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법 이견으로 4+1 협의체 ‘흔들’…기회 잡은 한국당, 여권 압박수위 높여

[시사포커스 / 오훈 기자] 1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본관 계단 앞에서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와 심재철 원내대표 등 당 지도부와 소속 의원들 지지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공수처법·선거법 날치기 저지 규탄대회가 열렸다.
[시사포커스 / 오훈 기자] 1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본관 계단 앞에서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와 심재철 원내대표 등 당 지도부와 소속 의원들 지지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공수처법·선거법 날치기 저지 규탄대회가 열렸다.

[시사포커스 / 김민규 기자] 패스트트랙 법안 처리 문제가 정치권 최대 쟁점으로 부상한 가운데 우선 선거법 개정안 단일안을 도출하기 위해 논의해오던 범여권의 ‘4+1 협의체’에서 최근 균열 조짐이 일어나, 그동안 황교안 대표 스스로도 “문제 해결 방법이 거의 투쟁밖에 없다는 사실이 너무 서글프다”고 토로했을 만큼 패스트트랙을 저지할 방도가 없었던 한국당에게 이번 사태가 국면을 뒤집을 만한 기회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인지 그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 沈 “선거법 원안 표결하자”…4+1 ‘흔들기’ 나선 한국당

더불어민주당과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정의당, 대안신당이 공조할 경우 과반을 이뤄 본회의 표결에선 수적으로 밀려 필리버스터로 지연하는 것 외엔 딱히 저지할 방도가 없어 고심하던 한국당에 돌연 범여권 진영 균열이란 호재가 일어났다.

지역구 의원들의 반발을 우려해 연동형 비례대표 비율을 최소화하려는 더불어민주당과 반대로 연동형 비례대표 비율을 늘리려는 군소야당 간 이해관계가 엇갈리면서 연동형 캡·석패율 등 선거제 관련 세부 논의 과정에서 갈등이 본격 표면화됐기 때문인데, 이를 계기로 한국당은 패스트트랙 법안 자체를 인정할 수 없다던 기존 입장에서 일부 선회해 일단 ‘4+1 협의체’ 내 균열을 극대화함으로써 패스트트랙 법안 처리를 무산시키는 방향으로 전략을 수정했다.

그래선지 심재철 원내대표는 16일 오전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선거법이 원안으로 상정되고 무기명 투표가 보장된다면 (표결 참여를) 검토해 볼 수 있다”고 운을 띄웠고, 김재원 정책위의장 역시 “원안 표결하는 게 어떻냐고 하길래 의원들의 자유투표가 보장된다면 당내에서 표결 참여를 설득하겠다고 했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한국당의 변화에 바른미래당도 영향을 받았는지 김관영 최고위원은 같은 날 기자들과 만나 “한국당은 부결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하고 그런 제안을 하는 것”이라면서도 “공수처 설치법에 대해서도 수정안을 조건으로 해서 일정 부분 받아들이고 나머지 법안도 철회하겠다고 했다. 의미 있는 제안”이라고 긍정적 평가를 내렸고, 심지어 앞서 열린 최고위 회의에선 “상황이 여의치 않다면 차라리 패스트트랙 원안을 표결하자”고 한국당과 한 목소리를 냈다.

그러자 지난 15일만 해도 “선거법 관련 조정을 더는 추진하지 않겠다”면서 지역구 225석, 비례대표 75석이란 원안대로 표결 처리할 가능성까지 내비쳤던 민주당에선 자칫 선거법 무산 후폭풍으로 공수처법 처리마저 어려워질 것을 우려했는지 하루 만에 ‘4+1 협의체’ 복원에 나서겠다면서 전향적 입장을 내놨는데, 이인영 원내대표는 이날 최고위 회의에서 “조금 늦더라도 바른 길을 가겠다. 4+1 협의체를 재가동하기 위한 원내대표급 회동이 가능한지 다시 타진하는 방안을 모색해볼 것”이라고 강조했다.

◆ 한국당, ‘선거법’ 본회의 표결과 본회의 무산 중 본심 어느 쪽?

[시사포커스 / 오훈 기자]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1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로텐더홀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모두발언하고 있다.
[시사포커스 / 오훈 기자]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1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로텐더홀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모두발언하고 있다.

하지만 ‘4+1 협의체’를 와해시킬 절호의 기회를 놓칠 수 없는 한국당으로선 민주당을 강력하게 비판하고 나섰는데, 황교안 대표는 이날 최고위 회의에서 “민주당은 법적 근거가 없는 4+1 협상을 즉각 중지하고 정상적인 협상 테이블로 돌아와야 한다”고 촉구했으며 심 원내대표도 “문희상 국회의장이 여야 교섭단체 원내대표들에게 의장실에서 만나자고 했지만 저는 만나지 않을 것”이라며 민주당과의 협상을 거부해 이날 회동을 결국 무산시켰다.

한 발 더 나아가 심 원내대표는 이날 오후 의원총회에선 “민주당과 좌파 위성 정당이 선거법을 만지작거리는데 점점 누더기가 돼 가고 있다”며 “국민들이 알 수도 없고 심지어 국회의원들조차 이해하기 힘든 연동형비례제 선거법에 절대 반대한다”고 보다 노골적인 속내를 드러냈는데, 이날 본회의가 무산된 이유와 관련해서도 “민주당과 2·3·4중대가 의견 일치를 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물론 선거법 개정안이 무기명 투표로 진행되면 지역구 축소에 반발하는 민주당 일부 의원들의 이탈표 등으로 부결 가능성이 높다고 보기에 한국당은 무작정 반대하기보단 돌연 원안 표결에 조건부 동의한다는 입장을 내놓게 됐지만 만에 하나 한국당의 예상을 깨고 원안이 가결될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만은 없는데, 그러다 보니 일각에선 범여권이 비례대표 의석을 독점하게 되는 사태를 막기 위해 한국당에서 비례한국당을 창당하든지 시간과 비용을 줄이는 차원에서 기존 보수정당 중 하나를 비례한국당으로 삼자는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골자로 한 선거법은 소수정당에 유리하다 보니 여당이 정의당이나 민주평화당 등과 함께 범여권을 구성했듯 한국당도 원내 보수진영 다수 구도를 만들고자 새로운보수당이나 우리공화당 등과 일종의 선거 연대를 하려는 심산인데, 이미 선거법 개정안과 관련해선 새보수당이나 우리공화당 모두 한국당과 동일한 입장을 내놓으며 발을 맞추고 있다.

당장 새보수당에선 창당준비위원장인 하태경 의원이 16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연동형비례제 선거법은 민졸당과 불의당의 정치야합해서 만든 선거법이다. 즉각 철회하고 국민들에게 사과부터 해야 한다”고 입장을 내놨으며 우리공화당에선 같은 날 공수처법과 연동형 비례대표제 반대 등의 내용이 적힌 팻말을 들고 한국당 지지자들과 함께 국회 본청 난입을 시도하는 등 공조에 나서고 있다.

◆ 여론전 성격의 강경투쟁도 병행…과하면 역풍 가능성도

[시사포커스 / 오훈 기자] 대한민국사랑회의, 대한민국수호비상회의 등 우파 시민단체 회원들이 1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본관 앞에서 선거법 개정안 반대, 공수처법 반대를 외치며 본관 진입을 시도, 경찰과 대치를 하고 있다.
[시사포커스 / 오훈 기자] 대한민국사랑회의, 대한민국수호비상회의 등 우파 시민단체 회원들이 1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본관 앞에서 선거법 개정안 반대, 공수처법 반대를 외치며 본관 진입을 시도, 경찰과 대치를 하고 있다.

특히 이날 한국당이 국회 본관 앞에서 진행한 ‘공수처법·선거법 날치기 저지 규탄대회’는 한국당이 정국 반전을 위해 내세운 대여 압박 수단 중 하나인데, 지난 14일 광화문에서 대규모 집회를 진행한 데 이어 16일엔 아예 수천명이 국회로 모여 본청을 둘러싸고 패스트트랙 법안 처리 시도를 성토한 것은 물론 일부 당원들은 국회 사무처의 봉쇄 조치에도 불구하고 본청으로 진입하려다 이를 막는 경찰과 충돌하기도 했다.

사태가 격화되기에 앞서 황 대표는 “이 싸움은 오늘 끝날 싸움이 아니고 이 정부의 굴복을 받아낼 때까지 싸워야 한다”며 “여러분의 분노가 국회에 큰 영향을 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는데, 이날 태극기부대를 중심으로 격앙된 집회 참가인원 중 일부는 국회 앞에서 선거법 통과를 촉구하는 바른미래당과 평화당 천막 주위를 포위하기도 했고 설훈 민주당 의원의 경우 의원회관으로 이동하던 중 이들에게 둘러싸여 잠시 곤욕을 치르기도 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처럼 상황이 격화되자 문희상 국회의장은 “특정 정치세력의 지지자들이 국회를 유린하다시피 했다. 있어선 안 될 일이 벌어졌다”며 이날 규탄대회를 진행한 한국당을 겨냥해 날선 비판을 가했는데, 한국당 역시 물러서지 않고 심 원내대표가 이날 의총 직후 기자들을 만나 “봉쇄하고 일을 키운 것은 문희상 의장”이라고 맞받아쳤다.

이에 그치지 않고 심 원내대표는 “우리 당 지지자들은 11시 규탄대회가 끝난 뒤 해산됐다”며 “의장이 예산안 날치기 처리부터 계속 한쪽 편만 들고 있는데 이런 표현으로 한쪽에 치우친 모습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것은 굉장히 좋지 않다”고 문 의장에 경고했다.

한 발 더 나아가 한국당은 오는 17일부터 19일까지 사흘 연속 국회에서 4+1 협의체의 선거법·공수처법 강행 처리 추진을 규탄하는 집회를 열겠다고 발표했는데, 황 대표를 비롯한 지도부 전원이 전면에 나설 방침이지만 이날 충돌로 인해 집회 참가자들이 다시 국회 출입이 가능할지 여부에 대해선 박완수 사무총장도 확언할 수 없다는 듯 일단 “출입될지 안 될지 봐야 한다”고 밝혔다.

문제는 균열이 일어났던 ‘4+1’ 협의체 내 정당들이 이날 보수 세력이 결집한 국회 앞 규탄대회에 대해선 모두 비판적 반응을 쏟아내면서 다시금 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는 건데, 민주당 홍익표 수석대변인이 “이번 정치테러는 황 대표와 한국당이 사주한 것과 마찬가지다. 앞으로 매일 이런 불법과 폭력을 부추기겠다는 망상을 내려놔야 한다”고 입장을 내놓은 데 이어 평화당에서도 홍성문 대변인이 논평을 통해 “한국당과 극우세력들의 시위 행태가 도를 넘었다”고 질타했으며 정의당까지 유상진 대변인 논평을 통해 “다시는 이런 극우세력의 불법 난동이 벌어지지 않도록 오늘 일에 경찰의 엄정한 조치가 있어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당초 ‘4+1’ 협의체 정당 간 분열을 통해 반전을 노리려던 상황이 도리어 보수정당들의 규탄대회로 역효과를 내 버린 셈인데, 여론의 지지를 통해 범여권을 압박하려는 성격의 장외집회지만 보수 지지층의 결집은 강화시킬 수 있어도 격렬해질 경우 도리어 중도층 이반을 촉발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총선 승리도 염두에 둬야 하는 한국당에겐 자칫 ‘양날의 칼’이 될 수 있다.

실제로 장외투쟁에도 불구하고 한국당 지지율은 하락 중인 반면 민주당 지지율은 상승하고 있는데,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YTN 의뢰로 지난 9일부터 13일까지 전국 성인 2514명에게 실시해 16일 발표한 2019년 12월2주차 정당 지지도 주간 집계 결과(95%신뢰수준±2.0%P,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참조)에 따르면 민주당은 3주 연속 올라 41.2%로 40%선을 넘어선 반면 한국당은 2주 연속 하락해 30%선 아래인 29.5%로 떨어진 것으로 나타나 강경 투쟁의 한계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결국 범여권의 결속력을 흔들어놓으면서도 장외투쟁 수위 역시 어느 정도 조절하는 적절한 ‘병행’ 전략이 필요한데, 현재 당을 이끌고 있는 황 대표가 원외 출신이란 점에서 원내 협상엔 직접 영향을 미치기 어려운 만큼 이 부분도 한국당의 향방에 고민을 안겨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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