를 이해하고 반응한다는 사실을 과학적으로 입증해 보인 셈이 아니고 뭐란 말인가? 결과적으로 에모토 마사루(江本勝) 박사의 연구결과는 과학적으로는 물이 인간의 언어와 문자를 인식하는 유기체임을 입증한 것이다.

사람의 말이나 글을 알아듣는 것은 비단 물 뿐만이 아닐 것이다. 우리가 조석으로 먹고 있는 아무런 생명도 없을 것으로 생각하는 밥과 찬들도 알아듣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직은 더욱 구체적인 과학적인 데이터를 제시하기에 다소 부족한 면이 있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다수의 많은 사람들이 공통된 실험결과를 얻은 만큼 상당히 객관적인 결과인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1개월 동안 감사해 고마워 라는 문구를 붙여 놓은 밥그릇의 실험에서도 밥에 곰팡이가 조금 피기는 했으나 대체로 밥이 상하지 않았다’는 실험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반면에 ‘1개월 동안 짜증나라는 문구를 붙여 놓은 밥그릇의 실험에서는 밥에 까맣게 곰팡이가 피어나고 부패가 심해서 보기에 흉했다’는 실험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이는 모(某)대학교 제갈정웅 총장의 실험결과이다.

한편 언령(言靈)사상과 함께 언신(言信)사상이라는 것도 있다. 언령(言靈)사상이 말에 영혼이 있다는 주장이라면 언신(言信)사상은 말에 믿음이라는 메시지가 있다는 주장이다.

바꾸어 말하면 ‘언어가 인간의 생각인 사유(思惟)를 지배한다.’는 논리다. 독일의 유명한 철학자 칼 야스퍼스(Karl Jaspers )는 ‘우리는 언어와 더불어 비로소 사유할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또 훔볼트(Humboldt, Karl Wilhelm Von)는 ‘우리는 언어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대로 현실을 인식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마르틴 하이데거(Martin Heidegger)는 ‘언어는 존재의 집이고 언어의 주택 속에 인간이 산다.’고 했다.

따라서 성공한 사람과 실패한 사람의 차이를 그들이 평소에 즐겨서 사용하는 말에서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성공한 사람은 매사에 긍정적이고 감사하는 태도를 취한다. 반면에 실패한 사람은 평소에 불만과 짜증 등 부정적인 말을 자주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선한 말은 선한 일을 부르고 악한 말은 악한 일을 부르는 법이 아니겠는가?

성경의 잠언 16절 24장에 ‘선(善)한 말은 꿀단지 같아서 마음에 달고 뼈에 양약이 된다.’며 선한 말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깨우쳐주고 있다. 감사도 마찬가지이다. 말 못하는 식물도 감사를 표하면 반응을 보이는데 하물며 사람인들 오죽하겠는가?

‘감사합니다.’를 입버릇처럼 늘 사용하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감사할 일이 생기는 법이다. 감사를 느끼고 그것을 불러줄 때에 비로소 감사는 내 곁으로 찾아와 나의 감사가 될 것이다. ‘말의 힘’은 바로 말이 가지는 철학적 의미일 것이다.

선(善)한 말은 누군가를 위로하는 따뜻한 말이다. 반면에 날카로워 칼과 같은 말, 화살과 같이 독한 말, 독사와 같이 독이 들어있는 말, 함부로 하는 말, 막말 등은 사람을 죽이는 말이기에 우리가 경계를 해야 할 말들이다. 가슴속 마음속에 있는 것들이 입을 통해서 나오는 것이 바로 말이다.

사람은 자신이 한 말과 반드시 만나게 되어있다. 그러므로 좋은 일이 있으면 ‘감사합니다.’라고 당연히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쁜 일이 있어도 ‘고맙습니다.’라고 말하면 그 순간에 불행의 사슬이 끊어진다.

성경은 ‘말이 사람을 흥하게도 만들고 망하게도 만드는 힘이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상헌 선생의 저작물로 2011년에 출간된 ‘흥하는 말씨 망하는 말투’가 한동안 베스트셀러가 된 적이 있었다.

이렇게 내뱉는 ‘말은 인생의 문고리이자 지도인 핸들’이기에 오른쪽이라고 말하면 우측으로 향해 가고, 왼쪽이라면 좌측으로 향해 갈 것이며, 직진이라고 말하면 똑바로 향해 나갈 것이다.

입이라는 구(口)가 3개모인 것이 품(品)이고 품격이다. 말이 입으로 나오기 전에 뇌를 거친다. 그래서 뇌를 거쳐 나온 말은 뇌에 그 잔영으로 남는다. 즉 말속에는 말하는 이의 혼(魂)이 깃들어 있다.

그래서 말에는 언령(言靈)이 깃들어 있음인 것이다. 이렇게 말에는 에너지가 담겨있고 이루어지는 힘이 있다. 그러므로 부정적인 말을 달고 살면 머지않아 그런 부정적인 예언(言)이 자신의 삶 속에서 이루어지는 걸 확인하게 될 것이다. 말이 갖는 고유한 진동과 파장이 있고 영혼이 있기 때문이다.

언령(言靈)을 다른 말로 언혼(言魂)이라고도 할 수 있다. 좋은 말에는 좋은 영혼이 깃들어 있고, 나쁜 말에는 나쁜 영혼이 깃들어 있음이다. 말을 입 밖으로 내거나 그리되었으면 좋겠다고 바라고 빌면 바라는 대로 반드시 이루어지는 법이다.

말(言)에 영혼이 살아 숨을 쉰다는 뜻이 아니라, 이는 말(言)·일(事)·호흡(呼吸)의 흐름을 상호의존관계로 파악할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닐까? 한편 언령(言靈)을 하나의 신앙으로 파악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제 우리도 언령(言靈)의 마법과 마력을 활용하는 기술을 터득해 자기 ‘삶의 질’을 향상시켜도 보고 또 ‘운명의 질’도 개선시켜보면 어떨까?

‘작년보다 올해는 더 좋아질 것이고 어제보다 오늘은 더 좋아지리라’ 라는 긍정적인 상상과 다짐을 하고 ‘혼자말로 중얼거림’을 하면서 행동하면 반드시 생각지 못했던 기적이 일어날 것이다.

여기서 ‘혼자말로 중얼거림’이 바로 기적을 일으키는 ‘언령(言靈)마법의 출발’인 셈이다. 자 이제 정치꾼이든 장사꾼이든 농사꾼이든 익살꾼·노래꾼 등이든 오늘 ‘자신이 내뱉는 말(言)의 힘과 마법’이 얼마나 위대하게 작용하는지 한번 느끼며 체험해보자.

□글/노병한:박사/한국미래예측연구소장/노병한박사철학원장/미래문제·자연사상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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