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은 폭발직전인데…대형마트는 배송물량 대책 없어
마스크 제공·인력 충원·휴일 수당 지급 등 마련 요구

마트산업노동조합과 온라인배송지회가 26일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배송기사들의 코로나19 안전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오훈 기자
마트산업노동조합과 온라인배송지회가 26일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배송기사들의 코로나19 안전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오훈 기자

[시사포커스 / 임현지 기자] “늘어나는 주문량을 처리하기 위해 평소보다 2시간 이상 추가로 일하고 있습니다. 코로나19보다 과로로 쓰러지겠다는 소리가 나올 정도입니다”

마트산업노동조합과 온라인배송지회(이하 배송지회)는 26일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열린 '온라인 배송기사들에 대한 코로나19 안전대책 촉구' 기자회견에서 이같이 호소했다. 최근 온라인을 통한 생필품 주문이 급증하고 있는 만큼 높아진 업무 강도에 대한 대형마트 측 대책 마련을 촉구한다는 취지다.

이들은 기자회견을 통해 ▲인원 충원 ▲중량물 기준 마련 및 중량물 주문 제한 ▲마스크·손소독제 지급 ▲대면 배송 최소화 ▲장시간 노동에 대한 연장·휴일 수당 지급 ▲마트 휴점 시 생계비 보장 등을 대형마트에 요구하고 나섰다.

또 서울지방고용노동청에는 배송기사에 대한 안전대책 마련과 대형마트 관리·감독 시행을 요구하는 서한을 전달했다.

■ “배송 늦어지는 이유요?” 1건 물량 수십 kg

배송지회에 따르면 지난 16일 기준 홈플러스 온라인몰 매출은 전년 대비 127% 증가했다. 이마트와 롯데마트 역시 2~3일 치 주문이 이미 가득 찬 상태다. 한 아파트 당 한두 개씩 나가던 배송 바구니가 10개 이상으로 증가했다. 업무 강도와 근무 시간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대형마트 온라인 주문은 배송 전 단계까지 정리하는 인력인 ‘피커’가 매장에서 직접 물건을 장바구니에 담는다. 최근 온라인 주문 급증으로 피커들은 늦은 시간까지 연장근무를 하고 있으며, 식사도 제때 챙겨 먹지 못하는 고강도 노동을 하고 있다는 것이 배송지회 입장이다.

주재현 마트산업노동조합 홈플러스지부 위원장은 “매장에 물건을 장바구니에 담는 일이 지연되자 배송기사분들의 배송 출발시간도 지연되고 있다”며 “밤 10시에 출발한 기사님도 있었을 정도지만 마트 측은 구체적인 지원 대책을 마련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배송지회에 따르면 홈플러스는 ‘배송이 지연될 수 있다’, ‘비대면으로 문 앞에 상품을 놓고 가겠다’는 고지도 고객들에게 보내지 않았다. 노동조합이 지난 23일 공문 요청을 하고 나서야 24일부터 메시지가 나가기 시작했으며, 25일부터 비대면에 대한 안내가 나갔다.

홈플러스 안산점에서 배송기사를 하고 있는 이수암 온라인배송지회 준비위원은 “5층, 6층 되는 엘리베이터가 없는 건물에도 주문 상품을 등에 메고 올라가야 한다”며 “그러나 마스크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전염병 감염자 취급을 받기도 한다”고 토로했다.

중량물에 대한 제한도 없어 1건의 물량이 수십 kg이 되기도 했다. 합배송이라도 하면 배송기사들의 부담은 배 이상이 된다. 합배송은 기존 주문 시 빠뜨린 물품 1~2개를 추가하면 1건으로 계산하는 개념인데, 최근에는 본 주문 보다 추가 주문이 몇 배가 되기도 한다. 배송기사들은 1건의 수수료로 몇 배 힘든 ‘저가 노동’을 하게 되는 것.

이 준비위원은 “늘어난 물량만큼 인원을 충원하고 과도한 중량물 주문을 제한해야한다”며 “노동부도 대형마트가 횡포를 부리지 못하도록 제 역할을 해야한다”고 강조했다.

배송지회는 중량물에 대한 제한도 없어 1건의 물량이 수십 kg씩 된다고 호소했다. ⓒ오훈 기자
배송지회는 중량물에 대한 제한도 없어 1건의 물량이 수십 kg씩 된다고 호소했다. ⓒ오훈 기자

■ “배송기사 건강과 안전 보장하라” 요구

배송지회는 배송기사들이 노동 강도 증가로 고통받고 있는 것과 더불어 코로나19 감염 사각지대에 놓여있다고 주장했다. 배송기사에게 안전조치란 마스크를 착용하는 것뿐인데 마스크와 손 세정제를 개인 사비로 구매해야 하는 상황이라는 입장이다.

게다가 배송 상품 확인을 위해 고객들과 대면하라는 매뉴얼이 있어, 비대면 안내가 나가기 전까지는 불특정 다수와 대면해야 하는 위험에 놓여있었다.

그러나 특수고용노동자인 배송기사들은 고객에 의해 코로나19에 감염돼도 아무런 보상을 받을 수 없다. 대형마트가 확진자 방문으로 임시 휴점을 하게 된다면 배송기사들은 당장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가 된다.

최준종 온라인배송지회 준비위원은 “업무 특성상 주문이 들어오면 병원, 학교, 단체 등에 전부 가야한다”며 “몸은 몸대로 힘든데 위험까지 떠안고 일해야 한다”고 말했다.

온라인 주문 폭주로 배송기사들은 높은 업무 강도에 시달리지만, 매출이 뚝 떨어진 오프라인 업체들은 정부에 규제 완화를 요구하고 있는 등 뚜렷한 입장차이를 보이고 있다. 체인스토어협회는 최근 정부에 ‘대형마트 의무휴업일, 온라인 배송 규제를 한시적으로 완화해 달라’고 요구한 바 있다. 배송 노동자 입장에선 업무 강도가 더욱 세지는 요구다.

김기완 마트산업노동조합 위원장은 “대형마트는 늘어나는 물량에 속으로 기뻐하고 노동자들의 건강과 안전은 뒷전”이라며 “노동부는 대형마트를 포함한 모든 노동자들이 건강하고 안전하게 일하고 서비스할 수 있도록 즉각적인 관리·감독을 해야한다”고 강조했다.

마트노조와 배송지회는 이날 기자회견 직후 서울지방노동청에 요구안을 담은 서안을 전달했다. 대형마트 회사들에게도 배송기사에 대한 대책을 수립하지 않는다면 마트노조 소속의 직영 노동자와 연대해 함께 투쟁한다는 뜻을 밝혔다. 롯데마트와 쓱닷컴(SSG닷컴)까지 노조 가입을 확대하고, 대형마트와 교섭을 통해 배송기사 권익 실현을 위한 활동도 전개한다는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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