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가 지나고 송년을 해야 하는 시점이다. 몇 일전 크리스마스 이브에 대구에서 일가족 4명이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언론을 통해 접했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성탄절 직전 그런 선택을 했어야 하는지 눈물이 나고 가슴이 미어진다.

2019년 벽두에는 황금돼지 해라며 많은 사람들이 기대했을 법도 한데 한해가 거의 저문 작금의 시점엔 기대가 완벽한 실망으로 바뀐 듯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 정권은 출처불명의 소주성이나 부동산 정책이 명백하게 실패했음에도 여전히 인정하지 못하고 있다.

특히 지난번 문재인 대통령의 국민과의 대화는 고구마 이상의 답답함 그 자체였다. 자신들은 절대선이라 규정하고 그간 국가를 위해 헌신한 보수 세력을 적폐로 몰아 기요틴에 세우는데 급급한 현 정권을 보면 왜 의식 있는 국민들이 조국을 떠나고 싶어 하는지 일견 이해가 되고 2019년에 들어서 재외 국민이 역대 최고인 이유도 설명이 되는 듯하다.

항상 정의를 부르짖고 민주화를 외친 세력이지만 이번 조국과 유재수 그리고 선거 개입 의혹 사건 등을 보면 내로남불이 자명해 지고 역대 정권들 보다 더 심하다고 지적 받는 낙하산 인사를 볼 때 역시 현 정권은 입진보요 염치란 찾아 볼 수 없는 자들이라는 게 명확하기에 이런 위정자를 둔 우리 국민이 너무나도 억울하다는 생각까지 든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필자가 느끼기에도 이번 크리스마스와 연말처럼 분위기가 나지 않은 적은 처음이다. 택시기사들 조차 이번 성탄전야에는 손님이 평소 주말보다도 적었다고 한다. 이런 적은 처음이라 하는데 경제를 폭망시켜 놓고도 현재의 잘못은 인정하지 않고 지난 정권에 책임을 전가하는 이 정권의 나팔수들이 너무나도 가증스럽다.

그렇기에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서는 도무지 사랑과 헌신은 없고 영혼 없는 달콤함만 있는 현 정권의 정권연장 만큼은 반드시 막아 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필자는 사랑을 기본으로 한 결단과 헌신과 희생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연말을 맞으며 오헨리의 단편소설 ‘크리스마스 선물’과 ‘마지막 잎새’가 떠올랐다. 가난한 두 부부가 크리스마스를 맞아 상대를 위하여 가장 자신의 가장 소중한 것을 팔아 선물을 했다. 당장 필요 없는 선물이라고 폄훼할 자가 누가 있을까? 소설에는 나오지 않지만 아내의 머리카락은 다시 자랄 것이요 남편을 위한 시계줄도 쓸모가 있을 때가 반드시 올 것이다.

또한 마지막 잎새에서는 희망을 잃고 죽어가는 여류 작가 먼시를 위해 아래층에 사는 베어맨이라는 노인이 밤비를 홀딱 맞으며 담쟁이 잎을 그려내 먼시를 살려낸다. 이런 소설에서만이 아니라 현실에서도 여러 헌신들이 그간 대한민국을 지탱해왔지만 정작 대한민국호를 이끌어 가는 정치인들에게서는 찾아보기 힘들다는 것이 실망스럽다.

이럴 때 우리는 불평과 비판만 할 것이 아니라 국가와 민족을 위해 우리가 어떠한 노력을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 깊은 생각을 해봐야 할 것이다. 지금 상황만을 보면 암울하기 그지없지만 대한민국의 판도라의 항아리에는 아직 희망이 남아 있다고 확신한다.

그러기에 우리 자신부터 이타적인 헌신에 앞장 서야 할 것이다. 평생 타인을 위해 자신의 모든 삶을 바친 마더 테레사 수녀께서 하신 말씀 중 ‘얼마나 많이 주느냐보다 얼마나 많은 사랑을 담느냐가 중요하다’라는 명언이 가슴에 와 닿는 2019년의 끝자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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