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쇄 살인은 선진국형 범죄 징후

서울시내 부유층 노인과 전화방, 출장마사지 여성 등 무고한 시민 19명을 무차별 살해한 희대의 연쇄살인 용의자가 경찰에 붙잡히면서 국내에서 발생했던 역대 연쇄살인사건이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연쇄살인 사건은 1980년대 전국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화성 연쇄살인 사건부터 사회의 집중적인 조명을 받기 시작해 1990년대에는 부유층에 대한 적개심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지존파 등 폭력조직의 반인륜적 연쇄살인 사건으로 이어졌다. 2000년대 들어서도 사회에 대한 증오심과 적개심을 품고 연쇄살인을 저지른 살인마들이 잇따라 등장해 사회를 불안에 떨게 했다. 우리는 63년 고재봉 사건을 필두로, 75년 김대두 사건을, 그리고 86년부터 15년간 발생한 화성사건을 잊을 수 없다. ‘사회환경은 범죄를 배양하는 커다란 용기이며 범죄는 그 속에서 자라는 미생물에 해당한다’는 프랑스 법의학자 라카샹뉴의 지적처럼 범죄 발생을 없애기 위해서는 원천적으로 건강한 사회가 기본이기는 하다. 그러나 범죄예방에 못지않게 중요한 게 발생한 범죄자를 잡는 일이다. 고재봉 사건 연쇄살인은 아니지만, 당시 잔학성 때문에 전 국민이 치를 떨던 살인 사건이었다. 63년 10월 강원도 인제에서 야전공병단 소속 고재봉이 같은 부대 이득령(36)중령 집에 침입해 부인과 세 자녀, 가정부 등 일가족 6명을 살해한 사건이다. 고씨는 귀금속 등을 훔쳐 달아났다가 24일 후 서울에서 검거됐다. 김대두 사건 및 우순경 사건 희대의 살인범 김대두는 1975년 17명의 무고한 시민을 살해하고 종교에 귀의한 뒤 전과자에게 갱생의 길을 열어달라는 유언을 남기고 1976년 12월 사형됐다. 1982년 발생한 우범곤 사건은 현직 순경 우범곤이 총기를 난사해 이웃주민을 살해한 사건으로 시민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줬다. 우범곤은 자신을 욕하는 동네 주민 을 죽여야 한다며 총기를 마구 쏴 56명을 숨지게 했다. 화성연쇄 살인 사건 1980년대 전국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연쇄살인사건이다. 1986년 9월∼1991년 4월 경기 화성 일대에서 부녀자 10명이 연쇄적으로 성폭행 당한 뒤 살해되는 등 장기간에 걸친 잔혹한 살해수법으로 인해 ‘세계 100대 살인사건’에 포함되기도 했다. 1986년 9월15일 태안읍 안녕리 목초지에서 야채를 팔고 귀가하던 이모(71.여)씨가 목이 졸려 숨진 채 발견된 뒤 1991년까지 10대∼60대에 이르는 여성 10명이 무참 하게 희생됐다. 10차례 연쇄살인 사건 중에서 여덟 번째 사건의 범인은 잡혔지만 나머지 연쇄살인 사건과는 무관한 것으로 밝혀졌으며 국민들의 머릿속에서 잊혀졌다 지난해 4월 개봉된 영화 ‘살인의 추억’을 통해 다시 세간의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지난해 9월 유일하게 목격자가 확보됐던 일곱 번째 사건의 공소시효가 만료, 사건이 종결되면서 사실상 영구 미제로 남을 가능성이 큰 사건이다. 지존파(至尊派) 사건 및 온보현 사건 1994년 9월20일 추석연휴 기간에 세상 에 전모가 드러난 폭력조직의 엽기적인 연쇄살인 사건이다. 당시 경찰에 붙잡힌 김현 양 등 조직원 6명은 1993년 7월 ‘지존파’를 결성, 사업 가 부부를 납치 살해한 것을 비롯해 배신한 조직원 1명 등 모두 5명을 잔인하게 살해한 뒤 시체를 암매장하거나 불에 태웠다. 이들 중 일부는 ‘담력을 키운다’는 명목으로 인육을 먹기까지 하는 ‘인면수심(人面獸心)’ 의 잔인함을 보여 충격을 주기도 했다. 이들은 또 ‘부자를 저주 한다’는 강령까지 만들고 백화점 고객명단을 빼내 범행 대상을 물색하는 등 부유층에 대한 적개심을 드러냈고 피해자들을 납치, 감금할 수 있는 철창과 살해 후 증거인멸을 위해 시체소각용 화덕까지 갖춰 사회를 경악케 했다. 지존파 사건의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부녀자 6명의 연쇄납치 및 살인사건인 온 보현 사건이 터져 1994년 당시 사회는 큰 충격에 빠지기도 했다. 온보현은 1994년 9월13일 서울 양재동에서 귀가중인 20대 여성을 훔친 택시로 납치, 살해하는 등 부녀자 6명을 납치해 이중 2명을 살해했고, 경찰이 공개수사에 나서자 온보현이 범행 보름만에 자수, 막을 내린 사건이다. 막가파, 영웅파 사건 연쇄살인 사건은 아니지만 지존파의 잔혹성을 모방하고 계승한 막가파, 영웅파 사건도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다. 1996년 10월29일 ‘지존파’를 모방한 최정수 등 일명 ‘막가파’ 5명이 강도살인 등 혐의로 경찰에 검거됐다. 이들은 같은 해 9월 중순 범죄단체를 조직한 뒤 10월5일 서울 포이동 W빌라 앞 에서 귀가 중이던 40대 여성을 승용차로 납치한 뒤 금품을 빼앗고 구덩이에 산 채로 밀어 넣어 살해하는 등 ‘지존파’ 못지않은 잔인한 범죄를 저질렀다. 1999년 10월29일 검찰에 검거된 이순철 등 ‘영웅파’ 조직원 6명도 평소 튀는 행동을 보여 눈에 거슬렸던 동료 조직원을 무참히 토막 살해하고, 시신 내장을 꺼내 나눠 먹는 등 잔혹성의 극한을 치달았다. 부산, 울산 및 용인 연쇄살인 사건 30대 초반의 연쇄살인범 정두영이 1999년 6월∼2000년 4월 부산, 울산, 경남지역의 부유층을 범행대상으로 삼아 철강회사 회장 부부 등 9명을 잇따라 살해한 사건이다. 정두영은 1986년 자율방범 순찰대원을 살해해 12년 동안 복역하고 출소한 뒤 곧 바로 살인과 강, 절도 행각을 벌였다. 금품을 훔치다 들키면 흉기나 둔기 등으로 잔혹하게 목격자를 살해했으며 연쇄 살해 동기에 대한 조사과정에서 “내 속에 악마가 있었던 모양”이라고 말해 경찰을 놀라게 했다. 허모(25)씨와 김모(29)씨 등 20대 2명이 2002년 4월27일부터 승용차를 택시로 위장해 몰고 다니며 3일간 여성 5명을 살해한 충격적 사건도 이어졌다. 이들은 신용카드 빚을 갚고 유흥비를 마련하겠다는 생각으로 범행을 시작했지만 신고를 막기 위해 피해자들을 거침없이 살해하고 늘어나는 시신들을 차에 싣고 다니 는 등 끔찍한 행각을 보였다. 범인 중 김씨는 경찰에 체포됐다 도주했지만 김씨의 도피행각은 자살로 끝을 맺기도 했다. ‘선진국형 범죄’ 징후, 사회안전망 서둘러야 과거 김대두 사건, 막가파, 지존파 등의 살인을 연쇄살인이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엄밀히 분류하면 이는 연쇄살인이 아니다. 한 장소에서 여러 사람을 죽인 사건으로 ‘다중살인’이라고 하는 게 정확한 표현이다. 연쇄살인이란 일정한 냉각기를 갖고 연속적으로 얼굴을 알지 못하는 불 특정인을 살해하는 것을 말한다. 유영철은 부유층 노인들을 살해한 후 6∼7개월간 살인을 하지 않다가(냉각기) 다시 출장마사지사 여성들을 살해했다. 또 연쇄살인은 연속살인과도 구별된다. 연속살인은 주로 금품을 목적으로 한 범죄로, 택시 강도 살인이 이에 해당되며 냉각기가 따로 없다. 그런 점에서 유씨의 범행은 국내 최초의 연쇄살인이라고 할 수 있다. 유씨의 범행은 전형적인 선진국형 연쇄살인의 양상을 띠고 있다. 여태까지 국내 살인범죄자의 검거율은 98% 정도로 높은 수준을 보이고 있다. 이는 평소 알고 지내는 사람에게 원한을 품고 충동적으로 범행을 저지르는 경우가 대다수로, 친인척관계와 주변사람을 탐문수사하면 쉽게 살인범을 찾아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번 사건은 다르다.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막연한 증오심을 품은 유씨가 무차별적으로 범행을 저질렀기 때문에 쉽게 검거할 수 없었던 것이다.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불 특정인에 대한 살인이 많이 발생해 살인범 검거율이 50%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이런 점에서 불 특정인을 겨냥했던 유씨의 살인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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