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노(非盧)드림팀 3자 역할분담론 내막

범여권의 구도가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다. 당초 범여권의 대통합은 제 정파 간의 소통합을 통해 이뤄질 것이라는 추측이 대세를 이뤘다. 그러나 중도개혁통합신당과 민주당의 합당, 김근태 전의장의 불출마선언을 통과하면서 정파 간의 통합보다도 ‘후보중심’의 통합으로 급격히 기울고 있는 조짐이다. 통합신당과 민주당의 합당체인 중도통합민주당 참여에 열린우리당과 열린우리당 탈당파들이 소극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어 3자 구도의 소통합에 그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짙게 일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후보중심 통합론’의 불씨를 맨 먼저 당긴 인물은 김근태 전 의장. 대권 불출마선언을 계기로 정치적 위상이 한결 격상된 그를 중심으로 범여권 후보들이 모여들고 있는 까닭이다. 그런데 최근 이러한 후보중심의 통합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는 과정에서 미묘한 흐름이 감지되고 있어 국민들의 관심을 크게 증폭시키고 있다. 그것은 손학규, 김근태, 정동영 세 사람 사이에 이뤄진 ‘역할분담론’과 이에 따른 모종의 ‘밀약설’이다. 밑도 끝도 없는 이러한 ‘설(說)’들은 사실 “서로가 역할을 정교하게 분담, 기필코 한나라당에 맞설 ‘드림팀’을 창출해야 한다”는 범여권 성향의 국민적 희망사항일 수 있다. 정치권 일각에서 퍼지고 있는 ‘역할분담론’의 골자는 “손학규 전지사가 대선후보로, 김근태 전 의장이 당의 책임자로, 정동영 전 의장이 차기정권의 총리가 되는 것”으로 요약된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 것이 바로 3자 간의 ‘밀약설’이다. 요동치는 범여권의 대통합 논의를 추적해봤다.


한마디로 ‘안개정국’이다. 범여권이 한 치 앞을 분간할 수 없는 안개 속을 헤매고 있기 때문. ‘범여권 대통합’이라는 큰 틀에는 합의하고 있지만, 제 세력 간, 후보 간 물밑 힘겨루기가 더욱 거세지고 있기 때문이다. ‘명분과 실리의 2중주’라는 정치 본래의 속성이 적나라하게 불거지고 있는 형국이다. 그런데 최근 손학규 전지사가 범여권에 합류할 뜻을 분명히 하면서 기존의 틀을 뒤엎을 만한 ‘3자 연대설’이 조심스레 고개를 들고 있어 주목된다.

범여권 후보중심으로?

지난 6월27일 중도개혁통합신당과 민주당은 합당을 통해 중도통합민주당으로 다시 태어났다. 통합민주당은 “문호를 활짝 열고 중도개혁 세력이라면 누구라도 함께 해야 한다”며 열린우리당과 열린우리당 탈당파 의원들을 끌어안을 준비가 됐음을 밝혔다.
그러나 열린우리당과 열린우리당 탈당파는 시큰둥한 표정이 역력했다. 이들이 소극적인 태도를 취한 것은 자신들을 끝까지 소외시킨 통합민주당에 합류하는 것이 과연 자신들의 정치적 앞날에 도움이 될 것인지가 여전히 판단이 서지 않은 탓이다. 그래서 정치권 일각에서는 벌써부터 “통합민주당은 소통합을 고착화시킬 뿐이며 제 세력 간 통합은 물 건너갔다”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이처럼 제 세력 간의 통합논의가 추동력을 상실하고 표류하기 시작하면서 ‘후보중심의 대통합’ 논의가 급부상 하고 있다. 후보중심 통합론은 김근태 전의장의 불출마 선언과 오픈 프라이머리 제안으로 탄력을 받기 시작했다. 거기다가 김 전의장이 손학규 전 지사, 정동영 전 의장, 이해찬 전 총리를 만나 ‘범여권 대선주자 연석회의’에 참여할 것을 약속받으면서 급물살을 타고 있다.
한 정치분석가는 “유력 후보가 나오면 소통합 세력이나 중간지대의 의원들도 자신들의 정치적 이해타산에 따라 움직이기 시작할 것이다. 그리고 범여권 대통합을 이끌 후보는 궁극적으로 친노와 비노의 대결구도 속에서 만들어 지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런 가운데 정치권 일각에서는 손학규 전 지사와 김근태 전 의장, 정동영 전 의장이 ‘역할분담론’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밑도 끝도 없는 ‘밀약설’까지 보태지고 있는 상황이다.

‘손-김-정’ 3자 연대설

‘反한·非한의 드림팀’으로 평가되고 있는 손학규-김근태-정동영 3자 간에 정치적 역할분담론이 제기된 것은 바로 반(비)한라당 성향의 국민적 희망사항일 수 있다. 반면에 이들 3자에 대한 정치적 음해일 가능성 또한 배제할 수 없다. 김근태를 비롯한 3인과 정치적 견해를 달리하는 몇 몇 정파들의 사시적 시각 또한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 같은 항설은 이번 대선 과정에서 세 사람이 정치적 연대를 통해 통합정국을 주도해 나간다는 것이 골자다. 손학규 전 지사가 대선후보가 되고, 김근태 전 의장이 손 전 지사를 뒷받침할 신당의 책임자기 되고 여기에 정동영 전 의장이 가세해 차기 총리직을 맡는다는 것이다.
손학규 전 지사가 예상보다 빨리 범여권에 참여하겠다는 뜻을 밝히면서 그 모습을 드러낸 이같은 3자 연대설은 손학규, 김근태, 정동영 세 사람의 보이지 않는 교차점에서 비롯한 것으로 보인다.
손학규, 김근태, 정동영 세 사람의 3중 교차점은 한마디로 ‘반한-비노 전선’이다. 이들은 범여권의 대표적 비노인사들로서 노무현 대통령으로부터 ‘네거티브 전략’에 말려들었던 공통분모를 지니고 있다. 한 정치권 인사는 “범여권 인사들이 정권 재창출을 위해 대통합을 이뤄야 한다면 ‘노의 사람들’보다는 비노인사들 중에서 대권후보를 고르려 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며 “친노 진영에서 여러 가지 대선 전략이 그려지고 있는데 비노진영에서 그러한 구상들이 나오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말해 세 사람의 ‘비노연대’가 단순히 허무맹랑한 이야기가 아님을 상기시켰다.
또한 이들은 민주화와 학생운동의 주역으로서 한때는 동지이며 친구라는 정치적 자산을 공유하고 있다. 김 전 의장과 정 전 의장은 지난해 말 노 대통령을 배제한 통합신당 창당에 합의하면서 ‘반노무현’을 기치로 힘을 모았었다. 특히 손 전 지사와 김 전 의장은 경기고-서울대 동창이자 절친한 동지라는 연대의식을 가지고 있다는 점도 무시 못 할 요소다.

후보중심, 손학규에 유리

김 전의장이 범여권의 대통합 구도를 ‘후보중심’으로 이끌면서 가장 큰 ‘득’을 보고 있는 예비후보는 단연 손학규 전 지사다. 현재 범여권 예상후보 중 선두를 달리고 있으나, 특정 정당에 지지기반을 두고 있지 못한 손 전 지사로서는 ‘후보중심 통합론’이 범여권의 선두주자 위상을 거머쥘 수 있는 가장 좋은 방안이기 때문이다. 한나라당 탈당 이후 제대로 평가를 받지 못해 정치적 부상이 지지부진 했던 그가 범여권 통합 논의가 후보중심으로 전개되면서 비로소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이 이를 뒷받침한다.
손 전 지사는 정치적 부상을 계기로 ‘반한나라당’의 기치를 내세워 범여권과 중도세력을 모을 수 있는가 하면 ‘비노’로 열린우리당과 적정 거리를 둠으로써 표류하고 있는 난파선의 소용돌이에서 몸을 보전할 수도 있다. 여기에 햇볕정책 계승을 가교로 한 DJ의 후원이 더해진다면 그가 대권 유력후보로 나설 수 있는 가능성은 더욱 커진다.
‘손학규 후보’를 내세우며 그가 혼자 가라는 법은 없다. 손 전 지사에게는 정당으로 언제든지 탈바꿈할 수 있는 ‘선진평화연대’라는 지지세력이 있다. 그리고 김근태 전 의장과 정동영 전 의장이 가지고 있던 열린우리당 내의 정치적 지분도 무시할 수 없다. 범여권의 판짜기가 무르익을 시점에 대통합 논의의 중심 역할로 참여하거나 여의치 않으면 신당 창당을 결행할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후에 선평련을 기반으로 한 신당에서 김근태 전 의장이 당의 책임자로서 대선을 진두지휘 한다는 가설도 세워 볼 수 있다.
정동영 전 의장은 아직 나이가 젊어 2012년을 기대해 볼 수 있는 ‘가능성의 인물’이다. 금년 대선에서 정 전의장이 가장 강력한 킹메이커로 부상할 수 있는 이유다. 이번 대선에서 김 전의장과 함께 킹메이커로서 자신의 위상을 굳힌 다음 차기 정권에서 국무총리직을 비롯한 국가요직을 통해 국정경험을 쌓는다면 차기정권에서 가장 강력한 후보반열에 오를 것이 틀림없다.

아직은 떠도는 뜬구름

이러한 항설(巷說), 항다(巷談)은 아직까지는 희망사항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이와 관련, 선진평화연대의 정성헌 상임대표는 지난 6월28일 선평련이 곧바로 정당과 유사한 조직이 되거나 범여권 제정파가 구상하는 대통합 신당에 정파 성격으로 참여할 가능성에 대해 “그런 일은 결코 없을 것”이라고 말해 선진평화연대는 정당이나 정파 성격으로 쉽사리 변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어 정 대표는 “우리가 집단적으로 결의해서 대통합신당에 참여하는 일도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손 전지사도 신당 창당을 부정했다. 오히려 통합민주당과의 연대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손학규 전 지사가 본격적인 대권가도를 걷기 시작하면서 정동영 전 의장도 늦춰졌던 행보를 다잡고 있다. 김근태 전 의장도 “대통합의 밀알이 되겠다”며 이해찬 전 국무총리와 만나 ‘대선주자 연석회의’와 관련, 긍정적인 결과를 이끌어 낸데 이어 문국현 유한킴벌리 사장 등 나머지 예비후보들과의 일정도 빈틈없이 실행에 옮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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