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우리당 김근태 전 의장이 지난 12일 오전 대선 불출마를 전격 선언하면서 범여권 대통합 추진이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됐다. 김 전 의장은 대선 불출마와 함께 열린우리당까지 탈당 할 것으로 보여 그동안 지리하게 끌어가던 통합 작업에 박차가 가해질 것으로 관측된다. 김 전 의장은 대선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대통합의 광장을 만들기 위해 벌판으로 달려가겠다. 묵묵히 통합의 징검다리를 만드는 일만 하겠다”고 밝혔지만 당 안팎에서는 불출마 의 진정성을 놓고 여러 시나리오를 내 놓고 있다. 특히 정동영 열린우리당 전 의장의 행보와 이번 선언의 최대 수혜자로 지목되고 있는 손학규 전 지사에게 정계 안팎의 시선이 모아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2002년에 이어 2007년 대선을 앞두고 큰 결심을 하게 된 김근태 카드가 얼마나 위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 그의 행보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열린우리당 김근태 전 의장은 12일 ‘대통합의 밀알이 되겠습니다’라는 회견문을 통해 “저는 열린우리당의 의장을 지낸 사람이고 참여정부에서 장관을 지내기도 했다”면서 “열린우리당과 참여정부에 대한 실망과 배신감에 대해 누군가 책임을 져야 한다면 제가 그 짐을 지겠다, 김근태가 십자가를 지고 무덤 속으로 걸어가겠다”고 격앙된 목소리로 대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이어 그는 “내 역량의 부족과 상황의 절박함 때문에 불출마를 결심했다. 87년 양김(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 분열 때 밤 12시30분쯤 교도관에게 결과를 물어보니 ‘몰라서 묻나’라고 하더라. 2007년은 87년의 재판이 돼선 안 된다. 그래서 내가 가진 것부터 버려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자신의 불출마 선언 이유를 설명했다. 김 전 의장은 또 “6.10항쟁 기념일 하루 전날쯤 최종 결심했다”면서 누구의 의견이 아닌 자신의 독자적 판단이었음을 강조했다.

불출마 선언 그 진정성은?

하지만 당 일각에서는 김 전 의장의 사퇴 이유를 곱게 받아들이지 않는 분위기다. 김 전 의장의 진정성을 놓고 여러 관측들이 나돌고 있다.

일단 노무현 정권의 국정실패에 대한 연대책임감, 그로 인한 민주화운동 세력 전반에 대한 사회적 불신이 그를 자신 없게 만들었다는 관측이다. 이에 김 전 의장은 그동안 스스로 킹이 될 것인지 킹메이커가 될 것인지를 놓고 깊은 고민을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일각에서 지적돼 온 카리스마 부재는 그의 계보였던 민평련계 소속 의원들조차 독자적 활동을 하게하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김 전 의장은 당의장 임기를 마친 이후 이 같은 고민으로 1개월가량 잠적할 정도로 숙고 했다는 후문이다. 그러다가 김 전 의장은 결국, 6월 14일 열린우리당 붕괴 직전에 ‘킹 메이커’로서의 결단을 내린 것이다.

또 김 전 의장의 불출마 선언은 정동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을 몰아세우는 압박 카드라는 분석도 있다. 김 전 의장은 당내 양대 계파를 쥐고 있는 이들이 기득권을 포기해야 대통합의 물꼬를 틀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김 전 의장의 “대통합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내년 총선 역시 저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입장은 정동영 전 의장의 “대통합을 이루지 못하면 출마하는 의미가 없다”는 입장과 맥락을 같이하고 있다. 이에 앞으로 연달아 대선불출마 선언이 나오지 않겠나 하는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그러나 정치권 일각에서는 정 전 의장이 “김 전 의장의 결단을 헛되이 하지 않겠다”고 말한 부분에 대해 김 전 의장이 자신에게 힘을 실어주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또 다른 관측은 최근 만남을 가진 손학규 경기도 전 지사 밀어주기가 아니냐는 시각이다. 손 전 지사와 김 전 의장은 고등학교와 대학교 동창이고, 여기에 함께 민주화 운동을 했던 정치권 내 오랜 벗으로 알려져 있다. 그들은 14일 오전 여의도 한 음식점에서 한 시간여 조찬 회동을 갖고 “과거 회귀적인 냉전적 수구세력의 집권을 막고, 평화개혁세력이 대동단결해 미래를 책임질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다하자”는 데 뜻을 같이 하기로 했다고 전해졌다.

최대 수혜자 손학규

이로써 이번 파장의 가장 큰 덕을 볼 사람으로 손 전 지사가 0순위로 지목되고 있다. 따라서 최근 손 전 지사의 발언 하나하나가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손 전 지사는 14일 김 전의장과의 회동에서 “민주화를 위한 열정, 높은 도덕성, 정치적 경륜 등 김근태 의장이 가진 훌륭한 자산을 펼치지 못하고 불출마 선언을 했다”며 “대통합을 위해 살신성인의 결단을 한 만큼 그의 고뇌와 충정을 깊이 이해하고 존중한다” 밝혔다. 그러면서 손 전 지사는 “그의 결단이 분열과 갈등을 치유하고 통합의 새로운 정치를 이뤄가는 큰 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해, 대통합에 참여할 가능성이 있다는 속내를 내비쳤다. 이날 김 전 의장은 “대통합하라는 것이 국민들이 내린 지상명령”이라며 “손 전 지사가 대통합에 앞장서고, 국민 경선도 선두에 서서 역할해주길 친구로서 당부드린다”며 손 전 지사의 대통합 참여를 촉구 했다.

이렇게 손 전 지사가 범여권의 새로운 핵심으로 부상함에 따라 노무현 대통령도 발언 수위를 점차 높이고 있다. 노 대통령은 14일 “언론이 ‘범여권’이라는 용어를 그냥 쓰는데 그건 대통령과 정부에 대한 의도적 모욕”이라고 비난했다. 그러면서 “옛날에 나와 관계 있던 사람이라고 해서 (범여권 범주에서 제외하는게) 정 안되면, 다 빼고 손학규씨라도 ‘범여권’에 넣지 말아달라”고 손 전 지사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드러냈다. 여기에 덧붙여 “정치적 상황에 흔들리지 않는 뚝심과 배짱을 가진 지도자가 필요하다”면서 우회적으로 김 전 의장을 지목해 비판했다.

범여권 광풍몰이 하는 김근태

하지만 김 전 의장은 범여권 대통합을 위한 광풍 몰이에 더욱더 박차를 가할 것으로 보인다. 김 전 의장은 14일 손학규 전 경기지사와 천정배 의원을 만난 것을 시작으로 15일 정세균 의장과의 오찬회동, 한명숙 전 국무총리 면담 등 통합행보를 재촉하고 있다. 여기에 김 전 의장의 지지그룹인 재야운동을 함께했던 이들이 힘을 실어 줄 것으로 보인다. 장영달.유선호.문학진.정봉주.유승희.노영민.선병렬.강혜숙 의원, 이호웅 전 의원, 박우섭 전 인천 남구청장 등이 그들이다. 유인태.원혜영 의원도 김 전 의장의 후원자다. 20~30명 선에 이르는 만큼 적지 않은 숫자다. 이로써 그가 향후 범여권의 대선 정국에서 ‘킹 메이커’로 자리매김할 것이란 분석이 타당성을 얻고 있다. 대선 주자라는 기득권을 버린 만큼 가능성은 더 커졌다는 게 분석가들의 일반적인 시각이다.

김근태 카드 그 위력은?

하지만 회의적인 시각도 나오고 있다. 김 전 의장이 지금은 대선포기로 핵심으로 떠올랐지만 범여권 대선주자들의 이해관계가 첨예해 지면 김근태 역할론이 얼마나 효과를 발휘할지 반신반의 라는 것이다. 우선 범여권의 또 다른 축인 김한길 중도개혁통합신당 대표와 박상천 민주당 대표 측은 김 전의장의 면담요청에 아직까지 답변을 주지 않은 상황이다.

양당은 열린우리당 세력도 모두 한꺼번에 통합하자는 김 전 의장의 구상과 달리 이미 탈당한 의원들과 함께 통합민주당 창당 협상을 마무리짓는 ‘중통합’이 먼저 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중통합’ 후에 우리당과의 협상을 추진해보겠다는 것이다. 김 전 의장 측이 주도하는 대통합으로 주도권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경계하는 분위기다.

또 노무현 대통령이 “열린우리당 후보를 지지하겠다”고 공언한 상황에서 친노 주자들이 어떤 태도를 취할지 미지수이기 때문에 이해찬 전 총리나 김혁규 전 지사 등 이른바 친노주자들과의 관계 형성도 알 수 없는 상황이다.

김 전 의장측 관계자는 “대선주자들과 정치 지도자들을 계속 만나면서 합의를 이끌어내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하며 그의 거침없는 발걸음을 시사했다. 2002년에 이어 2007년 역시 대선 앞에서 고개 숙일 수밖에 없었던 김근태 카드가 얼마나 대통합에 맹위를 떨칠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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