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가 순수·진심으로 염원하면 인과응보법칙에 따라 성취할 수 있어

노병한 칼럼니스트
노병한 칼럼니스트

[노병한의 운세코칭] 사람이 선천적으로 타고난 숙명·천명과는 달리 살아가면서 겪는 운명은 인과응보의 법칙으로 충분히 변화가 가능하다. 이러한 이치를 상세히 밝혀준 경험담이 담긴 책이 있어 여기서 인용을 해보려고 한다.

16세기 중국 명대의 말기에 원료범(袁了凡)이 쓴 ‘음척록(陰瘠碌)’이 바로 그 책이다. 여기서 그는 운명론을 인정하지만 사람의 마음·생각·노력·행동에 따라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도 충분히 변할 수 있다는 개운(開運)이론을 자신 있게 주장하고 있다.

원료범의 가정은 대대로 의술을 가업으로 삼는 집안에서 태어나 소년(少年)시절에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 손에서 편모(偏母)슬하로 길러졌다. 가업을 이어 의학을 공부하던 소년 시절에 갑자기 관상(觀相)을 잘 본다는 공(孔)씨 성을 가진 한 노파가 와서 자신은 역학(易學)을 공부하는 사람인데 천명(天命)을 쫓아 소년에게 역학(易學)의 진수를 전해야 한다고 진지하게 말을 전했다.

이 노파는 원료범과 그의 어머니께 다음과 같이 말을 전해주었다. 어머님께서는 이 아이를 의사로 만들려고 애를 쓰시겠지만 이 아이는 분명히 그 길을 걷지 않을 겁니다. 성장하면서 과거시험을 보고 합격해 나라의 관리가 될 겁니다. 그러면서 몇 살에 어떤 과거시험을 보고 몇 명 중에 몇 등으로 합격할 것이라고 예언을 해주었다.

그뿐만 아니라 젊은 나이에 지방장관이 되어 크게 출세할 것이며, 결혼을 하더라도 아이는 없을 것이라는 것과 또 53세 8월 14일의 축(丑)시에 자택에서 수명이 다되어 생애를 마치고 죽을 것이라는 것 등 소년의 운명을 하나하나 모두 예언해주었다.

그 후 원료범의 인생은 모두 다 이 공(孔)씨 노파의 예언대로 되어갔다. 그리고 지방장관이 된 원료범이 어느 해에 서하사(棲霞寺)의 운곡선사(雲谷禪師)라는 고명한 고승을 만나 3일이나 잠을 자지 않고 선사(禪師)와 대좌(對坐)하여 3일간 앉은 채로 사념하고 일어나지 않는 좌선에 들었다.

무념무상의 훌륭한 좌선을 하고 있는 이런 원료범의 모습을 보고 노승이 어떤 일이냐고 물었다. 한 점 구름 없는 훌륭한 좌선이 구나? 그런데 대체 어디서 수행을 하였는가? 원료범은 수행경험 같은 것은 전혀 없었다고 말하며 소년시절에 만난 한 노파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드렸다.

저는 그 노파가 말한 운명대로 지금껏 인생을 살아왔습니다. 53살이 되어 죽는 것도 나의 운명일 것입니다. 그러니 지금 와서 달리 생각하거나 고민할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이 말을 들은 노승은 원료범에게 큰 소리로 호통을 크게 쳤다. 젊어서 깨달음의 경지에 이른 사람인가 했더니 완전 바보였구나.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 하나만 따라 가는 것이 인생인가?

운명은 하늘이 내린 것이지만 결코 인위적으로 변화시킬 수 없는 부동(不動)의 확정체인 것도 아닌데 말이다. 좋은 생각을 하고 좋은 꿈을 꾸며 좋은 일을 하면 자신의 인생도 정해진 운명을 벗어나 더욱 훌륭한 방향으로 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들려준다.

선사께서는 운명에 구속됨은 범인(凡人)에게만 해당되고 성인(聖人)은 그것을 자기 자신을 자유롭게 바꿀 수 있음을 말해주며 인과응보(因果應報)의 법칙을 깨닫게 해준 것이다.

원료범은 그 말을 받아들여 이후 일체의 나쁜 마음가짐을 거두고 선행공덕을 쌓으며 살았다. 그 결과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자식도 얻어 대를 잇는 후사(後嗣)도 이뤘고, 일개 지방의 작은 성(城)장관 직위에서 끝난다는 예언도 아니고 더 높은 직위인 명(明)나라 군(軍)의 주사(主事)에까지 올랐다.

그 후 그는 임진왜란 때에 우리나라(한반도) 북한지역 함경도까지 와서 일본의 기오마사(加藤淸正)을 쳐부순 큰 수훈을 세우기도 하였다고 기록은 전하고 있다. 그뿐이랴 원료범은 수명도 예언되었던 나이인 53세를 훨씬 넘긴 천수(天壽)를 다 누리며 살았다고 전해진다.

이처럼 하늘이 정한 운명도 자신의 생각·선택·노력·힘으로 충분히 바꿀 수 있음이 증명된 셈이다. 그러므로 좋은 생각과 행동을 쌓아감으로써 인과응보의 법칙이 살아나고 그에 따라 우리는 운명으로 정해진 것 이상의 좋은 인생을 살 수가 있음인 것이다. 이러함을 입명(立命)이라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런 우주의 섭리나 자연의 법칙을 현실에서 그대로 믿는 사람은 별로 드물다. 오히려 비과학적 미신(迷信)이라며 비웃는 사람이 더 많은 게 현실이다. 근대적 지성을 신봉하는 사람들은 운명을 미신으로 치부하고 인과응보의 법칙을 나쁜 짓을 하면 당연히 벌을 받는다고 어린아이들을 가르치는 도덕적 윤리적인 방편으로 왜곡하고 있음이니 한심하지 않을 수가 없음이다.

물론 현대과학의 수준으로 그 ‘보이지 않는 불가사의한 힘’의 존재를 증명할 길이 없어 안타까울 뿐이다. 만약 좋은 행동이 언제나 좋은 결과로 즉각 나타난다면 사람들은 의심 없이 그것을 완전히 받아들여 믿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원인이 즉각적으로 결과로 이어지는 경우는 거의 없음이 현실이다. 오늘 행한 좋은 일이 곧장 내일의 좋은 결과로 나타나는 경우도 드물다. 또한 [1+1]의 해답이 정확히 2인 것처럼, 을(乙)이라는 결과가 나온 것이 바로 갑(甲)이라는 원인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인과관계가 명료하게 나타나는 경우도 매우 적다.

그러함의 이유는 운명과 인과응보의 법칙은 서로 씨실과 날실을 이루어 우리의 인생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씨실과 날실의 2가지는 서로 간섭을 하는 관계이다. 예컨대 운명(運勢)적으로 매우 나쁜 시기에 약간의 선행을 했더라도 운명(運勢)의 힘이 그 선행을 상쇄해 없애버린다면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운명(運勢)이 아주 좋은 시기에 약간의 악행을 하더라도 악행을 상쇄해 없애버린다면 나쁜 결과가 되지 않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운명(darma)이란 숙명이라는 하나의 원을 확인할 수 있도록 하나하나 풀어가기 위한 도구다. 1년에는 4계절이 있고 24절기가 있다. 이처럼 운(運)이 계절이자 절기9節氣)라고 표현을 해본다면 잘못일까?

사람마다 타고난 천명과 운명은 이미 정해져 있지만 인간의 뜻과 자유의지가 반영되어 자신이 스스로 어떤 길을 선택하고 결정하여 노력하고 실천하는가에 따라서 충분히 달라질 수도 있음인 것이다.

운명이란 자신이 만들어가는 인연(因緣)과 감정을 나타내는 칠정(七情)에 의해서 쉼 없이 변화하면서 자유롭게 살려함이 본질이다. 그러나 사람의 의지로 운명을 개척할 수도 쌓아올릴 수도 있음이 아닐까?

그러므로 인간에게 주어진 운명이라는 게 있지만 결코 바꿀 수 없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착한 것을 생각하고 착한 일을 하면 운명을 보다 좋게 바꿀 수가 있다는 말이다. 인생은 자신이 그리는 대로 그려지게 된다. 그러기에 스스로가 마음에 무엇을 그리는가에 의해 자신의 운명과 인생이 달라진다고 할 것이다.

마음에 그리는 생각 꿈 희망이나 마음에 품는 철학·이념·이상 등에 의해 그 사람의 인생이 결정된다. 그러나 적당히 생각하고 뿌연 안개처럼 막연하게 그리는 게 아니라 강렬하게 그리고 지속적으로 생각하되 필사의 노력이 따라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필요하다.

공부든 일이든 사업이든 정치든 조금 노력해보다가 잘 안 되면 거기서 주저앉아 포기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 끈질기게 그것도 이제 이 이상은 더할 수 없다는 경지까지 순수하고 열린 마음으로 집중·염원(念願)을 해야만 이룰 수가 있음이다.

그런 경지에 도달하면 반드시 우주에너지인 초(超)염력이 작동하여 신(神)의 선물이나 신(神)의 계시라고 여겨질 만큼 멋지고 큰 행운인 천계(天啓)를 맞아 하늘의 소리를 들을 수가 있음이고 자신의 운세가 확 열리면서 행복한 운명으로 뒤바뀔 수가 있음이다.

이런 천계(天啓)에 따른 신(神)의 선물을 전해주는 내용으로 아주 중요한 힌트를 은연중에 얻게 되거나 또는 자신을 도와주는 후견인이 반드시 나타나게 되는 법이니 말이다. 이것이 바로 운명이고 개운(開運)에 따른 입명(立命)이 아닐까?

□글/노병한:박사/한국미래예측연구소장/노병한박사철학원장/미래문제·자연사상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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