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기업 ‘종이 영수증 없애기’ 협약 실천
제지업계, “인쇄 영역 빼앗겨…생존권 위협”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 ⓒ픽사베이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 ⓒ픽사베이

[시사포커스 / 임현지 기자] “20년산 소나무 94만3119 그루를 심는 효과”

유통업계가 영수증을 종이 대신 전자영수증으로 발행했을 때 아낄 수 있는 비용은 연간 1200억 원이다. 택배를 받을 때 종이로 된 주문확인서 대신 모바일 영수증으로 전환했을 때도 연 3000만 장의 종이를 아낄 수 있다. 지난해 정부가 유통기업과 협약을 맺은 ‘종이 영수증 의무 발행 폐지’가 시행되면서 백화점과 대형마트, 온라인 몰 등이 하나둘씩 전자영수증으로의 전환을 실행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제지업계에겐 반갑지 않은 소식이다. 친환경에 나선다는 정부 정책에는 공감하지만, 영수증이 대부분 인공림 원료로 만들어지는 만큼 산림 훼손 등 환경과 관련한 설득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종이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 ‘페이퍼리스’를 선택하는 기업들이 속속 등장하며 제지업계는 산업 쇠퇴와 영세 업체 생존 위협을 우려해야 하는 실정이다.

1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SSG닷컴은 온라인 주문 시 함께 제공되던 종이 형태의 주문 확인서 발급을 전면 중단하고 이날 오후 주문 건부터 모바일로 일괄 전환하기로 했다.

SSG닷컴은 이를 통해 30년 된 나무 3000그루를 베어내지 않는 것과 같은 효과가 발생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언제 어디서나 모바일로 주문 내역을 확인할 수 있어 고객 편의성도 높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앞서 현대백화점도 지난 1월부터 전자 영수증 발급 서비스를 전면 도입한다고 밝힌 바 있다. 백화점과 현대아울렛에서 발급되는 종이 영수증은 2019년 기준 약 1억6000만 장으로 지구 한 바퀴와 맞먹는다. 3년 내 종이 영수증을 완전 대체하고 회원 가입 신청서 종이 역시 디지털 방식으로 전환한다는 방침이다.

2015년부터 애플리케이션으로 영수증을 발행하는 CJ올리브영도 최근 스마트영수증 누적 발행 건수가 1억 건을 돌파했다. 현재 스마트 영수증은 구매 고객 60%가 이용할 만큼 대표 서비스로 자리 잡았다. 

유통업계의 전자 영수증 전환은 지난해 정부가 세법개정안을 발표하며 직불·선불영수증 등을 전자문서 형태로 가능하도록 하는 영수증 발행 방법을 새로 신설한데 따른 조치다. 환경부·기획재정부·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백화점과 마트 등을 비롯한 대형 유통업계와 종이 영수증 없애기 협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기업들은 필요한 고객에게만 종이영수증을 선택 발급할 수 있도록 카드 단말기를 개선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 같은 종이 영수증 퇴출 소식에 제지업계는 난처한 입장이다. 시대 흐름에 따라 영수증이 축소되는 부분은 인정하지만 이를 정책으로 내세운다면 인쇄업계 한 축을 무너뜨리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우려다.

인쇄업계 관계자는 “전통적으로 인쇄지를 만드는 회사들은 생존권에 위협을 받고 있다”며 “모바일 고지서가 확산되면 인쇄업체의 한 영역을 빼앗기는 셈”이라고 말했다. 

제지업계 관계자는 “영수증을 만드는 감열지는 인공림 원료를 통해 만들기 때문에 오히려 친환경 인쇄라고 볼 수 있다”며 “개인정보유출에 대한 문제도 많이 야기 되는데 전자 영수증 역시 개인정보 유출 우려가 있는 것은 마찬가지”라고 강조했다.

자영업자나 소비자가 불편을 겪을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가맹점이나 소규모 점포의 경우 선택적 영수증 발행을 위한 시스템 교체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교환·환불 증빙자료나 가계부 정리 등에 종이영수증이 유용하게 쓰이는 만큼 완전한 페이퍼리스는 고려해야한다는 지적이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유승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기획재정부 종합국감에서 “종이영수증 의무발행제도를 개선하면서 카드업계 비용절감 민원만 청취하고 종이인쇄업계와 소비자보호원 의견수렴은 거치지 않았다”며 “해당 정책은 소비자 권리보호차원에서라도 신중을 기해야하며 매출감소로 타격을 입게 될 제지업계 의견도 반영해 세법 개정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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