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선거개입’ 왜?

차기 대선을 7개월가량 앞둔 가운데 노무현 대통령의 직·간접적인 ‘선거개입’이 위험수위를 넘나들고 있다. 노 대통령의 “실패한 인사” 발언 이후 올초 고건 전 총리가 중도하차 했고, 또 ‘경제보다 정치를 잘 아는 대통령’ 언급 이후 정운찬 전 총장 갑작스럽게 출마를 포기하고 말았다. 이러한 주자들의 연이은 불출마 선언은 노 대통령의 정치적 언행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의도치 않은 발언이라 할지라도 노 대통령의 언급으로 벌써 두 명의 주자들이 ‘추풍낙엽’ 처럼 떨어져나갔다. 더욱이 노 대통령이 몸담았던 열린우리당 김근태 전 의장과 정 전 의장에 대해서도 독설을 쏟아내고 있을 뿐 아니라 한나라당 대선주자인 이명박 전 시장과 박근혜 전 대표를 겨냥해 노골적인 비판도 서슴지 않는 등 친노(親盧)진영의 대선주자를 제외한 모든 주자들에게 날선 칼날을 겨누고 있다. 비록 지지율이 바닥 수준에 머물러 있지만 대통령 발언의 파장은 실로 막강한 것은 사실이다. 대선을 앞둔 시점에 대통령의 선거 관련 발언은 주장의 옳고 그름을 떠나 사실상의 ‘선거개입’으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다. 지난 2004년 총선을 앞두고 지나친 선거개입으로 노 대통령은 탄핵이라는 ‘엄중한 경고’를 받은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기 대선이 다가올수록 노 대통령의 선거개입 발언의 빈도와 수위가 더욱 노골화 될 것으로 예상돼 향후 정치권이 인내심의 한계를 드러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제2의 탄핵’이라는 파국 상황으로까지 치달을 수 있다는 얘기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제2의 탄핵’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노 대통령의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의 ‘탄핵’은 무의미 할 뿐 아니라 ‘핵폭풍’을 몰고 올 탄핵이 현 대선구도 지형을 일순간 뒤엎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대선국면에서의 모든 ‘이슈’는 탄핵 ‘블랙홀’로 빨려 들어가게 됨에 따라 대선의 초점이 노 대통령으로 쏠리게 된다. 또 지난 탄핵의 역풍보다 더욱 강력한 후폭풍이 나라 전체를 강타할 것은 자명한 일이다. 때문에 탄핵 역풍을 경험한 한나라당 입장에선 ‘탄핵’이라고 하면 고개를 ‘절래 절래’ 내저을 수밖에 없다. 오히려 친노 진영에서는 주자들의 지지율이 지지부진한 상황에서 현 대선구도의 지각변화를 일으켜 줄 ‘탄핵’을 내심 바라고 있는 지도 모른다. ‘선거 중립 의무를 저버리고 있다’는 정치권과 시민 사회로부터 비판을 감수하면서까지 ‘친노’진영 주자를 제외한 예비 주자들을 향한 노 대통령이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는 있는 점에서 ‘탄핵 시나리오’ 맥과 닿아 있을 있다. 두 명의 주자를 주저앉히고, 친노진영 주자 이외의 여·야 주자들에게 노골적인 비판을 쏟아내는 등 점차 ‘선거개입’ 발언 수위를 높이고 있는 ‘정치 9단’의 노 대통령의 본심이 과연 무엇인지 궁금증이 증폭되고 있는 것이다.


◆ 盧, 정동영·김근태

‘나도 너희들 싫다’

지난 2월 노 대통령은 열린우리당에 탈당계를 제출, ‘수석당원’ 꼬리표를 공식으로 뗐다. 노 대통령의 무당적 선언으로 정치권 안팎에선 대통령의 책임정치, 정당정치가 사실상 사라진 만큼 연말 대선의 공정한 관리 및 선거 중립 등 국정운영을 원만하게 마무리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일기도 했다. 과거 임기말의 대통령들은 당적을 버린 뒤 선거관리의 중립성에 흠이 잡힐까 말을 아끼고, 몸을 사리기도 했다. 하지만 올초 대통령의 진정한 ‘중립’을 위한 정치권의 중립내각 요구에 노 대통령은 ‘중립내각 운운은 상투적이고 낡은 정치공세’라며 거부의사를 나타내는 등 앞으로 정치에 개입할 것임을 암시했다.

이러한 가운데 한나라당 대선주자 뿐 아니라 친노 진영 대선주자를 제외한 범여권 주자들에 대해 일방적인 비판의 칼날을 휘두르고 그들의 단점만을 들춰내고 있는 노 대통령의 모습은 정치적 중립에 대한 의지가 없어 보인다.

하물며 범여권 주자이자 창당 주역들에 대한 노 대통령의 최근의 발언은 독설 수준에 가깝다. ‘임기말’이라는 사실과 열린우리당 ‘탈당’, 또한 대선의 공정한 관리 및 중립 등 안정적 국정운영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지난 7일 노 대통령은 ‘정치인 노무현의 좌절’이라는 글을 공개하면서 작심한 듯 범여권의 차기 주자들을 향해 신랄한 비판을 쏟아냈다. “대통령이 아닌 정치인의 입장”이라는 전제를 깔았지만 노 대통령은 이 글을 통해 탈당을 검토 중인 정동영·김근태 두 전직 의장을 향해 ‘야합’과 ‘보따리 정치’,‘구태정치’라며 직설적인 표현도 서슴지 않았다.

노 대통령은 “(열린우리당) 대선주자 한 사람은 당을 해산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또 한사람은 당의 경선을 포기하겠다고 말하고 다닌다”며 “대통령이 되기 위해 당을 깨고 만들고, 지역을 가르고, 야합하고, 보따리 싸들고 이 당 저 당 옮겨 다니던 구태정치의 고질병, 당신들이 열린우리당을 창당하면서 엄숙한 표정으로 국민들에게 청산을 약속했던 그 구태정치의 고질병이 다시 도졌다”고 두 전직 의장을 겨냥해 비난을 쏟아냈다. 또 “당을 깨지 않고 나가면 혹시라도 당이 살아서 당신들이 가는 길에 걸림돌이 될 것 같아 두려운 것이냐”고 반문한 뒤 “정말 당을 해체해야 할 정도로 잘못됐다고 생각한다면 깨끗하게 정치를 그만두는 게 국민에 대한 도리”라고 주장했다.

노 대통령의 이러한 발언에는 대선 정국에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의지와 대선 승리의 손익계산, 대선 이후 대한 복안 등 차기 대선에서의 선거 개입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열린우리당 창당의 주역이자 중추적 역할자인 노 대통령이 자당에 대한 남다른 애정은 이해가 가는 부분이다. 그러나 차기 대선 길목에서 범여권의 통합의 길에 제동을 거는 등 이는 분명 ‘선거 개입’ 발언이 아닐 수 없다.

노 대통령의 직격탄을 맞은 정 전 의장은 “노 대통령‘이 당원이 아닌데 ‘당을 지켜야 한다. 복당하겠다’고 말한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면서 지적했고, 이만섭 전 국회의장은 “대통령이 대선 후보를 실질적으로 일일이 연거하면서 비판하는 모습은 할 일이 아니다”면서 남은 임기 동안 국정에 전념할 것을 주문하는 등 정치권에서는 노 대통령의 ‘선거 개입·정치 훈수는 그만두라’라고 충고를 쏟아내고 있다.


◆ 고건·정운찬 ‘중도하차’ 왜?

노 대통령의 유력 대선주자들에 대한 비판적인 발언으로 이미 두 유력 대선주자가 중도하차하고 말았다. 지난 1월 고 전 총리에 이어 지난 4월 정 전 총장의 대선출마 포기 이면에는 노 대통령의 비판이 자리 잡고 있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노 대통령이 입만 대만 낙마한다는 말도 나온다. ‘대통령으로 만들 수는 없어도 누군가가 되지 않게 만들 수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노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민주평통자문위 상임위원회에서 고 전 총리의 기용을 두고 “결과적으로 실패해버린 인사였다”고 발언 이후 지난 1월 16일 대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당시 고 전 총리측 인사는 “노 대통령의 발언으로 많은 상처를 입었다”며 노 대통령의 발언이 출마 포기에 영향을 미쳤음을 시사했다.

지난 2월, 노 대통령은 인터넷 매체와의 기자간담회에서 차기 대통령상에 대해 “여론조사를 하면 ‘경제하는 대통령’ 얘기하는데 경제는 어느 때나 항상 나오는 단골 메뉴”라며 “(차기 대통령은)정치를 잘 알았으면 좋겠다”고 말해 이명박 전 시장에 반발을 샀다. 당시 청와대는 ‘특정 주자를 겨냥한 것이 아니다’라고 에둘러 해명했다. 하지만 당시 만해도 정 전 총장이 경제 이슈를 선점한 이 전 시장의 대항마로 거론, 범여권 주자로 부상하던 시점이어서 정 전 총장을 향한 발언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된 바 있다.

이후 지난달 정 전 총장은 “정치세력화를 추진할 만한 능력이 부족하다”며 자신의 정치력 부재 등을 들며 출마를 포기했다. 노 대통령의 발언으로 인한 이들의 중도포기로 직접 연결짓기는 사실 어렵다. 하지만 고 전 총리와 정 전 총장 모두 자신들에 대한 노 대통령의 부정적 발언이 나온 뒤 불출마를 선언했다는 점에서 노 대통령의 의중을 엿볼 수 있다.

마침 정 전 총장이 대선 기권 선언한 날 노 대통령은 “분위기가 참 좋다. 입이 째지려고 한다”며 대혼란에 빠져든 정치권과 대조적인 모습을 보였다. 이는 노 대통령이 의도한 구도로 흘러가고 있다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이렇듯 노 대통령의 발언은 단순한 훈수가 아닌 대선에 깊숙이 관여하고 있는 것이다.


◆ 盧, 손학규·이명박·박근혜 겨냥

이뿐 아니라 3월에는 손학규 전 지사 뿐 아니라 박근혜 전 대표와 이명박 전 시장 등도 노 대통령의 과녁이 됐다. 특히 노 대통령의 정치적 언행에는 ‘친노’ 진영의 대선주자들은 배제되어 있다.

노 대통령은 3월말 손 전 지사를 겨냥해 “그가 대통령 후보가 되기 위해 명분을 버리고 탈당한 것인지, 아니면 새로운 정치질서의 창출에 하나의 밀알이 되고자 탈당한 것이지는 곧 드러나게 될 것”이라며 “중요한 것은 원칙과 명분 없는 보따리 정치는 결국 국민들에 의해 몰락하고 말았다는 역사적 사실”이라고 비판을 날을 세웠다.

손 전 지사의 탈당은 ‘보따리 정치’로 규정한 것이다. 당시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리얼미터 조사 결과 손 전 지사의 지지율은 하락했고, 이러한 하락 요인에 대해 노 대통령의 비판이 일조한 것이라 분석하는 등 노 대통령의 입김이 작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로인해 “결국 손 전 지사도 고 전 총리와 정 전 총장의 전처를 밟는 것 아니냐”는 우려섞인 관측도 나온다.한나라당 대선주자들에 대한 발언은 더욱 공격적이다. 지난 2월 노 대통령은 박 전 대표와 이 전 시장을 겨냥, “우리 사회의 역사가 퇴행하는 것 아닌지 고민스럽다”고 직격탄을 날린 바 있다. 노 대통령 2월 신년 연설 때 “국민에 행복을 가져다 준 지도자는 단지 경제만 하는 ‘기술자’가 아니었다”고 말했고, 같은달 25일 신년 기자회견에선 “실물경제를 좀 안다고 경제 잘하는 것이 아니다”고 우회적으로 이 전 시장과 정 전 총장을 지목했다. 2월 인터넷 기자 간담회에서도 “경제 대통령이 아니라 정치 대통령이 필요하다”며 “차기 대통령은 정치를 잘 아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고 의중을 밝혔고, 지난 3월에 열린우리당 지도부와 만찬에서 노 대통령은 이 전 시장의 공약인 ‘한반도 대운하’와 관련해 “운하 건설이 관연 우리 현실에 맞느냐”고 의구심을 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한나라당은 강력 반발했음은 물론이다. 한나라당은 “청와대가 한나라당 대선주자 죽이기에 본격적으로 나섰다”며 “마치 청와대가 범여권의 선거운동을 총괄하는 대책본부인 것처럼 착각이 들 지경”이라고 비판했다. 한나라당이 이처럼 발끈하고 있는 것은 고 전 총리, 정 전 총장의 중도하차에서 보듯 노 대통령이 특정 후보에 대해 작심하고 나서면 그 파괴력은 결코 무사할 수 없다는 판단 때문이다.


◆ 정치권, ‘盧 선거개입 중단해라’

정치권도 노 대통령의 언행에 대해 ‘부당한 선거 개입’이라며 발끈하고 있다. 한나라당 이상으로 범여권도 노 대통령의 정치 개입, 선거개입에 대해 불쾌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물론 범여권 인사들이 한때 열린우리당에 몸담았던 이유로 원색적인 표현은 자제하고 있다. 하지만 그의 정치적 언행이 차기 대선을 앞둔 범여권 전체에 마이너스가 될 것이라는 우려 만큼은 숨기지 않고 있다.

정성호 민생정치모임 대변인은 “노 대통령이 계속 선거에 개입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국민적 반감을 불러올 것”이라고 자제를 촉구했고, 통합신당모임 소속이었던 정병헌 의원도 “사회전체가 노 대통령의 정치 개입에 대해 지나칠 정도의 거부감을 갖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중도개혁통합신당 비슷한 입장이다. 통합신당 양형일 대변인은 “노 대통령의 (실패한 인사)발언이 고 전 총리의 낙마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는지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며 “(범여권 대선주자로)거론되는 인사들이 피해를 입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고 정치·선거 개입 발언을 삼가해 줄 것을 요구했다.

이처럼 범여권·한나라당 등 정치권은 노 대통령의 언행들이 분명한 선거개입이라고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범여권은 대체적으로 노 대통령이 차기 대선에서 ‘킹메이커’ 역할을 하기 위해 정치적 언행을 이어오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는 등 자칫 부작용이 범여권 전체에 심각한 국면을 초래할지 모른다는 위기감을 품고 있는 모습이다.

때문에 노 대통령이 당적을 정리한 만큼 그 의미를 살리기 위해서는 “중립을 지켜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노 대통령의 ‘선거개입’ 발언은 차기 대선이 다가올수록 수위와 빈도수를 높일 것으로 보인다. 한편으론 노 대통령이 ‘제2의 탄핵’을 더욱 부추기고 있는 모습이다.

노 대통령은 지난 1월 신년 기자회견에서 “내일이 선거 날이라도 부당하게 공격을 받으면 여든, 야든 대응할 것”이라고 했다. 또 대선 과정에 미칠 영향에는 상관없이 중요한 정책을 내놓겠다고 공언했고, 한나라당 강재섭 대표와의 민생회담에선 “대통령에게 정치중립 의무는 없다. 정치적 중립을 하겠다는 것은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격”이라며 향후 정치적 발언이 계속될 것임을 나타냈다. 이는 단지 ‘현직 대통령에 대한 평가에는 적극적으로 논쟁하겠다’는 정도가 아니라 정치권에 ‘선거개입’ 논란을 가중시키겠다는 의도로 해석된다.

이러한 노 대통령의 ‘선거개입’ 의도는 지지층 결집을 통해 정권 재창출에 기여하는 동시에 자신의 영향력을 임기말은 물론 퇴임 이후까지 유리하게 이끌려는 다목적 포석 일 수 있다. 무엇보다도 대선구도가 한나라당에 유리하게 펼쳐지고 있는 상황에서 노 대통령의 의도적인 ‘선거 개입’ 이라는 것이 정치권의 중론이다. 하지만 차기 대선이 다가올수록 ‘정권교체냐, 정권재창출이냐’라는 문제로 더욱 첨예하게 대립하는 상황 속에서 노 대통령의 ‘선거개입’ 발언에 대해 정치권이 얼마나 인내할지 관심이 모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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