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일정당 구성해 차기 대선에 임하라’ 범여권 홈런주문 왜?

김대중 노골적인 대선개입

김대중 전 대통령이 정치권의 비판을 무릅쓰고 연일 ‘훈수 정치’를 이어오고 있다. 민주당 박상천 대표를 만나 "어떤 일이 있어도, 반드시 대선에서 한나라당을 이겨야 한다"고 말했고, 이해찬 전 총리를 만나 여권 대통합을 "책임지고 잘 해나가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또 열린우리당 정세균 의장을 비공개로 만났다. 여권 통합의 핵심적인 인사들을 차례로 안방에 들여 한나라당 집권을 막고 좌파 정권을 연장하라는 교시(敎示)를 내린 것이다. DJ측은 "정치주간은 끝"이라던 발언을 번복하고 앞으로 여야를 가리지 않고 누구든 만날 것이라고 밝혔다. 한명숙 전 총리와 김근태 전 의장과도 조만간 면담할 예정이라고 한다. 특히 정 전 의장을 만난 자리에서 “더 이상 머뭇거릴 일이 아니다” “단일정당을 구성해야 한다” “그게 안되면 연합체라도 해야 한다”고 범여권의 단일대오 즉 ‘대통합’을 거듭 주문했다. 범여권의 정치세력이 통합 여부를 놓고 논란을 벌이고 있는 상황에서 김 전 대통령 자신의 방향을 제시한 것이다. 한마디로 정치 훈수를 두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물러난 대통령이 현실 정치에 관여하는 것은 민주주의 발전에 역행하는 것”이라고 말해왔던 김 전 대통령. 결국 자신의 ‘정치 불개입’을 스스로 무너뜨리고 있는 것이다. DJ 이처럼 자신의 ‘정치 불개입’ 발언을 뒤집으면서까지 범여권 주자들을 중심으로 정치훈수를 두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정치권도 'DJ훈수정치‘에 연일 맹공을 펼치고 있지만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김 전 대통령은 31일 정 전 의장과의 만남에서 오히려 “내가 어찌 가만 있겠냐”며 범여권 대통합을 위해 훈수정치를 계속할 뜻을 나타내 논란은 더욱 확대될 전망이다.


정권교체로 DJ 최대업적 ‘햇볕정책’ 계승·발전 어려워
DJ 시절 ‘게이트’ 등 숨겨진 사건 드러날 가능성 높아



연일 뉴스메이커가 되고 있는 김 전 대통령. 범여권 통합론을 놓고 ‘노골적인 훈수’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범여권 주자들도 앞다퉈 동교동 안방으로 발길을 옮기고 있다. 이미 손학규 전 지사를 시작으로 열린우리당 김혁규 의원, 정동영 전 의장, 중도개혁신당 김한길 대표, 정대철 고문, 민주당 박상천 대표, 이해찬 전 총리에 이어 정세균 의장이 동교동을 다녀갔다. 또 한명숙 전 총리와 김근태 전 의장도 조만간 면담할 예정이라고 한다. 범여권 통합작업이 김 전 대통령을 빼고는 불가능해 보일 정도다.
민주당과 대통합에 ‘지역주의 회귀’라며 강도 높게 비판했던 노무현 대통령도 DJ의 대통합론에 무게를 두고 있는 모양새를 취하고 있다. 지난 5월 18일 광주 방문에서 노 대통령은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를 같은 민주정부로 규정하고 대세를 따르겠다고 선언하는 등 범여권 통합에 대한 공감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 때문에 이 전 총리를 매개로 한 연대론까지 솔솔 피어오르고 있는 실정이다.

▶김대중 대통합 ‘훈수’ 왜?
김 전 대통령이 범여권 주자들을 향해 “양당 대결로 가야 한다”고 조언수준에서 ‘사생결단’이라는 말까지 그의 발언은 갈수록 강도가 세지고 있다.
정 전 의장을 만난 자리에서 DJ는 “통합 문제가 지지부진해 답답하다. 시간이 없다. 사생결단을 해서라도 상황을 돌파해야 한다”고 범여권의 ‘행동’을 강력히 촉구했다. 그가 이처럼 강렬하게 범여권 통합과 정권재창출에 혼신을 쏟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로 김 전 대통령의 최대 업적으로 꼽히고 있는 햇볕정책의 지속이다. 한나라당이 집권할 경우 DJ 자신의 최대 업적이 송두리째 과거의 역사로 치부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은 ‘잃어버린 10년’이라며 남북관계의 재검토를 주장하고 있는 만큼 햇볕정책 지속 발전을 위해 반(反)한나라당 단일정당 내지 단일후보로 차기 대선에서 승산이 있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햇볕정책은 DJ에게 노벨평화상까지 안겨다 주었다. 하지만 정권교체로 자신의 노벨평화상 수상을 둘러싼 잡음 등 과거의 문제들이 새롭게 부각될지도 모른다.
한나라당 대선예비후보인 홍준표 의원은 김 전 대통령의 ‘훈수정치’에 대해 최근 “김 전 대통령은 일생 마지막 정책으로 햇볕정책을 생각한 것으로 안다”며 “한나라당이 집권하면 햇볕정책을 이어갈 수 없다고 판단해 햇볕정책을 따를 후보를 찾는 것으로 생각된다”고 평가했다.
DJ는 또 5년간 더 집권하면 보수세력이 당분간 정권을 잡기는 힘들 것이란 판단도 배어 있는 것 같다.
둘째로는 한나라당의 집권으로 DJ 자신의 ‘치부’가 드러날 수 있다는 위기감 아니냐는 추측이다.
정치권에선 한나라당이 집권하면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를 철저하게 부패, 무능 정권으로 매장시킬 것이라며 묻혀 있던 과거 정권의 ‘게이트’들을 들춰낼 것이라는 말들이 기정사실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 사실 틀린 말이 아니다. 그간 과거 정부의 비리들은 차기 정부에서 상당한 부분들이 들춰졌었다.
정권이 교체될 경우 전임자 평가과정에서 뜻하지 않은 곤욕을 치를 가능성이 높다. 지금도 간간이 나오는 남북정상회담 리베이트설과 정몽헌 전 현대그룹 회장의 자살 미스터리, 대우그룹 해체와 론스타 사태에서 보듯 국제통화기금(IMF) 극복 과정에서 나타난 자본 유출과 잠식 상태, 막대한 재산 보유설 등 그동안 베일에 가려 있던 사안들이 봇물처럼 터질지도 모른다.
실제 한나라당 관계자들은 사석에서 정권이 교체되면 이런 이슈들이 공식적으로 제기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고 말한다. DJ 입장에선 이런 일이 결코 있어서는 안 된다. 최악의 경우 정권이 넘어가더라도 1990년 217석의 거대 여당인 민자당에 맞서, 고작 71석으로 정국 주도권을 쥐었던 평민당처럼 탄탄한 응집력을 갖춘 야당을 유지한다면 그런 일을 막아낼 수 있을 것이다. 최근 동교동계가 재결합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셋째로 일각에선 DJ가 대선 이후 내년 총선에 까지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의식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대선은 물론 내년 총선 이후까지 자신의 정치적 영향력이 지속되기를 바라고 있다는 것. 그는 김한길 대표와의 만남에서 “이번 대선에서 잘못하면 내년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심판받는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실제 DJ가 최근 범여권 인사들과 만나는 일정과 발언 내용을 보면 치밀하게 준비된 수순을 밟고 있는 듯하다.

▶ 노무현-DJ 주파수 맞추나?
정권재창출을 위해서는 DJ 입장에선 노 대통령과 함께 가는 게 필수조건이다. 이는 노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한나라당 집권으로 “개혁정권 10년이 무화(無化)될 수 있다”는 인식은 노 대통령과 김 전 대통령간 최대 공감대인 것 같다. 노 대통령의 최근 “대세를 따르겠다”는 발언도 DJ 대통합론에 대한 ‘힘 보태기’로 읽혀진다.
때문에 차기 대선에서의 ‘DJ-노무현’ 연대가 확실시 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의 연대가 현재로선 가시적으로 나타나고 있지는 않다. 다만 그런 흐름으로 진행될 것이라는 추측일 뿐이다.
그러나 노 대통령 최측근인 안희정 참여정부평가 포럼 상임집행위원장은 ‘노무현-DJ'의 연대설를 귀뜸했다.
지난 29일 안 위원장은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범여권 대통합 문제와 관련, “(김대중 전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이) 큰 흐름에서 합의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언론이 (두 분 사이에) 차이가 나는 것처럼 자꾸 사이를 비집는데 한 점 한 획 안 다르고 완전히 똑같을 수야 있겠느냐. 다만 노 대통령은 대의가 있지만 대세를 따라야 한다는 말씀 아니었느냐”고 강조하기도 했다. 이처럼 노 대통령과 DJ가 한 줄기를 타기 위해 서로 근접하고 있다는 것이다.

▶ ‘노무현-DJ’ 연대 가능할까
노 대통령과 김 전 대통령의 연대는 실현가능할까. 정권재연장의 위해선 이들의 연대는 필수적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걸림돌도 적잖아 보인다.
무엇보다 두 사람은 연말 대선에 일차적인 관심을 둘 수 있는 반면, 범여권의 정당(정파)들은 내년 봄 총선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처지이기 때문이다.
결국 두 사람이 협력을 위한 공감대를 형성했다고 해도 범여권 전체의 복잡한 정치적 득실계산으로 한계에 부딪힐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DJ가 최근 '훈수 정치' 비난을 무릅쓰면서 범여권의 대선주자와 당 대표들을 잇따라 만나 대통합을 역설했지만 찬반 논란에 휩싸였다. 열린우리당과 탈당세력들은 전반적으로 공감하고 있는 데 반해 민주당은 비판적인 것.
총선을 염두에 둘 경우 열린우리당과 탈당세력들은 범여권의 대통합을 통해 변화를 모색해야 하며, 특히 여권의 전통적 텃밭인 호남권 의원들은 이곳에서 맹주로 재부상하고 있는 민주당에 대한 견제에 주력해야 하는 것이다.
민주당의 경우 박 대표 등 원외 인사들이 전면에 나서 호남권에서 지지세를 확산하고 있는 상황인 만큼, 원내 인사들 중심의 대통합에 부정적이며 자신들 중심의 소통합론을 고수하고 있다.
때문에 열린우리당에서 당 지도부의 임기가 끝나는 다음 달 14일을 전후해 이뤄질 추가 집단탈당 움직임은 대통합을 지향하고 있지만 소통합으로 변질될 가능성이 높다.
범여권의 대통합이 현실화되기가 쉽잖은 것이다. 노 대통령이 최근 대세를 따를 수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하기도 했으나 기본적으로 지역주의적 통합에 부정적인 소신을 갖고 있다는 점도 이를 뒷받침할 수 있다.
결국 범여권이 2, 3개 세력별로 후보를 정한 뒤 최종적으로 후보 단일화를 추진하는 김대중·김종필(DJP) 혹은 노무현-정몽준 방식이 재연될 가능성이 적잖다.
노 대통령과 DJ도 이와 관련된 발언을 했으며, 범여권의 이해관계에 따라 절충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범여권의 당초 대선 시나리오설과도 유사하나, 선거전 막판에 세력 간의 대통합은 이뤄지지 않는다는 점이 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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