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례한국당에 연비제 유명무실화 가능성↑…연비제 덕 볼 군소보수, 속속 창당 나서

원내대책회의를 진행 중인 자유한국당(위)과 창당준비위원회 비전회의 중인 새로운보수당(아래)의 모습 ⓒ포토포커스DB
원내대책회의를 진행 중인 자유한국당(위)과 창당준비위원회 비전회의 중인 새로운보수당(아래)의 모습 ⓒ포토포커스DB

[시사포커스 / 김민규 기자] 연동형 비례대표제(연비제)를 골자로 한 선거제 개편안이 정치권 쟁점으로 떠오른 이래 벌써 총선 예비후보 등록까지 시작된 상황임에도 아직까지 단일안을 도출하지 못하고 있지만 이미 정치권 일각에선 새 선거제를 의식한 듯한 창당 움직임이 구체화되고 있어 도리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법 처리 때문에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선거법을 패스트트랙 올리는 데 협조했던 더불어민주당이 역풍을 맞게 되는 게 아니냐는 시선이 늘어가고 있다.

◆ 연동형 비례제 허점 노렸나…‘비례한국당’ 만들겠다는 한국당

당초 민주당과 군소야당들이 구성한 4+1 협의체를 통해 연비제를 골자로 한 선거법 개정안이 일방 처리될 수 있다는 가능성 때문에 그간 속을 태우던 자유한국당에서 ‘비례한국당’ 창당 가능성을 내비치면서 패스트트랙 정국이 새로운 전기를 맞고 있다.

심재철 한국당 원내대표는 19일 오후 의원총회에서 “만일 민주당과 좌파연합세력 ‘심상정·정동영·손학규·박지원’이 연동형 선거제를 밀어붙인다면 우리는 비례한국당을 만들 수밖에 없음을 미리 말씀드린다”고 경고하면서 비례한국당 창당 가능성을 공식 거론했다.

비례한국당이란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실시되면 거대 정당인 한국당에 불리해지기에 지역구는 기존 그대로 한국당으로 표심을 결집시키면서도 개편될 선거법으로 인해 늘어날 비례대표 의석 역시 위성정당을 만들어 여기로 자당 지지층의 표를 집중시키게 하는 투트랙 전략을 펼침으로써 지역구는 지역구대로, 비례대표는 비례대표대로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겠다는 구상인데, 만일 이렇게 되면 그동안 군소야당과 연비제를 골자로 한 선거법을 논의해왔던 민주당이 가장 곤혹스러운 지경에 처하게 된다.

한국당은 당초 연비제를 반대해왔기에 설령 선거제 개편이 강행돼도 위성정당을 통해 의석 수 극대화에 나서는 전략을 펼칠 수 있지만 공수처법 처리 협조를 얻으려는 목적과 더불어 범여권 군소야당의 의석수 확대로 한국당을 압박하는 구도를 노렸던 민주당으로선 한국당의 전략에 맞불을 놓기 위해 스스로 위성정당을 만들 경우 이들 군소야당들의 반발을 살 수 있고 연비제 추진 목적이던 다당제 취지에도 안 맞게 되기 때문인데, 그렇다고 방조하기엔 안 그래도 새 선거제로 지역구 의석까지 줄어들 가능성이 높아 여당의 고민은 깊어지고 있다.

그래선지 백승주 한국당 의원은 20일 YTN라디오 ‘노영희의 출발 새아침’과의 인터뷰에서 “신의 한 수로서 비례한국당 필요하다”며 “그 선거법 제도에 저항해서 정당 운영하는 건데, 막연히 연비제에 대해 만년 2당, 3당 될 수는 없는 거 아니냐. 우리 당이 다수당이 되기 위해선 비례한국당이 필요하다는 논의가 활발하게 제기되고 있고 비례한국당을 만들어서 연비제 부분에 우리가 몫을 찾아야겠다”고 위성정당 창당 계획에 적극 찬성 의사를 표했다.

이 같은 움직임에 연비제를 주장해온 군소야당은 물론 민주당까지 즉각 한국당의 위성정당 구상을 강도 높게 비판하고 나섰는데, 민주당에선 이해식 대변인이 20일 현안 브리핑을 통해 “선거법 협상은 외면한 채 준연동형 비례대표제의 혜택을 가로채겠다는 권모꼼수까지 등장하고 있다. 한국당과의 대화 가능성에 대해 가졌던 실낱같은 희망마저 포기해야 할 상황”이라고 일침을 가했으며 같은 당 설훈 의원도 이날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나와 “비례한국당을 만들겠다는 것은 국민한테 장난치겠다는 얘기로 전세계 정당사에 그런 게 있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 없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그러면서 설 의원은 “우리는 그렇게까지 (똑같이) 할 수 없다. 4+1에서 그런 문제들에 대해 대응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고 입장을 내놨는데, 이에 김재원 한국당 정책위의장은 같은 날 동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알바니아의 경우 이런 선거제도(연비제)를 채택했다가 비례대표용 위성정당을 1당, 2당이 무려 5개씩이나 만들어 선거제도를 한 번만 시행하고 폐기한 적이 있다”며 “우리나라도 분명히 그런 사태가 발생할 것이고 이런 위헌적인 선거제도를 채택하면 어차피 대체 정당이 여럿 나올 수밖에 없어 그런 얘기가 나온 것”이라고 맞받아쳤다.

다만 김 정책위의장이 “저희들은 아직도 연비제 시도를 저지하기 위해 온 당력을 집중하고 있고, 그래서 연비제가 통과된 것을 전제로 하는 지금 그런 준비까진 아직 아니라고 알고 있다”고 강조한데다 심 원내대표도 이날 원내대책회의 직후 기자들과 만나 “구체적으로 누구에게 지시해서 하고 있다거나 그렇지는 않고 대응방안으로서 검토해야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하는 등 당장 창당 준비에 착수한 듯 비쳐지는 데 대해선 선을 긋는 태도를 보였다.

사실 연비제를 바탕으로 한 선거제 개편이 이뤄지면 현행 선거제로 총선을 치르는 것보다는 어떻게든 한국당에 좋을 게 없기 때문인데, 선거제 개편을 저지하기 위해 민주당에 ‘엄포를 놓는’ 차원에서 이 같은 구상을 내놓는 한편 부득이한 경우에나 대안적 차원에서 추진하겠다는 정도로 풀이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당에선 이미 비례한국당 창당을 위한 발기인 200명을 확보한 데 이어 박완수 사무총장이 실무적 준비는 하고 있다고 밝히는 등 ‘플랜 B’ 준비는 별도로 진행 중인데, 김 정책위의장도 CBS라디오 인터뷰에서 “창당준비위원회를 구성하고 창당 발기인 200명이 우선 창당준비위원으로 등록하고 시작하면, 바로 다음 단계는 당원 1천명 이상씩 시·도당을 다섯 군데에서 창당하면 중앙당으로 등록할 수 있기에 실질적으로 창당 절차는 그렇게 어려운 것은 아니다”라고 말해 비례한국당이 선거제 개편에 있어 주요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 새보수 등 군소보수 창당 준비…연비제 ‘날개’ 달면 與에 부메랑

안철수 전 대표의 정계 복귀도 총선을 앞둔 정치권에 새로운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포토포커스DB
안철수 전 대표의 정계 복귀도 총선을 앞둔 정치권에 새로운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포토포커스DB

 

여기에 연동형 비례제를 골자로 한 선거제 개편이 이뤄질 가능성을 감안한 듯 소수정당들도 총선을 앞두고 속속 창당 준비에 나서고 있는데, 유승민 등 바른미래당 내 비당권파 모임인 변화와혁신을위한비상행동 출신 현역 의원 9명이 모여 만들고 있는 새로운보수당도 19일 창당준비위원회 회의에서 하태경 창준위원장이 “지금 주변 정치환경에 큰 변화가 있고 바른미래당도 변화가 있는데 새보수당은 주변 변화에 전혀 영향 받지 않고 직진한다”며 내년 1월 5일 창당하겠다고 구체적 일정까지 발표했다.

특히 새보수당은 바른미래당 때보다 보수 색채를 분명히 하는 정당이란 점에서 연비제로 의석을 늘리면 민주당에 부담만 줄 것으로 전망되는데, 같은 날 하 위원장은 BBS라디오 ‘이상휘의 아침저널’에 나와 “손학규 체제의 바른미래당은 ‘리틀 민주당’으로 보고 있는데 안철수 전 대표는 야당 연대에 힘을 실어줄 것으로 본다. 같은 당이 아니더라도 협력 방법은 다양하다”고 대여 공조에 나서려는 움직임도 보이고 있어 그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비록 안 전 대표 측에선 지난 13일 새로운보수당에 불참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바 있지만 안 전 대표의 정계 복귀도 민주당엔 또 다른 변수가 될 것으로 점쳐지는데, 그동안 대선 과정에서 문 대통령과 여러 차례 악연이 있는 그로선 대여 압박 공조에 함께 할 가능성이 높은데다 최근엔 민주당에 협조적이던 손학규 대표마저 안 전 대표의 정계복귀가 이뤄지면 전권을 위임하고 물러나겠다고 공언한 만큼 안 전 대표가 총선 전에만 돌아온다면 연비제에 힘입어 여당을 압박할 또 다른 정당(안철수당)이 탄생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를 의식했는지 안 전 대표와 가까운 이태규 의원도 지난 19일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과의 인터뷰에서 “현재 당권파 내에서도 일단 손 대표 체제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있다. 의원들이 아마 안 대표한테 전달했을 걸로 알고 있다”며 “개인적으로 안 전 대표가 들어와 당을 책임 있게 수습했으면 좋겠다. 안 전 대표가 복귀한다면 총선 전에 하셔야 될 것”이라고 역설해 정국을 긴장시키고 있다.

여기에 비단 새보수나 안철수당 외에도 조원진·홍문종 의원의 우리공화당이나 이언주 의원이 창당 추진 중인 미래를 향한 전진 4.0은 물론 내년 2월 중순을 목표로 준비 중인 이정현 의원의 신당 등 연비제에 힘입어 보수정당들이 난립한다면 한국당을 제외하곤 범여권 일색인 현재의 구도를 뒤집고 보수가 야권을 잠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보니 민주당에게 선거제 개편은 자칫 스스로를 압박할 부메랑이 될 수도 있다.

◆ 범여권도 선거제 협상 난항에 대여관계 경색…與 앞날 ‘험로’ 뿐

대안정치연대 소속 의원들이 회의를 진행하고 있다. ⓒ포토포커스DB
대안정치연대 소속 의원들이 회의를 진행하고 있다. ⓒ포토포커스DB

 

한 발 더 나아가 연비제에 목을 매고 있는 범여권 정당들마저 여당의 소극적 태도에 실망해 경고성 메시지를 보내기 시작하면서 선거제 문제로 민주당은 도리어 고립돼가는 분위기인데, 연동형 캡을 씌우자는 여당 제안을 수용하겠다는 바른미래당과 민주평화당, 정의당의 대대적 양보에도 민주당은 끝내 석패율제 만은 도입하자는 군소야당의 단일안을 일축하면서 이들이 그간 찰떡공조 해왔던 ‘4+1 협의체’도 이제 앞날을 예측하기 어려울 정도로 흔들리고 있다.

이 뿐 아니라 4+1 협의체 일원이자 호남 출신 의원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는 대안신당의 경우 선거제 협상이 난항에 빠졌음에도 이와 별개로 일단 오는 20일 서울시당 창당대회, 27일엔 부산시당, 29일엔 광주시당, 30일 경북도당, 내달 1월 4일 전남도당 창당대회를 진행하겠다면서 내달 12일 부로 중앙당 창당 작업을 완료하겠다고 밝힌 상황인데, 평화당 외에 대안신당까지 자당의 텃밭인 호남을 놓고 민주당과 경쟁을 벌이게 돼 있어 연비제로 인한 의석수 축소를 최소화하려는 민주당으로선 범여권에서 일어나는 창당조차도 달갑지 않은 실정이다.

더구나 총선을 4개월 앞두고 당청 지지율도 전망이 밝지 않은 가운데 레임덕을 막고 후반기 국정 동력을 회복해야 하는 여당으로선 야당의 목소리만 높아질 수 있는 연비제가 여간 탐탁치 않을 수밖에 없는데 당초 공수처법 협조를 얻으려 발을 들였다가 급기야 선거법 협상 자체가 꼬여버린 가운데 민주당이 각 당의 복잡한 산식 속에서 해법을 찾아낼 수 있을지 세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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