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자, 부부, 부녀상봉 '눈물바다'-조문논란'에도 이산가족행사 예정대로 진행

김일성 주석의 10주기 조문 문제로 일부 민간단체의 방북과 당국간 회담이 연기되는 등 남북관계가 일부 차질을 빚고 있는 가운데 제10차 이산가족 상봉행사는 11일 오후 단체상봉을 시작으로 예정대로 진행됐다. 이번 상봉에서는 95세의 고령 할머니 2명이 각각 북한의 아들을 만났는 가 하면 50여년만의 부부, 부녀 상봉이 이뤄져 눈길을 끌었다. 남측 상봉단 가운데 최고령인 노복금 할머니(95)는 북쪽의 아들 림승호씨를 부둥켜 안고 "이게 우리 아들 아니여"라고 하자, 승호씨는 바닥에 주저앉아 큰절을 올리며 "어머니 죄송합니다"라며 그간의 불효에 대한 용서를 구했다. 승호씨는 어머니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어머니 모습이 그대로 있어요"라고 말했다. 누나 채옥(75)씨는 동생 승호씨의 오른 손을 붙잡고 "맞어 맞어 알아보겠어, 이거 손을 봐 손을 봐"라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승호씨는 어릴 적 오른 손 엄지손가락 끝부분을 잃었다. 이어 채옥씨는 동생의 손을 잡은 채 포옹하며 "우리가 이렇게 다시 만나냐"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승호씨가 "아버지는 어디 갔어, 없어"라고 묻자, 채옥씨가 "아버지가 왜 없어, 못 오셨지"라고 답했다. 승호씨는 "아버지가 살아계신다니 놀랍다"라며 기뻐했다. 승호씨의 아버지 임복구(97)씨는 아들의 생존 소식을 전해듣고 흥분하는 바람에 건강이 나빠져 이번 상봉에 참가하지 못했다. 또 노복금 할머니와 동갑인 남쪽의 주애기 할머니는 헤어질 당시 서울 중학교 5학년이던 소년에서 백발의 노인이 된 북쪽의 아들 리강백(71)씨를 만났다. 강백씨는 어머니에게 "강백이가 왔습니다"라고 큰절을 올렸고 늙은 아들 강백씨는 오른쪽 검지가 없는 어머니의 손을 잡고 "굴비 가시를 골라내다 이렇게 되셨다"고 했다. 어머니가 아들의 손을 꼭 잡은 채 잠시 눈시울을 붉힌 뒤 서울에서 함께 온 막내아들 강훈씨를 가리키며 "막내는 너 없을 때 낳았다"고 소개하자, 강백씨는 "동생이 하나 더 생겼구만"이라며 웃음을 지었다. 강백씨는 어머니에게 사진으로 북쪽의 아내를 소개하면서 "며느리가 어머니를 만난다고 하니 눈물을 흘렸어요"라고 말했다. 강백씨가 "아버님은 어떻게 됐느냐"고 물었다가 어머니로부터 "여든네살까지 사시다가 11년 전에 돌아가셨다"는 답을 들은 뒤 "아버지께서 계셨으면 얼마나 좋았을 까"라며 아쉬워했다. 북쪽의 리종하(77)씨는 54년만에 부부, 부녀 상봉을 하는 감격을 누렸다. 리씨는 남쪽의 아내 정희섭(76)씨, 큰 딸 은신(55)씨, 둘째 딸 효동(53)씨를 끌어안았으며, 특히 은신씨에게는 "두 살 때 너를 잃었다"고 말을 건넸다. 리씨는 북쪽 가족들 사진을 꺼내 그동안 수절해온 아내에게 소개하며 "당신과 헤어진 뒤 6년 동안 혼자 살다가, 통일이 멀어 장가를 갔는데 그 아주머니는 6년 전에 죽었다"며 미안한 마음을 전했다. 또 54년만에 북의 아버지 윤병철(80)씨를 만난 남쪽의 딸 순원(58)씨는 아버지를 붙잡고 "아버지, 아버지"라고 흐느껴 주위를 숙연케 했다. 아버지 윤씨는 "그만 울고 시간도 짧은 데 이야기를 나누자"며 딸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윤병철씨의 동생 병순, 병성, 병익씨는 각자 자기 소개를 하면서 눈물을 그치지 못했으며, 윤씨는 우는 동생들을 달랬다. 화제의 가족들 이번 상봉단에는 문재인 청와대 시민사회수석 과 인기 탤런트 김무생씨가 포함됐고, 6공과 문민정부 당시 각각 청와대 의전수석과 안기부 해외담당 차장을 지낸 이병기씨가 포함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또 남과북에 8남매가 모두 살아있는 가족도 있었다 문재인 수석 가족 "이모님. 제가 조카 문재인입니다" 생면부지의 이모를 만난 문 수석은 서먹한 상태에서 상봉을 했지만 어머니와 이모의 얼싸안은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며 끝내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단체상봉이 시작된 오후 4시 이모 강병옥(55)씨가 남색 한복을 차려입고 상봉장에 모습을 나타내자 문 수석은 자리에서 일어나 이모를 자리로 안내했다. 문 수석의 어머니 강한옥(77)씨는 동생을 보며 "네가 병옥이냐"라고 물었고 곧바로 두 자매는 서로 얼싸 안고 아무 말도 못한 채 눈물만 흘렸다.한옥씨는 북받치는 감정을 추스르고 병옥씨와 밀렸던 대화를 풀어 나갔다. 특히 흥남이 고향인 한옥씨는 흥남 인근의 지도를 메모지 위에 그려가며 헤어질 당시 자신이 살던 곳과 작은 집 등을 소재로 이야기 꽃을 피우면서 잃어버린 50여년의 시간을 더듬어 갔다. 문 수석은 어머니 한옥씨와 이모 병옥씨가 쉼없이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바라보며 눈시울이 붉어졌고, 손수건으로 눈가를 훔치기도 했다. 문 수석은 "언제 어떻게 오셨느냐", "어디에 묵으시느냐"면서 이모에게 금강산에서 불편한 점은 없는 지를 물었다. 문 수석은 특히 자기 때문에 어머니와 이모의 상봉이 방해되지 않을까 염려한 탓인지 취재진들에게 "이제 그만하자"고 요청하기도 했다. 문 수석의 상봉에는 북측도 상당한 관심을 보였다. 북측 관계자들은 남측 취재진에게 문 수석을 가리키며 "저 사람이 누구냐"고 묻기도 했고, 방송 카메라와 정사진 카메라 등을 들이대며 문 수석의 가족 상봉에 관심을 나타냈다. 문 수석 가족이 상봉하는 탁자 주변에서는 늘 3∼4명씩의 북측 관계자들이 상봉장면을 지켜보기도 했고, 일부 북측 관계자들은 가족들이 조용히 만날 수있도록 취재를제한하기도 했다. 전 안기부 차장 이병기씨 가족 이씨는 6.25전쟁 당시 북으로 간 고모 리순덕(71)씨를 만났다. 리순덕씨는 김일성종합대학을 최우등으로 졸업한 뒤 김형직사범대학 당역사강좌 장(주임교수급)을 지냈으며, 현재 인민대학습당 연구사로 근무중이라고 소개했다. 이씨와 함께 상봉장에 나온 남쪽의 고모 이희갑씨는 동생 순덕에게 "엄마가 돌아가실 때 니 안보고 어떻게 죽느냐고 소리 소리 질렀다"고 말하고 "너를 어떻게 (북에) 두고 가느냐"면서 오열했다. 이희갑씨가 북받쳐 오르는 감정을 억누르지 못한 채 테이블을 치는 등 흥분하자 딸 정윤선(53)씨가 준비해온 우황청심환을 입에 넣어 주기도 했다. 순덕씨는 전쟁이 일어나자 경기여고 3학년으로 서울대병원에서 인민군 부상자 치료를 돕다가 인민군이 후퇴하면서 함께 어디론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탤런트 김무생씨 가족 "네가 무생이구나. 너희 어머니가 아들이 없다가 너를 낳아서 이름을 없을 `무', 날 `생'이라고 짓지 않았니". 북한에 사는 김씨의 외삼촌 장경수(79)씨는 김씨를 만나자 말자 이렇게 말하고는 얼싸 안았으며, 김씨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김씨는 "외삼촌 절 받으세요"라며 외사촌 동생인 장경호(46)씨와 함께 바닥에 엎드린 뒤 큰 절을 올렸다. 장경수씨는 자신의 조카이자, 김씨의 누나들인 금련(74), 정희(71)씨의 얼굴을 번갈아 어루만지며 "너무 너무 좋다"고 말했다. 이어 장씨는 자리에 앉은 다음 "우리 절대로 울지 말고 차근차근 이야기 하자" 고 한 뒤 "6.25전쟁때 죽을 고비를 넘기고 위대한 장군님 품에 안긴 이후부터 얼마나 행복한 생활을 했는 지 이루 말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8남매 생존 가족 이번 상봉단에는 6.25 전쟁 등 그 험한 세월 속에서도 남과 북에 8남매가 모두 살아있는 가족도 있었다. 박기분(여.77)씨 등 7남매는 남쪽에, 그리고 동생 영돈(71)씨는 북한에 살고 있는 것이다. 기분씨 가족들은 북의 동생 영돈씨를 만나자,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다 결국 눈물을 흘렸다.영돈씨는 누나와 여동생의 손을 꼭잡고 "자꾸 울면 얘기를 못하잖아"라며 "아버님 어머님은 어떻게 되셨느냐"고 물었으나, 돌아가셨다는 이야기에 울먹이며 고개를 숙였다. 박씨 가족은 남쪽 상봉자 수가 5명으로 제한되어 있어 가족회의를 통해 상봉에 참가할 사람을 결정했다. 오지 못한 자매 2명은 눈물을 펑펑 쏟았다고 한다. 취재 : 문제기 기자 mjg@sisafoc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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