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전공자이지만 평소 지휘를 하고 있는 나는 오래 전부터 아이작스턴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들었는데 바이올린 소리가 인상적이어서 당연히 아이작 스턴이 바이올린을 명기인 스트라디바리우스나 거기에 버금가는 악기를 쓸 것이라 믿어왔다.

그런데 모 언론의 인터뷰 기사를 보고 아이작 스턴이 주로 쓰는 바이올린을 만드는 사람이

우리나라 국적의 재일교포인 진창형옹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의외였다.

스승도 없이 독학으로 바이올린 제작 기술을 익혀 스트라디바리우스에 가장 근접하는 바이올린을 만들었다는 칭송을 듣는 분이고, 일본에서도 그의 일대기를 책, 만화, TV, 드라마로 만들고 한국 국적자로는 최초로 고교 영어 교과서에도 실렸다고 한다.

그에게 최고의 제작자로 우뚝 선 비결에 대하여 묻자

“나를 그토록 서럽게 했던 일본 사회의 차별과 모진 역경이었죠”라고 망설임 없이 이야기를 했다.

진창현옹은 그토록 차별했던 일본뿐만 아니라, 국교 수립 이전이라 고국을 방문하고 싶어도 못하다가 국교 수립 후 25년 만에 고국을 찾았지만 이복형이 북한 스파이 혐의로 밀고하는 바람에 무고하게 물고문, 전기고문까지 당했다가 어렵사리 석방되어 일본으로 돌아갔다는 것이다.

그는 일본으로 돌아간 뒤 유대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차별 받고 조그만 특허 사무실에서 일하며 연구를 한 아인슈타인 같이 일류가 되어 ‘상대성 이론’과 같은 일류(명품) 바이올린을 만들고자 다짐한 것이다.

“극한 상황에 부딪히면 저도 모르게 강한 힘이 생겨납니다. 사람들은 ‘어떻게 역경이 자기 힘이 되느냐고 하느냐, 터무니없는 이야기다’ 라고 하는데요, 저는 제 자신이 역경에 의해 길러지는걸 체험 했습니다. 재일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차별받아 잃은 것이 많았지만 그 역경 때문에 얻은 다른 기회가 얼마나 많았습니까?”

중국 전한 무제 때 역사에 깊이 남은 '사기'를 남긴 사마천은 대의를 위해 잘 알지 못하는 장군 이릉을 변호 하다가 무제에게 사형내지 궁형(남자의 성기를 거세하는 벌)중에 선택을 종용받게 된다.

그는 자신의 아버지와 약속을 지키고 역사에 기록을 남기고자, 육체적 죽음보다 더 치욕적인 궁형을 선택하고야 만다. 사마천은 사기에 ‘하루에 창자가 9번 뒤섞이고 등골을 흐르는 땀으로 옷을 적실 정도의 치욕’에도 불굴의 인간 승리를 이루었다.

손무도 두 다리가 잘린 후에 그 유명한 ‘손자병법’을 저술하지 않았는가.

추사 김정희는 유배지인 제주에서 세한도를 그리며 “날이 추워야 푸른 나무를 알 수 있다”라고 이야기 했고 “추운 겨울을 견뎌야 봄날의 매화향을 맡을 수 있다”라고 한 다산 정약용도 남인들이 천주교 박해를 받을 때 죽음을 맞이한 둘째형 정약전과는 달리 전라도 유배지에서 많은 저술을 남겨, 베트남의 국부이자 영웅인 호치민이 항시 머리맡에 두고 잔 ‘목민심서’도 남긴 것이다.

이 외에도 수많은 분들이 조국과 민주화를 위해 억울하게 피를 흘리고 역경을 헤쳐 나왔기에 오늘날의 대한민국을 만들어 내었다. 당신들은 죽을지언정 자신의 신념을 포기하지 않고 자신에게 불리한 현실을 헤쳐 나간 것이다.

지금 작금의 대한민국의 상황을 보면 답답해 죽을 지경이다. 경제 위기 안보위기는 말할 것도 없고 여당의 야당 무시의 일방적인 패싱과 유래가 없는 검찰 인사를 볼 때 나라가 어떻게 될 것인가 심각한 우려가 된다.

이런 여당발 악재에도 불구하고 야권은 분열해 있으며 여당에 대하여 무기력 하고 자업자득에 가까운 임기응변식 대응으로 오히려 위기를 겪고 있는 형국이다.

이럴 때 자포자기할 것이 아니라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하였기에 고난이 있어도 깨달음이 있다는 ‘곤이지지’(困而知之)의 사자성어를 깊이 마음에 새겨 새해벽두에 조국을 위해 결코 포기하지 않겠다는 마음을 다져 같이 동행하는 한 해가 되기 바란다.

저작권자 © 시사포커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