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기관과 국세청, 국민연금공단 등이 최근 신종 사기수법인 ‘보이스피싱’으로 인해 몸살을 앓고 있다. 사기단들이 기관을 도용하는 방법으로 서민들을 울리고 있는 탓이다. 더욱이 현금입출금기가 범죄의 집중표적이 되면서 금융기관에 대한 국민들의 비난 화살이 빗발치고 있다. 일각에선 금융시스템에 구멍이 뚫렸다며 금융기관들을 몰아세우기도 한다. 때문에 이들 금융기관은 곤욕스런 형국이다. 보이스피싱 방지대책 등의 안내문을 365 자동화코너와 은행 객장에 부착하고 홍보를 하고 있지만 역부족이다. 급기야 서민들은 “금융기관에서 보이스피싱 범죄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처하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시사신문>에선 보이스피싱에 대한 현주소와 예방책을 긴급 점검했다.

부천시 상동에 사는 박기남(27)씨. 그는 며칠 전 정말 국세청 직원이란 사람으로부터 어이없는 사기를 당했다. 그 직원은 박씨에게 “국민연금이 과다징수돼 30만원을 돌려주겠다”는 전화에 현혹, 365 자동화코너로 달려갔다.
직원은 현금인출기 앞에 선 박씨에게 안전계좌카드번호라며 계좌번호와 비밀번호를 동시에 입력하도록 요구했다. 그 다음 인증코드라며 1회 은행이체한도 내 금액(1천만원 이내 9백만원 단위의 7자리 숫자)을 누르도록 했다. 그리고 나서 은행코드번호를 바로 누르게 한 후 확인버튼을 3회 연속 누를 것을 주문했다.
모든 과정을 마친 박씨. 기쁜 마음으로 통장정리를 시도한 그는 아연실색하고 말았다. 30만원은커녕 결혼자금으로 조금씩 모아두었던 1천3백만원의 종자돈이 사라지고 만 것이다. 불현듯 얼마 전 언론과 은행창구 등의 경고문을 통해 본 ‘보이스피싱’을 떠올랐다. ‘아차’ 싶었지만 이미 박씨의 돈은 허공으로 날아간 뒤였다.

현금인출기는
범죄의 표적대상

실제 보이스피싱 피해사례는 하루가 다르게 급증하고 있다. 보이스피싱 피해가 본격적으로 접수되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6월.
경찰청에 따르면 이때부터 지난 4월까지 접수된 전국 피해건수는 3천47건이다. 이중에는 환급사기 1천6백32건, 카드대금이 1천1백76건을 차지하고 있다. 이밖에 수사빙자가 2백39건 포함돼 있다. 피해금액으로 환산하며 2백38억5천5백96만원에 달한다.
그러면 이처럼 피해사례가 급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가장 큰 문제로 국내 금융시스템이 보이스피싱 범죄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다고 지적한다. 예컨대 곳곳에 현금인출기가 산재돼 있어 금융거래가 자유롭고 용이하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또 이체한도가 지나치게 높다는 것도 문제라고 꼬집는다. 이 때문에 피해규모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실제 국내 은행의 1회 출금한도는 70만~1백만원이다. 또 1일 출금한도와 1회 계좌이체한도는 각각 1천만원으로 되어 있다. 특히 1일 계좌이체한도가 5천만원 이내에서 자율적으로 정할 수 있게 되어 있다. 하루 만에 5천만원 이내에서 얼마든지 사기를 당할 수 있다는 얘기다.
업무시간 이외의 비상시스템 구축도 시급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휴일 등에 피해를 입고 있지만 콜센터 연결이 잘 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실제 최근 범죄유형을 보면 은행마감시간 이나 주말을 이용한 범죄가 급증하고 있다. 경찰은 이에 대해 은행직원의 도움 등 사후대응이 어렵다는 점을 악용하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보이스피싱 범죄가 이처럼 급증하고 있음에도 현재 금융기관은 속수무책인 입장이다. 겨우 객장과 언론등을 통해 홍보를 하고 있는 게 고작이다. 근본적인 대책이 마련되지 않고 있는 셈이다.
금융감독원 역시 거의 손놓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은행연합회가 계좌이체 한도를 줄이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기는 하지만 실효성 여부는 미지수다. 한도를 줄일 경우 수수료 추가부담 등이 발생할 수 있어서다.


현금인출기 유도하면
100% 사기

그러면 보이스피싱에 노출된 국민들은 범죄유혹에서 벗어날 방법은 없을까. 전문가들은 ‘현금인출기로 유도하는 전화는 100% 사기’라는 것만 명심하면 사기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은행권 한 관계자는 “모든 보이스피싱 범죄는 현금인출기를 통해 이뤄진다”면서 “하지만 현재 국내에서 현금인출기를 통해 환급이나 예금을 보호하는 기관은 단 한 곳도 없으므로 이를 항상 주지하면 범죄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조언했다.
그는 이어 “만일 범인에게 속아 송금했다면 가장 먼저 은행에 지급정지를 신청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면서 “지급정지 이전에 범인들이 인출했다면 돈을 찾기 불가능하기 때문에 지급ㅈ정지를 최우선으로, 신고는 그 다음에 하는 것이 좋다”고 강조했다.
금융권 한 전문가는 “현재 금융기관들이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할 것은 송금 후 재빠르게 피해를 막고 피해액을 줄일 수 있는 시스템 구축”이라면서 “금융기관이 앞장 서 보이스피싱 범죄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서민들의 종자돈을 지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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