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당, 필리버스터로 맞서지만 與 ‘쪼개기 임시국회’ 전술엔 무력

'4+1' 협의체의 선거법 개정안이 23일 국회 본회의에 상정되었다. 이에 당 소속 국회의원들은 본회의장에서 문희상 국회의장에게 항의하며 필리버스터에 돌입했다. ⓒ자유한국당
'4+1' 협의체의 선거법 개정안이 23일 국회 본회의에 상정되었다. 이에 당 소속 국회의원들은 본회의장에서 문희상 국회의장에게 항의하며 필리버스터에 돌입했다. ⓒ자유한국당

[시사포커스 / 김민규 기자] 더불어민주당과 바른미래당과 정의당, 민주평화당 등 군소정당 간 이견으로 좀처럼 마련되기 어려울 것으로 관측됐던 선거제 개정안이 23일 군소정당들의 석패율제 포기로 단일안 도출에 성공하면서 그간의 정체된 국면이 풀리고 본회의 상정을 눈앞에 두게 됐다.

당초 ‘4+1 협의체’의 선거법 개정안에 반대해온 자유한국당은 본회의 개최를 저지하기 위해 총력을 쏟았지만 문희상 국회의장은 이날 오후 7시57분 끝내 본회의를 개의했고, 한국당이 의사진행 방해를 위해 첫 번째 안건인 ‘임시국회 회기 결정의 건’부터 필리버스터를 신청했지만 문 의장은 이를 수용하지 않은 채 임시국회 회기를 25일까지로 하는 민주당의 수정안을 표결에 부치고 일방적으로 회의를 진행했는데, 뒤이은 예산부수법안 상정에 한국당은 무더기 수정안 제출로 다시 지연전을 펼쳤으나 문 의장의 거듭된 일방적 의사진행으로 무력화됐다.

특히 2건의 예산부수법안 안건를 마친 뒤 민주당이 선거법 개정안을 먼저 처리하기 위해 제출한 의사일정 변경 동의안까지 문 의장이 표결에 부쳐 의결하고 안건 처리 순서를 바꿔 결국 선거법 개정안을 본회의에 상정하면서 한국당의 국회의장 성토는 극에 달했는데, 비록 선거법 처리를 막고자 한국당이 필리버스터를 시작하기는 했지만 민주당은 이를 ‘쪼개기 국회’로 맞대응할 방침이어서 법안 처리를 막을 묘수가 없는 한국당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 여야 필리버스터 맞대결에도 26일 선거법 처리 유력

주호영 한국당 의원이 전날 밤 첫 주자로 나서서 일단 무제한토론이 시작됐지만 필리버스터 안건에 대해선 다음 임시국회에서 곧바로 표결 처리가 가능해지는 만큼 민주당은 한국당의 지연전에 개의치 않고 도리어 자당 의원들까지 필리버스터에 뛰어들면서 자신에 찬 모습을 보이고 있다.

아직 예산부수법안 20건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 법안, 검경수사권 조정안 등은 상정되지 못해 처리가 지연될 것으로 전망되지만 민주당은 오는 25일 임시국회가 종료되면 2~3일짜리 임시국회를 연이어 여는 ‘살라미’ 전술로 다음달까지 모든 법안을 처리할 심산이어서 26일 첫 임시국회가 열리자마자 선거법 개정안은 패스트트랙에 오른 지 8개월 만에 국회 문턱을 넘게 될 것으로 보인다.

그래선지 민주당 의원들은 한국당과 달리 필리버스터를 왜 일방 처리할 수밖에 없게 됐는지 그 사정을 설명하는 자리로 활용했는데, 김종민 의원에 이어 민주당의 두 번째 필리버스터 주자로 토론에 나선 최인호 의원은 “원래 작년 7월 정개특위가 출범해야 했지만 출범할 즈음 한국당은 3개월 동안 위원 명단을 제출하지 않아 무력화시켰고 연말에는 원내대표 선거가 있다며 기다려달라고 해 정개특위는 또 공전됐다”며 “5당 원내대표가 모여 연동형 비례대표제 구체적 방안을 검토한다는 합의서에 서명했지만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나경원 전 원내대표는 합의서 취지를 부정했고 지난해 7월부터 12월까지 한국당 태도는 이런 모습”이라고 꼬집었다.

하지만 필리버스터까지 맞불을 놓는 민주당 행태에 격분한 한국당은 24일 국가정상화 특별위원회를 열고 문 정권까지 묶어 강도 높게 규탄했는데, 조경태 최고위원은 “지금 민주당은 사실 입법부라기보다는 청와대 거수기 아니냐. 그들은 국회의원 자격이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고, 김순례 최고위원도 “무제한 토론은 해당 법안에 반대하는 사람이 토론해야 하는데, 찬성하는 사람들이 줄줄이 서서 화장실을 갔다 오고 떠들고 있다”고 일침을 가했다.

[시사포커스 / 백대호 기자] 새로운보수당 하태경 창당준비위원장이  24일 오전 국회의원회관 제2세미나실에서 창당준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시사포커스 / 백대호 기자] 새로운보수당 하태경 창당준비위원장이 24일 오전 국회의원회관 제2세미나실에서 창당준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심지어 한국당 외에 새로운보수당에서도 이 같은 여당의 태도를 비판하면서 한국당처럼 패스트트랙 선거법에 반대하는 취지로 필리버스터에 나서겠다고 천명했는데, 새보수당 창당준비위원장인 하태경 의원은 이날 새보수당 비전회의에서 “모든 책임은 집권여당인 민주당과 밥그릇 내려놓으라고 온갖 떼를 쓴 리틀 민주당에 있다. 새보수당은 필리버스터를 통해 지쳐 쓰러질 때까지 국민에 호소하겠다”고 공언했으며 실제로 이날 필리버스터 5번째 주자로는 새보수당 측의 지상욱 의원이 연단에 올랐다.

이 자리에서 지 의원은 한국당은 물론 바른미래당 소속임에도 비당권파인 자신들까지 제외하고 내년도 예산안과 선거법 개정안 등을 논의한 ‘4+1 협의체’를 거세게 비판했는데, “그렇게 선수를 빼버리고 윷놀이해서 이기면 흥이 나느냐”면서 민주당의 쪼개기 국회 계획도 꼬집어 “소세지 썰 듯 하지 말고 국민이 보기에 합당하게 하라. 상식선에 맞게 한다고 할 수 있는 국회 운영을 보여주기 바란다”고 질타했다.

◆ 저지 못하니 문 의장 고발·비례한국당·장외집회 등 총력전 나선 한국당

비단 한국당 뿐 아니라 새보수당까지 이렇듯 성토하는데도 불구하고 민주당은 선거법에 그치지 않고 공수처법까지 모두 통과시키려는 의지를 다지고 있는데, 조정식 정책위의장은 “한국당의 발목잡기와 난동, 몽니에도 정치개혁과 검찰개혁 열차는 결코 멈추지 않고 있다. 민주당은 선거법, 공수처법, 검경수사권조정법 등을 흔들림 없이 처리할 것”이라고 강조했으며 같은 당 박주민 최고위원은 이날 TBS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나와 “공수처법이 12월 말 정도에 통과된다면 시행을 준비하는 데 20여 일 정도 걸린다. 그 다음 6개월이 지나면 대략 7월 정도에 공수처가 만들어진다”고 구체적 일정까지 밝히기에 이르렀다.

이미 ‘4+1 협의체’는 선거법 뿐 아니라 공수처 설치법에 대해서도 공수처의 무리한 기소를 막기 위해 고안된 기소심의위원회를 결국 설치하지 않기로 합의하는 등 이른바 검찰개혁법과 관련해 합의안을 마련했는데, 다음에 열리는 임시국회에서도 이번처럼 문 의장에 힘입어 일사천리로 통과시킬 가능성이 높은 만큼 한국당은 문 의장 공격에 당력을 집중시키는 한편 장외집회를 포함한 총력전에 나설 모양새다.

이런 기조를 분명히 하듯 심재철 원내대표는 이날 본회의장 앞 로텐더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직권남용과 권리행사 방해 혐의로 형사고발할 것이며 문 의장에 대한 직무정지 가처분신청하고 사퇴촉구 결의안을 제출하겠다.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 심판도 청구하고 국회의장의 중립의무를 훨씬 강화하는 내용을 국회법에 못 박아 의장이 책무를 저버릴 경우 탄핵당할 수 있도록 조항을 신설할 것”이라고 문 의장을 압박했다.

이에 그치지 않고 한국당은 장기간 투쟁으로 인한 건강 문제 때문에 이날 황교안 대표까지 입원했음에도 오는 28일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문 정권 2대 독재 악법, 3대 국정농단 심판 국민대회’란 장외집회를 개최하겠다며 지지층 결집을 위한 여론전에도 집중했는데, 현재 입원해 있는 황 대표도 참석할 것으로 알려져 어느 때보다 절박한 한국당 상황을 읽을 수 있다.

또 이날 한국당에선 선거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할 경우 그동안 공식화하지 않았던 비례한국당까지 결성하겠다고 못을 박았는데, 김재원 정책위의장은 이 같은 계획을 밝힌 긴급 기자회견 직후 기자들과 만나 “우리는 선거 운동할 필요가 없는 정당이다. 우리 당 지지자가 우리 당에 정당 투표를 하고 싶은데 한국당 정당투표를 어디에 하는지 (정당) 이름을 알면 된다”면서 “창당 비용은 거의 들 것 같지 않고 마음먹으면 이틀 만에 할 수 있다”고 빈 말이 아님을 분명히 했다.

◆ 민주당도 ‘비례민주당’ 만지작…총선 다가오자 정략적 양상 극명

[시사포커스 / 이민준 기자] 더불어민주당 이인영 원내대표가 24일 오전 국회(본청 원내대표회의실)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상임위간사단 연석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시사포커스 / 이민준 기자] 더불어민주당 이인영 원내대표가 24일 오전 국회(본청 원내대표회의실)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상임위간사단 연석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문제는 집권여당이고 연동형 비례대표제 취지 때문에 당초 비례민주당엔 신중한 입장을 취해오던 민주당조차 이제 거칠 것 없다는 듯 선거법 통과가 초읽기에 들어가자 당내 일각에서부터 비례민주당을 검토해보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는 건데, 당장 24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민주당이 비례당을 안 만들면 한국당이 거의 반을 쓸어간다’는 메시지를 받은 이원욱 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의 휴대전화 화면이 언론사 카메라에 포착되면서 일부 사실로 확인되고 있다.

이 메시지에선 ‘캡을 15석으로 씌우면 현행 제도보다 민주당 –5, 한국당 +3, 정의당은 변화 없고 다른 소수 정당들은 모두 +1’이라며 선거제 개정 시 민주당이 손해를 본다고 전망했는데, 이런 여당 내 기류를 한국당도 감지한 듯 김재원 정책위의장은 이날 “민주당도 비례정당을 만들어야 한다는 내부 보고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언론에 보도된 이원욱 의원의 문자메시지는 사적인 대화이고, 실제로는 보고서가 있다”고도 주장했다.

다만 비례민주당까지 추진된다면 이미 연동형 캡까지 받아들이고 석패율제도 포기한 군소야당을 지나치게 자극할 수 있어 일단 민주당에선 군소야당의 협조가 필요한 공수처법이 완전히 국회 문턱을 넘은 이후에나 거론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 뿐 아니라 민주당에선 비례한국당에 대한 맞대응 외에도 본회의 진행 방해 행위에 대한 법적 대응 가능성을 내비치는 등 한국당에 대한 압박수위를 한껏 높이고 있는데, 이인영 원내대표는 24일 원내대표단·상임위 간사단 연석회의에서 “한국당은 공공연하게 정상적인 회의 진행을 방해하고 심지어 몸으로 막아서기까지 했다. 이후 회의 진행에서 한국당의 국회법 위반 행위가 발견되면 국회 선진화법 위반 행위에 단호하게 대처할 것”이라며 “내부 검토를 거쳐 필요하다면 사법처리 요청도 주저하지 않겠다”고 한층 강경하게 나왔다.

지난 패스트트랙 정국 당시 국회선진화법 위반으로 한국당 의원들이 다수 고소·고발당했던 점을 꼬집어 다시금 물리적 충돌까지 불사하면 총선 출마가 어려워질 수도 있다는 압박을 가한 셈인데, 머지않아 20대 국회의원들의 임기가 만료되는 만큼 이제 타협보다는 조금이라도 자신에게 유리하다면 수단·방법을 불사하고 정략적으로 대응하는 대결 양상이 극명해지고 있어 향후 총선에서 유권자들의 시선을 개의치 않는 정략적 태도에 대한 심판론이 작용할 것인지 벌써부터 그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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