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전오페라 <피가로>

장르의 데카당스란 본래 '천천히' 진행되는 법이다. '대중성 추구'라는 미명 아래 조금씩 조금씩 시대상황에 걸맞는 선정주의적 요소들이 더해지다가, 문득 뒤돌아보면, 본래의 모습과 판이하게 달라진 모습의 전혀 새로운 장르로 탈바꿈되어 있는 것. 그러나 많은 논란과 기대 속에 오는 13일, 무대에 올려지는 퓨전오페라 <피가로>의 경우는, 보다 급진적인 자세로 장르의 획기적인 변형을 '의도'한 작품이다. 모차르트의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의 전편격 작품이자, <피가로의 결혼>보다 풍자적 요소를 짙게 드리우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롯시니의 <세빌리아의 이발사>가 바로 <피가로>의 '원작'이다. <피가로>가 남다른 주목을 받고 있는 까닭은, 바로 '보다 대중적인 효과'를 거둬내기 위해, 롯시니의 원작을 일정부분 파괴하고 연극적인 요소를 끼워넣었다는 점 때문이다. 원작의 아리아와 레치타티보는 그대로 살려내 오페라의 참맛을 유지시키며, 우리말로 이루어진 연극적 에피소드를 통해 웃음과 재치가 '동시대적', '동문화적'으로 전달되는 '두 마리 토끼 잡이'에 나서겠다는 얘기다. 과연 이런 시도에 얼마나 많은 '오페라 기피족'들이 반응할 수 있을는지 모르겠지만, 풍자와 위트, 슬랩스틱적 폭소로 뒤덮인 <세빌리아의 이발사>라는 아이템을 '퓨전'의 계기로 삼았다는 점만은 '올바른 선택'으로 여겨진다. 연극적 재미가 가장 잘 먹혀 들어갈 만한 장르가 바로 '희극'일 것이며, 대중들이 하나의 장르에 가장 쉽게 친숙해질 수 있는 방법도 바로 '웃음'을 통해서가 아니겠는가. 오페라의 본고장 이태리에서 100여회의 오페라 공연을 지휘한 바 있는 김주현이 지휘를 맡았고, 오페라 <세빌리아의 이발사>를, 역시 100회 이상 무대에 올렸던 박경일이 연출을 맡았다. 적어도 '도발적인 아이디어' 하나만을 가지고 화제성을 불러 일으키려는 시도는 아닌 듯 보이는데, 어찌됐건 뚜껑은 열어봐야 아는 법. '두 마리 토끼'가 맞는지, '다 놓쳐버린 토끼'인지는 그때 가서 이야기해도 늦지 않겠지만, '대중성'이라는 요소가 긴 역사를 지닌 육중한 장르 - 권위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오랜 기간 동안 연마된 단단한 장르의 구조를 이야기하려는 것이다 - 를 이동시키고, 이리저리 붙이고 떼어낼 수 있을 정도로 장르 성립의 '결정적인' 요소가 될 수도 있다는 점에 오히려 더 신경이 쓰인다. (장소: 예술의전당 토월극장, 일시: 2004.07.16∼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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