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원 3법 등 본회의 상정 법안 모두에 ‘무제한 토론’ 신청…당황한 與, 본회의 무산시켜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2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본회의 개의와 필리버스터 보장을 촉구하는 문구를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 / 박상민 기자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2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본회의 개의와 필리버스터 보장을 촉구하는 문구를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 / 박상민 기자

[시사포커스 / 김민규 기자] 청와대 앞에서 단식하다가 의식까지 잃었던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병원으로 이송된 지 이틀 만인 29일 당 안팎에 단식투쟁 종료를 선언하면서도 “총력 투쟁해나가겠다”고 즉각 대여 강경 기조를 표명함에 따라 한국당에서 내놓을 다음 카드가 무엇인지 관심이 집중됐다.

장외에서 황 대표가 목숨을 건 단식을 통해 정치권으에 대한 여론의 관심을 환기한 가운데 내달 3일 사법개혁안의 본회의 자동 부의가 예정되어 있어 이제는 원내투쟁으로 선회할 것이라 관측되기는 했지만 한국당은 당초 비쟁점 법안을 처리하기로 했던 29일 본회의 모든 안건에 필리버스터를 신청해버리는 예상 밖의 카드를 던졌다.

필리버스터는 이미 한국당 뿐 아니라 바른미래당에서도 거론했던 만큼 새로운 대여 압박수단은 아니었지만 이날 예정된 본회의를 앞두고 전격적으로 발표될 것은 예상키 어려웠던 만큼 여당도 당혹스러워하고 있어 한국당에 새로운 정국 반전의 계기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인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 한국당 “의원 1인당 4시간씩 정기국회 폐회까지 패스트트랙”

한국당은 29일 오후 국회 본회의를 앞두고 열린 의원총회에서 정기국회가 종료될 때까지 무제한 토론(패스트트랙)을 하기로 결정했는데, 나경원 원내대표는 이날 의총 직후 기자들과 만나 “사상 초유의 헌정무력화 폭거에 의해 어렵게 쌓아올린 자유민주주의와 의회민주주의가 유린당하고 있다”며 “불법과 다수의 횡포에 한국당은 평화롭고 합법적인 저항의 대장정을 시작할 것이고 그 차원에서 필리버스터를 신청했다”고 밝혔다.

필리버스터는 의회에서 다수당이 수적 우세를 이용해 법안이나 정책을 통과시키는 상황을 막기 위해 소수당이 법률이 정한 범위 내에서 의사 진행을 방해하는 행위로, 국회법 106조2항은 본회의 부의 안건에 대해 재적의원 3분의 1이 요구할 경우 무제한 토론을 하도록 규정하고 있어 일단 한국당 소속의원 108명만으로도 의장에게 필리버스터를 요구하면 본회의 종결 선포 전까지 산회하지 않고 토론을 계속할 수 있다.

다만 한국당이 내달 3일 패스트트랙 나머지 법안인 공수처법 등 사법개혁안 자동 부의가 예정된 만큼 국회의장이 상정 자체를 못하도록 29일 ‘조기 필리버스터’ 카드를 내놓자 민주당에선 비록 본회의 개의는 재적의원 5분의 1 참석만으로 가능하더라도 법안처리를 위해선 의결정족수 148명을 채운 뒤 개의하는 게 관례이기 때문에 한국당을 제외한 다른 정당에 본회의에 참석하지 말아줄 것을 요청했으며 정의당, 민주평화당, 대안신당이 본회의 불참 결정을 내리면서 본회의는 사실상 무산됐다.

그러다보니 한국당도 비쟁점법안과 민생법안을 처리하기로 한 이날 본회의 무산에 대한 후폭풍이 자당에도 미칠까 우려했었는지 나 원내대표는 앞서 긴급 기자회견에서 “본회의를 개의하지 않을 명분은 그 어디에도 있지 않다. 본회의는 5분의1 의원 재석으로 개의되게 돼 있어 지금 개의를 거부하는 것은 국회법상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수많은 민생법안에 대해 고민이다. 선거법을 상정하지 않는 조건이라면 저희가 필리버스터 신청한 법안에 앞서 민식이법 등에 대해 먼저 상정해서 이 부분에 대해선 통과시켜줄 것을 제안한다”고 입장을 내놨다.

이 같은 제안은 이날 본회의에서 처리키로 예정됐던 199개 법안까지 모두 필리버스터 대상으로 걸어 ‘민생법안’을 패스트트랙 법 막기 위해 볼모잡고 있다는 비판을 피하는 동시에 본회의가 열리지 않을 경우 그 책임은 국회의장으로 돌리겠다는 압박이기도 한데, 그래선지 직접 문 의장을 겨냥 “국회의장께서 사회를 거부하지 말고 민식이 어머님, 아버님을 비롯한 우리 아이들, 어머님들의 간곡한 호소에 응해 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물론 본회의를 열더라도 필리버스터를 중단시킬 방법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닌데, 국회법상 재적의원 3분의1 요구에 5분의 3(현재 재적인원 295명 기준 177명) 찬성으로 필리버스터를 종료할 수 있게 규정되어 있어 일견 한국당을 제외한 모든 정당들이 공조하면 토론 종결이 가능하지만 문제는 무제한 토론 종결 동의 요구가 제출된 지 25시간이 지나야 종결 여부를 무기명투표로 표결하도록 규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당이 모든 안건에 필리버스터를 신청한 이상 정기국회 폐회 전까지 토론을 종결시키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더구나 정기국회 종료(12월 10일)까지 고작 11일(264시간) 남은 만큼 한국당에서 밝힌 대로 1인당 4시간씩 소속의원 108명이 200건의 법안을 놓고 무제한 토론을 이어간다면 800시간은 훌쩍 넘어 패스트트랙 법안을 정기국회 내 상정하기 어려워지기 때문에 당초 유치원3법 등을 통과시키겠다며 한 명도 빠짐없이 자리를 지키라고 이날 의총에서 신신당부한 민주당에서조차 정작 이날 오후 본회의장에 전혀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채 끝내 본회의를 무산시켜버렸다.

◆ 격앙된 與 “혹독한 대가 치를 것…선거법·檢 개혁법 반드시 통과시키겠다”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 이인영 원내대표를 비롯한 의원들이 2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로텐더홀 앞 계단에서 '민생파괴! 국회파괴! 자유한국당 규탄대회'를 갖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 / 백대호 기자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 이인영 원내대표를 비롯한 의원들이 2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로텐더홀 앞 계단에서 '민생파괴! 국회파괴! 자유한국당 규탄대회'를 갖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 / 백대호 기자

비록 문희상 국회의장이 의결정족수가 채워지면 개의하겠다는 입장이었고, 민주당도 한때 본회의 무산보다는 표결을 통해 필리버스터를 종결시키는 방안도 고려했으나 수많은 안건을 각각 종결투표 해야 하는데다 의결정족수도 채우기 쉽지 않다고 판단해 결국 본회의 무산 쪽으로 선회하게 된 것으로 전해졌다.

대신 민주당은 이날 한국당의 필리버스터 시도에 규탄대회로 맞불을 놓으며 격앙된 감정을 숨김없이 분출했는데, 이해찬 대표는 한국당을 겨냥 “머리 깎고 단식하고 국회 마비시키는 이게 정상적인 정당인가. 30년간 정치했지만 이런 꼴은 처음”이라며 “참을 만큼 참았다. 선거법과 검찰개혁법을 반드시 이번 국회에서 통과시킬 것”이라고 정면으로 선전포고했다.

한 발 더 나아가 ‘유치원 3법을 반드시 통과시키겠다’고 했었던 이인영 원내대표는 한국당이 이들 법안에도 필리버스터하겠다고 밝힌 점을 꼬집어 “어떻게 이들이 정쟁의 대상이 될 수 있나. 한국당의 시도는 정치 포기 선언”이라며 “한국당의 저질스러운 폭거에 하나하나 응징하며 새로운 희망과 미래를 세워나가겠다. 혹독한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원색적으로 한국당을 맹비난했다.

사실 한국당 내에서도 비쟁점법안 처리 목적의 본회의를 열기로 했던 이날부터 필리버스터를 실시하는 데 대해 부담감을 느끼는 목소리도 없지 않았으나 황 대표의 단식 이후 대체로 당내 강경한 분위기가 흐르면서 투쟁 동력을 떨어뜨리지 않기 위해 필리버스터 카드를 예상외의 시점에 꺼낸 것으로 풀이되고 있는데, 아예 나 원내대표는 “이 저항의 준엄한 대장정을 막을 수 있는 것은 불법 패스트트랙 완전한 철회 선언과 친문게이트 국정조사 수용”이라며 울산 부정선거, 유재수 감찰 무마, 우리들병원 금융 농단에 대한 국조까지 덧붙여 양측은 이제 어느 한쪽이 물러나야만 끝나는 치킨게임으로 돌입한 모양새다.

여기에 군소정당들도 거대 양당의 격돌 속에 제각기 패스트트랙 찬반 입장에 따라 반응이 양분됐는데, 먼저 바른미래당 내 변화와 혁신을 위한 비상행동 소속인 유승민 의원은 이날 국회에서 비상회의를 가진 뒤 “저희는 합의되지 않은 선거법을 국회가 통과시키는 일은 결코 있을 수 없다는 점을 초기부터 분명히 해왔다”며 “본회의에 상정되면 필리버스터를 포함해 어떤 방법으로든 막겠다. 변혁 의원들은 반대가 없었다”고 한국당 측에 힘을 실어줬다.

반면 여당과 선거법 등 패스트트랙 법안을 처리키로 했던 정의당과 대안신당에선 변혁과는 상반된 목소리를 내놨는데, 여영국 정의당 원내대변인은 이날 오후 브리핑에서 한국당의 필리버스터를 ”정신 나간 짓“이라고 칭한 뒤 “손익계산도 제대로 못할 거라면 차라리 의원직을 총사퇴하라”라고 일갈했으며 대안신당의 최경환 수석대변인은 같은 날 논평을 통해 “한국당을 제외한 모든 정당이 모여 4+1 예산안 협상을 즉각 개시하고 심의를 해서 12월2일 본회의에서 통과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2016년 민주당의 ‘필리버스터’ 당했던 한국당, 이번엔 역공 펼쳐 성공할까

이 같은 상황은 과거 민주당이 2016년 테러방지법 처리 문제로 한국당의 전신인 새누리당에 맞서 패스트트랙을 감행했었던 당시와 완전히 반대 입장이 됐다는 점에서 아이러니한데, 비록 역대 최장 신기록을 경신하며 화제를 만들었음에도 테러방지법 저지엔 실패했지만 테러방지법에 대한 여론의 이목을 끄는 데엔 성공해 필리버스터 시작 전날인 2016년 2월 22일만 해도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조사한 테러방지법 필리버스터에 대한 설문조사에서 정부여당이 46.1%를 얻어 야당을 지지한다는 의견보다 3.5%P 앞섰으나 야권의 필리버스터가 시작된 이후 격차가 좁혀진 끝에 필리버스터가 종료된 3월 2일엔 야권이 우위에 서는 역전이 일어났다.

[시사포커스 / 백대호 기자] 바른미래당 오신환 원내대표가 29일 오후 국회((본청 245호)에서 열린 제69차 의원총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시사포커스 / 백대호 기자] 바른미래당 오신환 원내대표가 29일 오후 국회((본청 245호)에서 열린 제69차 의원총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이렇듯 여론의 지지를 업게 되면 이번 역시 여당이 국회법에 따라 강행 처리하려 해도 총선을 불과 5개월도 안 남겨둔 시점이라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을 거란 계산인데, 바른미래당 변혁의 오신환 대표도 지난 27일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과의 인터뷰에서 “결과적으로 국회법 절차에 따른 민주적인 표결을 한다면 우리가 막을 길은 없다”면서도 필리버스터 단행 의지를 표한 데에는 여론을 통한 여당 압박 효과를 기대한 부분도 없지 않을 것으로 해석된다.

물론 그 자체로 ‘반대하는 법안’을 무산시킬 수 없다는 점에선 필리버스터의 한계가 명확해 내달 3일 공수처법 등이 본회의에 자동 부의된 뒤엔 60일 이내 상정되고, 60일 이내 상정되지 않는다면 그다음 개의되는 첫 본회의에 자동으로 상정되기에 정기국회가 끝난 뒤에 강행 처리할 수도 있겠지만 내달 17일 총선 예비후보 등록일까지 패스트트랙 법안들을 처리하려던 여당의 계획은 헝클어지게 되는 만큼 필리버스터 변수 속에 누가 최후의 승자가 될 수 있을 것인지 세간의 이목이 본회의장으로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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