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우리당 내에서 주요 발언권을 행사했던 '간판급' 의원들이 8일 대거 추가탈당을 결행함으로써 열린우리당은 사실상 해체수순을 밟게 됐으며, 범여권 내 제3지대 신당창당은 급물살을 탈 것으로 보여 진다. 이로써 범여권은 크게 4가지 길로 나뉘게 됐다. 열린우리당 탈당파 ‘제 3지대', 김한길-박상천으로 이뤄지는 ‘중도개혁통합신당’, 열린우리당 잔류 친노세력, 그리고 ‘민주사회시민세력’이다. 현재로서는 제 3지대 통합신당이 가장 크게 부상하고 있지만 이를 견제하는 중도개혁통합신당의 움직임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친노세력과 민주사회시민세력이 어떤 쪽으로 발걸음을 옮길지 주목된다.

열린우리당 탈당파

열린우리당 초재선 의원 16명이 8일 오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탈당을 공식선언 하면서 당이 사실상 해체수순을 밟고 있다. 당의 축을 이루던 재선그룹(임종석·김부겸·정장선·안영근), 재야·386 그룹(이목희·우상호·김동철·강기정), 정동영계(채수찬·강창일), 김근태계(이인영·우원식), 당직자들(김교흥 사무부총장·조정식 홍보위원장·최재성 대변인)이 망라됐다. 앞서 정대철 고문과 김덕규·문학진 의원등 7~8명과 당내 충청권의원 10여명은 오는 15일쯤 집단행동을 예고하고 있다. 이로써 열린우리당 의석수는 107석에서 두 자릿수인 91석으로 줄어들게 됐다. 이들은 기자회견문에서 "민주개혁세력의 분열을 극복하고, 무너져 내리고 있는 양당정치를 복원시키기 위해 '민주개혁세력 대통합'의 대장정을 시작하겠다"고 탈당을 결행하게 된 배경을 천명했다. 덧붙여 "민주당 확대강화론의 태생적 한계를 갖는 소통합이 고착돼, 민주개혁세력이 양분되고 대선이 필패구도로 전개되는 상황을 좌시할 수 없었다"고 강조하고 '대통합 실현'과 '국민경선을 통한 대선후보 선출'을 적극 추진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제3지대 가속화 된 배경

제 3지대 통합신당 흐름이 현재 이처럼 급물살을 타게 된 배경에 대해 정치권에는 여러 분석이 나오고 있다. 그 중 가장 설득력을 얻는 것은 ‘지역주의의 회귀’ ‘도로민주당’ 등의 명분을 앞세워 통합의 반대에 서 있던 노무현 대통령의 입장 변화이다. 노 대통령은 그간 ‘정책적 승리’를 대선 목표로 삼으면서 이른바 ‘승리 우선주의적 통합’에 반대해 왔으나 지난 5월19일 광주 무등산 산행에서 ‘통합 수용’으로 기존의 입장을 변경 했다. 이러한 입장 변화는 노 대통령이 ‘승리 지상주의적 통합’을 수용한 것으로 ‘전략적 선택’이라는 분석이 유력하다.

제 3지대를 가속화시킨 또 다른 하나는 소위 비노 진영이라 불리는 세력의 입장 변화이다.

이들은 그동안 통합의 대상에서 친노진영을 배제해 왔으며 그들과의 차별화 전략에 힘을 기울였다. 하지만 최근 강경 반노파를 제외하고는 더 이상 친노진영 배제론을 내세우지 않고 있다. 이렇게 노 대통령의 ‘전략적 수용’과 비노 세력의 ‘친노 포용’이 맞물리면서 이른바 제3지대의 통합이 박차를 가하게 되었다는 정치권 일각의 분석이 타당성을 얻고 있다.

통합 이젠 직선 코스로

이들 제 3지대 통합신당 추진은 현재 보다 더욱 빠르게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문제로 시간이 촉박하기 때문이다. 8월 30일이 선관위 대선관리 위탁신청 최종 시한이기 때문에 경선관련 규정 확정 기간을 감안할 때 이들은 늦어도 8월까지 통합신당을 완성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또 통합신당 창당을 위해서 는 실질적인 논의가 7월초까지 윤곽을 드러내야 한다. 이에 제 3지대에서는 벌써 통합의 지름길을 모색하고 있다. 우상호 의원은 “제3지대란 말은 이제 유용성을 상실했다. 이제 시간이 없다”고 말했다. 제3지대에서 신당을 만들지 않고, ‘대통합협의체’를 모태로 대통합으로 직진하겠다는 속내다. 대통합신당의 목표시점은 7월10일쯤으로 모아지고 있다. 늦어도 7월까지 신당을 출범시키고, 추석 전에 오픈프라이머리를 통해 후보 선출을 끝내겠다는 것이다. 한 초선의원은 “독자행보 중인 시민사회와는 6월말~7월초쯤 창당준비위 단계에서 통합협의체를 구성하고, 대선주자들은 창당준비위원회나 신당에 합류하면 된다”고 밝혔다.

시간이 없는 만큼 16명의 탈당파는 한 화살로 두 마리의 새를 잡겠다는 전략을 세우고 있다. 대통합과 국민경선을 같이 얻겠다는 것이다. 임종석의원은 “6월중에 범여권의 제세력이 함께하는 ‘대통합추진협의체’와 ‘국민경선추진단’의 투트랙(Two Track)을 만드는 게 목표”라고 밝혔다. 우리당을 탈당한 민생정치모임(최재천·이계안의원 등)과 ‘백의종군파’(이강래·이종걸·전병헌의원)도 합류키로 했고, 우리당 추가탈당파도 동참할 예정이다. 협의체는 당적 보유도 가능토록 했다. 장상·한화갑 전대표와 김효석·채병일·신중식 의원, 박준영 전남지사와 박광태 광주시장, 원외 서명파 등 민주당내 대통합파를 염두에 둔 것이다. 일단 큰 울타리를 치고, 창당 작업은 속전속결로 가자는 구상으로 보인다.

중도개혁통합신당 김한길- 박상천

중도개혁통합신당은 열린우리당의 집단 탈당이 변신을 위한 ‘기획탈당'에 불과하다고 비난하면서 중도통합민주당으로의 합류만이 대통합이란 대의에 부합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통합신당 김한길 대표는 이날 8일 오전 최고위원회의에서 "우리당 지도부가 기획하는 간판 바꿔달기는 대통합을 가로막는 반(反)통합 행태로서 진짜 대통합과 짝퉁 대통합은 잘 구별해서 선택해야 한다"며 "통합민주당은 대통합을 위한 제3지대에 선 가장 든든한 전진기지로서, 곧 2,3단계 통합을 통해 반드시 대통합을 실현해내겠다"고 제 3지대 통합으로의 대세를 의식한 듯 말했다.

이들의 주도권 쟁탈은 유종필 대변인의 말에서도 여실히 묻어난다. "제3지대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환상의 섬일 따름이고 주소도, 번지수도 없어 편지를 부치면 들어가지 않고 반송된다"며 "실패한 우리당을 탈당하는 것은 옳지만 제3지대에 독자정당을 창당한다는 것은 아무런 명분이 없고, 민주당과 결합하지 않는 한 우리당의 2중대, 3중대에 불과하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한편 중도개혁통합신당과 민주당의 최대 걸림돌 이었던 ‘배제론’ 문제는 박상천 민주당 대표가 사실상 배제론을 철회하겠다는 입장을 보이면서 해결 국면으로 접어들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박 대표는 친노 그룹을 제외한 모든 세력과의 통합 이라는 명목하에 배제론을 주장해 왔다. 때문에 정치권 일각에서는 박 대표가 포기할 수 있는 명분이 없어 쉽게 사그러들 수 있을지 의문을 제기 하고 있다.

탈당 잔류세력-친노

추가 탈당파까지 열린우리당을 떠날 경우 당에는 이른바 친노세력만 남게 된다. 이에 이해찬, 한명숙 전 총리 등 친노세력이 당내에 남을지 제 3지대 통합에 발을 담글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추가 탈당파의 한 의원은 6일 “이 전 총리를 비롯해서 모두 대통합에 합류 하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했다고 밝히고, 하지만 “당장은 아니다”라며 여지를 남겼다. 이 말이 기정사실이 된다면 우리당에는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 등 과거개혁당 출신 강경 친노 그룹만 남게 될 것으로 보인다.

시민사회세력 모시기

진보진영 시민사회세력의 원로와 활동가들로 구성된 `민주평화국민회의'는 4일 오전 서울 세실레스토랑에서 결성선언식을 갖고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국민회의는 통합번영미래구상, 신당 창당파와 함께 시민사회세력의 정치세력화를 꾀하는 그룹의 한 축으로서, 직접 시민사회세력이 추진하는 정당 활동에 참여 하기보다는 신당의 외곽에서 활동을 지원. 지지하는 `병풍'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지금 대통합의 이름을 갖고 있는 세력들은 '시민 사회 세력'과의 적극적인 연대를 추구하고 있다. 각 진영마다 조금씩 주장하는 바가 다르지만 '시민사회세력'을 끌어들여 지지율도 높이고 정통성도 확보하려는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앞으로 ‘시민사회세력’이 어떤 식으로 대통합에 발을 들여 놓게 될지 궁금하다.

현재 범여권 대통합과 관련된 기사가 연일 지면수를 늘리고 있다. 하지만 이른바 ‘범여권 대통합’이 국민적 명분을 얻었는지는 아직 미지수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범여권이 결국 대통합에 성공한다 해도 국민적 관심을 불러 일으킬 수 있을지 회의적인 시각도 있다. 즉, 통합에 대한 국민적 명분이 없고 비전 제시가 부족하다는 점에서 단순한 이합집산으로 비춰지게 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또 이런 명분 부족은 각 세력들 간의 통합을 저해하는 요소가 될 수 있다. 이들이 실질적으로 논의할 수 있는 시간이 많이 남아 있지 않으므로 조만간 그 결과물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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